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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화단의 배치가 바뀌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문제삼고 싶지는 않았다.

    루크로써는 그저 마력초를 수급할 수만 있다면야 화단이 어떻게 형성되어있던지간에 별로 신경쓸만한 이유가 없기도 했으니.

    그러나 루크는 그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풍부한 색감의 마력초로 들어찬 화단은 여전히 아름다워보이기는 했다만, 그것은 그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국한된 일.

    애초에 루크가 심어두었던 배치가 각 마력초들간에 영양수급이 원활하도록 설계된 위치였으니, 그 설계를 무시한 배치만은 반드시 바꾸어야했다.

    그리고 그 작업을 참으로 고맙게도, 키르케와 다프네, 그리고 소르비가 두팔을 걷고 도와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작업에 루크도 나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대들이 모두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니 금방 끝났구나. 고맙다.”

    “뭘 이정도를 가지고!”

    “네가 부탁하면 언제든 도와줄테니, 말만해.”

    “그래, 언니들이 도와주면 금방 끝나잖니.”

    “참으로 그렇군. 굉장히 숙련된 솜씨야. 다들 언제한번 해본적이 있는겐가?”

    “아……하하! 그냥, 숲지기를 오래 하다보니까…….”

    다프네가 말했다.

    “그, 렇지! 우린 맨날 숲에서 일을 하니까.”

    소르비도 맞장구쳤다.

    끄덕, 끄덕.

    키르케는 고개만 끄덕였다.

    왜 저렇게 이상한 반응을 하는걸까, 루크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는 그녀들에게 루크는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그래도 매번 그럴 필요는 없다네. 이것도 다 나의 즐거움이니.”

    화단을 가꾸는 것은 마법이나 연구를 제외한 루크의 몇 안되는 취미생활중 하나.

    영약을 만들기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것이 바로 마력초 재배였으니까, 하다보니 재미가 붙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다시 깨어나게 되면서 루크는 화단을 가꾸는 것을 오히려 더욱 즐기게 되었다.

    당시엔 마력초를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기를 수 없거나, 기르기 까다로운 마력초도 많았는데, 그런 마력초들을 다루는 것도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기 때문.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모두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느낌이다.

    혼자서 물질계에서 행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의 자신은 별로 전능하지 않으니까.

    시공간의 왜곡도, 기후와 대기조작도, 하다못해 순간이동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은, 순수하게 노동을 투자해야 하는 종류의 일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부탁해도 되겠는가. 계절이 바뀌면 또 한번 배치를 바꿔야 할 테니.”

    루크의 말에 다른 숲지기들은 얼른 대답했다.

    “그래! 얼마든지야!”

    “그거 좋네, 계절별로 다른 화단이라. 하긴, 여름철 마력초들이 특히 예쁜 것들이 많지.”

    “그래, 그렇지.”

    마나는 생명의 에너지.

    그렇기에 가장 생명력이 활발한 여름에야 비로소 숲의 마력이 가장 많이 발화하는 시기다.

    그리고, 그 시기에만 재배할 수 있는 마력초가 많았다.

    새로운 마력초는 어디에 심어야할지 상상하면 벌써부터 기대감이 드는 것 같달까.

    특히나, 데미라이트는 한번쯤 키워보고 싶었다.

    데미라이트, 일명 ‘신의 눈동자’라고 불리우는 청록색의 방울같은 꽃을 피우는 마력초다.

    어째서 그 마력초를 신의 눈동자라고 부르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아주 높은 곳에서만 단 두송이를 피워내기 때문이었다.

    마치 신이 두 눈으로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 처럼.

    그 꽃에서 떨어지는 한방울의 꿀은 ‘신의 눈물’이라고해서 과거엔 엄청난 가치를 지닌 마법재료였었다.

    옛날엔 굳이 재배를 하기엔 그냥 채취하는 것 보다 효율이 나오지 않아서 포기해야 했지만, 이 시대의 마법사들은 그 마력초마저 재배할 수 있도록 품종개량을 거쳐냈다는 모양이다.

    덕분에 이제 ‘아주 높은 곳’이 아니어도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허나, 왠지 개량품종에게서는 꿀을 채취할 수 없다는 모양이라, 살짝 흥미가 돋았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고,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신이 사라진 시대에, 신을 울린다라.

    실로 모순적이라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그렇게 루크가 미소를 짓고 있던 중, 소르비가 약간 한탄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꽃들은 다 어쩐담.”

    소르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바로 차마 심지 못한 꽃들, 그것은 어떻게해도 화단 안에 다른 마력초들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치할 수 없던 마력초들이다.

    “음…….”

    루크는 문득 괜찮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를 만드는 덴 충분할 것 같다.

    ——

    잠시 후, 순찰을 마친 예르나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마중을 나섰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곧 저 멀리서 예르나가 뒷짐을 지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여 루크는 그녀에게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인사했다.

    찰팍, 찰팍. 물먹은 바닥은 비가 그친지 몇시간이나 지났음에도 질척한 부분이 남아있어 자칫하면 바닥의 진흙에 넘어질 법도 하건만, 루크는 보폭을 늘려 아장아장 잘도 걸어왔다.

    결국 넘어지지 않고 자신의 한걸음 앞까지 걸어온 루크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한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도 루크의 머릿결은 참 좋았다.

    하도 자신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머리를 쓰다듬은 적이 많아서 그런가, 요즘엔 머리를 쓰다듬는 정도는 익숙해 졌는지 루크는 별로 싫은 기색 없이 예르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예르나, 잘 다녀왔는가? 별 일은 없었고?”

