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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푸욱, 하고.

       

       검이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가 한번 더 울려 퍼졌다.

       

       아니, 울려 퍼졌다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들리지는 않았으니.

       

       그러니 그렇게 커다란 소리가 났다고 느낄 정도로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옳겠지.

       

       조금 전, 애니라는 소녀를 베었을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한 감촉.

       

       그러나 손끝의 감각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손이 떨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을 스스로 꺼내는 감각은 그만큼 끔찍했다.

       

       이게 아르테를 위한 일이라고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이게 무슨 짓···!”

       

       “조금만 기다려 줘. 욕이라면 나중에 전부 들어줄 테니까.”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도로시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작가님이 사태를 눈치채고 손을 쓰기 전에 빠르게 끝마쳐야만 했으니까.

       

       

       “···으으, 나중에 꼭 전부 설명해 주셔야 해요!”

       

       “응.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은 도로시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음에도.

       

       분명 버티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울 게 뻔한데도, 나를 믿고 있다는 듯 웃고 있는 아르테를 향한 말이었다.

       

       아르테는 고통에 약하다.

       

       옆구리에 커다란 멍 두 개가 생기자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그런 그녀가, 가슴이 칼로 도려내지는 고통을 참으며 내게 웃어주고 있었다.

       

       잔뜩 구겨져 있지만, 그런데도 나를 믿는다는 듯.

       

       

       “···이거구나.”

       

       

       두근, 두근.

       

       오른손에는 아직 박동을 멈추지 않은 아르테의 심장이 쥐어져 있었다.

       

       아니, 이 모습을 가진 무언가를 심장이라고 봐야 할까?

       

       심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무언가가 내 손에 쥐어져 있다.

       

       그렇게 말하는 편이 옳겠지.

       

       

       “···.”

       

       

       타이밍을 맞춘다.

       

       아멜리아가 이곳으로 달려오기까지, 앞으로 3···2···1.

       

       

       “나 왔어! 너희, 아직 살아있는 거···?! 유시우?! 너 지금 무슨···!”

       

       “아르테 먼저 치유해 줘. 빨리.”

       

       

       아멜리아가 오는 타이밍에 맞춰 순식간에 심장을 자른 후, 품에 쥐어진 용광로를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것도 잠시, 아멜리아가 데려온 초인은 우선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라는 판단하에 수술을 시작하겠지.

       

       심장은 없고, 심장 대신에 놓여있는 구슬 같은 물건 하나에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하겠지만···.

       

       금방 그 구슬이 심장 대신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거다.

       

       그리고 부상자가 한 명 더 늘어났으니 아멜리아는 또 다른 사람을 데려오려고 할 테고.

       

       모든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도로시.”

       

       “네, 네···?”

       

       “앞으로 삼십 분 뒤에, 강화를 해제해 줘. 나는 조금 기절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

       

       “···네?”

       

       “기절하고 나서도 꼭 강화는 유지해줘야 해. 삼십 분이야, 알겠지?”

       

       

       도로시에게 부탁을 모두 전한 뒤, 아르테의 가슴에서 꺼낸 심장을 한입에 삼켰다.

       

       비릿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워 당장이라도 입 안의 심장을 뱉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이렇게 남들보다 좋은 감각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억지로 삼켰다. 아르테는 나를 믿고 심장을 내주었으니까.

       

       나를 믿고 그렇게까지 해 주었는데, 고작 비릿한 향이 조금 난다고 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한입에 삼키기에는 조금 커다란 아르테의 심장.

       

       그 심장을 모두 삼키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어, 어어어, 어떡하지! 어떻게 수습해야···?!]

       

       

       그리고 시야가 암전했다.

       

       

       

       ***

       

       

       

       “으와아아아아···! 이게, 이게 무슨···!”

       

       

       소녀는 당황했다.

       

       이제 곧 주인공과 독자님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주인공이 칼을 치켜들더니, 독자님의 심장을 꺼내서 삼켜버렸다!

