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6

     

    아침, 아셀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깨어나지 못하시네요.”

     

    “몸의 면역체계가 발동했나. 건강 상태는 괜찮아. 차라리 잘 됐어.”

     

    클로에와 차트를 기록하고 내의원으로 향했다. 이미 팀원은 모두 자리했다.

     

    “다들 얼굴 좋아 보이는데. 그동안 상사 없어서 편했어?”

     

    “무슨 말씀을요. 선생님이 안 계시니 어찌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말만이라도 고맙네.”

     

    의사들과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니 팔켄하인이 내 팔을 잡아왔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오, 선생. 수술에 필요한 재료는 손에 넣으셨소?”

     

    “예. 바로 계획을 잡으려 합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다들 그간 선생의 귀환을 기다리며 훈련을 마쳐놨소.”

     

    역시 노련한 팔켄하인다웠다. 내가 없는 동안 파벌을 착실하게 관리해줬다.

     

     

    회의실에는 서른 명의 의사가 모였다. 팀별로 의견을 나눠 본 수술에 대응하게 된다.

     

    본 수술에 참여할 의사는 보조로 클로에, 해주사에 휴고, 마취의 둘, 간호사 둘, 영상의 하나, 장비관리 둘이다.

     

    집도의는 물론 나다.

     

    검사 결과와 영상을 수정구에 프로젝터같은 아티팩트로 연결해 벽에 비추었다. 환자의 내부가 표시됐다.

     

    내가 지시봉으로 자료를 가리키며 포문을 열었다.

     

    “보다시피 환부는 3개월간 1할 정도 팽창했다고 보여. 내부에서 저주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휴고 해주사, 의견 어때.”

     

    “카밀라 전 황비가 저주 폭주 주문을 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효과가 미약해서 진행 속도가 지금처럼 더뎠다고 봅니다.”

     

    “죽은 상태에서 남긴 최후의 발악이었으니 불완전 시전이었을 거야. 디스펠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지.”

     

    “예. 저주가 새어 나올 수 있기에 지나치게 위험하다 판단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 예의 주문에 관해 추후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영상의가 손을 들고 건의했다.

     

    “주문에? 중요한 사항이야?”

     

    “수술에 영향이 갈 요소는 아닙니다. 돌프 영상의가 전달한 방식으로 조사했더니 한 가지 걸리는 게 나와서 그렇습니다.”

     

    돌프와 잠시 후작령에 머물며 개발했던 건 친자검사인데.

     

    내의원으로 자료를 발송해 서비스를 진행해오고 있었다.

     

    “알았어, 나중에 듣지.”

     

    회의를 속행한다.

     

    “어찌 보면 팽창이 좋은 소식이기도 해. 적어도 터지진 않았단 소리잖아? 저주는 환자의 담낭 안에 얌전하게 뭉쳐있어.”

     

    오염된 장기는 쓸개뿐이다. 저주는 한 덩어리로 뭉쳐진 반고체 상태로 예상됐다. 그러니 담낭관을 임의로 건드리고 복구하고 하며 통증이 생긴다.

     

    간이나 췌장으로 흘러 들어가진 않았다. 이건 긍정적이다. 쓸개만 떼어내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담낭절제술은 과정 자체는 간단해. 동맥과 담낭관을 결찰하고 절제한다. 이후 담낭을 간에서 박리한다. 여기까지 넉넉잡아 20분. 이후 봉합과 후처리에 30분 필요해. 박리 시에는 칼날의 열로 절단면을 지지면서 잘라낼 건데.”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장비팀, 내시경 장비 어때.”

     

    “주문하신 장비는 복강경 수술에 필요하신 삽입관과 원격조종형 메스, 라이트와 영상정보 송신이 가능한 장치셨지요. 덧붙여 수술 공간 확보를 위해 환자의 복부 안에 공기를 넣어 기복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맞아. 가능하겠어?”

     

    장비팀 팀장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문제는 모두 해결했습니다만 원격 시야 장비의 소형화에 실패했습니다. 수신은 가능하지만 송신 장비가 케이블에 들어갈 정도가 안 됩니다.”

     

    “흠.”

     

    사실 무리한 요구이긴 했다. 아무리 드워프의 기술력과 마석이 있어도 아날로그로 디지털을 따라잡을 순 없었나.

     

    내시경 장비라고 해도 카메라만 빠지면 드워프의 기술로도 따라 만들 수는 있었다.

     

    미스릴 합금으로 다른 장비는 모두 금형에 녹여 제작했다.

    케이블을 삽입할 실린더와 수술 장비다. 트리거를 조작해 메스 칼날을 움직이는 모양새다.

     

    이 단계까지는 석 달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개량을 거쳐 더 정교해졌다.

