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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사각사각.

         

       한 남성이 낡은 양피지 위로 글을 적어갔다.

       최근엔 만년필을 비롯한 다양한 볼펜 등이 잘 나왔는데도, 그는 여전히 새의 깃털로 만들어진 깃펜으로 글을 적었다.

       한데도 수려한 글씨와 잉크가 번지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남성의 손이 깃펜과 제법 친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광명을 따르는 10번째 천사가 이 세상의 모든 죄업을 자신이 짊어지겠다 말하니, 지옥의 입구에서 한 명이라도 많은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여전히 천사는-.]

         

       푸욱!

         

       “…….”

         

       성경의 내용을 적던 손이 일순 멈칫거리자 잉크가 번져갔고, 남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드문 일이었다.

       만약 평소 남성을 잘 아는 이들이 본다면 고개를 갸웃거리리라.

       그가 감정 변화가 희미한 사람임을 알 테니까.

         

       하여.

         

       “…이것이 몽크들이 말하는 ‘번뇌’인가.”

         

       자신의 상태가 평소와 같지 않음을 인지하게 된다.

         

       가슴이 술렁이며 요동친다.

       처음이었다. 이토록 기분이 싱숭생숭한 것이….

       그는 이러한 번뇌가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 고심했다.

       여전히 깃펜을 붙잡은 채.

         

       아마 이러고 있노라면 답이 나올지도….

         

       “-피에르, 준비해라.”

         

       “……무례하게 뭐하는 짓이지.”

         

       한참 가슴 속 답답함을 가라앉히던 그는 자신의 사색을 방해하는 동료를 보며 안광을 서늘하게 빛냈다.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불쾌했고 말이다.

       허나 상대는 자신의 불쾌감 따윈 가볍게 무시했다.

         

       “무례고 뭐고 준비해라. 단숨에 몰아붙일 것이니.”

       “…….”

       “그 기사의 정보 중 절반이라도 사실이라면 그 기사의 무력은 최소 기사단장급에 맞먹는다. 그러니 단숨에 몰아붙일 필요가 있겠지.”

       “…추기경께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말씀하셨을 텐데.”

       “그랬지, 하니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빠르게 끝내면 된다.”

       “…추기경께서 자리를 비우길 기다리고 있었나.”

       “우연에 불과하지.”

       “…….”

         

       …저 말이 거짓말이란 걸 모를 정도로 그는 어리석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

         

       피에르는 과연 이런 이들과 함께 하면서까지 라파엘 추기경의 말씀을 어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으나….

         

       “기억해라, 이단이다. 광명에게 반항하는 이단을 심문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알아라.”

       “…….”

         

       …피에르는 여전히 망설임을 가졌다.

         

       이게 옳은가?

       저자의 말을 따라는 것이 과연 광명의 뜻에 따르는 것이 맞는지 말이다.

         

       그렇게 무수한 의문을 삼키던 중.

         

       “추기경께서 언제까지 너를 감싸주실까? [비밀]은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해라.”

       “…….”

       “알았다면 당장 움직이도록.”

       “…알겠다.”

         

       그는 더는 반항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였다.

       여전히 번뇌는 그를 망설이게 하였으나….

         

       ‘광명을 섬길 수 없게 되는 것은 안 될 일이니.’

         

       그의 비밀이 드러난다면 더 이상 신전에 있을 수 없게 될 터.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했다.

         

         

       …비겁한 것을 알고 있으나 자신은─.

         

         

         

         

         

       “-비겁하거나 자기합리화가 나쁜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항상 용맹하거나 똑똑할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지.”

         

       “…그건 편견인 것이….”

         

       자그마한 반발.

       허나 이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아직 세상을 덜 겪어봐서 그래, 나중에 기회 되면 도박장이나 뒷골목을 가 봐. 인간의 끝을 볼 수 있을 테니까.”

       “…….”

       “어쨌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거다. 조교야, 사람이 좀 비겁할 수 있고 덜 용맹한 건 어쩔 수가 없는 게 맞아. 근데….”

       “…….”

       “‘건방진’ ‘귀족 자제’ ‘조교’가 게으름 피우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건 죄가 맞아.”

       “…썅, 수식어 한번 빌어먹게 많네!”

       “어허, 고운 말.”

         

       데미안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게 맞아?’

         

       겨우 낮잠 좀 자고, 밭에 잡초 좀 덜 뽑았다고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 그 전에-!

         

       “저도 쉴 권리가 있단 말입니다! 조교도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과 불합리한 처사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쳤고, 그런 데미안을 묵묵히 바라본 이한은.