       

       피가 낭자하는 슬래셔 무비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을 먹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대로 가면 추방당해···!

       

       

       “어,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지?!”

       

       “돌아가는 방법은 있어.”

       

       “진짜?! ···아니, 잠깐.”

       

       

       소녀는 당황했다.

       

       이 장소에는 본인 외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야 했는데.

       

       억지로 들어와 자신 말고 다른 초월자의 정신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공간이 무너질 텐데.

       

       소녀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고는 당황했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설정한 소년.

       

       그 소년이, 소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이 세상 밖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네가, 네가 여기에는 어떻게?”

       

       

       분명 소년이 독자님의 심장을 먹기는 했다.

       

       그렇기에 독자님과의 연결이 끊기고, 소년과 연결이 되기는 했을 테지만···.

       

       어떻게?

       

       이곳에는 어떻게 온 거지?

       

       

       “글쎄. 나도 몰라.”

       

       “뭐, 뭣?! 그게 말이 된다고···!”

       

       “이렇게 하면 이곳에 올 수 있다.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온 것뿐이야. 앞으로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겠지.”

       

       

       잔뜩 당황하여 입을 뻐끔거리는 소녀를 향해, 시우가 입을 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네. 미안하지만 너는 여기서 나가줘야겠어. 집주인의 횡포라고 생각해 줘.”

       

       “하, 하하···!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갈 것 같아?! 내가 여기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알고 있어.”

       

       “···뭐?”

       

       

       이곳에 온 것은 놀랍지만, 그것뿐.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소녀는 금세 기세등등해졌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소년은 자신을 공격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겠지.

       

       그렇게 기세를 되찾던 소녀는, 이내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네가 이 세상을 보고 재미있어 보인다며 침입한 것도.”

       

       “억지로 구멍을 뚫었지만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보낼 수 있는 것은 네 눈동자 하나뿐이었다는 것도.”

       

       “그 눈동자마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감지당해 튕겨 나갈 게 분명하기에, 그걸 숨기기 위해 사람 하나가 필요했다는 것도.”

       

       “그걸 위해 아르테의 몸을 빚어내고, 심장 부분에 네 눈동자를 숨겨두었다는 것도, 전부.”

       

       “너, 네가 그걸 어떻게···?!”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초월자들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

       

       그걸 눈앞의 필멸자가 읊어대다니.

       

       소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서 제멋대로 헤집고 다니다니. 그러면 안 돼.”

       

       “···.”

       

       “저번에, 아르테보고 너의 눈 같은 역할이라고 말한 적 있었지? 설마 진짜로 아르테의 안에 네 눈동자가 있을 줄이야. 조금 놀랐어.”

       

       

       소녀는 말한 적도 없고, 알 방법 자체가 없는 이야기를 잔뜩 이야기하기 시작한 소년에게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지?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주인공이 맞나?

       

       분명 주인공의 능력은 직감이었을 텐데.

       

       이런 영문을 알 수 없는 능력 같은 거, 나는 설정한 적···.

       

       

       “직감이 아니야. 네가 설정한 거잖아? 끝까지 성장하면, 직감 이상의 엄청난 무언가가 튀어나올 거라고. 자, 이게 그 결과물이야.”

       

       “?!”

       

       “독심술 같은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너무 판단하기 쉬울 뿐이거든.”

       

       

       독심술을 가진 능력자는 따로 있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년의 모습에, 소녀는 악에 받친 듯 외쳤다.

       

       

       “거짓말하지 마! 그럴 리가 없어!”

       

       “왜?”

       

       “그 성장이 다 끝나려면 적어도 이 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텐데···!”

       

       

       그래, 그럴 리가 없었다.

       

       소년의 설정을 건드릴 수 있었을 무렵.

       

       그 무렵에, 대충 3학년 정도에 커다란 사건 하나 터트려주면서 떡밥 같은 걸 해소하려고 넣은 설정이었다.

