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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136 – 오크노디의 장래성>

     

    아하 그렇구나.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교수님! 파파의 재단에서 물건을 훔치면 어떡해요!”

    “…파파?”

    “파파는 저한테 아카데미 들어가라고 용돈도 주고 경비처리도 해주고 훈련시설이랑 저를 돌봐줄 보호자도 구해줬는데 교수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브론즈 교수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잠깐. 오크노디 1년생. 혹시나 싶어 확인 차 물어보네만… 파파라는 것은 생물학적 아버지를 뜻하는 말이 맞는가?”

    “맞아요!”

     

    파파는 쪽지를 보냈다.

    재단에 들어가라고.

    거액의 지원금도 줬다.

    랜덤파파이벤트의 보상으로.

    자식부양의 경제적 의무와 미래를 위한 교육적 의무를 다하는 그가 파파가 아니라면 세상에 어느 누가 파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얼굴 한 번 못 봤지만 돈은 꼬박꼬박 입금하는 기러기 파파도 있기 마련이다.

     

    “파파가 오크노디에게 ‘교육’을 시킨 장본인이고?”

    “자금을 대줬으면 모든 훈련과정을 승인했다는 뜻이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파파가 가르친 게 맞죠!”

    “…과연. 보통 부모는 아니군. ‘그런’ 교육을 허락하는 부모라니.”

    “혹시 재단 갔을 때 파파도 만났나요?”

    “아니. 모자를 지키는 파수견만 마주쳤단다. 혹시 오크노디 1년생이 아끼는 개가 있을까봐 해치지는 않았으니 안심하렴.”

    “아무리 그래도 학생의 집을 터는 교수님이 어딨어요. 이번 건 교수님이 심했어요.”

     

    정당한 지적을 하며 어서 도와달라고 이사벨의 허리춤을 잡아당겼다.

    이사벨이 참 돕고 싶지 않은 얼굴로 마지못해 한 마디 거들었다.

     

    “교수님이 잘못하셨네요.”

    “맞아요.”

    “동감입니다. 아이의 인격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어서 사과하십시오.”

     

    티토소가와 지젤까지 거들자 교수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오크노디. 이번 강의가 끝나면 적당한 기회에 다시 재단에 반납하도록 하마.”

    “그럼 됐어요!”

    “…정말 괜찮느냐?”

    “사람만 안 죽었으면 됐죠 머.”

     

    이 정도면 해프닝이지, 해프닝.

    그보다는 모자가 신경 쓰인다.

     

    “됐으니까 빨리 네 머리통을 내 입 안에 집어넣어라. 너의 그 탐스러운 머릿속에 숨겨진 악마적인 자질을 다시 엿보고 싶단 말이다!”

    “…”

     

    아까부터 이런 소리를 하면서 모자 옆으로 자라난 양손으로 내 팔에 매달려있다.

     

    “알았으니까 그만 매달려요. 안 그래도 큰 교복소매가 더 늘어난다고.”

     

    모자를 머리 위에 얹자 코 밑까지 모자에 쏙 덮였다.

    …모자 너무 커.

    앞사람들 머리 냄새도 나는 것 같아.

    먼가 축축하고 기분 나빠.

    밖에서 ‘기여워─!’, ‘애기네 애기.’, ‘모자가 애 얼굴을 다 덮네. 난 들어가지도 않아서 모자놈이 주먹으로 머리 때리던데.’ 같은 소리가 들렸다.

    참고로 마지막에 말했던 사람은 빅스톤 선배다.

    스톤만 빅한 게 아니라 머리도 빅하신가보다.

    진짜 저 선배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리즈나 선배 같은 사람이 옆에 있는 거지?

     

    “오오, 오오오! 오오오오오오!”

    “고작 몇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가 있지?”

    “이건 성장이라는 수준을 넘어섰어.”

    “진화야. 그래, 진화라고!”

    “기사학부? 마법학부? 행정학부? 생산학부? 모험학부? 뭘 해도 다 가능해! 오히려 재능이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모자 너머로 술렁거림이 커진다.

    처음에는 얼굴까지 다 덮은 것이 불편했지만 어느새 내 손으로 모자를 꾹 눌러서 고개를 덮게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녀석, 너무 칭찬하니까 부끄럽잖아.

    수치플레이나 공개처형이 따로 없다고.

     

    “알았으니까 슬슬 끝내주면 안 될까요?”

    “오… 정말 그래야겠니? 좀 더 네 얼굴을 덮고 있으면 안 될까? 네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말할 기회를 준다면 24시간도 떠들 수 있는데!”

    “그래선 적성평가가 될 수 없잖아요. 다 잘하면 뭘 골라야 하는데.”

     

    용케도 플레이어의 재능을 눈치 채고 뭐든지 잘한다는 말이 나오네.

    과연 재단이 보유한 아티펙트답게 성능 하나는 아카데미에 있는 모자 못지않게 뛰어나다.

    설마 ‘오크노디’의 육신에 존재하는 재능뿐만 아니라 그 육신에 깃든 ‘빙의자의 영혼’인 나까지 감지해서 재능감별을 하다니.

     

    “그래, 교수의 말로는 아카데미에서는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아는 것이 그리도 궁금하다고들 하지? 네게도 자질이 있는 가능성을 추가로 알려주마.”

     

    모자는 한술 더 떠서 적성평가를 넘어선 적성에 맞는 직업추천, 클래스 권유까지 시작했다.

     

    “우선 네게는 악마군주Devil Lord의 자질이 있구나. 사악한 힘의 본질을 깨우치면 능히 어비스의 일좌를 노릴 자격이 있단다!”

