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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내의원 월광궁 구역 수술 준비실에는 무겁게 긴장이 가라앉았다.

     

    마취팀이 먼저 안에서 사전준비에 들어갔다. 아셀라가 깨지 않도록 곤히 보내는 중이다. 이후 수술 내내 순환계를 담당한다.

     

    “켈록, 켈록.”

     

    소독하던 도중 클로에가 마스크를 쓴 채 기침했다. 언제 맡아도 구리긴 해.

     

    그 외에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다.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수술복으로 환복을 마친다.

     

    오늘 클로에는 간호사가 아닌 수석 보조의다. 그녀도 내 옆에서 수술복을 입었다.

     

    녹색 수술복은 시야에 부담을 주는 느낌이라 얼마 전에 연한 파란 색으로 바꾼 참이다.

     

    수술모와 마스크 착용을 완료한다. 내 손에 장갑이 씌워졌다.

     

    고산지 슬라임의 잔해를 변형하고 굳혀 만들었다. 라텍스와 거의 비슷한 재질이고 얇게 변형되어서 훌륭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조용하네.

     

    다들 너무 긴장했는데.

     

    실패하면 큰 책임이 따르는 황족 수술이기도 하고, 황제 때도 사고가 있었으니 겁을 먹을 만은 하지.

     

    월광궁은 황족에 옥체를 두 번 다뤄봤지만 이 자리가 처음인 멤버도 있다.

     

    내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휴고, 석 달이나 출장을 다녀왔으니 한참 기다렸겠어.”

     

    “아, 에리라면 어제 보고 왔습니다.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에이, 모른 척하지 말고.”

     

    “예?”

     

    “꽃집 아가씨 말이야. 에리보다 더 기다렸던 눈치던데.”

     

    “흠, 설마요.”

     

    “사무실에 모르는 사람 없지? 클로에.”

     

    내가 이야기를 토스하니 클로에가 굉장히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없죠, 없죠오.”

     

    “…으음.”

     

    휴고가 멋쩍게 어깨를 으쓱였다. 마취의가 부럽다며 가지를 쳐달라고 했다.

     

    한층 가벼워진 어깨를 피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역시 곤히 누워있는 아셀라였다.

     

    뭐, 필요한 부위 말고는 전부 덮어놔서 보이진 않았지만.

     

    팀원들 각자 자리에 서서 역할을 준비한다.

     

    마취의들은 순환계를 체크해 아셀라의 용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

     

    장비 담당이 복강경 장비에 문제가 없는지 마지막으로 체크하고, 간호사들은 내가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순서에 맞춰 늘어놓는다.

     

    영상의가 수정구 화면을 하얀 벽에 비추었다. 상태창을 열어 MRI를 발동한다.

     

    환자의 내부가 수정구에 찍혀 나온다. 직접 보는 게 아니라서 평면을 보고 머릿속에서 입체로 그려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다.

     

    ‘자기장의 영향은…’

     

    오히려 아날로그 장비만 있는 게 도움이 됐다. 내 스킬이 발생시키는 자력은 미세해서 수술 장비에조차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클로에, 시야는 충분해?”

     

    클로에가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평소의 어버버한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동공이 생기에 차서 반짝거렸다.

     

    “충분해요.”

     

    확신을 가지고 대답해주니 나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스탠바이.”

     

    모든 멤버와 한 번씩 눈을 마주친다.

     

    전원 준비가 끝난 걸 확인하고 오른손을 간호사를 향해 내밀었다.

     

    “수술을 시작한다. 15번 블레이드.”

     

     

    [수술(기본)B가 발동합니다]

     

     

    손에 쥐어지는 가벼운 미스릴제 메스.

    작은 구멍을 내기 위한 칼날이다.

     

    마치 손끝과 일체화한 듯, 가야 할 자리로 순식간에 이동한다.

     

    ‘필요한 구멍은 넷.’

     

    가장 큰 배꼽 구멍으로는 주 장비가 들어가 들어간다. 배를 부풀릴 때 쓰고 본래는 카메라가 들어가야 할 자리다.

     

    기본적으로는 일반 수술과 같다. 내 왼손은 겸자를 잡고, 오른손은 메스를 쥔다.

     

    작은 구멍에 실린더를 미리 장치하고 사이로 긴 총 모양의 기구를 넣어 배 안에서 작업하는 부분만 다르다.

