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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X가 표시된 지점에서 선까지의 거리는 정확히 1m였다.

       날아온 공을 받은 남자는 원래 있던 곳에서 1m 이상 밀려난 것이다.

         

       “이럴 수가……어느새 이렇게…….”

         

       바닥에서 탄내가 슬금슬금 올라왔다.

         

       “다음!”

         

       학생이 그보고 내려가라고 신호를 했으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다시 기회를 줘! 뭔가 잘못됐단 말이야!”

         

       그는 바닥에 떨어진 공을 다시 집어 들며 외쳤으나 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어서 내려가세요! 뒤에 기다리는 수험생들이 있습니다!”

         

       객석에서 그를 향한 조롱이 쏟아졌다.

         

       “뭐하냐! 어서 내려가라!”

       “그렇게 자신 있게 나서더니.”

       “저 덩치에 저렇게 많이 밀려난 것도 웃기네.”

       “근육이 아니라 순 물풍선 아니야?”

       “방출된 이유를 알겠군.”

         

       남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는 자신의 힘을 너무 믿었다.

       그는 바닥의 결이 특정한 방향으로 미끄러지기 쉽게 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건 ‘힘자랑’이 아닌 ‘땅재주’의 재능을 측정하는 시험이었다.

       필요한 것은 완력이 아닌 바닥을 단단히 디디고 서는 기술이었다.

         

       남자는 검게 탄 자국 덕분에 그제야 바닥의 결이 다른 곳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으으.”

         

       0점이라니.

       뭔가 억울했다.

       다시 하면 잘할 수 있는데…….

         

       남자는 평소 그 덩치로 터득한 삶의 지혜를 발동시켰다.

       목소리를 키우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이건 불공정해! 나는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어!”

         

       그의 항의에 학생은 냉정하게 일축했다.

         

       “서두른 건 당신입니다.”

       “그게……그……저 여자애들이 내가 몸을 들이미니까 길을 비켜줬어! 빨리 시험을 치러야만 하는 분위기로 몰아갔다고!”

         

       그의 말에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먼저 새치기해놓고 저렇게 뻔뻔하게 굴다니.

       정말 덩칫값 못하는 인간이었다.

         

       “하여간 다시 치르게 해줘! 진짜 막아낼 수 있다니까!”

         

       남자의 억지에 ‘자책골 키퍼’를 맡은 학생 둘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지난 몇 년간 입학시험 때마다 떼를 쓰는 수험생을 몇 번은 봐왔다.

         

       이 정도까지 해서 말을 못 알아먹었을 때는 설득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학생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고무 탄 흔적이 시작되는 지점에 섰다.

         

       “저를 이 X자 표시에서 떨어트려 보세요. 그럼 저희의 설명이 미비했다는 걸 인정하고 다시 시험을 치르게 해드리죠.”

         

       그 말에 차력사의 이마에 불끈 힘줄이 솟았다.

       감히 자신과 힘겨루기를 하겠다고?

         

       “너 무슨 곡예 지망이냐.”

       “땅재주요.”

       “허! 네가 무슨 ‘부동의 홉스’라도 되냐! 거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겠다고?”

       “물론입니…….”

         

       학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남자가 말을 거는 동시에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대응할 틈이 없도록 잔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거대한 덩치가 그를 덮쳤다.

       비겁하다고 할 수 있는 기습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힘자랑 교수 야코블레프의 위압감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었다.

         

       그는 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여 남자의 팔을 잡아당기고 동시에 그의 다리를 잡아챘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유술(柔術)이었다.

         

       “어?”

         

       남자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쿵.

       그의 등이 바닥에 닿았다.

       그의 다리를 잡아챘던 손은 어느새 그의 배를 누르고 있었다.

         

       달려오던 그의 위세에 비하면 너무나 싱거운 결말이었다.

         

       “탈락입니다.”

         

       남자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관중석에서 학생을 향한 갈채와 남자를 향한 야유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추하다, 이 돼지야!”

       “어서 내려가!”

       “장하다! 레카체프!”

       “저 서커스단도 불쌍하네. 드래프트 순번이 꼴찌겠어.”