     

    문제는 시야.

    카메라는 만들지 못했다.

     

    안전성을 위해서 아셀라의 수술은 배를 열지 않고 하고 싶은데.

     

    내시경을 이용한 복강경 수술은 개복에 비해 출혈도 적고 환자의 회복도 빠르다.

     

    무엇보다 저주의 폭주 위험이 있는 이 특수 상황에서는 아셀라의 장기가 저주에 추가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최장점이 있다.

     

    황제 때만 해도 저주가 튄 장기를 현장에서 추가로 절제해야 했다.

     

    “개복으로 진행한다면 담낭을 뗀 순간부터 다시 배를 닫기까지 적어도 10분은 걸려. 중간에 변수가 생기면 그만큼 늘어나고. 박리한 순간부터 저주가 날뛰기 시작할 텐데, 휴고.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겠어?”

     

    휴고가 잠시 고민하고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장담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최상급 저주니 그도 당연했다. 휴고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아니면 이건 어떨까.’

     

    나는 MRI를 발동해 옆에 서 있던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으에.”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슬쩍 몸을 움츠리는 클로에.

     

    내 상태창에 그녀의 쿵쿵거리는 심장이 찍혀 표시됐다.

     

    ‘화면도 흑백이고 영상의 초당 프레임이나 정밀도는 낮아져. 그래도 이거라면.’

     

    실시간으로 내부를 볼 수 있긴 하다.

     

    ‘복강경 수술 스킬과 함께 써서 수정구에 즉시 출력하면 못 쓸 정도는 아니야.’

     

    클로에에겐 좀 더 세밀한 감각이 요구되겠지만 나와 오래 합을 맞추기도 했고, 수술 동안 장기를 잡고 있는 간단한 역할이다.

     

    그녀 정도의 경험치면 가능하다 판단했다.

     

    당초 계획대로 복강경인가.

     

    배를 열 것인가.

     

     

     

    고민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수술은 복강경으로 진행한다. 장비팀, 준비해둬.”

     

    “알겠습니다.”

     

    “위급 상황엔 개복으로 전환할 준비도 해. 그럼 수술 순서를 정하겠어. 좋은 의견 있으면 다들 기탄없이 얘기해.”

     

    의사들과 회의를 이어나간다.

     

    “그럼 후처리에 관해서…”

     

    한참을 꼼꼼히 이야기한 끝에 세부사항도 모두 결정됐다.

     

    “좋아. 다 정해졌으니 더 미룰 일도 없어. 수술은 17시에 진행한다. 그때까지 참가 인원은 일반 진료 보지 말고 휴식해.”

     

    의사들이 흰 가운을 펄럭이며 해산했다.

     

     

     

    나는 휴고와 따로 이야기를 더 나누기로 했다. 이번 수술의 핵심은 나도 나지만 역시 휴고가 큰 역할을 해줘야만 했다.

     

    “저주 조종은 박리한 순간부터 들어가겠습니다만, 그때부터 담낭을 환자의 체외로 꺼낼 때까지 미세한 시간이 소모되지요.”

     

    “네트에 담아서 체외로 완전히 나올 때까지 대략 3초 걸려.”

     

    “3초. 그 안에 저주가 폭발하면 더욱 큰일이지 않습니까? 복강경이니 배 안에서 터지는 형태가 됩니다.”

     

    휴고의 걱정은 일리가 있었다.

     

    “맞는 말이야. 그러니 그 3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압해. 놓치더라도 꺼낸 다음에 놓쳐. 뭐, 확률은 낮춰놔야지.”

     

    나는 클로에를 불렀다.

     

    “앰브로시아 자매님에게 가서 성포 좀 빌려달라고 해. 손수건 사이즈로 다섯 장 정도 잘라오면 돼. 담낭 담을 네트로 쓸 거야.”

     

    “제, 제가 주치의 자매님께요? 어흑.”

     

    울상이 되어 클로에가 나가고 교대하듯 영상의가 노크를 했다.

     

    “선생님, 아까 드렸던 이야기입니다만.”

     

    “마녀의 주문이 어떻다고 했지. 와서 얘기해 봐.”

     

    “음, 실은 선생님이 돌프 영상의와 개발하신 친자검사 이야기입니다.”

     

    “친자검사 말이지.”

     

    의외의 주제였다.

     

    “아시다시피 카밀라 전 황비의 주문이 아셀라 황녀님께 작용하던 상황입니다. 수간호사님께서 주기적으로 채혈 검사를 하셨고요.”

     

    “그랬지.”

