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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마력량 S급.

        

       반 배정 평가 결과, 1등.

        

       A 클래스 확정.

        

       무녀 미야의 성적이었다.

       

       

       마력량 D+급.

       

       반 배정 평가 결과, 뒤에서 1등.

       

       D 클래스 확정.

       

       황녀 스노우화이트의 성적이었다.

        

        

       “메를린, 인생이란 참으로 허무한 것….”

       “그 말만 벌써 여섯 번째 듣습니다, 화이트 황녀님.”

        

        

       스노우화이트는 자신이 황금의 세대라고 들었다. 황녀, 성녀, 무녀가 나란히 입학한 데다 평소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신입생들이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그렇다지만… 우수해도 너무 우수한 거 아니냐고.

        

       황녀로서 최고의 인재들에게 엘리트 교육을 받아온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스노우화이트는 실감했다.

        

       성위급 마탑 최고위 마법사가 ‘잘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따위의 칭찬을 입에 달고 살아서 진짜로 자신이 실력이 뛰어난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서글픈 것이었다.

          

       마법학부 수업동 오르핀관, 빈 강의실.

        

       단상 앞. 화이트는 준비해둔 의자에 앉은 채 멀뚱히 앉아 있었고, 그녀 앞에는 빈 의자가 놓여 있었다.

       

       강의실엔 화이트와 뒤에 서 있는 메를린 아스트레앙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저, 정말 한심하죠…? 호기롭게 잘해보겠다고 황제 폐하께 단언해 놓곤, 무녀님하고 첫 단추부터 틀어졌지, 그분과 성녀님보다 실력은 훨씬 뒤떨어지지…. 성녀님은 어디서 뭐 하시는지 말 섞을 기회도 안 나고….”

       “주눅 드실 필요 없습니다. 황녀님껜 선한 인품이 있으니까요. 친해질 기회는 반드시 올 겁니다.”

        

        

       선한 인품. 자신에게 있는 것은 정녕 그것뿐이란 말인가.

        

       화이트는 하, 하고 애잔한 미소를 지었다. 메를린은 어서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나저나, 이제 멘토 올 때가 됐네요.”

       “메를린이 여기 다닐 땐 멘토링 제도는 없었다고 했죠?”

       “네. 올해 처음 도입됐다고 들었습니다.”

        

        

       멘토링 제도.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이번에 새로 도입한 제도였다.

        

       신입생 중 희망자에 한정해서 무작위로 멘토 역할이 되어 줄 선배를 붙여주고, 학기 생활에 필요한 조언과 도움을 얻는 식.

        

       물론 멘토 역할이 되어 줄 선배들 또한 자진해서 사전에 지원해야만 했다.

        

       멘토가 된 학생은 등록금 중 일부에서 장학금 혜택을 받으며, 신입생 멘티의 성적을 크게 향상시킬 수록 추가적인 장학금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시행되는 제도라는 점, 학기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 등 온갖 리스크 탓에 멘토 지원자는 적은 편이었다.

        

        

       “정말 저한테 딱 맞는 분이 계실까요…? 밑바닥에서 높은 수준까지 빠른 속도로 오르신 분…. 그런 조건을 충족하시는 분이. 생각해 보니까 너무 허황된 조건이 아니었나, 싶어요.”

       “봐야 알겠죠. 영 안 맞으면 중간에 멘토링을 포기하면 될 일입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멘티는 자신에게 맞는 멘토를 찾아야 하므로 멘토에 희망 조건을 달 수 있었고.

        

       화이트 또한 어떤 사람이 자기 멘토가 되면 좋을지 희망 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은 ‘저번 학년 동안 성적 증가 폭이 가장 큰 사람’.

        

       메를린처럼 처음부터 천재였고 우수했던 멘토는 화이트에게 필요 없었다.

       

       화이트 자신처럼 처음엔 낮은 성적에서 시작했다가, 점차 빠른 시일 내로 높은 성적까지 오른 사람이 필시 그녀에게 적합한 멘토일 것이었다.

        

       지금 자신은 성적이 몹시 낮다. 그러니 성적을 빠르게 끌어올려 성녀와 무녀에게 조금이나마 돋보일 만한 실력을 갖출 필요가 있으리라. 그녀들과 친해지려면 일단 어깨를 나란히 할 실력부터 돼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조국의 미래와 세계 평화를 위한 방법임이 틀림없으리라.

        

        

       “황녀님, 온 것 같습니다.”

       “네? 어떻게 알아요?”

       “발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전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청력이 얼마나 좋은 거예요, 메를린?”

        

        

       이윽고.

