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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부끄러웠던 것은 처음뿐이었다.

        

       사라에게 머리카락을 말려달라고 했을 때는 정말 엄청나게 부끄러웠었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이수아 자신뿐만이 아니라 사라도 엄청나게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원래 부끄럽고 아니고는 자신이 상대방을 의식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자신을 의식할 때 더 심해지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의 ‘사라’는 이수아의 몸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사라’와 사라의 반응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사라’도, 명백하게 ‘친구끼리 할만한’ 행동이 아닌 행동에는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반대로, ‘사라’가 생각하기에 ‘친구끼리도 할 법한’ 행동을 할 때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옆에서 팔짱을 끼는 것도, 수아나 소희가 끌어안아 줄 때도, 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잘 때도.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행동했던 사라와는 그 반응이 확실하게 달랐다.

        

       분명 ‘사라’가 아니라 사라였다면 지금 이렇게 같이 목욕하고 있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둘의 반응이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정작 ‘사라’와 사라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라야.”

        

       ‘사라’의 등에 비누칠해 주면서, 이수아가 말했다.

        

       “응?”

        

       사라가 대답했다.

        

       “네 안에 있다는 또 다른 사라 있잖아.”

        

       “……응.”

        

       ‘사라’의 목소리에 다소 경계심이 깃든다.

        

       이 반응도 그랬다. ‘사라’는 사라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몹시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또 다른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아니면 마치, 동경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물론 동경이라는 것은 동성에게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이수아만 해도 사라에게 동경심을 느끼고 있었고, 그 동경심이 발전해서 지금의 감정이 되었던 것이니까.

        

       ……그렇다. 동경심은 발전해서 그런 감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 ‘동성’에게 동경심을 가지면 무조건 그런 감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한없이 적다. 많은 사람이 동성 간에는 ‘애초에’ 연인이 될 가능성을 생각해두지 않고 행동하니까.

        

       동경심이 연정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동성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라’는, 같은 여성에게는 그런 성적인 반응을 잘 하지 않았다. 대단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희나 하늘이처럼 대놓고 티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혹시, 두 사람의 성별이 다른 거야?”

        

       “으, 응!?”

        

       ‘사라’가 당황해서 이수아를 휙 돌아보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이수아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인격이 여러 개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그런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인격의 성별이 다른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단순히 성별이 다를 뿐만이 아니라, 겪은 과거나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학력 같은 것까지.

        

       물론 그 모든 것이 ‘실제로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몸이 하나인 이상 과거도 하나일 수밖에 없고, 스스로 어떤 학문의 박사라고 주장해도 실제로 그 정도의 지식과 학력이 없다면 박사가 아니었으니까. 아예 인격끼리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물론 ‘사라’와 사라의 차이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사라와 ‘사라’의 경우에도, 아예 그런 예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라는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 했다. 아마 그런 성격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사라’의 육체는 놀이기구와는 별로 맞지 않았고, 그래서 사라도 놀이기구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적어도 둘의 성격 중에서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을 꼽으라면 이수아는 그런 면을 꼽을 것이다.

        

       “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이수아의 차분한 표정을 보고 ‘사라’도 머리가 식었는지, 얼른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냥, 반응을 보니까 그런 것 같아서.”

        

       만약 남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라는 분명 남자보다는 여자 쪽에 관심이 더 많았다. 애초에 자신의 약혼자나, 자신을 매일 도와주고 있는 선배에게도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성격이야 어떻든, 두 사람 다 학교 안에서는 잘생긴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는데.

        

       “…….”

        

       ‘사라’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나도 몰라.”

        

       목소리에 잔뜩 경계심을 담아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하지만, 이수아는 그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사라’와 사라는 분명하게 다른 존재라는 것을.

        

       처음 이수아가 좋아하던 상대는 사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라’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사라와 이수아의 관계는 ‘사라’가 있었기에 성립할 수 있었던 거니까. 비록 그 시작이 제대로 된 시작은 아니었고, 이수아가 ‘사라’에게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 그리고 거기서 나온 죄책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지라도.

        

       사실, 이수아가 그때 사라에게 말을 걸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을 때의 감정도, 분명 떳떳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사라’가 불쌍해서, 마치 자신이 가서 말을 걸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해야만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질 것 같아서.

        

       그때의 기억을 파고 내려가다 보면, 가장 아래쪽에 깔린 심리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수아는 아직도 사과하지 못했다.

        

       그때의 일도, 그리고 그 이전의 일도.

