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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깊숙한 숲 속의 어느 지점, 숲지기들이 포인트로 자주 삼는 커다란 느티나무에 기댄 한 인영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 보이는 그 모습은 마치 은밀한 거래를 준비하는 뒷골목의 상인처럼 보였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에 그녀는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올리며 주변을 살피고는 묻는다.

     

    “준비한 물건은?”

     

    한껏 내리깐 음성이지만, 결코 무게감은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목소리의 주인은 무려 소르비였다.

     

    꽤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곤 있지만 역시 변성기가 잘못 온 것 같은 말괄량이 같은 목소리는 변하질 않았다.

    그리고 그 꼴값을 받아주고 있는 인물은 또 다름아닌 다프네였다.

     

    “……진짜 이거 하나 얻자고 그러기야?”

    “싫으면 관두세요. 전 전혀 아쉬울 게 없답니다.”

    “아, 아니. 싫다는 건 아니고…….”

     

    다프네는 황급히 소르비를 붙잡았다.

    그렇다, 지금 급한 것은 자신이 아니던가, 하필이면 그 순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버리는 바람에…….

     

    본래 다프네는 그다지 육체노동에 소질이 없었다.

    애초에 일선에 서는 숲지기도 아니고 그냥 사무직이다.

    가끔 길잡이로 예르나의 보조를 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고서의 작성이나 순찰의 보조역할.

    자신은 숲에서 오래 있었을 뿐이지 딱히 다른 숲지기들처럼 유사 초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화단을 고치고 앓아 눕듯이 잠들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좋아요, 물건은 확실하군요!”

    “…….”

     

    소르비는 다프네가 꺼낸 약병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비비든’의 미용포션.

    과거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한 연금술에 평생을 바친 ‘비비든’이라는 마녀에게서 이름을 따온 화장품 브랜드였다.

    마녀의 이름을 딴 만큼, ‘비비든’에서 만든 화장품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마법효과를 지닌 미용포션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확실하다는 ‘오아시스 드림’시리즈.

     

    꾸준히 복용만 한다면 피부미백에, 주름개선에, 트러블 방지에…… 아무튼 좋은 건 죄다 때려박았다는 전설과도 같은 미용포션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 화장품만 있다면 몇 살은 더 어려 보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많은 사용후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살짝 과장해서 거의 성형수준이라고 할 정도.

     

    하지만 효과가 지나치게 탁월한만큼 그것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았다.

    만들어지는 족족 1분도 안되어 전판 매진을 해버린다는데, 물량은 언제나 부족하다.

    거기엔 물론 그만한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이겠지.

     

    사실, 소르비는 다프네가 이 화장품을 손에 넣었다고 한 그 순간부터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다.

    동생에게 선물로 받았다는데, 왜 자신에겐 그런 걸 선물로 주는 동생이 없는 건지.

    그리고, 그런 귀한 걸 받아놓고 어떻게 한번도 안 쓸 수가 있는지.

     

    만약 ‘오아시스 드림’이 눈이 있었다면 울 거다, 진짜로.

    그래, 사실 소르비의 ‘아쉬울 거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좋아요. 그럼 바로 거래하죠!”

    “……잠깐, 내 물건도 확인하게 해줘.”

    “물론이죠, 후. 후. 후.”

     

    소르비는 마치 사악한 암상인처럼 낮게 웃으며 눈가를 초승달모양으로 휘었다.

    정말 어지간히 자신의 역할에 몰입했나보다.

    혹시 최근에 느와르 영화를 본 걸까.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다.

     

    소르비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꺼내든 물건은 바로…….

     

    루크가 머리에 화관을 쓰고 밤의 숲을 돌아다니는 사진이었다.

     

    “물건은 확실하답니다? 정말 귀엽지 않나요?”

     

    “하아……. 정말이네. “

     

    그래, 이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달빛을 받으며 밤산책을 하는, 반딧불이에 둘러싸인 루크의 모습은 어린 여신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밤이라 조명이 그다지 좋지 않았을 텐데, 반딧불이가 있는 곳을 찾아 근처 호숫가를 찾았는지 호숫가에 비친 달빛도 굉장히 분위기가 있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찍은거야?”