     

    나머지 한 구멍으로는 클로에의 겸자가 들어가 수술 내내 내가 자를 각도가 나오도록 쓸개를 잡아 들어 올린다.

     

    ‘주사는 무서워해도 칼은 안 무서워하는 아셀라니까.’

     

    이 정도 상처는 별 것 아닌 정도로 무시하고 넘어가 주겠지.

     

    그녀의 반응을 생각하며 배꼽에 첫 번째 구멍을 낸다.

     

    주륵, 흘러나오는 얕은 피를 간호사가 석션해 처리한다.

     

    명치부터 옆구리까지 총 세 개.

     

    실린더를 꽂는다. 인체는 탄력성이 있기에 지름 1cm이 안 되는 작은 구멍에도 더 큰 실린더가 장착된다.

     

    “가압.”

     

    공기를 넣어 배 안에 공간을 만든다.

     

    다음으로 내 손에 복강경 장비가 주어졌다.

     

    왼손에는 클린치. 섬세하게 조직을 잡기 위한 장비다. 오른손에는 결찰기다. 끝에 자그마한 클립이 달려있어 혈관 등을 묶는 데 사용한다.

     

    클로에도 견인기를 들었다.

     

    우리는 화면에 집중했다.

    보다 직관적으로 내부의 상태가 드러났다.

    간 아래에 붙어있는 쓸개, 오른쪽은 위다.

     

    “삽입한다.”

     

    실린더에 조심히 장비를 집어넣는다.

     

    “담낭 견인.”

     

    클로에가 화면에 집중했다. 기구 끝의 감각을 느끼는 모습이다. 간 아래를 들추며 담낭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 상태로 팔을 고정하고 내 움직임에 맞추어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클로에.

     

    그리고 나는 들춰진 담낭의 반대편, 간과 이어지는 쓸개관을 찾았다.

     

     

    [수술(복강경) C가 발동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마술이 일어났다.

     

    온 신경이 집중된다. 마치 장비가 신체가 된 듯 내 감각이 살아있다고 느껴졌다.

     

    ‘이건…’

     

    손끝으로 직접 내부를 만지는 것 같다.

    힘찬 혈류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쪽이 동맥, 아래가 담낭관이야.’

     

    쓸개는 두 개의 관으로 몸과 연결된 구조다.

     

    MRI로는 한계가 있어 섬세한 작업인 혈관 결찰은 애를 먹겠다고 예상했었다.

     

    찰칵, 고민한 시간에 예의도 없이 순식간에 동맥을 클립으로 묶어낸다.

     

    힘차게 장비를 빼내고 다음 클립을 세팅한다. 이어 1회 더 묶고 담낭관에도 같은 처치를 실시했다.

     

    “교환.”

     

    다음 장비로 전환한다.

     

    오른손에는 시저가 들어왔다.

    말 그대로 가위다. 날에는 마석을 이용해 고열을 내는 기능도 있다. 조직을 자르는 즉시 절단면을 지져서 출혈을 막는다.

     

    실린더를 통해 삽입.

     

    클립으로 묶은 관의 사이를 톡, 절단한다.

     

    약간의 혈액이 흘러나왔다. 이 정도는 문제없다. 체내에 흡수될 양이다.

     

    ‘오히려 간에서 떼어낼 때 출혈량이 걱정이야.’

     

    그때 피가 많이 나서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다 판단될 경우, 쓸개를 전부 절단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번엔 그럴 수 없다. 아셀라가 버티길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함부로 치유주문을 쓸 수도 없다.

     

    저주를 잘라낸 순간부터 아셀라에게 치유주문이 통할지도 모르겠으나 체력 회복뿐만 아니라 장기 복구 효과까지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럼 지금까지 수술한 쓸개와 위, 어쩌면 소화기관 전체를 전부 재생하려 들지도 모른다.

     

    아셀라는 버티지 못할 터다.

     

    ‘체력은.’

     

     

    ―――――――――――

    · 이름 :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

    · 체력 : 15 / 22

    ―――――――――――

     

     

    마취와 약간의 출혈이 있었지만 무탈한 정도다.

     

    “절단면 봉합을 먼저 진행한다.”

     

    결찰 후 수술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이쪽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클립으로 닫아둔 부분을 실로 묶는다.

