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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나는 아르윈의 머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마저도 밀어내지는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마음이 이전처럼 편하지만은 않다.

     

    여태 모든 갈등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믿어왔는데, 생각보다 그 믿음은 순진했던걸지도 모르겠다.

     

     

    그녀들과 함께한지도 이제 몇 개월째다.

     

    간혹 사이가 좋아졌다 느낄때도 있지만, 이런 순간들이 올때마다 의심의 마음이 차오른다.

     

    정말 우리는 사이가 좋아질 수 없는 걸까.

     

    평생을 서먹한 사이로 지내게 되는 걸까.

     

    이전에도 생각했듯, 나는 이제 우정으로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언제나 남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려 두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홍염단의 부단장으로서 그 사실을 배울 수 밖에 없었다.

     

    나름의 자유와, 그들의 생각을 인정해주어야지만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덕에 우리가 더욱 삐걱이고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문화에서부터 들어맞지 못하는 느낌이다.

     

     

    둘 다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 말해왔다.

     

    그런 와중에 자꾸만 문제가 터져나온다.

     

     

    …머리 뒤편에, 국왕의 말이 떠올랐다.

     

    일부다처제는 악습이라던 말.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부다처제가 폐지되는 건 원치 않았다.

     

    내 순수한 욕심이었다.

     

     

    정말로 어느새 네르와 아르윈은 내게 많이도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네르 좀 찾으러 갈게.”

     

    “…”

     

    나는 아르윈에게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머리를 놓아주었다.

     

    아르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준비되어있던 침상에 가서 앉았다.

     

     

    나는 임시 숙소 밖으로 나섰다.

     

    바란이 앞에 서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네르는?”

     

    “…따라오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저 쪽 방향의 숲으로 들어가시는 것 같더군요. 몰래 번즈에게 호위는 맡겼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걸음을 옮긴다.

     

     

    “…부단장.”

     

    하지만 바란이 나를 말로써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힘내십쇼. 원래 여자 일이 어렵습니다. 이전 연인의 흔적을 들키면 원래 큰일나는 거고요.”

     

     

    나는 그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여자 문제가 복잡했던 바란이니 그럴까.

     

    나름의 장난이 마음을 한층 가볍게 해준다.

     

     

    나와 시엔의 상황을 보지 못했던 바란인만큼, 다른 경로를 통해 넌지시 이야기를 들었나보다.

     

     

     

    나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네르와 아르윈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녀들에게 했던 말을 곱씹었다.

     

    ‘나는…이제 너희만이 소중해.’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던 말.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언제부터 그랬을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녀들에게 특별한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과거서부터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깊은 그 마음에 스스로도 놀랐다.

     

     

    사실, 이유를 따지고 들면 많이 찾을수 있었다.

     

    그녀들과 함께하며 내가 느꼈던 안정감이 있다.

     

     

    친구들이나 형제한테는 받을 수 없는 안정감이다.

     

    짝에게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있다.

     

     

    나는 이 차이를 이전부터 알았다.

     

    슬럼 생활을 할 적에도, 친구였던 맥스와 플린트에게서는 받지 못했던 안정감을 시엔에게 받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담 형에게 받지 못할 안정감을 네르와 아르윈에게 느끼고 있었나보다.

     

    함께 자고, 손을 잡고, 같이 웃고, 끼니도 함께하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느끼게 되는 든든함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이렇게나 중요할 줄은 몰랐다.

     

     

    아담 형의 말대로 나는 용병일에 지치고 있던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누구도 채워주지 못하고 있던 빈자리를 네르와 아르윈이 채워준 것이다.

     

    그녀들과 함께하며 불안함도 많이 줄어들었다.

     

     

    지난 몇 달간 매일같이 붙어지냈다.

     

    내 억지라지만, 아이 이야기와 미래 이야기도 이따금씩 나눠왔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에게 많은 마음을 준 듯 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나와 아내들의 간극이 보이기 시작한 듯 했다.

     

    줄일 수 없는 격차를 줄이고자 내가 너무 노력하고 있는걸까.

     

     

    “…”

     

    나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떠나간 네르를 찾으러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서 몰래 네르의 호위를 맡았다던 번즈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들을 향한 내 마음이 언젠가 통하길 기원해볼 뿐이었다.