     

    다프네는 루크가 소르비의 카메라 앞에서 더 이상 이렇게 웃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루크는 소르비한테 유감을 참 많이 가진 것 같아 보였으니까.

    그래서 다프네는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소르비는 다프네의 물음에 다시한번 악덕상인을 흉내내듯 긁어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숫가에 앉아서 예르나 언니랑 얘기하는 걸 전문적인 마법카메라로 찍었습지요! 어떤가요? 손님의 마음에 드시는지?”

     

    확실히, 너무 선명해서 휴대폰으로 찍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더라니.

     

    “……그러게. 아주 선명하게 잘 찍혔어.”

     

    “자그마치 100배 줌이라고요.”

     

    그리 말하며, 소르비는 씨익 웃었다.

    루크가 요즘 감이 너무 좋아져서, 몰래 찍으려고 하면 아예 얼굴을 가려버려서 도통 찍을 수 없길래 출혈을 좀 했다.

    망원경을 방불케하는 배율, 거기다 아무리 운동을 싫어하더라도 결국 숲지기인 소르비다.

    루크의 감각은 멀리 떨어져 나무 위에 숨죽인 소르비를 감지하지 못하였다.

     

    ‘옛날엔 아예 찍으라고 포즈까지 취해주곤 했는데, 참. 어렵단 말이지.’

     

    이제는 아주 ‘검은 수리’길드의 단원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해야 한 장을 찍을 수 있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미리 왕창 찍어 둘 걸 그랬다.

     

    “…….”

     

    그리고 다프네는 그저, 나날히 발전해 나갈 소르비의 파파라치 기술에 살짝 몸을 떨었다.

     

    탓 할 수는 없다.

    지금 사진을 사는 자신도 어찌보면 똑 같은 사람이니까.

    이건 아무래도 루크가 귀여운 게 잘못이 아닐까.

     

    —–

     

    창문의 커튼 너머로 훌쩍 비추는 아침의 햇살이, 정령절 장식품처럼 문에 걸어 둔 화관을 비춘다.

     

    어제 만들어져 생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화관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것은 역시 보존의 마법을 걸어 둔 상태여서일까.

     

    반면, 예르나의 왼손 약지에 끼워졌던 꽃반지는 벌써 시들해졌다.

    인챈트된 마법으로 생명력이 소모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예르나는 그저 아쉬워했다.

    이렇게 빨리 시들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모양이다.

     

    “하아암…….”

     

    루크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부스스한 몸짓으로 기지개를 켰다.

    아무래도 매번 정자세로만 자야 하다보니 어딘가 결리는 느낌이다.

     

    뭐, 실제론 결리는 게 아니겠지만 심리적으로 그렇다고 할까.

     

    아무튼, 본능에 따라 엎드린 자세로 팔을 쭉 벌리고 허리를 집어넣고 엉덩이를 꼬리까지 일자로 쭉 펼쳐서 당기는, 지극히 고양이스러운 자세로 몸을 풀고 나면 비로소 몸이 자유로운 느낌이 된다.

     

    어찌나 상쾌한 기분인지.

     

    ‘자, 그럼 오랜만에 명상을 시작해볼까.’

     

    그동안 마력의 흡수를 극도로 자제해왔던 루크였기에, 루크숲의 충만한 마력은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과 같은 숲이라니. 특별한 기분도 들지 않는가?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다.

     

    ‘처음 눈을 뜬 장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루크 이루시’와 관련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색’에서 말하길, 루크 숲의 이름의 유래는 실제로 자신의 이름. 즉, ‘루크 이루시’에서 따온 것이 맞았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얽혀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대충 ‘루크 이루시’가 마지막으로 물질계에서 자취를 감춘 숲이기에, 루크 이루시의 이름을 따왔다는 모양이다.

     

    ‘루크 이루시’의 최후라…….

     

    확실히, 최후엔 이름없는 숲 속을 스스로 들어가기는 했다만.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는 도통 떠오르지 않는 것이 조금은 답답하다.

    기억을 온전히 전해받지 못 한건지, 아니면 지워진 건지. 만약 지웠다면, 누가, 왜 그랬는지.