         

       “조교‘는’ 사람이 맞지. 하지만 넌 그냥 조교가 아니라 ‘건방진 귀족 자제’란 수식어가 붙은 조교잖아? 그럼 사람 아니지, 뭐.”

       “!!!?”

       “넌 쉬면 안 돼. 아직 2년하고도 5개월은 더 굴러야지. 그런데 사람 취급받을 생각이면 네 양심이 문제인 거야.”

       “그놈의 귀족 혐오 좀 제발 멈추란 말입니다! 이 미친 인간아!”

         

       뻐억!

         

       “아악!!”

       “어디서 노비가, 아니 조교가 교관 말에 토를 달아!”

       “…쌰앙.”

       “이놈이 갈수록 입이 걸쭉해지네.”

       “…….”

       “우냐?”

       “…….”

       “우네, 그래 울어라. 울고 나면 좀 개운할 거다. 개운하면 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겠지.”

       “……끄으윽!”

       “이 새끼 보게…?”

         

       …하다하다 혼절해서 쉬려는 독한 놈은 처음 본다며 혀를 차는 이한이었다.

         

       * * *

         

       조교는 기절하고, 시녀님은 잠시 누님을 만나러 간지라 아마 저녁이 돼서야 오지 않을까 싶은 혼자만의 시간.

         

       모처럼 홀로 유유자적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됐지만, 이한은 딱히 혼자가 되었다고 해서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똑같이 일과를 보낸 뒤 훈련을 하고, 이후에는 밥을 먹고.

         

       지극히 똑같은 일상을 보낼 뿐.

         

       “흠, 다음 학기부터는 어떻게 할까?”

         

       그나마 추가된 것이 있다면 학술원 일정에 대한 것 정도?

       다음 학기 수업 내용을 떠올리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조교 놈에게 적당히 의견을 물어가며 내용을 정할 셈이었는데, 이놈이 벌써 30분째 자고 있다.

         

       강렬한 정신적 충격과 피로가 겹친 탓에 저리된 것 같으나.

         

       “망할 놈. 하여튼 요즘 것들은 곱게 커서 이러는 거지, 원.”

         

       이한은 마음에 안 든다며 미간을 찌푸릴 따름이었다.

         

       부르르….

         

       한차례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떠는 데미안이었지만, 이한은 관심을 거두며 칠판에다 자신이 적어 둔 다음 학기 수업 내용을 보았다.

         

       「병아리-줄넘기 덕분에 약간의 체력이 생김. 슬슬 근력 훈련과 가벼운 호신술을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음 유도와 눈 찌르기, 낭심 터트리기 등등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될 것 같음(졸업 전까진 양아치 한두 명 정도는 쓰러트릴 수 있도록 만들면 좋을 것).」

         

       「곰돌이-슬슬 전체적인 체력이 붙었을 테니 실전 경험이 중요한 것으로 보임. ‘기생나락’에서 범죄자들과 싸우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음(범죄와의 전쟁 느낌으로?). 실전을 쌓게 하면서 절벽 훈련과 맨몸으로 숲에서 일주일 정도 서바이벌을 시켜도 좋을 것 같으며, 추가적으로 무박5일 훈련도 생각해봄직하다」

         

       「도련님-체력과 근력만 적당히 붙었다면 곰돌이들과 비슷한 커리큘럼으로 가도 될 것 같음. 다만 투기법을 익혔으니 식량 없이 무박10일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 봐도 될 것 같다(적당히 도망가지 못하도록 바다 한가운데 있을 ‘돌섬’에 떨궈놓으면 되지 않을까?).」

         

       “…흠.”

         

       이한은 개인적인 사견이 적힌 내용을 세세히 읽어봤다.

       그러며 자신이 좀 너무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범죄자랑 싸우게 하는 건 아니려나?”

         

       그냥 곰이나 호랑이 몇 마리 잡아 와서 맨몸으로 싸우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고심하는 그였다.

         

       아무리 그래도 인생 막장인 더러운 범죄자 놈들로 손을 더럽히기엔 아직 어린 것들이 아니겠는가.

         

       “어휴, 나도 마음이 약해졌어.”

         

       첫 제자들이라고, 은근히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차오로는 이한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나에게 묻는 것인가.”

         

       “그럼 누구에게 물을까.”

         

       “……일단 그 무박5일인지 10일인지 하는 것부터 그만두는 것을 추천하지. 자칫 잘못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

         

       “?”

         

       “…생도들이 불쌍하군.”

         

       사내, 이단심문소 소속 전투 사제는 기겁했다.

