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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이 부러운 새끼…!”

       “…뭐가?”

       “라파엘 추기경이라니…! 그분과 대화하고 싶은 신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분과 식사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돈을 쏟아부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종교에는 관심도 없는 녀석이 그런 귀한 시간을…!!”

       “그래…?”

         

       땅굴의 소식을 전하러 방문한 제이크가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얘기를 해주니, 갑작스럽게 격한 반응이 나왔고, 이한은 마냥 눈을 끔뻑거릴 따름이었다.

         

       라파엘 영감이 대단하다는 건 이미 듣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그 권위가 얼마나 높은지는 몰랐으니까.

         

       하여 이한으로선 그가 과한 호들갑을 떤다 싶었다.

         

       “근데 왜 추기경이라고 불러? 물러난 지 오래잖아?”

         

       이미 은퇴 직전인 양반인데 이토록 난리를 부릴 일인가 하는 순수한 의문.

         

       “…다른 신도들이 들으면 뒤집어질 발언이군.”

         

       다만 제이크로선 이 발언이 미치고 환장할 발언인지 미간을 꾹꾹 누르길 반복했다.

         

       “그분이 거절해서 추기경직에 물러난 것뿐이지, 여전히 그분의 잠재적 지위는 추기경 이상이야. 원래 교왕이 되도 이상하지 않을 분이라고, 그리고 그분이 마음만 먹고 교왕이 되고자 한다면 신전의 사제들 중 4할 이상이 그분을 지지하겠지.”

       “…보통 양반이 아니었구나.”

       “……왕국 사람이면서 그분을 모른다는 게 참.”

         

       제이크의 황당하다는 반응.

         

       마치 이 나라의 위인을 모른다는 발언을 들은 사람 같았다.

         

       “내가 너 같은 신전 덕후인 줄 아냐.”

       “…덕후는 또 뭐야?”

       “너 같은 놈을 말하는 거다.”

       “……왜 이렇게 욕 같지?”

       “욕은 아니니까 빨리 땅이나 파. 날 세겠다.”

       “으음….”

         

       그는 마당 주변에 밭을 만드는 중이었다.

         

       대충 잡초를 모조리 뽑고, 돌멩이와 자갈을 다 없애고, 흙을 뒤집으며 비료 등을 섞은 후 물을 주며 밭이 밭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원래 며칠은 걸리는 과정이었지만, 이한은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홀로 80평이 좀 넘는 땅을 개간하는 데 성공했다.

         

       “후우, 드디어 끝났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자급자족인 셈이지. 저긴 무 심고, 저기는 감자랑 고구마, 양파랑 땅콩 심고, 저긴 상추랑 배추 심어야지.”

       “…본격적이네. 응? 그럼 저긴 뭘 심으려고 저렇게 많이 비워 놓은 거야?”

       “고추 심으려고.”

       “고추? 혹시 서부에서 최근 들여 온 그 맵고 특이한 식물을 말하는 거야? 고문할 때나 쓴다는…?”

       “…일단 매운 건 맞는데, 고문은 또 무슨 말이야?”

         

       생전 처음 듣는 소리, 그냥 동네 씨를 팔기에 가져온 것뿐인데 이건 또 무슨 소릴까?

         

       허나 이미 오해는 샀는지.

         

       “잔인한 놈, 누굴 고문하려고 그런 걸 키우려고 그러는 거야?”

       “…내가 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이 중세 놈아.”

         

       이한은 억울한 누명을 썼다.

         

       하여튼 좀 매운 것 가지고 호들갑이 심하다.

       이것들이 캡사이신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나라의 사람들을 봐야 저런 말을 안 할 텐데.

         

       그러나 매운 걸 먹으면 그대로 죽는 줄 아는 중세 기사는….

         

       “그걸 먹는다고? …고통 내성이라도 키우려고 그러는 거야? 흠, 확실히 괜찮은 수련법 같기도 하고….”

       “…….”