     

     

    ****

     

     

     

    네르는 베르그를 떠나 충동적으로 밖을 나섰지만, 이내 느껴지는 시선들에 미묘한 겁을 집어삼켰다.

     

    이곳은 홍염단이 아니었다.

     

    왕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용인족의 시선들이 그녀에게 몰렸다.

     

    그럼에도 이전처럼 흰꼬리에 대해 속삭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분명 베르그의 비호가 있는 것이었다.

     

    베르그가 네르 블랙우드의 흰꼬리를 좋아하니, 놀리지 말라는 말이 모두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듯 했다.

     

     

    “…”

     

    이제는 정말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존재감을 느끼는 네르였다.

     

    얼마나 그와 많이 엮이게 된건지도 점차 깨닫는다.

     

     

    당연한 것이긴 했다.

     

    그는 자신의 남편이었고, 그녀는 그의 아내였다.

     

    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는 없었다.

     

     

    사실 그렇게 본다면, 네르가 지금처럼 불안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서면상으로도 그녀와 베르그의 사이가, 성녀와 베르그의 사이보다 더욱 가까웠으니.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베르그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성녀를 밀어낸 베르그였으나, 그건 놓여진 상황 때문에 그랬던걸지도 몰랐다.

     

    그녀가 없었다면…베르그는 성녀를 그렇게 밀어냈을까?

     

     

    “…”

     

    답이 내려지지 않는 가정에 네르는 또 홀로 고통스러워했다.

     

    처음으로 생긴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첫사랑이자, 앞으로 미래를 그릴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알지 못했던 과거가 있으니 힘들었다.

     

     

    네르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베르그라는 존재를 잃을까봐, 그를 더욱 꽉 잡고 압박하게 된다.

     

    화가 났다는 미끼를 뿌리고, 그의 애정을 낚시한다.

     

    애초에 답답한 마음이 없는것도 아니었다.

     

     

    그 생각에, 네르는 왕가의 병사들 사이에서 느끼는 불안함을 억누르고 걸음을 옮겼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길지 않은 시간이 흘러, 네르는 인근 숲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숨지는 않았다.

     

    찾아오면 금방 찾을 수 있는 장소에 머무른다.

     

    그렇게 있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발걸음 소리가 울려왔다.

     

     

    네르의 예민한 귀는 그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대상을 유추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대상만을 알아차릴 수 있는걸지도 몰랐다.

     

     

    네르는 눈을 감았다.

     

     

    “…네르.”

     

    자신을 찾아온 베르그가 이름을 불렀다.

     

    몸이 따스하게 녹아내린다.

     

    하지만 네르는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차갑게 등을 돌린채, 그가 더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찾고 있었어.”

     

    베르그가 말했다.

     

    한 차례 숨을 내쉰 그가 말한다.

     

    “…위험하게 혼자 있으면 어떻게 해. 이러지 말라고 했잖아.”

     

     

    그도 걱정되는 마음에 먼저 이런 말들을 전달하는 걸 네르는 알았다.

     

    의도를 알아서 그럴까.

     

    자유를 어느정도 억압하는 말임에도 기뻤다.

     

     

    “…”

     

    네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많은 양의 분노가 가라앉은 후였다.

     

    그럼에도 당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베르그의 행동을 기다린다.

     

    그는 천천히 그녀의 방향으로 계속해서 걸어왔다.

     

    네르는 일말의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턱.

     

     

    어느새 다가온 베르그가 네르를 뒤에서 가볍게 껴안는다.

     

    마찬가지로 그녀 뒤에 앉는다.

     

     

    네르는 베르그의 다리 사이에 앉는 자세가 되었고, 그녀의 등은 베르그의 상체에 닿았다.

     

    꼬리가 살짝 눌렸지만, 베르그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그의 향기도 마찬가지로 풍겨왔다.

     

    온기도 같이 넘어온다.

     

     

    이렇게 안기는 순간, 네르의 감정이 동요한다.

     

    찡한 느낌이 그녀를 울린다.

     

    정말 애정 받는 느낌이 든다.

     

    “…”

     

    베르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그녀를 그렇게 안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대답해주지 않는 그녀에게 행하는 자신만의 행동인 듯 했다.

