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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것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일순 당혹감에 눈이 휘둥그레진 프란체였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차분히 되물었다.

         

       “말 그대로여. 모든 게 예정대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 멍청한 놈이 목적도 잃은 채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것이지.”

         

       예정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목적도 잃은 채 인간의 본성에 따랐다? 아무리 되새겨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차근차근 설명해줄 수 있겠나?”

         

       눈을 연신 끔뻑이며 조심스레 묻는 프란체. 초월 마법사의 눈썹이 올라가 의아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음? 어느 정도는 알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구먼. 마녀의 운명을 지닌 자가 둘이나 있는데 말이여.”

         

       초월 마법사는 검지로 카자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너는 마녀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 나와 같은 지식의 저주에 걸린 자로구나. 너조차 진 바렌베르크에게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냐?”

         

       영문 모를 소리를 들으며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던 카자르는 난데없이 초월 마법사의 지목을 받았다.

         

       “이걸 말해도 될진 모르겠는데요…….”

         

       카자르는 프란체의 눈치를 봤다. 진에 관련된 이야기인지라 예민한데. 하지만 지금은 초월 마법사의 앞. 이런 기회가 언제 있을지 모른다.

         

       “…제가 진 씨에게서 발견한 건 시간과 이동의 마법진을 결합해서 만든 초월 마법이었어요. 그걸 따라 유추한 것이 회귀와 차원 이동인데, 진 씨는 시간을 되돌린 것도 모자라 다른 세상에서 온 거잖아요?”

         

       그제야 방긋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주억이는 초월 마법사.

         

       “그렇지! 역시 나와 같은 운명을 지닌 자는 다르구나!”

         

       카자르의 유추에 들뜬 초월 마법사는 신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정답이지만 아쉽게도 이 시험지에는 문제가 한 개가 아니여, 킬킬. 수많은 문제가 있지.”

         

       얘기를 듣던 프란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과거의 진은 시간을 되돌렸고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거야?”

         

       초월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거여.” 하고 대답했다.

         

       “…갑자기 내용이 너무 앞서가는데.”

         

       고대 마법서에서도 시간과 공간의 마법이 담겨있어 이해는 했다. 그탓에 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아 편두통을 유발했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게 진이 죽어가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프란체의 물음에 초월 마법사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휘저었다.

         

       “절대 악의 운명을 지닌 마녀는 모르는구나. 모든 걸 불사 질러도 당사자는 알 수 없을 거라고 진 바렌베르크에게 그리 말했건만.”

         

       이내 측은해지기까지 한 초월 마법사. 카자르가 말을 이었다.

         

       “저도 진 씨가 왜 죽어가는지는 모르겠어요. 당신이 또 다른 모종의 마법을 새긴 게 아닌가요?”

         

       이전, 진의 몸에서 발견한 마법진은 신화 속의 드래곤이 만들었다 해도 믿을 정도의 정교함과 재현율이었다.

         

       “당신 말고는 초월자인 진 씨에게 그런 제약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카자르는 올곧은 눈빛으로 초월 마법사를 쏘아봤다.

         

       “후,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딱! 초월 마법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계약의 내용인지라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다. 그건 양해해주면 좋겠구먼.”

         

       주변에 모든 것이 사라지며 어둠에 잠겼다. 마치 심연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 프란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며 심장박동이 거세게 뛰었다.

         

       돌발적으로 일어난 상황에 케일과 라데아, 카자르는 서둘러 전투 준비를 했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듯 몸이 느릿한 것도 모자라 그 어떤 마력도, 오러도 흐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케일이 살의를 가득 담은 채 말했다. 초월 마법사는 킬킬, 웃더니 대답했다.

         

       “안심혀.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줄 생각이니.”

         

       딱!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기자 어둠이 걷히고 황폐한 폐허가 나왔다.

         

       화재로 인한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가리고 건물은 무너져 형태를 잃어버렸다. 종말이 다가온 세상이라고 해도 믿을 풍경.