        

       끼이이익, 하고 문이 열리며 한 남학생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

       

       

       고요. 화이트는 숨을 죽이고,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선배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교복 차림. 넥타이에는 2학년을 상징하는 파란색 보석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청은색 머리칼은 반곱슬이었고, 눈동자는 칙칙한 색감의 적안이었다.

       

       알이 크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어서 마치 모범생처럼 보였다.

        

       성격이 보드라울 것 같은 인상. 나름 외모가 반반한 선배였다.

        

        

       “당신은…?”

       “존귀하신 황녀님을 뵙습니다.”

        

        

       그는 화이트 앞에서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고 다소곳이 상체를 숙였다.

       

       화이트는 멀뚱히, 메를린은 관찰하듯 그를 쳐다보았다.

        

        

       “이번에 멘토로 발탁된 아이작입니다. 한 학기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청은발의 남학생, 아이작은 마치 영업이라도 하듯 자연스레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했다.

        

       그가 이르길, 자본주의 미소였다.

        

        

       

        

       * * *

       

       

       

       

       계획대로였다.

        

       스노우화이트. 나는 대충 하찮은 황녀라고 부른다.

        

       그녀는 2학년 2학기 에피소드의 주역이며, 그녀가 죽으면 배드 엔딩은 기정사실.

        

       그러니 그녀와 미리 친해져서 경계심을 풀고 가까운 사이가 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내가 그녀를 지킬 수 있을 테니.

        

       화이트와 가까운 사이가 되기 위한 방법은 내가 떠올리기로 세 가지가 있었고, 나는 그 모든 방법을 전부 실행할 생각이었다.

       

       일단 그 첫 번째.

        

        

       ‘멘토링 제도.’

        

        

       <메르헨의 마법 기사> 시나리오에서 멘토링 제도는 필수로 거쳐야 할 코스였고.

        

       본래는 이안 페어리테일이 황녀 화이트의 멘토로 발탁되어야만 했다. ‘성적 성장 폭이 가장 큰 학생’은 누구냐, 하면 결국엔 주인공이었으니까.

        

       화이트는 히로인이 아닌 조연이었기에 2학년 1학기 파트에서 스토리상 비중은 거의 없었지만.

        

       이안과 친분을 쌓은 덕분에 2학년 2학기에서 그가 활약할 토대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이안이 화이트를 지켜줄 리는 만무하지.

       

       게다가.

        

        

       ‘여기서 성장 폭은 내가 더 커.’

        

        

       이 세계엔 내가 있다.

       

       내 동기 중에서 가장 성장 폭이 큰 학생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누구든지 단연 ‘아이작’을 꼽을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멘토링 제도에 지원하면 화이트의 멘토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것.

        

       순백의 머리칼을 지닌 하얀 소녀, 화이트 뒤에서 담녹색 포니테일 머리의 메를린 아스트레앙이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매와 같은 눈빛이 나를 세차게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내 미소에 빈틈이란 게 존재하겠는가. 내 특기도 원하는 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연기 계열이다. 나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유지하며 화이트와 메를린의 경계심이 풀리길 기다렸다.

        

       참고로 메를린은 카야 아스트레앙의 언니이자 호감 조연이었다. 그리고, 내가 화이트에 이어 가장 깊은 접점을 만들고 싶은 인물이기도 했다.

        

       바위 속성 전설 무기, 암철검 때문에.

        

       암철검의 스킬을 발동하려면 자세가 중요하다. 검술 천재인 메를린은 필시 좋은 스승이 될 터. 화이트와 친해지면 메를린에게도 여러모로 신세질 수 있으리라. 그런 계산이었다.

       

       

       “아, 아이작 선배님! 여긴 아카데미잖아요, 선후배 사이…! 그렇게까지 예를 표하진 마세요!”

        

       

       내 인사에 화이트는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곤 곤란한 듯 두 손을 마구 휘저었다.

       

       역시 차기 황권을 두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에서 동떨어진 소녀 다운 언행이었다.

        

        

       “이, 일단, 반가워요! 이미 아실 거로 생각하지만 스노우화이트 폰 카이로스 에펠토예요. 편하게 화이트라고 불러 주세요.”

       “네, 화이트 황녀님.”

       “그나저나 아이작 선배님. 실례지만, 혹시 저번 학기 성장 폭이 어떻게 되시는지…?”

       

       

       양손을 입가 주위로 모아 소곤소곤 묻는 화이트.

        

       역시, 그 질문부터 나올 줄 알았다.

        

        

       “D 클래스 꼴찌로 시작했고, 현재는 B 클래스입니다. 거기선 1등이고요.”