       “저런 인간을 방출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에 이런 굴욕도 없었다.

       차력사 경력이 8년이 넘는 그가 고작 10대 학생에게 패하다니.

         

       그를 비롯한 다른 수험생들은 레카체프의 높은 벽을 체감했다.

       이것이 세계 최고의 엘리트 곡예사들의 실력이라는 것을.

         

       학생은 바닥에 누워 있는 그를 들어 기구 바깥으로 질질 끌고 가 밖에 내던졌다.

       그는 저항할 생각도 없이 무기력하게 바닥을 굴렀다.

         

       “으흐흑, 흑흑.”

         

       레이나는 엎드려 우는 남자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는 기구 위에 올라섰다.

         

       그녀는 바닥에 난 흔적을 보지도 않았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녀는 바닥이 미끄러지기 쉽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4년 전에 입학시험을 한 번 치렀었다.

       과제의 내용은 그때와 달랐지만, 그들이 함정을 파놓는 방식은 변함없었다.

         

       치졸하긴.

         

       펑.

       크랭크가 풀리면서 팽팽히 당겨졌던 고무줄이 풀렸다.

       공이 쏘아져 나왔다.

         

       그녀는 두 발을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벌리고 공을 가슴으로 끌어안는 동시에 몸을 비틀었다.

       축이 되는 발이 공이 날아오는 방향과 수직이 되도록.

         

       끼기긱.

       그녀의 몸을 강타한 충격은 다리뼈를 타고 바닥으로 흘렀다.

         

       내뻗은 다리의 각도나 공을 받아내는 동작은 완벽했다.

       그녀의 몸은 고작 한 뼘 정도 밀리다 말았다.

         

       땅재주는 근육이 아닌 뼈로 한다는 말이 있었다.

       땅재주에는 다양한 기술이 있지만, 땅재주 전체를 관통하는 기술은 하나였다.

         

       바로 충격을 뼈가 뻗은 방향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다.

         

       뼈에 수직으로 들어오는 충격은 뼈를 부러뜨릴 수 있었다.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충격은 관절을 뒤틀리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평으로 들어오는 힘에 대해서는 뼈가 건물 기둥과 같은 역할을 했다.

       가해지는 충격을 아래로 흘리는 것이다.

         

       그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충격을 근육의 힘으로 받아내려고 한다면 저기 누워 있는 남자처럼 그대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곡예를 본 관중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커다란 덩치가 1m 넘게 밀려났던 것에 비해 너무나 깔끔한 결과가 나왔다.

         

       직접 본 사람들조차 공의 속도가 아까보다 느렸던 건가 하고 자신의 기억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래서 점수는 어떻게 된 거지?”

       “몇 센티미터야?”

         

       기구의 입구에 서 있던 학생이 그녀의 발끝이 닿은 지점부터 선까지의 거리를 쟀다.

       그의 눈에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

         

       방어선 하나가 돌파당했다.

         

       “81.3cm!”

       “오!”

       “재학생 최고 기록은 몇 점이지?”

       “63.4cm!”

       “최고점이다!”

         

       재학생 최고 기록과 무려 20cm에 가까운 차이였다.

         

       레이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싸늘하게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기구에서 내려왔다.

         

       맞은편 객석에는 그녀의 동료들이 있었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절름발이 사내 옆에 그의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고 입가는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그건 분명 칭찬의 표시였다.

         

       그래.

       이걸로 충분해.

         

       레이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음 측정 기구로 향했다.

         

       뒤에서 그녀의 다음 순번이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보다 못한 애를 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취미 따위 그녀에게 없었다.

       그녀에게 서커스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끼기기긱.

       신발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최소 수십 센티미터는 밀렸을 것이다.

         

       그러나 관중석을 슬쩍 올려다보던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의 뒤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떠나온 곳을 향해.

         

       그녀가 놀란 것은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흥분과 기대로 고조된 표정이었다.

       그들은 감독관의 기록 발표를 기다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아까 기록을 측정했던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98.7cm!”

         

       레이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뒤를 돌아본 그곳에는 엘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공을 허리게 끼고 서 있었다.

