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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제도로 오십시오.”

        

       나는 단단히 긴장한 표정 그대로 말했다.

        

       “그곳에선 당신의 제자들과 모두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흠.”

        

       나의 설득을 들은 검성은 생각에 잠긴 듯 한순간 검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을 놓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도 순간 마음을 놓았다가—

        

       딱!

        

       “으꺅!?”

        

       검성의 검이 다시 나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검성을 보았다.

        

       검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 했던 말, 못 들었느냐? 나는 속세가 싫어서 여기에 왔다. 그런 내가 이 제도 안에서도 가장 번잡한 곳의 한가운데서 온갖 인간군상에 시달리며 살아가라는 뜻이더냐?”

        

       검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게다가 네놈의 미끼로서? 고작 그런 알량한 술수에 넘어갈 정도로 나는 무른 놈이 아니다.”

        

       그야 그렇겠지.

        

       검성의 말에 나는 속으로 동의했다.

        

       수십 년간 산에 들어와 살았던 인간이, 고작 처음 보는 이의 말 한마디에 산에서 내려올 정도라면 나는 이미 진작 시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음?”

        

       “검성 님을 설득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도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온 것은 아니었다.

        

       방학이 2주 정도밖에 남지 않기는 했지만, 그 2주 동안 열심히 설득해보고, 그중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던 말들만 추린 뒤 다시 시간을 돌려서—

        

       딱!

        

       “으갹!?”

        

       “네 안에는 그 의성어가 녹음되어 들어있기라도 하냐?”

        

       사람 머리를 예고도 없이 때리면서 그런 말을 하면 몹시 짜증 나는데.

        

       물론 내가 이 사람을 제대로 이겨볼 수 있는 실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 큰 여자가 비록 나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사내의 집에 와서 밤을 지새우겠다고? 그랬다가는 너의 명예에 흠집이 갈 수 있다만? 아니, 그보다, 그런 식으로 남자 집에서 지내겠다는 소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부터가 문제다. 그것도 황녀라는 녀석이.”

        

       “…….”

        

       내가 제니퍼랑 왔을 때는 밤새도록 있는데도 뭐라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게다가 앨리스도 이미 그런 식으로 밤을 새우고 갔다. 클레어도 그랬고.

        

       물론 그때도 제니퍼가 옆에 있기는 했겠지만, 애초에 원작에서도 검성은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캐릭터였다. 아마 나를 돌려보낼 이유로 대기 위해서 하는 말일 거다.

        

       검성은 내가 노려보건 말건, 앞에 앉아있는 나를 무시하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네놈은 왜 그렇게 얼어붙어 있느냐?”

        

       “아, 그것이…….”

        

       레오의 이마는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앞머리 몇 가닥이 이마에 붙어있을 정도였다.

        

       “왜, 내가 자꾸 ‘황녀 전하’의 머리를 무기로 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한 건가?”

        

       “…….”

        

       “난 이미 일전에 다른 황녀를 만나봤다만? 그리고 애초에 내가 신분 같은 것을 신경 쓰며 행동하는 이였다면 제니퍼를 제자로 들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검성은 다시 내 쪽을 보았다.

        

       “앨리스는 너의 언니냐, 동생이냐?”

        

       “언니—”

        

       옆에서 레오가 대답하려다가, 나의 시선을 받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자매’입니다.”

        

       “호오.”

        

       나의 말에, 검성은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웃었다.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잠깐 생각에 잠겼다.

        

       “뭐, 좋다. 이미 밤이 늦었으니까. 지금 시간에 내려보내는 것도 사내가 여성을 대하는 자세라고 할 수는 없겠지.”

        

       검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오늘 하루 정도는 묵게 해주마. 하지만 내일은 떠나도록 해라. 나는 너의 장단에 맞춰줄 만큼 한가한 이는 아니다.”

        

       아니, 한가하잖아.

        

       그렇다고 내 장단에 무조건 맞춰야 한다는 이유도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하루 정도 묵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낸 나는 한시름 놓았다.

        

       기회는 생겼다는 뜻이니까.

        

       *

        

       “앨리스에게 배웠느냐?”

        

       다음 날 새벽, 레오와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뜬 내가 가부좌를 튼 채 명상하는 것을 보고, 검성은 그렇게 물었다.

        

       어제의 그 대화 이후로 내게 처음으로 거는 말이었다. 검성은 그 이후에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무시당해도 쌀 말을 하기는 했다. 건방지게도 거의 명령이나 다름없는 말을 했으니까.

