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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저기로군.”

       

       지부에 접근한 이드밀라는 공중에서부터 서서히 몸집을 줄였다. 

       

       “저는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알고 봐도 안 보이는데…. 이드밀라 님은 벌써 다 보이시나 봐요.”

       “흥. 이 정도는 기본이지. 놈들의 허술해 빠진 결계 따위로 이 몸의 눈을 속일 순 없다.”

       “아르두 몬가 보여! 꿀렁꿀렁해.”

       

       실비아도 차분하게 지부의 위치를 정확하게 보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눈에만 저게 그냥 숲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 먼치킨들 같으니.’

       

       또 나만 일반인이지.

       

       ‘근데 그럴 수밖에 없긴 해.’

       

       이드밀라는 지난 ‘전쟁’ 때도 활약했던 전설의 고룡 중 하나고.

       아르는 무려 직접 마신을 봉인한 은룡, 카르사유의 후손이다. 

       그리고 실비아는 그 카르사유를 보좌했던 엘프 부족의 후손으로 9성과 8서클을 아우르는 문무겸비 최강 엘프고.

       

       반면 나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대한민국 원룸 자취방에서 취업도 안 돼서 알바를 뛰며 근근이 먹고 살던 흔한 청년이었을 뿐.

       

       「레키온 사가」라는 게임을 통해 이 세계관과 대충 미래에 있을 일을 알고 예측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드래곤의 알을 깨워 영혼의 계약을 맺었다는 점만 빼면 이 세계에서도 별볼일없는….

       

       ‘근데 미래랑 세계에 대한 지식을 알고 드래곤이랑 계약도 맺은 거면 나름 나도 나쁘지 않을지도?’

       

       말하고 보니 생각보단 괜찮네. 음.

       

       ‘그리고 얼굴도 이 정도면 멀끔하니 잘생겼고….’

       

       내가 그렇게 나름대로 자존감을 채우고 있을 무렵.

       

       “도착했다.”

       

       이드밀라는 우리를 내려주고 다시 인간 폼으로 변했다. 

       

       인간 폼일 때도 물론 여기 있는 우리가 전부 덤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지만, 특히 드래곤 모습일 때는 브레스 힘 조절 한 번만 삐끗해도 일대 숲이 사라질 터.

       

       ‘아무리 보는 눈이 따로 없는 곳이라지만, 레드 드래곤 덩치로 숲을 불살라 버리면 좀 찜찜하기도 하고.’

       

       웬만하면 잠들었던 레드 드래곤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정보가 널리 퍼지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쀼우!”

       

       한편 아르는 마법을 쓰기 편한 용 폼으로 돌아왔다.

       단, 이번에도 와이번과 드래곤 사이의 마지노선인 허리까지 오는 정도의 덩치로 조절했다.

       

       “역씨 아르는 이 모습이 펴내!”

       

       역시 아르의 용 폼은 귀엽다.

       

       ‘물론 인간 폼도 귀엽고 예쁘지만….’

       

       뭐니뭐니해도 원조를 따라가기는 힘든 법.

       

       그리고 본룡도 저 모습이 더 편하다잖은가.

       

       아무리 폴리모프가 가장 완벽한 변신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태생이 드래곤인 만큼 자연의 모습이 편하긴 할 것이다. 

       

       ‘아휴, 귀여워.’

       

       성장 단계로 치면 2단계와 3단계 사이 어디쯤 있는 모습인데, 만화 캐릭터 짱규의 옆모습처럼 둥글둥글하게 튀어나온 입과 말랑뚠뚠한 배, 짧뚱한 팔다리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당장 안아 들고 말랑한 배와 손바닥 젤리를 만지작거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헤카르테교 지부를 소탕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결계는 제가 자르겠습니다.”

       

       결계 앞에 도착한 실비아는 앞으로 나서서 검을 뽑아 들었다. 

       

       어차피 안쪽에서는 곧 난장판이 벌어질 터.

       

       이드밀라가 나서서 결계를 왕창 부숴 놔 버릴 경우, 밖에서 우리가 벌일 소동이 다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는 것보다는 실비아가 정교하게 결계를 일부만 갈라서 유지시키고 뒤엎어 버리는 편이 낫다. 

       

       “흡.”

       

       쉬익.

       

       실비아가 짧은 기합과 함께 검을 긋자, 마치 종이를 오려 낸 듯 우리가 들어갈 만한 사각형의 틈이 생겨났다. 

       

       ‘역시 깔끔하다.’

       

       솔직히 말해 한 번 슥 그은 줄 알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사각형 모양으로 잘라 냈을 줄이야.

       

       “가실까요.”

       

       깔끔한 결계 절제술(?) 덕분인지 안쪽에서는 아직 우리의 침입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인비저블, 플라이.”

       

       이드밀라는 투명화 상태에서 놈들의 성채 안쪽을 슥 훑었다. 

       그러고는 곧 내려와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착취하고 있더군. 같잖아서 한 번에 쓸어 버리려다가 우리 아르를 봐서 한 번 참았다.”

       

       그 말인즉슨, 놈들은 민간인을 납치해서 노동을 시키고 있다는 뜻. 

       

       ‘딱 놈들이 할 만한 더러운 짓이로군.’

       

       짜증이 난 이드밀라가 잡혀 온 사람들까지 한 번에 쓸어 버리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알다시피 난 파괴하는 쪽에 재능이 있지, 지키는 데에는 별 재능이 없다. 주요 시설이나 대항하는 놈들을 박살내고 있을 테니 구할 인간이 있으면 알아서 구하도록.”

       “감사합니다.”

       “역씨 이모야! 말투는 쌀쌀마즌데 마음은 따뜨태!”