         

       …약간 이상한 착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걸로 하자….”

         

       허나 차라리 이렇게 오해를 당하는 편이 낫겠다며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떠드는 제 입만 아프니, 원.

         

       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은 밭을 개간하고, 작물을 심었다.

         

       검과 명예로운 일 외엔 여타의 직업에 귀천이 있다 여기는 기사가 농부의 일을 하다니, 이토록 진귀한 광경도 또 없을 터.

         

       아마 몇몇 기사는 이런 광경을 보고 실신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두 기사 중 한 명은 천민 출신이요, 또 한 명은 가난한 몰락 귀족 출신이었다.

         

       이렇다 보니 딱히 두 사람은 이런 일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열심히 흙을 파며 하루를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행위에 기분이 상쾌할 뿐.

         

       어느 정도 일이 끝나고 슬슬 샌드위치를 새참으로 가지고 오는 조교가 다가올 즈음.

         

       “…성법을 상대하는 건 까다로울 거야.”

       “응?”

       “이단심문소 소속 심문관들은 전부 [성법]을 사용할 줄 안다고 보면 돼. 너는 신전과 연이 없으니 잘 모를 테지만, 성법은 투기법과 완전히 다른 힘이야. 광명의 빛께서 내려주신 신성력을 통해 [신비]를 일으키는 거니까. 마치 마법과 투기법을 섞어 놓은 것 같지. 하지만 이러한 강력함이 있는 만큼 성법에 익숙해지는 건 엄청나게 까다로운 과정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런 까다로운 과정을 모두 이겨내고, 기어이 성법을 실전 단계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인간 병기들이 다름 아닌 이단 심문관인 셈이지.”

       “흐음, 그래?”

       “…네 일이면서 왜 이렇게 태평해?”

       “그런 너는 꼭 내가 싸울 것처럼 말한다?”

       “것처럼이 아니라, 넌 반드시 싸울 테니까, 그러니까 주의하란 거지.”

       “…….”

         

       이한으로선 억울한 오해였다.

         

       자신 같은 평화주의자가 어디 있다고 저런 음해를 다 한단 말인-.

         

       ‘…내가 양심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전적이 상당해서 뭐라고 반박은 못 하겠다.’

         

       이한은 인정했다.

         

       확실히….

         

       “보는 순간 기분이 좀 더럽긴 하더라.”

         

       안 그래도 최근 광신도 무리와 엮이면서 불쾌감이 절정으로 달한 그였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 이단심문소와도 엮이게 되니 이한은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쌓이는 중이었다.

         

       더욱 억울한 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난 아직 그놈들이 날 감시하는 이유도 몰라.’

         

       그래, 이유를 모른다.

       그나마 라파엘 영감은 인자하여 그를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고, 그저 대화만 하고 가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해할 생각도 보이지 않았고.

         

       하여 그냥 놔두었으나, 만약.

         

       ‘엊그제 본 녀석 같은 놈이 다시 나오면 그땐….’

         

       참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해, 신전과 척을 지면 사는 게 힘들어져. 특히 왕국에서 신전과 척을 진다는 건 팬드래건에서 살 수 없다는 뜻이니까. 여러모로 주의해.”

       “그땐 망명해야지.”

       “…적당히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는 뜻이구나.”

         

       그는 고개를 저었고, 이한은 당당했다.

         

         

       ……허나 이러한 생각이 불필요했음을 알려주는 것일까?

         

         

       -짹짹!

         

       “제가 돌아간 이후 그 아이가 실례를 범했다고 들었습니다. 형제님에게 사과를 건네고 싶군요.”

         

       “…사과하는 건 좋은데 그걸 꼭 해도 안 뜬 꼭두새벽부터 와서 말해야 해?”

         

       그가 찾아왔다.

         

       참새들이 한참 시끄러울 새벽의 아침.

       이른 새벽의 방문이었고, 이한은 까치집이 생긴 머리를 헤집으며 노신부에게 투덜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에 오는 건 좀 아니지 않으냐고.

