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박살이 나서 원래의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린 경기장 위.
흩어지는 흙먼지 사이로 한 소년이 흑염을 흩뿌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발하임의 막내아들, 크라슈 발하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상대는 프레아의 아이 중 역대 최강이라 불리는 아르솔더 프레아.
마주 본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한 순간 크라슈가 숨을 당겼다.
핏!
그리고 크라슈의 인영이 한순간에 흐트러졌다.
크라슈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아르솔더의 눈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인간을 넘어 짐승에 가까운 그의 동체시력이 크라슈를 쫓고 있는 것이었다.
아르솔더의 허리에서 돋아난 팔이 즉시 앞으로 뻗어졌다.
퍼걱!
그러나 그 엄청난 동체시력과 뛰어난 반사신경에도 크라슈를 쫓기에는 한 박자 늦었다.
옆구리에서 후려쳐진 크라슈의 검이 아르솔더의 몸을 움푹 꺾이게 했다.
분명 체격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고 있음에도 아르솔더가 힘에서 밀린 것이다.
“크학!”
옆구리에서 온 충격에 아르솔더가 비명을 삼킨 순간 그의 등 뒤에 또다시 충격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아래로 추락한 그에 의해 가뜩이나 부서졌던 경기장 바닥이 초토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 충격에도 불구하고, 네 개 남은 팔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네 개의 손으로 부서진 돌바닥을 쥐어 들더니 닥치는 대로 던지기 시작했다.
콰득, 쾅!
크라슈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날아온 돌바닥들이 박살이 났다.
크라슈에게 그 정도는 움직임의 제약조차 주지 못했다.
돌바닥이 부서져 먼지가 휘날려 시야를 가렸다.
그 순간 먼지 사이로 기척이 지나갔다.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아르솔더가 기습적으로 주먹을 날린 것이다.
파직!
하지만 상시 발동 중인 크라슈의 벽력이 즉시 아르솔더의 주먹을 갈라 버렸다.
“두 번은 실패 안 해!”
하지만 갈라진 아르솔더의 팔 사이로 아르솔더의 주먹이 하나 더 날아들었다.
이 미친 녀석이 잘려 나갔던 자기 팔 중 하나를 잡아 던지고, 그 뒤에 주먹을 휘두른 것이었다.
저쪽도 만만치 않은 광기 섞인 짓을 해준다.
그 광경을 보며 크라슈가 휘둘렀던 우뢰성을 허공에서 놓았다.
그러고는 뒷발을 당기더니 즉시 오른 주먹을 앞을 향해 내질렀다.
꾸득!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라슈의 주먹과 맞부딪친 아르솔더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꺾여 들어간 것이다.
중지 하나가 박살 남과 동시에 아르솔더의 주먹에서 2차 충격이 시작되었다.
촌경(寸勁)
콰득!
그의 주먹이 비틀리는 소리가 경기장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하지만 아르솔더는 침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는 손이 박살 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크라슈를 내려쳐 손안에 가뒀다.
한순간에 크라슈를 손안에 가둔 아르솔더가 자기 손을 향해 남은 모든 주먹을 휘둘렀다.
자기 손과 함께 크라슈를 박살 내 버리겠다는 속셈이었다.
아르솔더의 손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난타가 이어졌다.
승리를 향한 집착의 광기가 아르솔더의 두 눈에 번뜩였다.
화륵-
그 순간 아주 짧게 무언가 타오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자기 손바닥 안에서 들려 온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삼식(三式)
멸화천뢰(滅火天雷)
치솟아 오른 번개와 불길이 한순간에 아르솔더를 뒤덮었다.
아르솔더가 이제껏 퍼부었던 주먹 난타보다도 더한 충격이 그를 휩쓸었다.
경기장 일대를 전부 그을려 놓은 흑염과 함께 아르솔더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하아.”
몸의 절반 이상이 화상을 입은 아르솔더가 연기를 내뿜으며 몸을 일으켰다.
뚜벅, 뚜벅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팔과 손이 부서지고, 화상을 입은 아르솔더와 달리 너무나 멀쩡한 모습인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는 주변 대기를 일그러트리게 보일 정도로 강렬했다.
