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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선생들한테 각서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본인들 상황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인지, 한 명이 서명하는 것을 보고 나머지도 하나하나 서명했다.

        

       어떻게, 얼마나 갚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갚지 않겠다고 버틸지도 모르지.

        

       뭐, 그런 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애초에 저런 인간들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이 아직도 안도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일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을 용서하건, 아니면 통쾌하게 날려버리건, 내가 만족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그 사람도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

        

       참,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나도 그렇겠지만.

        

       어머님과의 관계는 최대한 빠르게 끊을 생각이다. 저택 내에서 일하는 어머님의 사람들도 장기적으로는 다 쳐내는 게 좋겠지. 나야 어떻게 되건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 저택에서 일하고 있으면 그 사람도 불편할 테니까.

        

       아니면 저택을 팔아버리고 조금 더 좁은 집으로 이사 갈까?

        

       사실, 나는 내 방 정도만 되어도 만족한다. 집이 넓건 좁건, 내 안의 그 사람과 함께 있을 텐데 무슨 문제일까?

        

       그저 가끔 찾아올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남은 건…… ‘다른 아이들과 편안하게 지내는 거’인가?”

        

       이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과 편하게 지내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니까. 사실 이미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너희들에게는 조금 안된 일이지만, 나는 한동안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

        

       뭐, 이것도 시간만 조금 보내면 될 일이다. 그 사람이 내 안에 있을 때만큼은 내가 확실하게 우위를 가진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건 못 지내건, 그 사람이 알 방법은 없다.

        

       물론, ‘못 지내는 것’은 선택지에 넣지는 않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적으로 만들면 그 사람이 걱정할 테니까. 나에게 해준 그 사람의 일을 망가뜨리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잘 지내볼’ 생각도 없었다.

        

       그저 적당히 시간을 보낸 뒤, 나중에 꿈에서 만났을 때 잘 지내고 있다고, 고맙다고 하면 될 일이다.

        

       “나는 상관없어.”

        

       그날, 하교 후의 방 안에서 소희는 그렇게 말했다.

        

       소희가 그렇게 말할 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네가 누구 건 너는 사라잖아?”

        

       “…….”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단순히, 소희가 나를 순수하게 좋아해 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나 그 사람 모두 같은 사라’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그,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나도 상관없어. 너도, 그 아이도, 다 내 친구니까.”

        

       ……뭐, ‘친구’ 같은 말을 할 때 그 의미가 조금 다르게 들리기는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하늘이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친구’라고 해도 태도는 모두 다를 수 있는 모양이다. 서로를 연적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하늘이는 여전히 내 편이기도 했으니까.

        

       “…….”

        

       수아는 뭔가 진지하게 생각 중인 것인지,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

        

       잠깐 방 안이 침묵했다.

        

       기분 나쁘고 무거운 침묵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저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친구가 생긴 것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잠깐의 침묵 끝에, 소희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오늘은 ‘사라’부터 씻는 날이었던가?”

        

       언제나 세 사람이 지내는 방이었던데다가, 하늘이도 주기적으로 와서 함께 자고 가는 일이 많았으므로, 암묵적으로 씻는 순서가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누가 먼저 씻을지 그 순서를 날마다 바꾸는 식으로.

        

       오늘은 내가 제일 먼저 씻는 날인 모양이었다.

        

       “그럼, 나부터 씻을게.”

        

       소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내가 샤워실로 들어가는 도중에도, 오가는 말은 딱히 없었다.

        

       *

        

       나는 언제부터 혼자 씻기 시작했을까?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아홉 살 때부터 혼자 씻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어머님께서 나를 이 저택에 두신 후부터, 나는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다.

        

       아, ‘모든 것’은 아닐지도.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어쨌거나 다른 사람들이 해주긴 했으니까.

        

       세탁이나 요리, 설거지 같은 것들은 내가 할 일이 없었다. 청소 같은 것도 내가 하지는 않았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래서 더 혼자처럼 느껴졌을지도.

        

       아홉 살 이전에는 어머님과 함께 씻었던 기억이 있었다. 방 청소를 하거나, 반죽을 치덕이거나……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추억 사이사이에 그런 기억들이 스며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그 무엇도 누군가와 같이하지 못했다.

        

       내가 따로 해야 할 일도 없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여기서 그저 살아있었다.

        

       “…….”

        

       뭐, 그래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일까.

        

       ……그 아이들이 나, 아니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아이들과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해도, 몇 년이고 몇십년이고 함께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함께 먹고 자는 일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괜찮다.

        

       “그래, 괜찮아.”

        

       나는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한 번 멈췄지만, 그 사람에 의해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이.

        

       몇 년이 지나고, 몇십년이 지나도, 나는 이 사람과 함께니까.

        

       이제 영원히, 혼자 외로워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샤워기 물을 맞으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데—

        

       벌컥.

        

       “으엫!?”

        

       갑자기 뒤쪽의 샤워실 문이 벌컥 열려서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니, 수아가 서 있었다.

        

       평소에 양 갈래로 묶어두었던 머리카락은 풀어둔 모습이었다. 겉보기에는 엄청 활발해 보이면서도 성격은 조금 소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이 모습이 오히려 수아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수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몸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수, 수아……?”

        

       내가 당황해서 그렇게 묻자, 수아는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사, 사라야.”

        

       “으, 응?”

        

       “혹시, 같이 씻어도 될까?”

        

       “어…….”

        

       갑자기?

        

       아니, 그보다 수아가 이렇게 들어오는데 하늘이와 소희가 가만히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의 성격이라면 못 들어가게 막거나, 아니면 함께 들어오겠다고 주장해서 다 같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다 같이 들어오면 샤워실이 몹시 좁게 느껴지겠지만.

        

       “어…… 그래.”

        

       하지만, 그래도 별로 상관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같은 여자였으니까.

        

       목욕탕에도 여탕이 있고, 탈의실도 여자와 남자로 나누어져 있다. 같은 곳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으면 목욕 정도는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는 그런 나를 보고 배시시 웃어 보였다. 여전히 부끄럽기는 한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였다.

        

       *

        

       이수아는 ‘사라’와 함께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니, 함께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기보단, ‘단둘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함께 있는 것으로 따지면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으니까.

        

       하늘이는 종종 사라나 ‘사라’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수업 시간은 도중에 소희와 함께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나눈다는 모양이다.

        

       소희가 사라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소희는 옆에 누가 있건 신경 쓰지 않고 사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초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녀였기에. 이수아는 그런 그녀가 조금 부러웠다.

        

       이수아도 그런 그녀들처럼, 사라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두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는 말을 하기는 꺼려졌다. 자신이 과거에 ‘사라’에게 한 일이 있었기에, 그리고 두 사람이 ‘사라’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그렇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정말 우연의 일치였다.

        

       “신소희 씨.”

        

       “아, 네, 선배님!”

        

       “잠깐 일을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무슨 일인지 양혜인이 와서 소희를 데리고 나갔고,

        

       “어.”

        

       하늘이에게는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지?”

        

       착실한 하늘이는 여기서 자고 갈 때면 늘 부모님께 먼저 이야기했다. 그리고 부모님도 하늘이를 믿고 있었기에, 따로 확인하지는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하늘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 미안,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방 안에 이수아 하나만 두고 나간다는 것이 미안했던 걸까. 하늘이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수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방을 나갔다.

        

       그렇게 해서 이수아는 방 안에 혼자 있게 된 것이다.

        

       “…….”

        

       잠깐 멍하니 앉아있던 그녀의 귀에, ‘사라’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수아의 머리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 거다.

        

       ‘사라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

        

       이수아는 충동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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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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