         

       흙먼지가 공기 중에 맴돌아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은연중에 섞여 들어오는 비릿한 피의 냄새.

         

       “이건…?”

         

       다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장소다.

         

       “…우리가 방금까지 있었던 황도군.”

       “황궁도 보여요. 정확히는 황궁이었던 곳이지만.”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형체도 유지하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다. 아이, 여인, 노인, 병사, 기사, 귀족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죽어있다.

         

       “맙소사…….”

       “전쟁이라도 일어난 건가?”

       “단순히 마법으로 만든 환각은 아니네요.”

         

       그렇게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라데아가 인간 형태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저기…!”

         

       라데아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케일과 프란체, 카자르는 일제히 그곳을 바라봤다.

         

       싸늘하게 식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 날붙이로 온몸을 난도질당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성.

         

       그 남성은 조용히 뭐라 중얼거렸다. 소리가 자세하게 들려오진 않았다. 이내 할 말이 끝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린다.

         

       “저 사람은…!”

         

       흑색의 머리카락. 황금처럼 반짝이는 금안.

         

       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다들 혼란이 가득했다. 초월 마법사가 이 광경을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게 대체 지금 질문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참혹한 폐허가 단번에 사라졌다.

         

       “아무래도 계약 때문에 여기까지밖에 보여줄 수가 없구먼. 나머지는 말로 설명하지.”

         

       방금까지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던 심연은 사라지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되돌아온 탑의 최정상. 소파도 커피도 디저트도 있던 그대로다.

         

       “어느 한 초월자가 있었어. 그는 복수했음에도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지.”

         

       초월 마법사는 킬킬 웃으며 마치 어린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 분노는 날이 갈수록 성장했고, 이내 원념으로 바뀌었다.』

         

       『원념으로 가득한 초월자는 닥치는 대로 모든 걸 파괴했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고, 그저 다가오는 죽음과 파멸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이 대륙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마수도, 인간도, 타인종도. 모두 그에게 처참히 몰살당했다.』

         

       『그와 같은 초월자가 말했다. 이 모든 걸 되돌리게 해주겠다고. 지난날의 실수를 고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원념으로 가득한 초월자는 제안을 받아 시간을 되돌렸다. 수십 번을, 수백 번을, 수천 번을 되돌렸다. 광기에 가까운 집념이었다. 하지만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수천 번 끝에 기회가 사라진 초월자는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라드리엔 폰 그라시아’라는 초월 마법사가 수백 년간 연구해온 마법이 있는데, 불안정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운명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초월 마법사가 차원, 하며 말을 이으려던 찰나.

         

       쿠르릉! 콰앙─! 파지지지직─!

         

       하늘에서 푸른색의 천둥이 역장과 탑의 천장을 뚫고 들어와 초월 마법사를 지져댔다. 몸이 재가 되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전류였건만…….

         

       “알려줄 수 있는 건 이게 끝인 거 같구먼. 그래도 진 바렌베르크와는 다르게 여기까지라도 알려줄 수 있어 다행이여.”

         

       초월 마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털어냈다. 이윽고 손가락을 튕기더니 부서졌던 천장이 복구되고 난장판이 되었던 탑 내부도 돌아왔다.

         

       “초월자의 계약은 여신에게 맹세하는 숭고한 행위여. 위반하면 지금처럼 절대적인 벌을 받게 되지.”

         

       킬킬, 거리며 말을 잇는 초월 마법사.

         

       “나도 진 바렌베르크가 필요해서 최대한 직접적으로 알려주려 했건만… 이렇게 되니 안 되겠구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여. 진 바렌베르크를 데려오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다.”

         

       프란체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 번에 많은 정보가 들어온 탓에 편두통이 느껴졌다.

         

       “으으…….”

         

       카자르가 옆에서 프란체의 어깨를 주물렀다.

         

       “괜찮으세요?”