그의 눈에서 빛나는 붉은색의 빛은 참혹할 정도로 짙은 살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압도적이다.
그 광경을 보며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아르솔더는 분명 터무니없는 괴물이다.
거인화만 보아도 이 중 그걸 정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크라슈는 그걸 정면에서 견딤은 물론 아르솔더를 힘으로 박살 내놓았다.
이러한 광경은 샬롯 이후로 모두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휘말렸던 아이들이 멍한 눈으로 숨을 삼켰다.
동시에 그들은 알았다.
판드라라는 멍청이가 얼마나 위험한 인간을 건드렸는지 말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크라슈 발하임이라는 강자가 확고하게 새겨지기 시작했다.
“야.”
입에서 연기를 후욱 뱉어낸 크라슈가 붉게 달구어진 우뢰성을 쥔 채 아르솔더를 응시했다.
“남는 거 없이 다 써라.”
그러고는 무심하게 아르솔더를 향해 다시금 고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아르솔더의 입가에 다시금 진한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피멍과 골절상, 화상 등 수많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까지도 웃을 수 있었다.
전투에 미쳐버린 그의 머리가 솟아난 엔돌핀으로 인해 통증을 경감시켰던 탓이다.
전심전력.
그것이야말로 아르솔더가 가장 원하는 말이었다.
“크라슈.”
그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크라슈를 불렀다.
“넌 내가 만나본 녀석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전사다.”
억센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무거운 공기가 일대를 잠식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 빛이 아르솔더에게 비추며 그의 머리에 둘러진 금테를 빛냈다.
아르솔더의 등 뒤, 빛이 후광처럼 솟아올랐다.
으스스-
그 광경을 보던 아이들의 등줄기에 소름이 파고들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들었을 때였다.
아르솔더의 피부 위 백색의 털이 돋아났다.
그것은 멀리서 보기에 언뜻 갑옷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기이한 광경 속.
아르솔더의 허벅지가 이제껏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꾸드드드드득!
타고난 근육의 탄성을 지닌 그의 다리가 최대치로 부풀어 오른 그때.
모두가 무언가 뛰었다고 느꼈다.
뒤늦은 광풍이 아르솔더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하지만 크라슈만은 아르솔더를 똑바로 보았다.
백색의 털이 뒤덮인 아르솔더의 주먹이 굉음보다 빠르게 자신을 향해 쏘아지고 있음을 말이다.
거인화(巨人化)
박살(撲殺)
그저 상대를 부수기 위한 막무가내식 공격.
그러나 그 파괴력은 이전과 차원을 달리했다.
공기가 찢겨 가는 소리를 뒤따라 아르솔더의 주먹이 크라슈의 앞에 코앞까지 왔을 때였다.
크라슈의 깊은 내면.
드리운 밤의 장막 안, 일곱 개의 별이 드리웠다.
이 녀석은 알까.
아르솔더가 전심전력이 될 때까지 자신이 기다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크라슈의 멸화침식은 오직 화력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상대의 숨통을 일격에 끊기 위해 존재하는 화력이다.
생사를 겨룬다면 모를까.
당연하지만 대전 같은 것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 바로 멸화침식이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면 괜찮다.
그러나 어정쩡한 상대라면 크라슈도 전심전력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아르솔더는 다르다.
저놈이 사용하는 거인화는 파괴력 면에서도 발군이지만.
무엇보다 육체의 방어도가 훨씬 올라간다.
‘이놈이라면 뭘 때려 박던 죽진 않아.’
크라슈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줄곧 녹스와 천살성을 제대로 응용 못 해 애가 탔던 크라슈다.
그런데 웬걸.
눈앞에 전력을 시험할 제일 단단한 녀석이 제 발로 나타나 줬다.
크라슈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전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상대였다.
[ 쯧, 불쌍한 프레아의 아이 같으니 이런 또라이 같은 아이에게 걸려서는. ]
크라슈의 속내를 꿰뚫어 본 크림슨가든에게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슈는 그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뒷발을 당겼다.
천살성의 일곱별의 빛이 일제히 빛을 머금은 그 순간.
