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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138. 후회성녀는 시간을 달린다(1)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아까의 30사단 사유재산화도 충분히 경악스러웠는데. 

       

       난데없는 기습 숭배.

       사단 다섯에 연구부 총괄이라는 비상식적 제안.

       심지어 그 개소리를 받아들이는 2황자까지.

       

       참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으니까.

       저놈들이 단체로 철 지난 만우절 농담이라도 하는 것인지 진심으로 의심될 수준.

       

       하지만 이런 괴상한 일을 겪은 것은 한두번 일이 아니였기에. 나는 이내 머리를 차게 식히고 다시금 상황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판단했다.

       2황자의 의도와 나의 이해는 조금 엇갈려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만난지 이틀도 안 된 놈한테 사적인 군대를 선물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어째 괴상할 정도로 헛다리만 짚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단은 일국의 황자. 나름대로 능력도 있고 수완도 뛰어난 엘리트다. 

       

       30사단만 해도 인원수가 대체 몇 명이던가.

       그들 전부에게 마나의 맹세를 강요한다는 건 정상적이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까의 그, 나에게 절대 복종하라는 마나의 맹세 이야기는 주동자와 책임자. 저 여덟 기사와 사단장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그냥 통솔권을 주는 것도 아니고 절대복종이라니.

       

       그러면 내가 제국을 배신하고 전쟁을 선포해도 30사단은 울며 겨자먹기로 내 명령에 따라야 하는데. 

       

       그 정도의 권력을 이리 쉽게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역시 내가 좀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럴 게 분명한데….

       

       발소리가 들린다.

       군기가 바싹 든, 아주 규칙적인 발소리가.

       

       거대한 진동. 저 멀리서 수백의 거대한 군세가 나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사단장은 나름대로 상황을 설명하였고….

       

       수천의 군인들이 나를 향한 절대적인 충성을 마나에 걸고 맹세한다. 도대체가 믿기지 않는 상황. 

       

       허나 괴상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통신으로 내려진 소집령. 

       제국군의 거물들이 렌야의 명에 따라 다급히 발걸음을 옮겨 나에게로 찾아왔다.

       

       전작에서 본 적 있는 인물도 끼어 있을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인선. 그런 이들이 지금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30사단은 죄를 지었으니 억지로라도 마나의 맹세를 강요했지만. 다른 모든 부대에게까지 강제로 그런 폭거를 저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렌야는 그리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야겠지.”

       

       나는 앞으로 이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관리감독해야 하는 상황.

       

       비리가 드러나는 걸 막으려는 놈들이 나를 향해 보복을 벌이는 일이 없도록, 나를 해치지 못하게 개별적인 맹세는 받아놓아야 한다.

       

       그런 명목으로 수장들에게는 맹세를 받았다.

       이제 그들은 나에게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피해를 줄 수 없다.

       

       제국군의 1할.

       그걸 지금 말 몇 마디로 무력화시킨 것이다.

       

       심지어 일부는 완전탈취하기까지 했고.

       

       거기에다가 저들을 총괄하는 위치에 서면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와 전략, 빼낼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하면…. 이득도 이런 이득이 따로 없었다.

       

       나에게 너무나도 형편 좋은 이야기.

       

       1황자의 암살.

       그게 나에게는 어차피 처치곤란 상태였던 놈을 보낼 기회였지만. 렌야는 내가 목숨을 걸고 암살을 성공시켰을 거라 여겼을 거라든지.

       

       내 재능. 이 나이에 도달한 성취를 생각하면….

       

       제국 역사를 뒤집어놓을 희대의 천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편으로 만들어놓아야 할 인재라고 여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라든지.

       

       저런 행동을 한 이유를 어찌저찌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얼떨떨한 건 변함이 없었기에.

       

       나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렌야를 바라보았다.

       

       나야 좋기는 한데, 진심이냐고.

       막 질러놓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는 눈빛을 보내면서 말이다.

       

       그 사단장이 뜬금없이 괴상한 제안을 꺼냈을 때. 당황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으니까 한 이야기.

       

       허나 렌야의 반응은 태연했다.

       

       “약속을 했으니 지켰을 뿐이다. 전에 말했지 않았던가. 너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보호해주겠다고.”

       

       그리 이야기하며 렌야는 호탕하게 웃었다.

       거짓 하나 엿보이지 않는 미소. 아마 진심으로 저리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예상 외의 일이 벌어졌긴 하지만.

       이 정도야 상관없다고. 너도 나를 위해 약속을 지켜주었으니, 나 또한 그리 행동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냐고 여기는 것이다.

       

       참으로 대범하기 그지없는 행보였다.

       보여지는 남다른 배포. 황족이 괜히 황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위풍당당한 모습이였으니까.

       

       단 한 가지.

       나는 곧 황제와 적대할 테러리스트이며, 이 새끼는 하필이면 자기 적에게 관대함과 포용을 보였다는 사소한 문제점이 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내 미소를 보고 신뢰를 얻었다 판단한 렌야도 기쁘고, 제국 군대와 그 기술을 날로 먹은 나도 행복하니.

