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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미노타우로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게는 성역과 잠력 폭발의 유지 시간이 끝날까 아슬아슬한 전투였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지만도 않은 걸까.

       

       “……이걸로 끝? 잠깐 시간 끄는 거 아니었어?”

       “누구야. 미노타우로스는 물리 내성이 강하다고 한 놈.”

       “강하긴 했잖아. 그리고 마지막엔 이능도 섞였고.”

       “그래도 그렇지…혹시 쟤 이름 아는 사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위험한 분위기의 귀여운 남자애…후욱후욱.”

       “일단 얘는 묶어놔라….”

       

       웅성이는 주변의 모험가들. 중간에 하나 이상한 사람이 있었지만, 대체로 반응은 비슷했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감탄. 그리고 뉴페이스에 대한 호기심.

       

       “…근데 이러면 우리 토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애초에 진열이 무너진 건 전부 저놈 때문이잖아.”

       

       그리고 약간의 원망? 남 탓? 그런 것도 있었다. 다만.

       

       철컥. 철컥.

       

       갑옷 소리를 내며 내 옆에 나란히 선 리디아. 그녀의 모습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전부 일전에 리디아가 나에 대한 비방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주변의 시선을 대충 흘려넘긴 리디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요나. 괜찮아?”

       

       “으음. 아직까지는 괜찮네요.”

       

       아직 성역과 잠력 폭발은 유지되고 있다. 1~2분이면 꺼질 것 같지만.

       

       …그러면 이대로 푹 쓰러지는 건가?

       

       주변 모험가들이 대체로 내게 호의적이거나, 화들짝 놀란 상태지만 일부는 불만을 품고 있다.

       

       단순한 감정적 불만이 아닌, 토벌 보상이라는 이권이 달린 불만 말이다.

       

       증명은 한 세월이 걸리지만 선동은 한 순간이라는 전생의 기억을 되새기며 일단 선빵을 치기로 했다.

       

       “흠흠. 여러분? 어쩌다 보니 제가 혼자 처리했네요. 그러니 전리품도 제가 제일 많이 챙기는 게 좋겠죠? 아, 하지만 걱정 마세요! 어차피 공헌도도 제대로 못 채우셨잖아요? 그럼 토벌로 인정해 주질 않으니 다음에 한 번 더 잡으시면 괜찮을 거예요!”

       

       “…….”

       “…….”

       “…….”

       

       순간 흐르는 정적. 묘하게 날카로워진 분위기에 깨달았다.

       

       방금 막 전투가 끝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탓일까. 내 말투가 평소보다 공격적인 탓에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었다는 걸.

       

       대충 요약하자면 ‘허~접 허~접! 공헌도도 못 채우는 주제에 전리품을 탐내? 너네 같은 허접 모험가에게 줄 전리품은 없으니까 그냥 다음에 리트하지 그래?’ 정도 아닐까.

       

       리다아도 이를 느꼈는지 스윽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불만 있는 사람?”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중년의 모험가가 손을 들었다.

       

       보아하니 직접 토벌에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고, 보호자로 온 경우 같네.

       

       “전리품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에는 동의하오. 다만, 우리의 지분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 얼마나 떼어주는지에 따라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소.”

       

       보기 드문 남자 모험가. 그것도 중후한 인상이 같은 남자의 눈으로 봐도 좀 멋있다.

       

       그, 왜. 반쯤 흰머리가 섞여 회색처럼 보이는 머리라던가. 단정하게 기른 수염이라던가.

       

       지구에서도 꾸준한 수요가 있는 스타일이었는데, 남역 세계에서는 어떻겠는가.

       

       일종의 밀프같은 느낌이 아닐까? 실제로 주변의 몇몇 여자는 멍하니 저 아저씨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고.

       

       하지만 그런 수염 아재를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쳐다보던 리디아. 그녀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당사자에게 물어볼게. 요나?”

       

       “앗, 네. 어찌 됐든 소모한 물약이나 스크롤 값은 해야겠죠. 거기에 어찌 됐든 초반에 어그로를 끌어주었던 건 사실이니….”

       

       잠시 고민하다 저 멀리에 떨어진 뿔을 가리켰다.

       

       “저거 하나 나눠 가지면 괜찮지 않을까요?”