     

    모자 너머로 빅스톤 선배의 새된 비명과 리즈나 선배가 등짝을 짝짝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크프린세스Dark Princess의 자질도 만만찮지.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매력은 지옥의 가장 사랑스러운 악마가 될 자격이 차고도 넘치고말고!”

     

    이사벨과 지젤이 심각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 기색이 느껴졌다.

     

    “혹시 거룩한 순흑의 순례자Holy Dark Pilgrim가 되는 것에도 관심이 있니? 꼭 그랬으면 좋겠구나. 만일 그러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이 깃든 물건들의 주인이 되어 영원한 어둠에 귀의하는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을 텐데!”

     

    …근데 클래스 상태가 다 왜 이따구지?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영혼’까지 계산해서 적성검사를 하는 일이 없었기에 수많은 사망판정과 모험을 모두 고려한 평가를 받지도 않았다.

    기준이 되는 것은 매 회차마다 랜덤으로 주어지거나 직접 빌딩을 한 ‘신체’였을 뿐.

    악마군주?

    다크프린세스?

    거룩한 순흑의 순례자?

    하나같이 당혹스러운 네이밍이었다.

     

    “오크노디 1년생. 당장 그 모자를 벗으렴.”

    “저 교활한 교수의 말은 듣지 마. 그녀는 널 가지고 싶어 해. 자신의 음습한 욕망을 충족시킬 도구로 점찍었어. 절대로 사로잡혀선 안 돼.”

    “오크노디 1년생! 사악한 지혜를 지닌 모자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말게. 빨리 그 모자를 벗게!”

     

    흥.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은데?

    교수님들은 유능한 인재를 보면 제자라는 이름의 대학원생으로 타락시키려고 하잖아.

    적성평가모자가 알려주는 직업들이 몇 배는 훨씬 더 건전하게 느껴진다.

     

    “아참. 굳이 권장하지는 않지만 정 하고 싶다면 에다홀의 마지막 손가락Eddahol’s last finger, 피그넛의 종말인도자Pignut’s Endbringer, 소냐의 명쾌함Sonya’s Clarity이 될 수도 있단다. 네가 남의 시중을 들고 비위 맞추기를 원한다면.”

    “으엑. 완전 싫어요.”

    “잘 생각했다! 악신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선신보다 허접한 새끼들이지. 패권전쟁에서도 처참하게 발려가지고 대놓고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패배자들!”

    “오크노디 1년생!!”

     

    교수의 외침이 순간 모자를 뚫고 귀청을 찌르는 통에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모자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귀를 감쌌다.

    그 동작에 슬쩍 밀려 올라간 모자를 브론즈 교수가 단숨에 낚아채갔다.

     

    “놔라, 이 도둑년아! 난 허락 못한다. 저 아이를 고작 의적 따위로 만들 수는 없어. 너 같은 것은 이 아이의 찬란한 재능을 살리지 못해!”

    “약속했을 텐데요. 학생들에게 수작을 부리면 당신을 실험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세로 만들어주겠다고. 정녕 그렇게 되기를 바라나요?”

    “하, 웃기지 마라! 저 아이가 내 지혜를 빌리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클래스가 없다. 12선신과 12악신 중 누구라도 주의 격으로 인도할 열쇠를 고작 세속의 자물쇠를 따는 일에 다룰 성 싶으냐?”

     

    모자가 양 손을 뻗어서 풍차처럼 빙빙 휘두르며 우다다다 주먹을 내질렀다.

     

    “…하아. 그 소름 끼치는 지혜의 반만큼이라도 힘을 발휘했다면 진지하게 이 자리에서 파괴했을 텐데. 명줄도 한 번 길구나.”

     

    교수는 아니꼽다는 얼굴로 단검을 들어서 모자를 푹푹 찌르자 앗 따거, 악, 거긴 안 돼! 하는 비명이 적성평가모자에게서 새어나왔다.

     

    “오크노디. 괜찮아? 이상한 짓 당한 거 아니야? 갑자기 막 인류를 멸망시키고 싶다거나 사람의 목숨이 쓰레기처럼 느껴지고 그러는 거 아니지?”

    “괜찮아, 티토소가! 걱정해줘서 고마워! 근데 그렇게 멀리서 안 물어봐도 돼!”

    “…아니야, 오크노디! 오늘은 이 정도 거리가 딱 좋을 것 같아!”

     

    30m는 너무 멀리 떨어졌잖아.

    소리를 질러야 대화가 되는 수준이라고.

    너무 쫄았잖아, 이 겁쟁이.

     

    “애초에 그런 거창한 전설등급 클래스는 필요 없어. 희귀등급 클래스 마검사만 되면 충분한걸!”

    “이런 잔혹한! 다시 생각해봐라. 그건 네 재능을 향한 모독이다. 어차피 너는 뭘 해도 검과 마법은 대성할 수 있으니 위대한 사명을 이루는 전설의 주역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싫어! 마검사 할 거야!”

    “이런 꼴통 같은 녀석!”

    “흥이다. 지는 냄새 나는 모자인 주제에!”

    “뭐, 뭐라고?! 내가… 냄새가 난다고?!”

     

    충격 받은 모자를 자루로 덮어씌운 브론즈 교수.

    침묵마법이 걸린 침묵의 자루로 가둔 덕분에 모자의 수다가 뚝 끊겼다.

    그런데 조용해진 건 자루 속만이 아니었다.

    강의실도 갑분싸가 된 것처럼 무지 조용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커서 뭐가 될지 두려워지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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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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