     

     

    네르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여전히 인형처럼 굳어, 그렇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삐진척할 힘은 남아있을지 몰라도, 그를 밀어낼 힘은 더 이상 없었다.

     

     

    단 둘만이 머무는 공간에서, 그렇게 붙어있게 된다.

     

     

    애초에 양측 다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베르그가 사과하기에는 잘못한게 없다.

     

    네르도 더 이상 화를 내는게 이상했고.

     

     

    그러니 그렇게만 앉아있었다.

     

    익숙한 온기를 교류하며, 말 없는 화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행동을 베르그에게서 원했던 네르이기도 했다.

     

    그러니 베르그를 밀어내기도 한 것이다.

     

     

    -…스윽.

     

     

    네르는 그러다 부드럽게 자신을 껴안은 베르그의 팔을 붙잡았다.

     

    애매하게 멈춰있던 꼬리도 베르그의 허리를 감싼다.

     

    완전히 서로를 부둥켜안은 자세가 된다.

     

     

    그러고 나서야 베르그가 입을 열었다.

     

    “…네르.”

     

    “…”

     

    “…과거의 일이야.”

     

     

    네르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 명만 사랑하는 너희 종족에게는 익숙하지 못할지는 몰라도…당장이 중요한거잖아.”

     

    “…”

     

    “난 너희를 선택했어.”

     

    “…”

     

    “…그러니까…”

     

     

    베르그는 뒷말은 생각하지 않은 듯 마지막 말을 고뇌했다.

     

     

    입을 달싹이던 네르가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

     

    “…베르그. 우리 종족은 한 번 마음을 주면 끝이야.”

     

    그 말에 이번에는 베르그가 침묵을 지켰다.

     

    “…상대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되돌이킬수가 없어. 상대가 폭언을 해도. 폭력을 휘둘러도. 처음 어렵게 빠지는만큼…반대로 나오지도 못해.”

     

    베르그가 뒤에서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르가 이어갔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거야. 마음을 주는게.”

     

    이미 마음을 줬지만, 그 사실을 당연하게도 밝히지 않았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데,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어.”

     

    “…”

     

    “그래서 네게 이런 일이 발생할때마다 난 싫어. 인족의 문화는 특히나 우리와 상성이 안맞는 것 같고. 좋든 싫든 넌 내 남편인데…그런 네가 또 뭘 숨기고 있을까봐 불안해. 속는 것 같아.”

     

    그러다 잠시 베르그는 네르의 말을 곱씹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들이마셨다.

     

     

    “…”

     

    네르는 꼬리를 더욱 그에게 강하게 감았다.

     

    사실 늑인족의 문화를 알았더라면, 이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하는 행동이라는 걸 그가 오래전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대로 네르는 나름의 애정표현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만족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네르는 다음 말을 준비했다.

     

    꼬리로는 사랑한다 말하며, 입으로는 차가운 말을 준비한다.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절대로 널 사랑하지 못할지도 몰라.”

     

     

    결혼하는 순간 말했던 말.

     

    절대로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했었다.

     

    그때의 말을 베르그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그래?”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아, 난.”

     

     

    베르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씁쓸한 베르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네르는 곧장 울컥한 마음이 피어난다.

     

    그에게 돌아서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애교를 피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온 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그런 행동은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또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픈 마음도 있었다.

     

    나 또한 강단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도 남은 자존심이 그녀를 몰아세운다.

     

     

    “…나 아직 화났어.”

     

    베르그가 피식 웃었다.

     

    “그래보여.”

     

    “오늘은 끝까지 화 안풀거니까 그렇게 알아.”

     

     

    베르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더 강하게 안았다.

     

     

    대부분 많이 하긴 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지내는게 부부싸움이라 했다.

     

    네르도 이 순간이 그런거라 믿고 싶었다.

     

    싸움 뒤에는 더 돈독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베르그가 자신을 더욱 사랑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베르그는 알까.

     

     

    사실 아직도 그는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그 고백이 있어야지만 네르도, 제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가집속으로님! 9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 후원 감사합니다.

    김동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 이모티콘 러프를 받아봤습니다.
    제 눈을 이제는 저도 의심하고 있지만…일단 너무 예쁘던데요?ㅋㅋㅋ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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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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