       “적합!!”

        

        

       마법학부 1학년 D 클래스 꼴찌 화이트는 극적으로 환호했다.

       

       마치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빛이라도 발견한 사람 같았다.

        

        

        

       ……

        

        

        

       나와 화이트, 메를린은 교정을 가로질렀다.

        

       화이트는 제르베르 황국의 황녀.

        

       최근엔 본래의 시나리오대로 무녀에게 식판을 엎은 장본인이기까지 해서, 학생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사로잡는다.

        

       사람들의 시선은 단련에 방해가 되지. 그래서 눈에 안 띄는 곳에서 단련하려는 것이었다.

       

       왜 그녀를 단련시키느냐? 많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멘토라는 입장이라 화이트의 성장을 책임져야 하고, 어차피 화이트는 배드 엔딩을 막기 위해 강해져야 하고.

       

       화이트가 열심히 발산하는 마력은 곁에서 쐬면 이득이 되니까.

        

        

       “D 클래스 꼴찌에서 B 클래스 1등…!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화이트는 내내 흥분한 얼굴이었다. 자신이 D 클래스 꼴찌인 탓에 크게 감정을 이입한 듯 보였다.

        

       참고로 클래스는 최대 마력량과 반 배정 평가 점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정해진다. 절대적인 측정표가 있다.

        

       나와 A 클래스 5등이었던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은 실력 차가 별로 나지 않았으나.

        

       그녀가 최대 마력량이 좀 더 높은 탓에 나는 B 클래스 앞잡이로 등극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아이작도 A 클래스 학생과 엇비슷한 수준의 실력이 있다’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내 위치인 셈.

        

       어쨌든, 나는 부끄러운 척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열심히 하다 보니까 되더라고요. 화이트 황녀님은 저 같은 평민보다 훨씬 잘하시겠죠.”

       “크으, 겸손! 그래요, 전 이런 사람을 원했다고요!”

        

        

       화이트는 의욕이 불타는 모양이었다. 웃으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서 당신의 코칭을 받고 싶어요’라고 하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말은 멘토링 제도지만 사실상 스승과 제자 관계가 될 터. 화이트는 조언만 받아선 뭘 할 수 있는 지경이 아닐 테니까.

       

       헬스장 PT처럼 내가 그녀에게 제대로 된 단련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으리라.

        

       그렇다고 해도, 전술했듯 오로지 내가 화이트에게만 퍼주는 관계는 아니었다. 적당히 내 단련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절할 셈이었고, 나도 그녀에게서 여러모로 거둬갈 수 있는 게 있을 테니까.

       

       기브 앤 테이크지.

        

        

       “그리고 선배, 말 놓으셔도 돼요. 여긴 아카데미잖아요. 여기서 그렇게 존대하시면 오히려 제 쪽이 불편해요….”

       “아, 그럼…. 그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전에 빠른 속도로 말을 놓았다.

        

       화이트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히죽거렸다. 내가 자신을 높은 경지에까지 이끌어 줄 수 있는 동아줄처럼 보이는 모양.

       

       뭐, 사실이지. 그 만큼 빡세게 굴려주겠지만.

        

       우리는 수국 정원 깊숙이 들어가 외진 길로 들어섰고, 이윽고 수국 정원 구석에 도착했다. 주위엔 작은 호수가 있었다.

        

       내가 애용하는 나비 정원 구석보다 면적이 좁은 편이지만, 이 정도면 널널한 편이었다.

        

        

       “여긴?”

       “수국 정원 구석. 여기 아는 사람 나 포함해서 극소수일 걸. 여기면 조용히 단련할 수 있을 거야.”

       “메를린, 여기 와본 적 있으세요?”

       “아뇨, 이런 덴 와볼 일이 좀처럼 없었으니까요.”

        

        

       그렇겠지. 메르헨 아카데미는 넓은 만큼 비밀 스폿이 많으니까.

       

       하물며 땅 덩어리도 굉장히 커서 졸업할 때까지 안 가본 곳이 더 많은 학생이 대다수일 것이었다.

        

        

       “화이트.”

       “네, 아이작 선배.”

       “앞으로 하루에 2시간 정도씩만 굴릴 거야. 전부 네 발전을 위해서. 그 정도면 버틸 수 있지?”

       “훗, 2시간이야 거뜬하죠!”

       

       

       화이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호기롭게 단언했다. 

        

       그리고 20분 뒤.

        

        

       “허어억…!”

       “황녀님!”

        

        

       화이트는 탈진해 땅바닥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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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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