     

    “채혈하신 혈액에서 황녀 전하와 전 황비, 두 분의 마나가 모두 검출되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를 수집할 겸 친자검사 테스트에 적용시켰습니다만…”

     

    영상의의 설명에 내가 역정을 냈다.

     

    “뭐? 잘 하는 짓이다. 그거 본인 의뢰 없이 아무나 막 집어넣으면 안 돼 임마. 자료 당장 폐기해.”

     

    “죄, 죄송합니다. 보내신 주의사항을 나중에 확인한지라… 하, 하지만 선생님께서도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왜.”

     

    나는 영상의가 꺼낸 자료를 확인했다.

     

    아셀라와 카밀라.

     

    둘의 마나유전자 대조 결과였다.

     

    “불일치네.”

     

    “예. 두 분은 친자 관계가 아닙니다.”

     

    “뭐야 이거.”

     

    뜬금없는 정보였다.

    아셀라가 카밀라의 딸이 아니라니?

     

    설마 그런 기질을 가졌는데 아셀라가 황실의 자식이 아닐 리는 없고.

     

    “확실해? 데이터 오염된 거 아니야?”

     

    “예. 세 번에 걸쳐 검증했습니다.”

     

    “휴고, 소울워크 시전 중인 영혼은 마나 성질도 바뀌나?”

     

    휴고가 고개를 저었다.

     

    “마나는 생명이 타고나는 성질입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럼 결론은 하나네.

     

    “카밀라가 가짜였구만.”

     

    위장, 변조.

     

    어느 순간부터 바꿔치기해서 황실에 잠입한 성질 더러운 흑마술사였다는 이야기다.

     

    ‘아셀라는 그 가짜를 평생 친모라고 믿었던 건가.’

     

    미래에서도 그 가짜의 바람 때문에 황제가 되고자 강하게 마음먹었다고 기억하는데.

     

    필요도 없는 죄책감을 가져서.

     

     

    황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선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광기에 차들었다는 카밀라.

     

    ‘아셀라에게 재능을 주입했을 때 즈음부터라고 했었지.’

     

    그리고 그 재능은 지금 제거하려는 저주와 함께 주어졌다.

     

    대마녀의 혼으로 만들어진 저주.

     

     

    …약간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휴고, 저주에 대해 상세하게 알면 알수록 아뮬렛으로 저주를 조종하기 쉽지.”

     

    “그렇습니다. 이번 케이스에선 영혼의 신상을 알면 더욱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주가 됐지만 그 영혼도 마나를 방출하긴 하지?”

     

    “예.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한 마나가 없을 순 없으니까요.”

     

    “나중에 그거 제압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마나 검사 한 번 해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데이터가 있어야 대조가 가능합니다만.”

     

    “내 예상이 맞으면 바로 답이 나올 거야.”

     

    나는 상상해본 시나리오를 휴고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휴고는 여태 본 것 중 가장 눈을 크게 뜬 것이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

     

     

     

    [No. 101 : 마력폭주 71%]

     

     

    상태창은 아셀라의 용태가 시시각각 나빠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현재 시각은 4시 40분.

     

    슬슬 내의원 1층으로 내려간다.

     

    “고트베르크 선생! 오랜만이군. 중요한 수술이 있다고 들었네.”

     

    환자 진료를 보던 알베리치가 반가워하며 내게 인사했다.

     

    “응원하겠네. 다른 이도 아니고 선생 아닌가. 분명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네.”

     

    “아이, 또 무슨 계략을 꾸미시느라 비행기 태우신대.”

     

    “어허, 계략은 무슨. 내 선생의 수술을 학술 자료로 널리 알리려고 그러지.”

     

    의학은 그리 질색팔색하던 양반이 엄청 재미 붙이셨네.

     

    “아, 여기 있었군, 고트베르크.”

     

    등 뒤에서 앵앵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앰브로시아였다.

     

    “내의원에서 뵈니 반갑군요, 자매님.”

     

    “음, 적절한 산보는 건강에 중요하지 않겠나. 이야기한 재료는 가져다 놓았네. 희귀한 물건일세. 적절히 사용하리라 믿네.”

     

    “물론입니다.”

     

    “폐하의 진언도 있었네.”

     

    “폐하께서 말입니까.”

     

    앰브로시아가 당당하게 내게 전했다.

     

    “딸을 고쳐달라, 그렇게 말씀하셨네.”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바스락, 포장지를 벗긴다.

     

    사탕을 입에 문다.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대답하고 얼마 안 있어 앰뷸런스 마차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기사들이 환자를 내려 끌차에 실었다.

     

    의사들이 붙어 링거를 처치하고 천천히 밀어 월광궁의 수술실로 데려간다.

     

     

    새근새근 잠든 아셀라의 얼굴을 보며,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다음화 보기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