        

       하지만, 대화를 걸지 않으면 행동으로 설득하면 될 일이다.

        

       어제저녁에 나를 보고 ‘재능이 없다’라고 했으니, 내가 ‘재능이 있는’ 일면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것도 레오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한쪽 눈을 아주 살짝만 떠보니, 레오도 나를 조금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레오의 얼굴은 놀란 부분보다는 ‘깊게 생각에 잠긴’ 영역이 더 넓었다. 대놓고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노스우드 영지의 유적에서 그 검은 로브와 싸울 때 레오도 함께 있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이미 이전에 이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

        

       나에게 이런 쪽으로 재능이 전혀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 이전에 배워본 적도 없어서, 무려 검성이라는 양반한테 가장 기초적인 명상을 배우면서도 300일이나 걸렸다. 아마 다른 동작을 배우려면 그것보다도 훨씬 오래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나는 이 능력을 나의 ‘재능’인 척 해야 한다. 그래야 검성이 나를 조금이나마 믿게 될 테니까.

        

       검성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살짝 떴던 눈을 감고, 다시 본격적으로 명상에 들어갔다.

        

       내 자세를 자세히 보려는 듯, 검성이 내 앞쪽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검성이 나에게 뭔가 말을 걸기도 전에—

        

       쾅!

        

       문이 그런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앨리스. 오두막 문은 그런 식으로 열었다가는 그대로 부서질 수도 있다.”

        

       검성은 앨리스가 그렇게 올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느긋하게 말했다. 나를 맞이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만약 부서진다면 제가 사드릴 수 있는 최고의 문을 사다가 달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해서, 오히려 역으로 엄청나게 화가 난 것처럼 들렸다.

        

       “그런 문을 사다 달아둔다고 하더라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만.”

        

       검성은 굉장히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앨리스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둘의 대화는 꽤 흥미로웠다.

        

       나는 검성을 만나보았고, 게임에서도 검성이 어떤 캐릭터인지 보았지만, 이렇게 앨리스와 검성이 직접 대화하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게임에서는 메인 스토리 대사를 제외하고, 서브 퀘스트에서 레오를 제외한 다른 파티원들은 공기가 되어버리는 일이 흔했다. 나름대로 정성들여 만든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본편의 텍스트양도 매우 많은 편이었기에, 서브 퀘스트까지 그렇게 일일이 신경 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뒤로 갈수록 파티로 설정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아지고, 그 설정된 파티원들의 성격도 죄다 다르니 대사도 상황에 맞춰서 파티원만큼 만들어야 하니까.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냥 일괄적으로 아무 대사도 안 치게 만들어버리는 게 편하다.

        

       하지만 현실은 게임이 아니지.

        

       ‘다 같이 의견을 나눈다’, ‘다 같이 수련했다’라는 지문 하나로 대신하고 넘어갈 수 없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레오처럼 수련을 위해서 온 건 아닌 것 같다만.”

        

       “……제 ‘동생’을 찾으러 왔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기를 읽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검성이 내 쪽을 물끄러미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황실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나는 눈을 꼭 감은 채 명상에 심취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앞에 앨리스가 왔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물론 그게 딱히……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그런다고 내가 투명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니까.

        

       “잠깐, 실비아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앨리스의 말에 이어서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검성이 손으로 탁자를 가리킨 모양이다.

        

       “원한다면 저 탁자를 마음껏 써도 된다. 방이 따로 없어서 비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겠지만.”

        

       “그건 괜찮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앨리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어려있었다.

        

       딱히 따뜻한 웃음 같지는 않았다.

        

       *

        

       “이야기는 들었어.”

        

       “……무슨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낡아빠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리 둘이 마주 앉고, 그로부터 세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레오와 검성이 서 있었다. 두 사람 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할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혹시 루카스와 관련된 이야기일까? 설마 앨리스가 나와 친자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이든한테 ‘오라버니’라고 했다면서.”

        

       —듣지는 못한 모양이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앨리스가 하는 말이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은 알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서 레오 쪽을 보았다.

        

       레오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는 듯이.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부끄러움으로 격하게 뛰는 심장을 제어하는 방법을 몰랐다.

        

       ……적어도 여기서 지낼 2주일 동안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배워서 가자.

        

       그리고 내가 자기를 오라버니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했던 제이든은 반드시 죽일 거다.

        

       숨겨달라는 말을 잊어버린 건 나였지만, 아무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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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1. Sitidara says:

    Sudah cukup, sudah cukup, sudah cuk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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