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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있지, 아르테. 이런 말 하기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 안쪽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아르테에게 그렇게 말하고도, 과연 허락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내가 말했지만 어처구니없는 말이었으니까.

       

       슬쩍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아르테의 응급처치 덕에 피는 멎었지만, 하얀색의 실이 새빨갛게 물들어 심각한 부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네.

       

       하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고,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아르테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있어야 저 괴물이 살기 위해 이리저리 날려대는 공격을 손쉽게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어떻게 설득해야···.

       

       

       “좋아요. 뭘 하면 될까요?”

       

       “···어?”

       

       “팔을 자를까요? 아니면 벽을 세워 드려요?”

       

       

       말만 해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 아르테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득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아르테가 나를 도와줄까 생각하며 한참을 고민했는데.

       

       그런 건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방긋 웃었다.

       

       

       “···허락, 해주는 거야?”

       

       “허락이고 자시고, 저는 애초에 거절할 생각이 없었는걸요.”

       

       “어째서···?”

       

       

       시우는 의문이었다.

       

       아르테는 여태껏 내가 없으면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불안증세가 심해지기도 하는 등 내게 많이 의존해왔으니까.

       

       그런데 위험한 장소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는데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니.

       

       여태까지의 아르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혼란스러움을 느낄 찰나.

       

       아르테가 쿡쿡 웃으며 내게 말했다.

       

       

       “믿으니까요.”

       

       “···믿는다고?”

       

       “네, 믿어요.”

       

       

       신뢰.

       

       바로 그것이, 위험한 곳에 제 발로 걸어가려는 나를 막지 않는 이유라고.

       

       아르테는 그렇게 말했다.

       

       

       “분명 위험하겠죠. 저 사이를 뚫고 들어간다니, 말도 안 돼요.”

       

       

       아르테는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듯, 자신의 주위를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새로 돋아나서 혼란스러운 모양이네요. 다가가기는커녕, 주변에만 가도 눈먼 공격에 썰릴지도 모르겠어요.”

       

       

       살벌한 말을 꺼내면서도 아르테는 웃음기를 거두지 않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는 걱정하지 않아요.”

       

       

       그 모습이.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무심코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우는 결국 저랑 함께 있을 테니까. ···그렇죠?”

       

       

       손에 걸린 팔찌를 들어보이며 아르테가 웃었다.

       

       부드럽게 웃어 보이는 그 모습과 내게 보내주는 신뢰.

       

       아르테의 그런 모습에 나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내가 저 안쪽으로 달려들면, 엄호해줬으면 해.”

       

       “간단하지만 어려운 주문이네요.”

       

       “···하하, 미안.”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 녀석에게는 갚아주고 싶은 게 있으니까.”

       

       

       시우는 아르테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뭔가, 거리낌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선을 넘은 것 같은, 그런 느낌.

       

       시우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지, 도로시도 얼떨떨한 눈빛으로 아르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시우랑 이렇게 협동하는 건 처음 아닌가요?”

       

       “어? ···그런가?”

       

       “제 기억으로는요.”

       

       

       그녀의 말에 기억을 되짚어보자, 정말 그랬다.

       

       여태껏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었지만, 아르테와 나는 같은 편이 되어 싸운 적은 없었어.

       

       항상 아르테가 무언가를 하러 떠났으니까.

       

       이벤트 성향이 있는 전투에서는 언제나 반대편이었고.

       

       ···그렇구나. 처음으로 함께 싸우는 거구나.

       

       

       “이런 말 하면 조금 그렇지만···. 뭔가, 기쁘네요.”

       

       

       살짝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내게 말하는 아르테의 모습에 괜히 나까지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로시가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꽁냥대는 와중에 조금 죄송하지만, 저거 도망가는데요?”

       

       “아.”

       

       

       그러고 보니 저걸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나도 모르게 시간을 허비해버려서, 어느샌가 크기도 조금 커져 이제는 인간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는 소녀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좋아, 도로시. 부탁할게.”

       

       “네. 꼭 살아 돌아와서 방금 장면을 계속 제 눈앞에서 해줬으면 좋겠어요.”

       

       “눈 앞에서···? 그건 좀···.”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마치 가벼운 일을 처치하러 가야 한다는 듯 담소를 끝마친 나는 소녀를 향해 점차 다가갔다.

       

       저 소녀의 이야기에 끝을 맺기 위해서.

       

       어느덧 소녀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능력들이 휘몰아치는 장소.

       

       마치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자연재해를 바라보는 것 같은 구역에 발걸음을 내딛자, 도로시의 강화가 적용되었는지 머리에 끔찍한 두통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이곳에서 멈추면 끔찍하게 죽어버릴 테니.

       

       아르테를 위해서라도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발을 한 걸음 내딛자 눈먼 불꽃과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팔, 그리고 날카로운 얼음들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나아갔다. 나에게 닿기도 전에 사라질 거라는 게 확실했으니.