       

       소년의 주인공답게 이상할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와 중간중간 겪을 사건들까지 계산해가며 잡은 게 이 년.

       

       그 정도의 강함을 벌써 가지게 되었을 리가 없다.

       

       강화 이벤트 같은 건 없었을 텐데···!

       

       

       “···음, 너 진짜 멍청하구나. 아르테가 왜 계속 욕했는지 알 것 같네.”

       

       “뭐?!”

       

       “진짜 잊어버린 거야?”

       

       

       톡, 톡.

       

       머리를 검지로 살짝 두드린 소년이 소녀에게 말했다.

       

       

       “네가 설정했잖아. 죽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는 성장한다고.”

       

       “···?!”

       

       “이야, 오늘 하루만 몇 번을 죽을 뻔했는지 기억도 안 나네. 몇 번이었지?”

       

       

       오십 번 이후로는 세어본 적 없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년이 방긋 웃었다.

       

       그 반대로, 소녀의 안색은 새파랗게 변했지만.

       

       

       “도로시의 강화도 있고. 사실 그게 좀 크긴 해.”

       

       “···그,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응?”

       

       “네가 아무리 강해져도, 나를 죽일 수는 없어!”

       

       

       그러나 이내 소녀는 다시 한번 기세를 되찾았다.

       

       필멸자 따위가 소녀를 상처 입힐 수는 없을 테니까.

       

       아무리 강해진다고 한들, 고작 자신의 설정으로 강해진 필멸자일 뿐.

       

       결국은 자신의 아래라고.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고, 소년은 그에 수긍했다.

       

       

       “맞아. 나는 너를 죽일 수 없어. 공격 하나 못 하겠지.”

       

       “하, 하하···! 그렇지! 고작해야 필멸자가···!”

       

       “그래도 네가 여기를 떠나게 할 방법은 있거든.”

       

       “뭐?”

       

       “네가 저번에 아르테에게 네 능력에 대해서 설명한 적 있었던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니, 뭐니. 꽤 참신한 설명이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해 줄까 해서.”

       

       

       소녀는 소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과학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 우주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고.”

       

       “그게 무슨···.”

       

       “너는 신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조금 어린애 같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 그러면, 그 신을 내쫓으려는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악마?”

       

       “맞아. 신에게 대항하는 것은 악마야. ···그리고, 마침 그런 능력의 악마가 하나 있지.”

       

       

       현재를 아는 악마.

       

       라플라스의 악마.

       

       그게, 자신의 능력이라고.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나를 내보낼 수 있다고? 어떻게?”

       

       “어렵지는 않지. 내가 왜 네 눈동자를 삼켰다고 생각해?”

       

       “그야, 이곳에 들어오려고···.”

       

       “아니. 그것과는 관계없어.”

       

       

       소년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것은 비웃음일까, 아니면 해냈다는 기쁨이 담긴 순수한 웃음일까.

       

       

       “너는, 지금 나의 시선으로도 세상을 바라보고 있잖아?”

       

       “···.”

       

       

       소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소녀의 눈동자는 지금 소년의 안에 잠들어 있다.

       

       그러니 소년이 보는 광경은 소녀 또한 볼 수 있었다.

       

       소년이 의식을 잃는다고 해도, 소년의 주변을 소녀는 계속 관찰할 수 있었다.

       

       

       “네 능력은 네가 관측하지 못한 세상을 네 멋대로 주무르는 거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간단해.”

       

       

       소년이, 마침내 크게 웃었다.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그러면, 이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보게 된다면 너는 뭘 할 수 있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설 극초반을 기억하시나요?

    시우가 아르테가 무서워서 베개에 얼굴 묻고 울었을 때가 있었죠.

    그 때, 작가님의 입에서 이런 설정이 나온 적 있었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하거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 시우는 크게 성장한다고.

    별다른 이벤트 없이 갑자기 시우가 강해져버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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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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