        

       아마 진심으로 사과하려면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이수아는 ‘사라’, 그리고 사라의 곁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하지만, 입가에 은근히 미소가 걸리는 것을, 이수아는 숨길 수가 없었다.

        

       죄책감과는 별개로, 기쁜 마음도 들었다.

        

       사라는 ‘사라’와는 다르게, 분명히 여자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보고 확실하게 반응을 보여주었었다.

        

       그 점이, 아직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이수아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

        

       “나 먼저 나갈게.”

        

       먼저 들어와서 씻고 있었던 ‘사라’가 말했다. 조금 전에는 이수아가 전혀 불편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기분이 확 느껴질 정도였다.

        

       ……확실히, 너무 개인적인 부분을 파고 들어갔던 것 같기도 하다.

        

       이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저 씻고 나갈게.”

        

       ‘사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욕실을 나갔다. 문밖에서 슥슥 몸을 닦는 소리가 들렸다.

        

       “…….”

        

       이수아도, 슬슬 씻는 것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뒤 이수아도 욕실에서 나왔다.

        

       욕실 밖에서는 소희와 하늘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방에 돌아온 지는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라’는 두 사람의 반응에 다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두, 두 사람이 왜 거기서 나와?”

        

       “그, 그야 함께 씻었으니까…….”

        

       소희의 질문에, ‘사라’가 답했다.

        

       그 말에 소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어, 왜, 왜 그래……?”

        

       ‘사라’가 더욱 불안해하며 되물었다.

        

       오늘 선생들 앞에 있을 때만 해도 그렇게 당당하게 굴던 사라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그럼 안 되는 거야?”

        

       ‘사라’는 이수아와 소희, 그리고 하늘이 쪽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당연히 안되……”

        

       소희는 발끈해서 그렇게 말하려다가, 입을 딱 다물었다. 그리고 ‘사라’의 뒤를 따라 나온 이수아를 빤히 바라보더니,

        

       “……지는, 않지?”

        

       하고, 얼른 말을 바꾸었다.

        

       그래, 평소라면 절대로 생각하지도 못 할 일이었지만, 만약 ‘사라’가 그게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소희나 하늘이에게도 기회가 있었을 테니까.

        

       “그……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소희가 ‘사라’에게 물었다.

        

       “안에서 씻기만 한 거지? 다른 일은 없었지?”

        

       그 질문을 들은 하늘이가 이마에 손을 얹었지만, 소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욕실 안에서 씻는 거 외에 다른 할 일이 있어?”

        

       ‘사라’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치? 그야 당연하네. 욕실은 씻는 곳이니까. 당연히 다른 할 일이 있을 리가 없지!”

        

       그 대답에, 소희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저기, 사라야. 다음에는 나랑 들어가자. 이렇게 보여도 나는 너의 전속 메이드잖아? 내가 깨끗하게 씻겨줄 수 있으니까!”

        

       “응? 어, 어어?”

        

       갑자기 소희가 달려들어 팔짱을 끼며 말하자, ‘사라’는 엄청나게 당황했다. 다행히 목욕타월만 걸치고 있다거나 그런 모습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말아 올려 수건으로 감아 둔 머리카락 중 몇 가닥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 하얀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 그래……?”

        

       소희의 적극적인 어필에, 결국 ‘사라’는 그렇게 승낙인 듯 보이는 말을 하고 말았다.

        

       사실, 처음부터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으리라.

        

       이수아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렇다.

        

       아직, 이수아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사라’에게 있어서 하늘, 수아, 소희 세 사람은 똑같은 친구였으니까.

        

       환호성을 지르며 ‘사라’에게 달라붙는 소희를 보면서, 이수아는 오히려 마음을 다소 놓을 수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은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뒤틀린황천의독자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모티콘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들로 꽉꽉 채우다보니 회장님을 넣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네요. 일러스트를 그려주시는 양갱왕님께 부탁드려 ‘3600조’ 이모티콘 대신 회장님의 이모티콘을 넣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일러스트가 아닌 이모티콘에서 먼저 등장하게 되었지만, 여러분께서 좋아해주신다면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이모티콘도, 그리고 이 소설에 올라가는 일러스트도 모두 저의 소설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을 위한 것이니까요.

    후에 2차 이모티콘을 뽑을 생각이 있기는 합니다. 그때는 이번 이모티콘에 나오지 못한 다른 캐릭터들로 채우고 싶네요. 저의 소설을, 그리고 제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이렇게 좋아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의 소설을 읽으면서 하신 기대감을 제대로 채워드리기 위해서라도, 매일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항상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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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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