       X자 표시가 된 곳 바로 위에 서서.

         

       강당이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최, 최고점이다! 거기다 신기록이야!”

       “믿기지 않는군.”

       “그래. 기록도 그렇지만, 저 애가 한 동작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엘라의 곡예를 목격한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레이나는 그들의 동작과 단어 몇 마디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엘라는 날아오는 공을 한 손으로 받고는 한 발을 축으로 삼아서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회전이 다 끝나갈 때쯤 그 자리에 그대로 발을 딛고 선 것이다.

       1.3cm는 발을 디디는 순간, 약간의 비틀거림으로 인한 오차였다.

         

       대형 새총을 학생들이 당길 수 있었던 것은 크랭크라는 도구의 힘이었다. 회전 운동을 직선 운동으로 바꿔주는 장치 말이다.

         

       그녀가 한 것은 딱 그 반대였다.

       직선으로 날아오는 공을 회전 운동으로 바꾼 것이다.

         

       ‘말도 안 돼.’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그걸 구현할 수 있다고?

         

       한 손으로 그렇게 재빠른 공을 받아내 떨어트리지 않는 것도 고난도였다.

       거기다 한 발을 축으로 일그러짐 없는 원운동을 유지하는 것도 고난도였다.

       그렇게 빙글빙글 돌다가 제자리에 딛고 서는 것도 고난도였다.

         

       레이나도 하자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몇 번은 같은 동작을 시도해서 ‘암기’로 재현하는 것이지 엘라처럼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현장에서 해낼 수는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저런 말도 안 되는 ‘곡예’를 이런 중요한 현장에서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보통 심장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엘라는 자신을 향해 갈채와 환호를 보내는 관객과 수험생들에게 팔을 늘어뜨리며 세련된 동작으로 인사를 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의 부단장 엘라라고 해요!”

         

       허리를 든 그녀는 폴짝폴짝 뛰며 사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내뿜는 활기찬 에너지 덕분일까.

       중립의 의무를 져야 할 감독관 중에도 그녀의 무대에 호응을 보내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엘라! 엘라! 엘라!”

         

       관객 중 일부는 그녀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시험의 총감독을 맡은 르고 교수가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얼굴도 흥분을 숨기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엘라는 기구에서 내려오다가 어느 곳을 향해 우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곳에는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부모일까?

       적어도 그와 비슷한 존재인 것은 확실했다.

         

       부럽다는 느낌을 받기도 전에 불안한 예감이 레이나의 등을 타고 흘렀다.

       부모.

       그것은 그녀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단어였다.

         

       객석을 천천히 돌아봤다.

         

       그곳에는 비틀린 입술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이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격앙된 감정으로 이글거렸다.

         

       “그거 안 할 거니? 그럼 나 먼저 할게!”

         

       엘라가 그녀를 제치고 다음 기구 위에 올라섰다.

         

       그녀는 이제 레이나 따위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순수하게 곡예기구들을 즐겨보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녀가 다음 오른 기구의 이름은 ‘땅볼 외야수’였다.

       1분 동안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는 공을 잡아 그물 바구니에 던져 넣으면 되는 거였다.

         

       이는 ‘줄타기’의 재능, 즉, 민첩성과 균형감각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놀라운 재주로 시험을 통과했다.

       날아온 공 50개 전부를 홈으로 송구했다.

       학생 최고 기록은 46개인데 말이다.

         

       “방금 봤어?”

       “공중 캐치 후 공중 송구!”

       “그것도 양손을 따로따로 써서!”

       “보지도 않고 뒤로 던져서 넣는 건 또 어떻고!”

       “인간의 솜씨가 아니야.”

         

       엘라는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양손으로 브이를 여러 번 날려주고는 기구 아래로 내려왔다.

         

       레이나는 그녀의 동작을 전부 눈에 담았다.

       딱히 무엇을 분석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지금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두려워, 감히 그쪽을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감독관이 그녀를 호명했다.

         

       할 수 있어, 레이나.

       너도 50개 다 잡는 건 가능하잖아?

         

       레이나는 자신을 다독이며 기구에 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선작 1만 감사합니다!
    더욱 재밌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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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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