         

       “앞으로 나흘간 기도회가 예정되어 있는지라 지금밖에 시간이 없겠더군요. 형제님을 만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허허.”

       “…참 성실히도 사십니다 그려.”

       “당연한 소양일 뿐입니다. 아, 혹시라도 기도회에 참석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오시지요. 저희 신전은 새로운 형제님을 언제든 환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중히, 진심으로 사양할게.”

       “이런, 아쉽군요.”

       “…조교야!”

       “젠장…. 더 자고 싶은데….”

         

       그렇게 아침부터 열성적인 신앙 전파에 열을 내는 노신부를 빠르게 돌려보내려는 이한이었고, 라파엘은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했다.

         

       “아, 그러고 보니.”

       “?”

         

       허나 돌연 그는.

         

       “제가 기도회로 인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그 아이를 비롯해 다른 형제들이 형제님을 귀찮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

         

       불길한 예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신실하지만 조금 과한 형제들인지라 귀찮을 우려가 걱정되는군요.”

       “…알면 당신이 좀 말려.”

       “그러고 싶으나 다 늙은 노인의 말 따윈 흘려듣는 이들도 많지요.”

       “…추기경인데도?”

       “허허, 전능하신 광명의 빛을 제외하고 신전에 어찌 계급이란 게 있겠습니까? 다들 같은 위치에 있을 뿐이지요.”

       “…못 말린다는 말을 되게 길게도 말하네.”

       “허허, 죄송합니다. 그러니 부디….”

         

       스윽.

         

       “만약 그 형제들이 너무 귀찮게 하신다면 형제님께서 타이르셔도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괜찮을 테니.”

       “…그거, 마음에 드는 허락이네.”

         

       라파엘이 건네주는 최상급 성수와 의미심장한 발언에 일순 눈웃음이 지어졌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영감은 참된 어른 같아.”

       “그거 기쁜 말이군요.”

         

       비공식적 신전 최고의 어른에게서 혼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고, 이한은 기뻤다.

         

       그러며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이 영감님, 참 호감이야.’

         

         

       상식적인 어른이란 건 참 좋은 것임을 깨닫는다.

         

       *

       *

       *

         

       “유쾌한 형제님이야.”

         

       라파엘은 자신을 데려다 주겠다는 호의를 끝끝내 거절하며 흙길을 제 스스로 걸었다.

         

       비록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는 것조차 힘겹기 그지없었으나, 그는 아직 광명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제힘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허허, 어제만 해도 없던 것이 있구나.”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사귄 형제님의 배려는 유쾌한 것이었다.

         

       잘 닦인 길은 걷기가 무척이나 편했다.

       발이 걸릴 돌 따위도 없었고, 걷는 곳곳마다 우거진 나무의 그늘 밑으로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치 힘들면 쉬고 가라는 듯.

         

       라파엘은 그 기사가 생각보다 더욱 배려심이 있는 사람임을 깨달으며 한껏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며.

         

       “선배님 말씀대로, 훌륭한 자극제 같은 분이야.”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형제님을 소개시켜준 어느 선배 사제를 떠올렸다.

         

       과거엔 그 못지않은 신실한 분이셨으나, 이제는 은퇴하신 선배를 말이다.

         

       “…좀 주책인 분이긴 하지만.”

         

       성법을 통해 젊어지신 이후로 [집사]란 새로운 직업을 얻은 선배.

         

       그래도 빈말은 하지 않는다.

         

       “다른 형제님들도 조금 매를 맞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겠지.”

         

       과거….

         

       – 엎드려, 이 싸가지 없는 어린놈의 새끼야.

         

       젊은 시절의 그가 선배에게 그토록 폭행, 아니 야단맞으며 잘못된 신앙심을 고쳤던 것처럼.

         

       “허허,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추억이군.”

         

       부디 다른 형제들에게도 훗날 그리운 추억이 되길 원하며 라파엘은 열심히 걸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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