       

       “…나쁘지 않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수염 아재. 다만,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돈이 아니었던 걸까. 분명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은근슬쩍 다른 질문을 던져온다.

       

       “헌데, 자네. 이름은 어떻게 되나?”

       

       “요나인데요.”

       

       “소속된 클랜은 어찌 되는가?”

       

       “클랜은 없는데 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긴 해요.”

       

       “아, 리디아 경을 스승으로 모시는 건가. 훌륭한 분이지.”

       

       “엣헴.”

       

       “하지만 개인의 지원과 단체의 지원은 그 성질이 다른 법일세. 무엇보다 여자에겐 털어놓기 힘든 남자만의 고충도 있는 법 아닌가. 내가 속한 ‘맨즈 데이즈’ 클랜의 경우에는 오직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에.”

       

       클랜 가입 권유였나. 다만 나는 특정 클랜에 속할 마음이 없다. 적어도 지금은.

       

       심지어 그게 고추 파티라면 더더욱 그러하고.

       

       으으…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남녀역전 세계의 남자들이라 하여 죄다 게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아무래도 묘한 괴리감이 있단 말이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할게요. 아무튼 뿔 하나면 괜찮다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가요?”

       

       “뭐어. 미노타우로스는 뿔이 제일 비싸니까.”

       “나눠 먹어도 손해는 안 보겠네.”

       “애초에 실수 한번 했다고 무너지는 거면 실력 부족이지. 나 때는 말이야…….”

       “아니, 누가 들으면 선배님은 무슨 몇백 년 전 사람인 줄 알겠어요?”

       

       대체로 납득하는 분위기. 이걸로 한시름 덜었나 싶어 가슴을 쓸어내리려는 순간.

       

       “아.”

       

       전신에서 쑤욱 빠지는 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시야는 핑핑 돌기 시작한다. 

       

       잠력 폭발의 유지 시간이 끝나고, 그 반동이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성역의 전개 시간이 조금 더 길어, 아직 성역빨로 버티고는 있긴 한데….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오늘치 성역이 끝날 거라는 건 확실한 상황.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리디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응.”

       

       다 안 다는 듯이 그대로 나를 업는 리디아. 이에 아까부터 시끄럽던 모험가들이 재차 조용해진다.

       

       “그러고 보니 전투에 나서며 뭘 먹었던 것 같은데….”

       “각성제의 일종인가. 하긴. 아무리 대단한 재능이라도 혼자 계층 수호자를 압도하는 건 불가능하지.”

       “그렇다 해도 다른 동격의 모험가들을 압도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네.”

       

       작게 수군거리는 목소리. 좋아. 계획대로군. 어차피 주목받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이렇게 되면 전력의 3할은 숨길 수 있을 거다.

       

       실제로 성역 전개의 정체를 숨긴 것은 물론, 바실리우스나 투명망토의 존재도 내비치지 않았으니까.

       

       리디아의 등에 업힌 채, 팔을 휘휘 저으며 입을 열었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그럼 이제 미노타우로스의 소재 좀 갈무리 해주시겠나요?”

       

       “흠….”

       

       무언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침음을 흘리는 리디아. 이쪽을 힐끔대는 것인 원하는 게 따로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뭐어. 리디아가 이 타이밍에 원하는 건 하나뿐이겠지.

       

       피식 웃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이미지하는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만은 남아있는 몰락 귀족. 그 마지막 동아줄을 기품이라는 형태로 자아낸다.

       

       “리디아 경. 나의 충직한 호위 기사여. 저를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승리의 영광을 수거해 주시겠나요?”

       

       “분부대로.”

       

       그제야 만족스레 콧김을 뿜으며 적당한 크기의 장검을 꺼내는 리디아. 쉽군.

       

       이 광경을 본 모험가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긴 하지만…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지.

       

       이건 일종의 역할극. 단순한 놀이 같은 거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뽑아 든 단검으로 미노타우로스의 사체를 반듯하게 베어내는 리디아.

       

       본래 이런 갈무리에는 단검을 쓰는 게 국룰이긴 한데…이 거대한 덩치를 분해하는 데 작은 단검을 쓰는 건 너무 비효율적 아닌가.

       

       무엇보다 리디아쯤 되면 장검으로도 충분한 기예를 발휘할 수 있고.

       

       처음에는 미노타우로스의 배를 세로로 찌르는가 싶더니, 슥슥 가죽을 벗겨내고, 남은 하나의 허벅지 뼈도 2개 챙긴다.