         

         

         

         

       주륵….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기사가 칠판 등에 써놓은 살벌한 내용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그가 간담이 서늘한 이유는.

         

       ‘…내 기척을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듣긴 들었다.

         

       <은닉의 성법>이 통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허나 거짓말이나 우연으로 치부했다.

         

       그 정도로 [성법]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주변 환경과 완전히 동화하여 그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 정상적이거늘….’

         

       허나 진정으로 꿰뚫렸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성법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만 보아도 저 기사의 감각은 야생 동물과 비견된다는 뜻일 터.

         

       전투 사제가 더더욱 경계심을 높일 때.

         

       “많이도 왔네, 아홉 명…. 아니 저격하려는 놈까지 합치면 열한 명인가?”

         

       “!?!!”

         

       “너희, 진짜 막 나가네? 라파엘 영감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런다고?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 야.”

         

       “…….”

         

       …역시 이 기사는 위험하다.

         

       전투사제는 입을 악물었고,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며 자세를 잡았다.

         

       “백은사자 기사단 소속 이한 터틀. 네놈에겐 이단 의혹이 있다.”

       “내가 왜?”

       “…네놈은 너무 갑자기 나타나 활약을 펼쳤으니까.”

       “??”

       “후우…!”

         

       전투사제는 숨을 골랐다.

       조금이라도 기사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하여.

         

       “…백은사자에 입단한 이후 이렇다 할 실적 하나 없던 한낱 평기사가 학술원의 교관으로 임명된 이후 갑작스럽게 여러 공을 세우기 시작했으며, 쌓은 공적의 내용 대부분 [이교도]와 관련되어 있는 바. 또한 전날 땅굴이 무너지는 일에 네놈이 끼어 있다는 정황이 있다.”

         

       아무런 공도 없는 평기사가 갑작스레 무수한 공을 세운 것도 세운 거지만, 그 정황이 무척이나 절묘하여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신전으로선 당연히 의심할 사항임이 분명했고, 혹시라도 이한이란 기사가 이교도 세력과 관련되어 있고, 그러한 세력과 합을 맞춰 공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야말로 합당한 추론이자 의구심.

         

       “이러한 의심을 풀고 싶다면 투항하고 순순히 밧줄에 묶여라. 순순히 협조만 한다면 과하게 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놀 같은 소리도 이 정도 들었으면 많이 들어 준 거다, 그치?”

         

       “!!!”

         

       콰드드득!!

         

       …언제 다가온 것일까?

         

       전투사제는 일순 그의 앞까지 다가온 이한의 몸놀림에 대응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주먹을 맞았다.

       아니, 맞았다는 표현은 틀리리라.

       그저 툭, 하고 가슴 정중앙을 친 것에 불과했는데….

         

       “끄, 끄…으으윽…!…으……?!”

         

       전투사제는 호흡 곤란이 찾아오며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덮쳐오며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뿌드득!

       꽈득…!

         

       실제로 찢어지는 중이었다.

         

       “분근착골이라고 한다. 잠시 그 상태로 있어. …금방 올 테니.”

         

       “…!…!!”

         

       기사의 덤덤한 선고였고, 전투사제는 눈가에 핏줄이 터지며 피눈물을 흘렸다.

       이빨에 금이 가며 그대로 실신할 지경이었으나, 고통 때문에 전투사제는 정신조차 잃지 못하며 그저 몸을 떨며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를 따름이었다.

         

         

       그리고….

         

         

       “…와, 나는 나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게 맞았구나.”

         

       얼떨결에 정신을 차린 어느 귀족 조교는 여전히 바닥에 납작 누운 채 쓰러진 사제의 몰골을 구경했고, 자신이 나름 귀한(?) 취급을 받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며 슬쩍 산책하듯 여유로운 걸음을 옮기는 교관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이단심문소 새끼들, 제정신인가?”

         

       올 거면 성기사단 전부를 이끌고 왔어야지,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적게 온 걸까 싶어서.

         

       으음, 아….

         

       ‘아발론에 일찍 가고 싶었나?’

         

       하긴, 요즘 현생이 좀 더럽긴 해서 이해는 간다.

         

       그래도.

         

       ‘우리 교관은 쉽게 사람 안 죽이는데….’

         

         

       ─현생이 지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 보여줬지.

         

         

       “…내가 저런 짓하다 이 꼴 났지…. 쯧쯧.”

         

       그렇게 기사에게 먼저 대든 적이 있는 선배로서 데미안은 동정심을 표하며 혀를 찼다.

         

         

       저들이 어떤 꼴이 될지 훤하여서.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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