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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그래도 성공은 하였다.”

         

       진성은 우물에서 멀리 떨어진 산자락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몸에는 마르지 않은 흙과 풀더미들이 가득했고, 몸에서는 산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길리 슈트(Ghillie suit)를 입은 저격수와 비슷했다.

         

       진성은 자신의 몸을 가볍게 털어내고는 눈을 강화해 말세 우물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군인들이 두돈반에 탑승한 채 군부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성민혁 역시 레토나를 타고 같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뭔가 탐탁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기라도 한지 안에서 장교와 말싸움을 하는 것이 보였다.

         

       ‘하하하. 답답해 죽으려는 표정이로다.’

         

       성민혁에게 말하는 장교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분노 때문에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벽에다 대고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끔찍할 정도의 답답함에 시달리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에 반해 성민혁은 ‘나는 할 말을 했고, 그건 옳은 말이니까 네가 이해해야 한다’는 막무가내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으니.

         

       대화의 내용을 듣지 않아도 거기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짐작을 하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천지 차이.

       진성은 집중해서 레토나의 안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마치 확대라도 되는 것처럼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고, 장교가 움직이는 입의 모양이 그대로 읽혔다.

         

       『 저는 김종수 어르신 전담입니다! 』

         

       진성은 장교가 억울함이 담긴 표정에 피식 웃었다.

         

       “아이고. 저 곰이 남의 것을 탐을 내는구나.”

         

       저것 하나만 본 것으로 레토나 안에서 하는 대화를 알 수 있었다.

         

       성민혁이 천희수를 탐내고 있다.

       자신과 함께 활동하면 딱 좋을 정도의 똑똑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고, 자신에게 짬 때리고 간 김종수에게 거슬릴 정도의 가벼운 복수까지 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여긴 것이리라.

       물론 저 곰같이 둔하기 짝이 없는 작자가 저 장교를 탐을 냈을 것은 아니나….

         

       아까 진성이 낸 2번째 문제를 맞힌 것으로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것이리라.

         

       ‘큰 재주 없이 머리만 똑똑한 편이나, 그것 역시 완벽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꺼리는 마음이 사라지고 탐이 났으렷다.’

         

       진성은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무식한 귀신이 부적을 몰라보는 것처럼, 성민혁 혼자라면 오히려 상대하기가 더 힘든 면이 있었으니까.

         

       무식한 사람이 하는 돌발행동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똑똑한 사람이 하는 ‘상식을 뛰어넘은’ 것이 아니다.

       그냥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예 생각의 밖에 있는 행동을 한다.

         

       예를 들자면, 디북 박스(קופסת דיבוק)에 ‘열지 말라고는 했지만, 이것을 유압 프레스로 조져버리지 말라고는 적혀있지 않았다.’라며 프레스기에 집어넣어서 상자를 조각내서 악령을 풀어버리는 사건이라거나, 추운 곳에서 놀던 사람들이 휘발유가 열량이 높다는 말에 그것을 먹었다가 모닥불에 토를 하는 바람에 거대한 화재가 일어나게 만드는 등의 사건 같은 것들.

         

       성민혁 역시 이러한 일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외부 부착 두뇌가 있다면 이러한 변수를 줄이고 그가 컨트롤하기 쉬워질 것이다.

         

       ‘암. 소중한 호국회의 줄인데, 컨트롤이 쉬워야지.’

         

       진성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잠시 고민했다.

         

       ‘그나저나 본래 이맘때에 애국단이 관리하던 것이 회귀 전에도 그러하였는가, 아니면 미래가 바뀌었기에 일어난 일인가?’

         

       회귀 전에도 그랬다면 진성의 정보가 부족했거나 잘못되었기에 생긴 해프닝일 뿐이다.

       하지만 회귀 전과 다르다면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이니, 이는 진성의 행보가 슬슬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진성은 굴러다니는 나뭇가지 몇 개를 줍더니 손에서 삼매진화를 피워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뭇가지들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고, 진성은 마르고 있는 나뭇가지에 불씨를 집어넣어 일부를 불태우며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뭇가지들은 젓가락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했는데, 그것이 마치 점쟁이가 들고 다니는 산가지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성은 그것으로 점을 치지는 않았다. 주역에서 나온 점법에 따르면 50개의 막대를 이용해야 하였으나, 그가 들고 있는 막대는 고작 4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그는 하나의 꼭짓점으로 가지들을 비스듬히 세워 도형을 만들었는데, 그 형태가 사각뿔의 형태와 똑 닮아있었다.