       

       그리고는 뿔 하나만 남은 머리를 집어 들고는 그걸로 끝.

       

       일단 한때는 영웅이었던 사람인데, 이런 처참한 결말은 좀 뒷맛이 씁쓸하긴 하네.

       

       물론, 그런 씁쓸함이 가챠로 돌아올 터이니 얼마든 감내할 수 있지만.

       

       아공간 가방에 전부 집어넣질 못해, 적당히 결국 잘린 머리는 한쪽 옆구리에 낀 리디아가 마지막으로 마석을 뽑았다.

       

       파스스.

       

       미노타우로스의 몸뚱이가 재가되어 흩어지더니, 그대로 대지의 신의 심장으로 흡수된다.

       

       엄밀히 말해 저 심장은 환영이고, 잿가루는 미궁 자체에 녹아드는 것이지만…적어도 눈으로 보기에는 그러더라.

       

       신과 챔피언. 타락했음에도 차마 죽일 수 없어 봉인 해둔 영웅.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치료법을 찾지 못해 같은 무덤에 나란히 묻힌 둘.

       

       대지의 신과 아스테리오스 사이에는 분명 작가인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리라.

       

       그들은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하고, 이제는 그 신성함과 위대함이 한낱 사냥감으로 전락했지만.

       

       그럼에도 둘의 선택과 이뤄낸 위업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리라.

       

       미궁에 구현된 잔상이 아닌,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묻힌 진짜 유해를 향해 가볍게 묵례했다.

       

       “어머니 대지의 품에서 편히 쉬기를.”

       

       작게 읊조린 추모사. 그에 화답하듯 몸 깊은 곳에서부터 작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젠 익숙한 권능이 새겨지는 감각.

       

       …동시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비틱 좀 하겠습니다.

    남은 보석 털려고 전광 가챠 돌렸더니 20연챠에 완매 전광 나와서 남는 하나 화척자 줌.
    거기서 남은 스타라이트로 5번 단챠 돌려서 반디 전광 2개 더 먹음. 반디 전광 3제련 됨.

    끼얏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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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EP.135





       미노타우로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게는 성역과 잠력 폭발의 유지 시간이 끝날까 아슬아슬한 전투였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지만도 않은 걸까.


       


       “……이걸로 끝? 잠깐 시간 끄는 거 아니었어?”


       “누구야. 미노타우로스는 물리 내성이 강하다고 한 놈.”


       “강하긴 했잖아. 그리고 마지막엔 이능도 섞였고.”


       “그래도 그렇지…혹시 쟤 이름 아는 사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위험한 분위기의 귀여운 남자애…후욱후욱.”


       “일단 얘는 묶어놔라….”


       


       웅성이는 주변의 모험가들. 중간에 하나 이상한 사람이 있었지만, 대체로 반응은 비슷했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감탄. 그리고 뉴페이스에 대한 호기심.


       


       “…근데 이러면 우리 토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애초에 진열이 무너진 건 전부 저놈 때문이잖아.”


       


       그리고 약간의 원망? 남 탓? 그런 것도 있었다. 다만.


       


       철컥. 철컥.


       


       갑옷 소리를 내며 내 옆에 나란히 선 리디아. 그녀의 모습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전부 일전에 리디아가 나에 대한 비방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주변의 시선을 대충 흘려넘긴 리디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요나. 괜찮아?”


       


       “으음. 아직까지는 괜찮네요.”


       


       아직 성역과 잠력 폭발은 유지되고 있다. 1~2분이면 꺼질 것 같지만.


       


       …그러면 이대로 푹 쓰러지는 건가?


       


       주변 모험가들이 대체로 내게 호의적이거나, 화들짝 놀란 상태지만 일부는 불만을 품고 있다.


       


       단순한 감정적 불만이 아닌, 토벌 보상이라는 이권이 달린 불만 말이다.


       


       증명은 한 세월이 걸리지만 선동은 한 순간이라는 전생의 기억을 되새기며 일단 선빵을 치기로 했다.


       


       “흠흠. 여러분? 어쩌다 보니 제가 혼자 처리했네요. 그러니 전리품도 제가 제일 많이 챙기는 게 좋겠죠? 아, 하지만 걱정 마세요! 어차피 공헌도도 제대로 못 채우셨잖아요? 그럼 토벌로 인정해 주질 않으니 다음에 한 번 더 잡으시면 괜찮을 거예요!”