     

    “…지금 보이지도 않는 뱃속에서 혈관을 꼬매고 계신 건가?”

    “선생님의 기술은 언제 봐도 말도 안 돼.”

    “쉿.”

     

    집중해서 처치는 금방 끝났다.

    손이 미끄러지는 일은 없었다.

     

    탁, 장비를 빼서 커터로 교체한다.

     

    “담낭 박리.”

     

    간에 찰싹 붙어있는 쓸개를 살살 긁어내듯 조금씩 떨어트린다.

     

    흘러내리려는 노란 지방과 피를 열이 발생해 그 자리에 굳힌다.

     

    …두근.

     

    절단이 진행될수록 무언가가 느껴진다.

     

    “휴고.”

     

    “준비됐습니다.”

     

    휴고가 아뮬렛을 손바닥에 들며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를 중심으로 기묘한 형태의 진이 형성됐다. 한층 강화된 아뮬렛의 효과였다.

     

    “읏.”

     

    클로에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가 쓸개를 견인하던 손이 외력에 의해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나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클로에, 견인 확실히.”

     

    “네!”

     

    나는 왼손의 견인 장비를 뺐다. 즉시 교체가 이뤄진다.

     

    탁, 다음으로 들린 것은 네트.

     

    앰브로시아에게 빌린 성포를 잘라 뜰채처럼 만들었다.

     

    “후.”

     

    기다릴 새도 없이 아셀라의 몸 안으로 난폭하게 밀어 넣는다.

     

    입구를 쓸개 밑에 받치고 절단 작업을 이어나간다.

     

    ―치이익!

     

    지방이 타는 냄새가 올라온다. 집중해서 속도를 거침없이 올린다.

     

    여기까지 수술 개시 후 8분.

     

    본래 담낭 제거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이다.

     

    “담낭 완전 박리까지 5, 4.”

     

    “흡.”

     

    내 신호에 맞추어 휴고가 신성력을 더욱 강렬히 분출했다.

     

    “3, 2. 박리.”

     

    툭, 간에서 떨어진 쓸개가 뜰채 안으로 떨어진다.

     

    “잠궈!”

     

    왼손의 방아쇠를 당겨 즉시 입구를 봉한다. 동시에 휴고가 아뮬렛을 가동한다.

     

     

    그리고.

     

     

     

    ―아아■아!!! ■■아■■아■아아!!!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끔찍한 비명이 수술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쯧.”

     

    나는 왼손을 힘차게 당겨 뺐다. 성포째로 쓸개가 당겨져 나와야 하건만.

     

    툭, 실린더에 걸리며 저항한다.

     

    “망할!”

     

    저주의 악령이 벌써 눈을 떴다. 자신이 숙주에게서 떨어졌다고 깨닫고 폭주한다.

     

    찰나의 순간, 나는 즉시 판단하고 행동했다.

     

    ―파악!!

     

    아셀라의 몸에 박힌 실린더째로 뽑아 올렸다. 난폭한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

     

    예상대로 저주는 실린더에 박힌 채로 저항하고 있었다.

    성포를 뚫고 나오려는 쓸개를 들어 올려 간신히 아셀라의 몸 밖으로 꺼낸다.

     

    ―아■아아■■아악!!

     

    시커먼 영혼이 성포를 찢으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절규가 고막을 찢으려 했기에 의사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휴고.”

     

    “시도, 중입니다…!”

     

    간호사가 봉인을 위한 함을 준비했으나 소용이 없다.

     

    이미 자유롭게 풀린 영혼은 그간의 원한을 풀어내겠다는 듯 공중을 부유하며 어떻게 날뛸까만 고민하고 있었다.

     

    ―아아, ■셀라. ■아!!

     

    악령이 온몸에 마나를 휘감는다. 그것이 머리 위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이었다.

     

    “맙소사.”

    “하나, 둘, 셋… 6위계라고…!”

    “선생님, 피하십시오!!”

     

    의사들이 경악하며 외쳤다.

     

    하지만 나는 아셀라의 앞을 떠나지 않았다.

     

    손에 쥔 장비를 놓지 않는다.

     

    악령이 천천히 내 앞으로 날아와서는 목을 휘감았다.

     

    ―■야… 뭐■…!

     

    나는 악령을 노려보며 말했다.

     

    “비켜, 아직 수술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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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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