    “응, 별 일 없었어. 루야말로, 아무 일 없었지?”

    “그럼, 당연하지. 화단에만 있던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겠는가.”

    “그래?

    잠깐의 정적, 그리고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예르나, 줄 게 있는데.”

    “루크, 선물이 있는데.”

    멈칫, 너무도 똑같은 내용의 말에 루크와 예르나는 동시에 말을 했던 것처럼 동시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거의 동시에 하하하, 웃어버린다.

    “둘 모두 서로를 위한 선물이 있다니, 이건 꽤 우연이로구나.”

    “그러게, 꽤 재밌는 우연이네.”

    그렇게 말하며, 예르나는 등 뒤에 숨겨두었던 물건을 앞으로 꺼냈다.

    그 물건은 다름아닌, 화관이었다.

    화단을 정리하던 루크의 모습을 보니까, 왠지 화관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어본 것인데, 루크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예르나는 루크의 손에 들려있던 조그만 꽃반지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 둘다 비슷한 생각을 했나봐. 우연이네.”

    예르나는 루크의 머리 위에 자신이 만든 화관을 씌워주었다.

    오랫동안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리의 크기를 재봐서일까? 역시나 딱 맞는다.

    “잘 어울린다, 역시 예쁘네.”

    루크는 잠깐 놀란듯 눈을 크게떴다가, 허탈한 듯 웃었다.

    “하하……. 이건……. 조금 놀랐군.”

    하필이면 예르나도 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올 것이라고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화관이라니. 루크는 화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란 단지 자신이 꾸며지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오래전의 기억 때문.

    어느날, 레니에가 한번은 화관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것은 참 예뻤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예뻤을 것이다.

    만들어진 화관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예쁜 화관은 케일 프롭슨의 머리 위에 얹기엔 참으로 어울리지 않아서, 한동안 웃음으로 놀려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단지 마법사로써 살아온 탓에 그 감정을 잘 몰랐다만, 아마 그때 조금 정도는 질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서클에 아주 약간정도 동요가 일어날 정도로 살짝.

    하지만, 그것으로 그녀가 행복하다면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케일. 그대를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는데…….

    후에 케일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지고, 그 머리에 누군지 모를 이가 만든 화관이 때때로 씌워져있는 일이 있을 때마다, 어쩐지 답답해지는 가슴켠이 싫어서 화관이 싫어졌었다.

    그것은 당시의 루크에게는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아티팩트와 같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원의 낭비, 불필요한 장신구, 무의미한 노력.

    그렇게, 그것에 담긴 기억과 감정을 무시하고 억눌러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머리 위에 씌워진 화관은 어쩐지 따스한 느낌이 들어서 벗고 싶지 않았다.

    혹시 화관엔 뭔가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대도 이런 느낌이었나, 케일?’

    이것을 레니에에게 받은 그대는 정말 행복했겠군.

    루크는 조금 굳어있던 표정을 서서히 풀어내고는 마침내 미소를 지어내곤 말했다.

    “그럼, 이젠 내 차례인가. 예르나. 손을.”

    자신도 화관을 씌워졌으니 자신이 직접 반지를 끼워준다는 루크, 게다가 왠지 프로포즈를 하는 귀족같은 말투여서 참 귀여웠다.

    그래서 예르나는 괜스레 조금 우아한 척을 하며 손을 내민다.

    그러자 예르나의 손가락에 루크가 조심스럽게 반지를 끼우며 말했다.

    “레펜테스 꽃의 꽃말은 기억을 상징하지. 오늘, 어제, 그리고 오래전…….”

    루크는 반지에 마력을 살짝 공급하며 미리 짜놓은 인챈트를 발동시켰다.

    인챈트의 내용은 기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안 좋은 기억은 그저 기억으로, 좋은 기억은 추억으로 남게 돕는 마법.

    오늘의 기억이 그동안 예르나를 괴롭히던 기억을 덮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는다.

    ‘마법에 마음을 담다니, 참 신기한 말이지만.’

    그동안 마법은 감정과 동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이를 만나고, 시루드의 할아비인 소리드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아이들, 그리고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새삼 깨달은 감정들이 참 많았다.

    마법사라는게 원래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일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신기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법사라도 이 정도는 감정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비록 서클이 그것을 방해한다고 해도, 감정엔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고.

    물론, 아무리 그래도 시루드만큼 다감해서야 안 되겠지만.

    “오늘 하루는 꼭 손가락에 끼워두길 바라네. 날 위해서,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루크가 미소와 함께 말을 마치자, 예르나는 그저 웃었다.

    “그래, 끼우고 있을게. 너도 화관 안 벗으면.”

    “고맙군, 예르나. 나도 그리 하지.”

    루크는 살짝 고개를 들어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한다.

    “예르나. 우리, 잠깐 밤 산책이라도 할까?”

    그렇게 말하는 루크의 표정은, 이번엔 마냥 귀엽다기보다는 조금은 어른스러웠다.

    그새 또 성장한걸까.

    “그래, 그러자.”

    예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루크의 손을 붙잡았다.

    그렇게 숲의 산책로로 걸으며 예르나는 생각한다.

    루크가 만약 남자애였다면 자신은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고.

    “예르나, 그러고보니 숲에 반딧불이는 아직 있던가?”

    “루, 반딧불이가 보고싶구나? 그럼 가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화관을 좀 더 화려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그릴수록 이상해질 뿐이어서 적당히 타협했습니다.
    저는 아직 꽃을 그리기가 넘나 어려운 거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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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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