     

    만약 자신에게 개입이 있었다고 하면 용의자는 단 둘이다.

     

    신, 또는 레니에 아린세이아.

     

     

    따지고보면 둘이 아니라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신과 그 성녀인 레니에는 마법적으로는, 또는 신학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셈이니까.

    차이점이라면 어느 쪽이 물질계에 존재하고 있느냐의 차이…….

     

    툭, 툭, 툭.

     

    “응?”

     

    문득 명상과 생각을 멈추게 하는 소음에 루크는 눈을 뜨고 소리가 들려오는 창문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형상, 루크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아아. 파이, 그대로군!”

     

    -나 왔어, 에레! 또 반딧불이로 불렀지?

     

    “그동안 어딜 갔었던 겐가. 걱정했잖나.”

     

    -많이 놀았어! 재미있었다! 음……. 아무튼, 많았어!

     

    파이는 한동안 들뜬 소음을 내며 몸을 흔들었다.

    뭘 하고 놀았는지 설명하고 싶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감정을 쌓아온 탓일까, 루크의 정령어가 일정 이상의 성취를 이루기는 했어도, 파이의 몇이나 섞인 지조차 모를 감정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래. 그대의 모험 이야기는 천천히 듣도록 하지. 얼른 들어오게.”

     

    루크가 창문을 열자마자 날아들어오는 파이를 향해, 루크가 말한다.

     

    “파이, 어딜 갔다 오면 하는 말이 있지 않나?”

     

    -‘잘 다녀왔습니다!’

     

    파이가 내보낸 말은 또렷한 인간의 언어.

    가르친 보람이 있었다.

     

    “정말 잘 했네, 어서오게, 파이.”

     

    -응! 에레!

     

    “……또 날 그렇게 부르는 군. 대체 ‘에레’가 뭔가?”

     

    파이는 잠깐 멈춰서 루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바퀴 몸을 회전하며 말했다.

     

    -에레는, 에레야!

     

    “또 그런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는 게냐…….”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

     

    밀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소르비와 다프네는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한곳에 있다가 바람에 흩어진건지, 부자연스럽게 다양한 인위적으로 찢어버린 듯 한 꽃잎들.

    누가봐도 특이하다고 생각할 그런 흔적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흔적 주변에 남은 ‘발자국’ 들이다.

     

    비가 내린 후의 흙은 질척해서 발자국이 쉽게 남는다.

    그래서인지 발자국의 모양은 아주 선명했다.

    그리고, 흙에 찍힌 발자국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경쾌하게 찍어 놓은 것 같은 발도장이다.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이건…….”

     

    다프네는 살짝 허리를 숙여서 처참하게 뜯겨진 꽃잎을 들어올렸다.

    흩어진 꽃잎들은 다들 어쩐지 익숙한 생김새다.

    그도 그럴게…….

     

    “루크가 화단에서 기르던 마력초들인 것 같네.”

     

    소르비는 증거를 남기려는 듯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다프네는 그 모습에 살짝 놀란다.

     

    ‘소르비가 원래 이렇게 꼼꼼한 성격이 아닌데…….’

     

    이왕 산 김에 찍을 만한 모든 것을 찍어 둔다는 생각인 것 같다.

    아마 그렇겠지.

     

    확실히, 이 순간에는 사진이 필요하기는 했다.

     

    다프네는 다시 현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런 숲을 신발도 없이 맨발로 다닌다니,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지만 심지어 발의 크기로 보면 어린아이다.

    아마도, 루크랑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 아이.

     

    “……루크가 맨발로 돌아다녔나?”

    “설마요.”

     

    루크가 장화를 벗은 건 보지 못했다.

    아마, 일부러 장화를 벗고 맨발로 흙바닥을 밟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화신고 진흙위를 걸어 다니는 걸 되게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아무래도, 이거 따라가봐야겠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루를 쉬었으니 삽화에 좀 더 힘을 써봤습니다!!

    파이가 돌아왔어요! 반딧불이 성능 확실하구만.

    ps. 고양이자세 루크는 공지에 올라가있는 것을 참고해주세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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