         

       그는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이윽고 그가 소리 없이 입을 뻐끔거리자 그가 앉은 땅 아래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썩거리던 땅에서는 구멍이 하나 만들어지더니, 거기서 꿀렁이는 것이 스멀스멀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황금.

         

       앞서 우물에서 제 역할을 다했던 황금이 땅을 헤엄쳐서 진성에게 도착한 것이다.

         

       진성은 눈을 감고 액체가 되어 흐르는 황금을 사각뿔로 인도하였다.

       그러자 황금은 사각뿔의 주위에 연못이라도 된 것처럼 찰랑거리며 자리를 잡았고, 일부의 황금이 가지를 타고 올라가 가장 꼭대기 부분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워진 꼭대기의 황금에 저절로 흠이 생기며 무언가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사람의 눈 모양과 매우 흡사해 보였다.

         

       눈동자는 살아있는 것처럼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 왼쪽으로 기울기를 반복하였고, 이윽고 진성이 앉아 있는 방향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신비로운 피라미드의 눈.

       눈은 유심히 진성을 살펴보았다.

       마치 기계가 스캔하는 것처럼 무기질적으로 진성에게 빛을 쏘았고, 왕이 하찮은 백성 중 하나를 보는 눈빛으로 그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살펴보고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는 듯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내 존재감이 그 정도는 되지 않는구나.”

       

       피라미드 안에 잠든 육신을 보호하는 영혼의 시선을 빌어 외부 존재의 위험도를 측정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주먹구구식에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가볍게나마 존재감을 측정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여기서 존재감이라는 것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말하는 것이다.

       단순히 몸에 어느 정도의 기를 쌓았다거나, 어떤 마법을 쓸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과가 많이 얽혀있거나 거대한 운명이 있다거나 하는 무형적인 것을 말한다.

         

       당연히 여러 사람의 위에 있는 군주가 검을 든 무인보다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단신으로 여행하는 일기당천의 여행자 하나보다 군사를 이끌고 돌아다니는 장군이 더 강한 존재감을 느낀다.

         

       어찌 보면 이 존재감을 위험도와 연결한 주술은 이집트 문명의 자부심을 볼 수 있는 주술이기도 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이집트에 해를 끼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무력이 아닌 그 숫자와 영향력으로 위험도를 측정하는 방식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군사나 강대한 군주가 아니라면 결코 이집트를 범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집트의 자신감은 오만이었음이 역사가 증명해주었으니.

         

       이는 무리를 이끌고 이집트를 떠난 옛 신성술사가, 이집트 전역에 떨어진 유대인의 저주가, 그리고 회귀 후에 사자의 서에 관한 기록을 탐한 일인 군단의 힘을 가진 강령술사가 이를 증명하였다.

         

       하지만 오만하다고 할지라도 기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존재감과 그 능력은 비례하는 것이 맞기는 했으니.

         

       그리고 존재감을 말하는 주술은 지금 진성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대로 존재감을 발하지 못하는, 아무런 힘이 없는 아이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야 스스로 일어설 수 있으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되어서야 제 손으로 역사를 쓸 수 있게 되니. 성인식이야말로 하나의 존재를 세상에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의식이요,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분기점이로다.’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했기에 영향력을 세상에 뻗을 수 없다.

         

       진성은 주술의 결과에 납득했다.

         

       차라리 무인이나 소환사, 마법사 같은 이들이었다면 저런 결과가 나오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진성은 주술과 상징이라는 것을 사용하는 주술사였기에 ‘성인’이라는 사람에게 중요하기 짝이 없는 상징에 얽매여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저 주술이 말한 것이라면.

         

       ‘내가 정보를 잘못 알고 있었구나.’

         

       주술의 결과는 말하고 있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작 개인이 한 일로는 세상의 큰 흐름을 바꿀 수 없다.

       네가 회귀 후에 이리저리 돌아다녔다고 하지만, 고작 그것으로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보자. 그러하다면 큰 걱정이 없이 호국회와 좋은 관계를 쌓으면 될 것이니.’

         

       하지만 진성은 개의치 않았다.

         

       제대로 활동한 것도 아니고, 그냥 주술의 기초를 세우고 거점을 만들기 위해 몇 군데를 돌아다녔을 뿐인데 무어 실망할 것이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주술이며, 주술을 위해 호국회와 긴밀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찾아온 위기에서 그들을 돕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성은 스마트폰을 꺼내 리세에게 문자를 보냈다.

         

       『 요괴를 만들거나 부리는 술법을 가지고 있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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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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