       

       사소한 문제 정도야 가볍게 넘기도록 하자.

       

       *****

       

       제국 황실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떠들썩했다.

       

       정세는 마구잡이로 바꾸어져 가고.

       그에 따라 비밀 서신들이 이리저리 오간다.

       

       기회주의자들은 눈을 빛내었으며, 그와 반대로 보신과 현상유지를 원하던 권력자들은 늘어나는 고민에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헌데 놀라운 점이 있다면….

       사실상 이 모든 혼란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는 거다.

       

       성년에 이르기까지 2년이나 남은 소년.

       그러면서도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음이 밝혀진 규격외의 천재.

       

       하루만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고, 모두를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도달하였으며. 심지어 2황자님의 보호까지 받고 있는 존재.

       

       항간의 소문으로는… 2황자님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도는, 그야말로 화제와 사건에 중심에 서 있는 인간.

       

       시온.

       다시 말해서… 나다.

       

       ‘루비아 씨가 기겁하시는 모습이 눈에 훤하네….’

       

       잠입이란 원래 조용히 이루어져야 하는 법인데.

       

       2황자의 사생아라든지, 2황자님이 몰래 개발한 살상병기인데 사생아는 그것을 감추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라든지.

       

       그야말로 온갖 소문이란 소문이 다 나돌고 있었다. 아마 시온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국에 한 명도 없으리라.

       

       제국 측에서도 검은 송곳니교의 확산이라든지, 여론의 악화 같은 걸 신경쓰는 건지. 간만의 호재에 신이 나가지고….

       

       하늘이 제국을 위해 내린 인재!

       악독한 검은 송곳니를 무찌를 천재 기사!

       

       같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기분이었지만 말이다.

       

       내 신상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상황.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상황은 생각보다 더 좋은 편이였다.

       

       떠오르는 태양에 합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는 법. 나와 인맥을 쌓고자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내가 ‘물’ 한 마디 꺼내면 두 손으로 공손히 물을 따르는 걸 넘어서, 네 발로 개처럼 달려서 대수림의 약수터까지 왕복할 기세였으니.

       

       그런 인간을 잘 구워삶는 건 간단했다.

       

       이런저런 정보를 캐내는 건 물론이고. 

       있지도 않은 라인에 들여보내준다며, 교묘한 마나의 맹세로 나중에 있을 전쟁에 이쪽 편을 들도록 꾸민다든지.

       

       나름 쏠쏠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지.’

       

       비밀 연구시설.

       원칙적으로 나의 출입이 불가능한 장소.

       

       나는 그곳을 당당히 활보했다.

       원래라면 진작에 제지당해 처벌까지 당했겠지만. 나를 잡으러 오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내 모습을 보고도 못 본척 시선을 피하는 것이다.

       

       그 이유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차기 황제로 가장 유력한 인간. 그런 인간의 아들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게 지금의 나니까.

       

       -추잡한 사생활을 의심받는 건 확실히 불쾌하긴 하지만…. 네 정체를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확실히 이쪽이 형편이 좋겠군.

       

       심지어 본인에게 허락까지 받았다.

       사실상 공인 태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

       

       그런 인간에게 원칙을 들먹이며 꼽을 줄 수 있는 놈이 있다면 오히려 그 쪽이 더 신기하리라.

       

       그런 고로, 내가 어디를 돌아다녀도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율리를 찾아나서는 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

       

       ‘어째 운빨이 좀 안 따라주긴 했지만….’

       

       율리는 높은 확률로 이곳에 있다.

       아직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계속해 진행하다 보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겠지.

       

       그리고… 여기에 있을 게 분명한 건 율리뿐만이 아니다. 용사의 시체. 그것도 분명 여기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리라.

       

       분명 그때 그 영상.

       성검의 파편에 새겨져 있던 기억에서, 용사의 시체는 빛의 신을 속박시키는 데 사용되었다고 했다.

       

       만약 상태창이 맛이 간 게 그것 때문이라면.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개판이 났는데도 빛의 신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한게 그런 이유 때문였다면….

       

       그 속박을 끊어냈을 때, 아주 든든한 지원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겸사겸사 그 폐급 상태창도 AS를 좀 받고.

       

       ‘뭐, 아직 둘 다 어디 있는지 감도 안 잡히지만 말이야.’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국 차근차근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작스레 전해져 오는 감촉.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벌어질 일은 명백했고….

       나와 부딪힌 소녀는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다른 생각을 하다 정신이 팔려 벌어진 일.

       나는 곧바로 그녀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우며 사과를 건넸다. …아니, 건네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 말문이 막힌다.

       

       찬란한 금빛의 머리칼.

       짙은 푸른색의 눈동자. 

       

       다시 말해 황가의 상징이지만.

       지금 나의 눈동자에는 그런 것 따위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10년이 지나 더 성숙해졌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특징들.

       

       ‘……율리?’

       

       내가 그토록 열심히 찾고 있던 소녀가 지금 나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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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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