       


       “…….”


       “…….”


       “…….”


       


       순간 흐르는 정적. 묘하게 날카로워진 분위기에 깨달았다.


       


       방금 막 전투가 끝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탓일까. 내 말투가 평소보다 공격적인 탓에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었다는 걸.


       


       대충 요약하자면 ‘허~접 허~접! 공헌도도 못 채우는 주제에 전리품을 탐내? 너네 같은 허접 모험가에게 줄 전리품은 없으니까 그냥 다음에 리트하지 그래?’ 정도 아닐까.


       


       리다아도 이를 느꼈는지 스윽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불만 있는 사람?”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중년의 모험가가 손을 들었다.


       


       보아하니 직접 토벌에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고, 보호자로 온 경우 같네.


       


       “전리품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에는 동의하오. 다만, 우리의 지분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 얼마나 떼어주는지에 따라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소.”


       


       보기 드문 남자 모험가. 그것도 중후한 인상이 같은 남자의 눈으로 봐도 좀 멋있다.


       


       그, 왜. 반쯤 흰머리가 섞여 회색처럼 보이는 머리라던가. 단정하게 기른 수염이라던가.


       


       지구에서도 꾸준한 수요가 있는 스타일이었는데, 남역 세계에서는 어떻겠는가.


       


       일종의 밀프같은 느낌이 아닐까? 실제로 주변의 몇몇 여자는 멍하니 저 아저씨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고.


       


       하지만 그런 수염 아재를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쳐다보던 리디아. 그녀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당사자에게 물어볼게. 요나?”


       


       “앗, 네. 어찌 됐든 소모한 물약이나 스크롤 값은 해야겠죠. 거기에 어찌 됐든 초반에 어그로를 끌어주었던 건 사실이니….”


       


       잠시 고민하다 저 멀리에 떨어진 뿔을 가리켰다.


       


       “저거 하나 나눠 가지면 괜찮지 않을까요?”


       


       “…나쁘지 않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수염 아재. 다만,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돈이 아니었던 걸까. 분명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은근슬쩍 다른 질문을 던져온다.


       


       “헌데, 자네. 이름은 어떻게 되나?”


       


       “요나인데요.”


       


       “소속된 클랜은 어찌 되는가?”


       


       “클랜은 없는데 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긴 해요.”


       


       “아, 리디아 경을 스승으로 모시는 건가. 훌륭한 분이지.”


       


       “엣헴.”


       


       “하지만 개인의 지원과 단체의 지원은 그 성질이 다른 법일세. 무엇보다 여자에겐 털어놓기 힘든 남자만의 고충도 있는 법 아닌가. 내가 속한 ‘맨즈 데이즈’ 클랜의 경우에는 오직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에.”


       


       클랜 가입 권유였나. 다만 나는 특정 클랜에 속할 마음이 없다. 적어도 지금은.


       


       심지어 그게 고추 파티라면 더더욱 그러하고.


       


       으으…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남녀역전 세계의 남자들이라 하여 죄다 게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아무래도 묘한 괴리감이 있단 말이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할게요. 아무튼 뿔 하나면 괜찮다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가요?”


       


       “뭐어. 미노타우로스는 뿔이 제일 비싸니까.”


       “나눠 먹어도 손해는 안 보겠네.”


       “애초에 실수 한번 했다고 무너지는 거면 실력 부족이지. 나 때는 말이야…….”


       “아니, 누가 들으면 선배님은 무슨 몇백 년 전 사람인 줄 알겠어요?”


       


       대체로 납득하는 분위기. 이걸로 한시름 덜었나 싶어 가슴을 쓸어내리려는 순간.


       


       “아.”


       


       전신에서 쑤욱 빠지는 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시야는 핑핑 돌기 시작한다. 


       


       잠력 폭발의 유지 시간이 끝나고, 그 반동이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성역의 전개 시간이 조금 더 길어, 아직 성역빨로 버티고는 있긴 한데….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오늘치 성역이 끝날 거라는 건 확실한 상황.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리디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응.”


       


       다 안 다는 듯이 그대로 나를 업는 리디아. 이에 아까부터 시끄럽던 모험가들이 재차 조용해진다.