크라슈의 몸 위에 흑염이 이제껏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세게 요동쳤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폭주하듯 치솟은 세계침식의 광증이 크라슈의 몸을 뒤덮었다.
천살성과 광증이 서로서로 잡아 먹고자 이빨을 들이미는 그 시간.
10초.
멸화수라(滅火修羅)
크라슈가 도달한 최강의 시간이었다.
코앞까지 날아온 주먹이 느릿하게 보였다.
멸화수라가 사고의 가속화마저 끌어내며 크라슈와 아르솔더의 시간조차 다르게 흐르게 하였다.
우뢰성의 검날이 흑염에 타올라 새까맣게 물들었다.
밤이 깃든 것처럼 새까만 검날 위, 일곱 개의 별들이 하나둘 새겨져 밤하늘을 이루었다.
일대의 공기가 역류하듯 흘렀다.
꾸드득!
검을 쥔 손에서 울려 퍼지는 근육의 비명 속.
크라슈의 수면 아래 치솟아 오른 용오름이 기어코 우뢰성에 닿았다.
그리고 아주 잠시.
모두가 정지한 것처럼 보인 그때.
크라슈의 검이 대기를 갈랐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사식(四式)
멸화절야(滅火切夜)
흙먼지와 함께 모든 것이 일제히 날아갔다.
이제는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경기장 위.
아르솔더와 크라슈 두 사람만이 서 있었다.
“…….”
경기장 전체에 기다란 침묵이 이어졌다.
소리조차 갈라 버린 듯 모두가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고요한 주위에 모두가 크라슈와 아르솔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아르솔더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거인화가 풀려나간 아르솔더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쿵!
아르솔더가 무너진 그 순간 아이들의 두 눈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무너진 아르솔더의 앞에 크라슈는 검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쉰 크라슈가 아직도 얼빠져 있는 아이들을 돌아 보였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녀석들은 다름 아닌 후에 창공의 세대가 될 녀석들이었다.
두 주먹을 꽉 쥔 글렌 다이아나.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은 표정의 하링 라그렌.
아쉬운 숨을 삼킨 발락 호그마.
그리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는 펠레이까지.
저마다 서로 다른 생각이 뒤엉킨 시선 속.
크라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좀 누가 치료해라.”
1기생 제국의 지방 귀족파와 2기생 사이에 승부가 결정 나는 순간이었다.
＊ ＊ ＊
크라슈가 1기생 아르솔더를 꺾었다는 소식은 한순간에 퍼졌다.
그 소식을 들은 이들은 당연히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르솔더는 무학과 1기생 중에서도 손에 꼽는 강함을 지닌 이였다.
그런 그를 정면 대결에서 꺾었으니 그야말로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웃긴 일이긴 했다.
크라슈는 이미 입학시험에서 무려 부교수이자 해적 여제라 불리던 카이란을 꺾었다.
그것만 감안해도 그의 실력은 이미 애저녁에 증명되었는데.
오히려 1기생을 꺾었다는 사실에 아이들이 더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겪어 본 것을 가장 크게 체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교수 카이란과 맞부딪쳐 본 이는 거의 없었다.
그녀의 버릇 탓에 운 나쁘게 얻어 맞게 된 이들이 있긴 하나 그건 소수.
대부분은 평소에 행실을 바르게 하는 카이란과 부딪쳐본 학생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아르솔더는 강해 보이면 즉시 붙어 보는 미치광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옆에서 수없이 봐오던 아이들은 아르솔더의 실력을 잘 알았다.
그러니 이번 일이 아이들 처지에서는 입학시험 때보다 훨씬 더 크게 체감된 것이다.
그렇게 크라슈의 새 소식이 일파만파 퍼지는 사이.
이번 일로 가장 타격을 받게 된 한 인물이 천천히 인상을 찌푸렸다.
학생단으로서 부여받은 교실 한편.
고급스러워 보이는 책상에 팔꿈치를 기댄 그녀가 보고 받은 종이를 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것은 그녀가 분노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3황녀, 시그린 에파니아.
에파니아 제국의 황녀인 그녀가 이토록 열을 받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르솔더는 다름 아닌 시그린의 소속이었으니까.