       “그냥 좀 머리가 좀 아프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초월 마법사와 눈을 마주하는 프란체.

         

       “그래서, 결론은 진을 찾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거지?”

         

       초월 마법사는 “그런 거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는 질문을 이었다.

         

       “하나 더 물어도 될까?”

       “뭣이여?”

       “당신이 성녀를 돕는 이유가 궁금해.”

         

       소미레의 얘기에 입꼬리가 올라가다 못해 광대에 걸친 초월 마법사. 소름이 돋는 웃음이었다.

         

       “킬킬, 걔가 그렇게 된 건 어느 정도 내 책임도 있어서 말이지.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기도 하고.”

         

       하지만, 하고 말을 잇는 초월 마법사.

         

       “내가 제대로 돕지 않는다는 건 공작도 머리가 있다면 알 거여. 킬킬.”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초월 마법사는 성녀에게 협력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좋아, 그럼 질문을 바꿀게. 당신은 진에게 무슨 목적이 있는 거야?”

         

       우뚝. 웃음기 가득했던 초월 마법사의 얼굴이 단번에 정색으로 바뀌었다.

         

       “그건 알려줄 수가 없구먼.”

         

       초월 마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절대 악의 운명을 지닌 마녀, 지식의 저주에 갇힌 마녀. 너희들의 행보에 모든 것이 걸렸다. 진 바렌베르크를 찾아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

         

       단번에 장소가 바뀌었다. 프란체가 밟고 있는 마룻바닥은 황궁 근처의 풀밭으로 바뀌었다.

         

       “카자르? 케일? 라데아?”

         

       고개를 돌려보니 다들 무사하다. 안도감에 프란체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되는군.”

       “이런 마법이 가능하다니…….”

         

       다들 어안이 벙벙하던 와중, 유일하게 카자르만이 심각했다.

         

       “시간과 공간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저러면 인과율에 어긋나 어떤 형태로든 벌을 받게 되어있을 텐데…….”

         

       신이나 드래곤이 아닌 이상 절대 다루면 안 될 마법이 생명, 시간, 공간 세 가지다. 그런데 저 초월 마법사는 그중 두 개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다.

         

       “이상하네요. 그 천둥을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하고.”

         

       아무리 초월자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더욱더 의문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런 건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공작령으로 돌아가서 정보를 정리하자. 저 할머니의 말대로라면 진을 찾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카자르가 “네, 알겠어요.”하고 대답했다. 케일과 라데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돌아가자.”

         

       그렇게 심란함을 뒤로 하고 걸음을 떼니 재스앙 하기시른이 달려왔다.

         

       “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네. 다행히도 대화가 통했습니다.”

       “의외군요. 초월 마법사님께서…….”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크흠, 하며 말을 고치는 재스앙.

         

       “태자 전하와 비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만. 어찌하시겠습니까?”

         

       프란체는 픽 웃었다. 답은 정해져 있다.

         

       “시간이 늦어서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전해주세요. 중간에 끼어서 재상만 고생하는군요.”

         

       재스앙은 “아닙니다.”하곤 멋쩍게 웃었다.

         

       “그럼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네. 제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터라. 다음에 다시 만나요, 재상.”

       “알겠습니다.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데카르트 공작님.”

         

       깍듯이 인사하며 배웅하는 재상. 그렇게 다시 마차에 탑승하고.

         

       덜컹! 바퀴가 굴러갔다.

         

       “복잡하네요.”

       “나는 하나도 이해 못 했다.”

       “저도요.”

         

       다들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맞대고 있자 프란체가 말했다.

         

       “피곤하구나. 우선 이동하는 시간은 쉬도록 하고, 자세한 건 돌아가서 정리하자.”

         

       이는 카자르와 케일, 라데아도 마찬가지였는지 동조했다.

         

       “그러지.”

       “그래요.”

       “네.”

         

       프란체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왔건만,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들까지 들어버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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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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