       


       “그러고 보니 전투에 나서며 뭘 먹었던 것 같은데….”


       “각성제의 일종인가. 하긴. 아무리 대단한 재능이라도 혼자 계층 수호자를 압도하는 건 불가능하지.”


       “그렇다 해도 다른 동격의 모험가들을 압도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네.”


       


       작게 수군거리는 목소리. 좋아. 계획대로군. 어차피 주목받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이렇게 되면 전력의 3할은 숨길 수 있을 거다.


       


       실제로 성역 전개의 정체를 숨긴 것은 물론, 바실리우스나 투명망토의 존재도 내비치지 않았으니까.


       


       리디아의 등에 업힌 채, 팔을 휘휘 저으며 입을 열었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그럼 이제 미노타우로스의 소재 좀 갈무리 해주시겠나요?”


       


       “흠….”


       


       무언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침음을 흘리는 리디아. 이쪽을 힐끔대는 것인 원하는 게 따로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뭐어. 리디아가 이 타이밍에 원하는 건 하나뿐이겠지.


       


       피식 웃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이미지하는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만은 남아있는 몰락 귀족. 그 마지막 동아줄을 기품이라는 형태로 자아낸다.


       


       “리디아 경. 나의 충직한 호위 기사여. 저를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승리의 영광을 수거해 주시겠나요?”


       


       “분부대로.”


       


       그제야 만족스레 콧김을 뿜으며 적당한 크기의 장검을 꺼내는 리디아. 쉽군.


       


       이 광경을 본 모험가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긴 하지만…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지.


       


       이건 일종의 역할극. 단순한 놀이 같은 거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뽑아 든 단검으로 미노타우로스의 사체를 반듯하게 베어내는 리디아.


       


       본래 이런 갈무리에는 단검을 쓰는 게 국룰이긴 한데…이 거대한 덩치를 분해하는 데 작은 단검을 쓰는 건 너무 비효율적 아닌가.


       


       무엇보다 리디아쯤 되면 장검으로도 충분한 기예를 발휘할 수 있고.


       


       처음에는 미노타우로스의 배를 세로로 찌르는가 싶더니, 슥슥 가죽을 벗겨내고, 남은 하나의 허벅지 뼈도 2개 챙긴다.


       


       그리고는 뿔 하나만 남은 머리를 집어 들고는 그걸로 끝.


       


       일단 한때는 영웅이었던 사람인데, 이런 처참한 결말은 좀 뒷맛이 씁쓸하긴 하네.


       


       물론, 그런 씁쓸함이 가챠로 돌아올 터이니 얼마든 감내할 수 있지만.


       


       아공간 가방에 전부 집어넣질 못해, 적당히 결국 잘린 머리는 한쪽 옆구리에 낀 리디아가 마지막으로 마석을 뽑았다.


       


       파스스.


       


       미노타우로스의 몸뚱이가 재가되어 흩어지더니, 그대로 대지의 신의 심장으로 흡수된다.


       


       엄밀히 말해 저 심장은 환영이고, 잿가루는 미궁 자체에 녹아드는 것이지만…적어도 눈으로 보기에는 그러더라.


       


       신과 챔피언. 타락했음에도 차마 죽일 수 없어 봉인 해둔 영웅.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치료법을 찾지 못해 같은 무덤에 나란히 묻힌 둘.


       


       대지의 신과 아스테리오스 사이에는 분명 작가인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리라.


       


       그들은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하고, 이제는 그 신성함과 위대함이 한낱 사냥감으로 전락했지만.


       


       그럼에도 둘의 선택과 이뤄낸 위업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리라.


       


       미궁에 구현된 잔상이 아닌,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묻힌 진짜 유해를 향해 가볍게 묵례했다.


       


       “어머니 대지의 품에서 편히 쉬기를.”


       


       작게 읊조린 추모사. 그에 화답하듯 몸 깊은 곳에서부터 작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젠 익숙한 권능이 새겨지는 감각.


       


       …동시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비틱 좀 하겠습니다.













    남은 보석 털려고 전광 가챠 돌렸더니 20연챠에 완매 전광 나와서 남는 하나 화척자 줌.
    거기서 남은 스타라이트로 5번 단챠 돌려서 반디 전광 2개 더 먹음. 반디 전광 3제련 됨.

    끼얏호우!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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