“……아르솔더는 어딨죠?”
“……훈련하겠다면서 라헬른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 산으로 갔습니다.”
보고받은 시그린은 천천히 자기 얼굴을 감쌌다.
이 미친놈이 크라슈랑 맞붙어 깨져놓고는, 나 몰라라 하며 수련하러 가버렸다.
시그린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꼈다.
‘이래서 창공의 세대란 것들은.’
시그린이 이를 바드득 갈았다.
자기만의 개성이 너무 강한 창공의 세대들은 분명 같은 세대로 묶여 있음에도 뭉치는 일이 없었다.
오죽하면 아서가 그들이 지닌 저마다 의지를 제 손으로 꺾었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은 다룰 수가 없는 폭탄들이었다.
“하아.”
시그린의 한숨이 이어지자 흑사와 백사가 몸을 움찔거렸다.
“시그린 님, 크라슈 발하임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예, 맡겨 주십시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시그린은 흑사와 백사를 힐끗 보았다.
“……아르솔더까지 꺾은 사람을 상대로 무슨 수로요?”
그녀가 질문하자 둘이 서로를 힐끗 보며 조용히 침묵했다.
그런 둘을 보던 시그린은 자신의 탁자를 검지로 천천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해 아르솔더까지 크라슈에게 꺾인 건 의외였다.
시그린의 머릿속에 크라슈는 여전히 저주받이로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카이란을 쓰러트린 시점에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번 새겨진 이미지라는 건 아무래도 사라지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사실상 압도라고 했지. 아무리 그래도 상상 이상으로 더 강한데.’
시그린이 천천히 자기 턱을 쓸었다.
시그린은 크라슈를 꼬여내어 삼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가능성을 단칼에 끊듯, 비록 지방 귀족이라고는 하나 제국파를 꺾어 버렸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멍청한 판드라가 먼저 상대 쪽에 실수를 범한 일이었다.
이래서는 시그린이 크라슈를 끌어들이고자 접근하면 오히려 제국의 위상이 흔들리게 된다.
시그린이 까득 입술을 깨물었다.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 저주 받이가 거슬리기 그지없었다.
최근 도르마도 시그린이 만든 파에 사실상 얼굴을 비추지 않다시피 하고.
아르솔더는 당분간 무에 취해 온종일 산속을 뛰어다닐 게 분명했다.
벌써 둘이다.
둘이나 되는 창공의 세대 일원이 독단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일까.’
아주 잠시 그녀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시그린의 무력은 지금 아카데미를 다니는 창공의 세대 중 대항할 이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메리와 달리 회귀하고 나서 단 하루도 자신의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그녀의 실력은 지금 그야말로 무르익어 있었다.
지금이라면 크라슈를 죽일 수도 있다.
‘안 돼.’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크라슈는 저주받이 역할로서 꼭 필요했다.
계속해서 변수 덩어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들 그를 죽이는 것보다는 역시 포섭하는 게 더 좋았다.
“시그린 님.”
그러는 순간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시그린이 바깥을 힐끗 보며 들어오라 대답하자 거기에는 시그린의 단 소속 서기가 있었다.
“사자단이 내일쯤 돌아온다고 합니다.”
사자단.
샬롯이 만든 학생 단이었다.
그리고 시그린은 그 학생단에 이번에 누가 함께 갔는지를 떠올렸다.
메리 다이아나.
자신과 함께 회귀한 신창이었다.
메리가 떠오르자 시그린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그래,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패가 하나 있지 않았는가.
그것도 자신의 명이라면 죽음까지 불사할 패가 말이다.
시그린은 메리가 크라슈를 꺾기를 바라고 있다.
메리가 크라슈를 꺾기만 한다면 크라슈가 만든 업적을 메리가 역으로 전부 집어삼킬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니 꼭 메리가 크라슈를 꺾을 필요만은 없었다.
여자에게는 남자를 상대로 쓸 수 있는 한 가지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까.
시그린이 천천히 웃음 지었다.
“마이리.”
서기를 불러들인 시그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수학과 연금술부 소속인 발리안을 좀 불러오세요.”
연금술의 힘을 빌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