       

       얼음이 잘리며 파편이 날아들어 올 테니, 발걸음을 한 발짝 왼쪽으로 옮겼다.

       

       그러자 순식간에 원래 있던 자리에 박히는 파편.

       

       아르테가 나를 지켜주기 위해 실을 사용했지만, 우연히 궤도가 비틀리며 날아들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얼굴을 굳히다 한숨을 내쉬는 아르테의 모습이 보인다.

       

       아니, 보이는 게 아니지.

       

       알 수 있었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수없이 많은 공격이 나에게로 날아들었지만, 그 무엇도 나를 상처입히지 못했다.

       

       도로시의 강화를 받은 나는 설령 신이 강림한다고 하더라도 상처입히지 못할 테니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지, 괴물이 포효하며 나를 향해 시도하는 공격도 모두 의미 없었다.

       

       모든 움직임이 읽히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눈치챈 건지, 아예 두 눈을 감으며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것도 의미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전부 알고 있으니까.

       

       저 괴물이 어떻게 움직일지.

       

       공격 방향은 어디인지, 무슨 방식으로 공격할지.

       

       본인도 파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내 능력이니까.

       

       이것이 내 능력의 도달점이니까.

       

       

       “미안해.”

       

       

       괴물, 아니.

       

       소중한 사람을 잃고 미쳐버린 소녀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만약 내가 아르테를 지키지 못했다면 이 소녀처럼 되었을지도.

       

       그런 마음에 안타까움이 생겼지만, 나는 이 소녀를 막아야만 했다.

       

       도로시의 강화를 받기 전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알 수 있었다.

       

       작가님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배제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나는 소녀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크르륵···?!”

       

       

       신변에 위협을 느껴버린 소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나를 상처입힌 마수.

       

       소녀의 곁에 꼭 붙어있던 마수가, 소녀의 손에 명을 달리했다.

       

       그래, 너는 그런 뒤에 그 마수를 흡수하겠지.

       

       더욱 강력해진 힘으로 나를 막으려 할 거야.

       

       하지만 그런 행동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를 막지도 못하고, 기습하지도 못해.

       

       갑작스레 변형된 팔에서 순식간에 커다란 입이 돋아나 나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손쉽게 회피했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도로시가 중얼거리겠지.

       

       

       “공격이, 시우를 피해 가는 것 같아···. 라고.”

       

       

       왼쪽, 위, 아래에서 꼬리 하나 튀어나오고. 위, 아래, 오른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위.

       

       찰나의 순간 쏟아지는 공격마저 모두 알 수 있었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욱신거리는 옆구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녀의 공격을 모두 회피했다.

       

       그리고 지금.

       

       소녀는 크게 거리를 벌리기 위해 공격을 멈추고 뒤로 점프할 거다.

       

       그 타이밍을 맞춰서, 소녀보다 살짝 앞서서 그녀의 품에 뛰어들었다.

       

       내가 따라갈 거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느리게.

       

       그러나 소녀를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내가 소녀의 공격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함께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처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나의 검이, 소녀의 가슴을 도려냈으니.

       

       

       “끄흑···?!”

       

       “···.”

       

       

       머리를 베어도 죽지 않던 괴물.

       

       그런 괴물의 죽음은, 허무하다고 느낄 정도로 단촐했다.

       

       검으로 도려낸 가슴에서 심장을, 아니.

       

       용광로를 잡아 뜯자 마치 건전지를 뺀 인형처럼 축 늘어졌으니까.

       

       ···작가님이 예상하지 못한 강적이기에 대단했지만, 그렇기에 작가님의 연출 같은 게 없는 죽음이라는 걸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 소녀를 죽인다고 끝이 아니니까.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한 원인.

       

       아르테가 이 세상으로 들어온 원인.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고자 하는 장본인이, 아직 이곳에 있었으니까.

       

       바로 지금.

       

       그 녀석이 최대한으로 방심하고 있는 지금.

       

       지금이 그 녀석을 이 세상과 단절시킬 기회였으니까.

       

       

       “대, 대단해요···! 어디 다친 곳은···?!”

       

       “아르테, 미안해.”

       

       

       그렇기에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거두지 않은 채, 사랑하는 사람에게 겨누었다.

       

       

       “어?! ···어?! 자, 잠깐만요! 뭔가 이상한 게 있었나요···?! 저, 정신 지배라던가?!”

       

       “···아냐. 가만히 있어, 도로시.”

       

       “네?! 하지만···!”

       

       

       도로시가 내 행동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죽기 전에 무언가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아르테는, 나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지금껏 보아왔던 웃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으로.

       

       

       “좋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해 주세요.”

       

       “···정말, 괜찮겠어?”

       

       “아까도 말했잖아요? 저는 시우를 믿고 있어요.”

       

       

       설령, 심장을 내어주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믹 보스 특) 잡고나면 허무함

    슬슬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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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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