       “흐, 흥. 그, 그렇지도 않은데 우리 아르가 그리 말해 주니, 흠흠. 기분이 나쁘지 않구나.”

       

       이드밀라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큼큼 헛기침을 한 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인비저블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으응? 뭐지?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뭔데?”

       “이봐. 결계가 멀쩡히 있는데 낯선 사람이 이곳에 찾아 올 수 있을 리가 없지?”

       “당연한 소릴 하고 있구만.”

       “그런데 지금 내 눈에 웬 구릿빛 미인이 하늘을 날아 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하하하, 지난밤에 술을 얼마나 마신 건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있을 리가….”

       

       하지만 웃으며 넘기려던 교단원 역시 이드밀라의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뭐, 뭐야?”

       “나 방금 눈 마주친 것 같은데.”

       

       그들의 시선이 곧바로 결계 쪽으로 옮겨 갔다. 

       

       결계가 깔끔하게 잘려 있는 모습을 확인한 그들은 즉시 그 사실을 상부에 알렸다. 아니, 알리려 했다. 

       

       콰아아앙!

       

       폭발과 함께 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콰과과광!

       

       그때를 기점으로 시작된 이드밀라의 폭격에 성벽은 레고 블록 무너지듯 힘없이 무너졌고.

       우리는 그 틈을 타 성채 안쪽으로 침입해 헤카르테교 교단원들을 골라 처치하고 붙잡힌 사람들을 구출해 나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기 귀여운 와이번이 안내하는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쀼, 쀼, 쀼웃!”

       

       아르는 마치 호루라기를 불듯 쀼 소리를 내며 짧뚱한 팔로 안전 요원처럼 탈출 경로를 안내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이 뒤집혀 아르에게 달려드는 놈들이 있었지만.

       

       “삐유웃!”

       

       아르가 쀼로스트, 아니 프로스트 마법을 발동해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한 뒤.

       

       “쀼우우웃!”

       

       플레임 캐논을 쏘자 모두들 그 자리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역마 ‘아르젠테’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확실히 자잘한 세력들이 아닌, 결계로 감춰진 지부 안에 있는 교단원들이다 보니 주는 경험치 양도 상당했다. 

       

       [Lv.54 레온]

       [Lv.54 아르젠테]

       

       어느새 레벨도 50레벨 중반대까지 올라왔다. 

       

       아르의 사기적인 재능으로 인한 마력 스탯 보너스, 그리고 그 마력 스탯을 일정 수준까지 특성을 통해 나까지 공유 받을 수 있는 걸 고려하면 이미 전투력 자체는 60레벨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아르의 잠재적인 전투력은 지금 당장 레벨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지만 말이다.

       

       ‘이쯤이면 웬만한 고렙 용병이나 6서클, 7서클 마법사들까지 어렵지 않게 상대가 가능하지.’

       

       아직 마왕을 직접 상대하기에는 무리겠지만, 지부에 있는 간부급 교단원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번 싸움에서는 간부급 교단원들의 협공에 밀려서 천 년의 힘까지 끌어 썼지만….’

       

       이제는 충분히 할 만하다. 

       

       “삐유우우웃!”

       

       우리는 그렇게 헤카르테교 지부 하나를 완전히 초토화시켰고, 구출한 사람들과 함께 현장을 무사히 탈출했다.

       

       “쀼, 쀼, 쀼웃! 쀼!”

       “저쪽으로 가라는 거죠?”

       “그런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흐으윽.”

       

       구출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끌려 온 사람들은 대부분 대륙 남부 변두리 지방 출신이었다.

       우리는 그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 준 뒤, 곧바로 다음 지부로 향하기로 했다.

       

       지부 하나가 초토화되었으니, 나머지 지부 쪽에서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경계를 강화할 것이다.

       

       ‘근데 사실 경계를 강화해도 소용없긴 해.’

       

       우리에게는 레드 드래곤 이드밀라라는 엄청난 뒷배가 있으니까. 

       

       지금껏 이드밀라 덕분에 대륙 남부의 헤카르테교 세력을 거의 뿌리뽑다시피 할 수 있었고, 이제 남은 건 두 개 지부뿐이었다.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

       

       적어도 이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헤카르테교 다르켄 지부의 지하 최하층.

       

       “면목이 없습니다.”

       

       지부장은 허공에 떠 있는,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수정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면목이 없다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곳에서는 마왕, 헤카르테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깊은 악의를 가진, 아니 악의 그 자체라고 생각될 정도의 진득한 마기가 담긴 목소리였다. 

       

       -이미 이곳을 포함한 지부 두 개를 제외한 모든 세력이 멸망했다. 나의 완벽한 부활을 위해 준비해 둔 초석들이 부서졌다는 말이다!

       

       “죄, 죄송합…끄억!”

       

       지부장의 안색이 파래지며 마치 누군가에게 목이라도 졸린 것처럼 허공에 팔다리를 휘저으며 발버둥쳤다. 

       

       -구릿빛 피부에, 적발 금안이라고 했지.

       

       지부를 파괴한 주범.

       

       헤카르테는 그녀가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천 년 전 전쟁에서 그녀와 직접 싸웠던 마왕 중 하나가 바로 헤카르테였기 때문이었다.

       

       “켁, 켁….”

       

       죽기 직전에 풀려난 지부장이 숨을 헐떡였다.

       

       -부활 의식을 준비해라.

       

       “예, 예? 하지만 지금은 완벽하지 않은….”

       

       -물론 완벽하지 않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빌어먹을 레드 드래곤도 온전한 상태는 아닐 거다.

       

       헤카르테가 더없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드밀라…. 천 년 전 그때의 복수를 해 주마.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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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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