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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답장이 도착했다.

         

       『 기회가 될 때마다 구하라고 하신 주술 중에서 말씀이신지요? 』

       『 그러하다. 』

         

       진성이 일본에서 빠져나오기 전 리세에게 미리 일러둔 것이 있었으니, 신사의 세를 넓히고 정치인들을 잘 관리함과 함께 그들의 인맥과 돈을 이용해 주술에 관련된 것들을 모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대대적으로 구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공항에서부터 관광지까지 음양술로 도배를 해놓는 것만 보아도 일본이 얼마나 주술에 대해 민감한지는 잘 알 수 있었으니까. 만약 리세가 대놓고 주술을 구하려고 한다면 ‘대체 왜 구하려 하는지’에 대한 조사가 나올 것이고, 신사를 먼지 한 톨, 동전 한 닢까지 샅샅이 뒤져서 이상한 점을 찾아내게 되리라.

       그렇게 된다면 사이고 가문도, 키시모토 가문도, 그리고 거기에 엮여있는 진성의 존재도 수면 위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권력으로 무마한다?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정치인 일부를 강력하게 묶어놓았으니 그들의 힘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요, 그들로 안 되는 일도 그들의 인맥을 빌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인맥에 날개를 달아줄 돈까지 풍부했으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 손쉽게 가능하리라.

         

       하지만 무엇하러 그렇게 하겠는가?

       애초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데.

         

       문제 해결에 쓸 인맥으로 은밀하게 주술을 구하고.

       권력자와 기자의 목구멍에 기름칠할 돈으로 주술과 주물을 구하는 것이 훨씬 좋다.

         

       그렇기에 진성은 리세에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너의 안전이다.

       절대로 너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게 구하라.

       권력자들을 이용하되 너에게 해가 될 것 같거나 무리가 가는 것이면 그만두도록 하여라.

       주술과 주물을 은밀하게, 다른 이들이 수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여라.

       그리고 구했다면 절대로 손을 대지 말고 신창에 잘 모아놓도록 하라. 대충 분류만 하고 절대로 사용하거나 행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 그 성과를 확인할 때가 왔다.

         

       『 일단 이만큼 모아놓았습니다. 』

         

       리세는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거기에는 물건들이 어지러이 쌓여있는 신창(神倉)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본래는 신사에서 사용하는 제사 물품들이 있어야 할 신창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농기구로 보이는 것에서부터 다 낡아서 본래의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변한 누더기, 거기에 녹이 잔뜩 슬어버린 냉병기까지.

         

       누가 본다면 신창이 아니라 시골의 버려진 헛간 같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 얼핏 보면 고물, 쓰레기나 다름없어 보이는 물건들은 그렇게 크지 않은 신창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게 만들어져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고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흠.”

         

       진성은 가만히 사진을 살펴보았다.

         

       낡아빠진 나무로 만든 벽에는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그냥 곰팡이가 아닌, 왠지 모르게 사람의 얼굴을 닮은 듯한 곰팡이였다.

       벽 쪽에 붙어있는 물건들에 뿌리를 내리고 벽 쪽으로 자라난 듯한 곰팡이는 물건에 다리나 배가 있는 것처럼 제각기 얼굴의 형상을 하고 손으로 보이는 길쭉한 것을 사방으로 뻗고 있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아두었다가 스르륵 눈을 감아보면 그 모습이 잔상처럼 남는데, 잔상이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죄인과 흡사했다.

         

       그리고 다른 사진을 살펴보면 더더욱 기이했다.

       사진이 초점이 맞지 않은 것처럼 물건이 흐릿하게 찍혀 나왔는데, 참 이상하게도 물건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모습이 또렷했다. 마치 물건이 위치한 부분만 상을 흐릿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그 부분에만 안개가 껴 있는 것처럼 흐릿했다.

         

       그리고 어떤 사진은 볼록렌즈로 왜곡을 한 것처럼 휘어져 있었고, 어떤 것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코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느낌이 들었다.

         

       『 아주 훌륭한 주물들이로다. 』

         

       그저 사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사진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주물이라니.

       하나하나가 끔찍할 정도의 위력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 어떻게 옮겼느냐? 』

       『 신주님이 주신 돈으로 배달용 로봇을 사서 사용했습니다. 로봇 하나로는 너무 고장이 자주 나서 세 대를 구매해 교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 사용하고 난 다음에는 정화 작업을 꼼꼼하게 하였느냐? 』

       『 햇빛을 가득 받은 방의 중앙에 로봇을 놓고, 방의 모서리마다 태양의 기운을 잔뜩 받은 소금을 쌓아놓았습니다. 그리고 채 정화되지 않은 기운은 꼬리를 이용해서 정화했습니다. 』

       『 잘 하였느니라. 』

         

       그가 그렇게 보내자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사진 몇 개가 보내져 왔다.

         

       『 모은 것 중 요괴와 관련된 주물입니다. 따로 분류해놓지 않아 하나하나씩 찍어 보낼게요. 』

         

       리세가 보낸 사진은 아까의 사진과 마찬가지로 기묘했다.

       곰팡이가 가득 핀 렌즈로 찍은 것 같은 사진도 있었고, 소용돌이 형상으로 왜곡된 사진도 있었고, 빛바랜 필름 사진처럼 만든 것 같은 사진도 있었다.

         

       진성은 리세가 보낸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네 가지를 발견했다.

         

       두루마리에 기록한 것.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책에 기록한 것.

       한지를 바느질해서 만든 책에 적혀있는 것.

       상자의 표면에 음각으로 파 기록한 것.

         

       진성은 그것을 골라 리세에게 다시 보내며 말했다.

         

       『 이것들을 펼쳐서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거라. 단, 절대로 근처에 가서도 안 되고 너의 눈에 담아서도 아니 되느니라. 펼치고 넘기는 것은 반드시 로봇을 사용하도록 하며, 그것을 사진으로 찍는 것 역시 로봇을 이용하도록 하여라. 』

       『 저의 눈에 담아서는 안 된다…. 알겠어요. 』

         

       진성은 문자를 보내고는 허공을 쥐어 주위에서 풀을 뽑았다. 그리고는 풀들을 잘 엮어서 폭신해 보이는 형태로 만들고는 바닥에 깔고 앉았다. 그리곤 멍하니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스마트폰이 작게 진동하자 그것을 확인해보았다.

         

       『 전부 찍었습니다. 다행히 로봇이 고장 나는 일은 없었어요. 』

         

       리세의 간단한 문자와 함께 엄청난 양의 사진이 보내졌다.

       진성은 리세가 그것을 확인할 수 없도록 기본 이모티콘을 빼곡하게 도배해 사진을 위쪽으로 올렸고, 한참을 스크롤 해야만 확인할 수 있게 되자 리세에게 문자를 보냈다.

         

       『 사진은 위로 올렸다. 하지만 혹시 자신도 모르게 확인할 수 있으니 메신저의 사진을 모조리 삭제하고, 데이터로 저장된 사진 역시 전부 삭제하도록 해라. 주물이라는 것은 그 종류에 따라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며, 너에게 악몽을 꾸게 할 수도 있느니라. 하니 이 삭제 작업 역시 네가 직접 해서는 안 될 것이다. 』

       『 신주님의 말씀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길게요. 』

       『 꼭 그리하도록 해라. 』

         

       진성은 그렇게 문자를 보낸 후에야 사진을 하나하나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보자. 느낌이 와서 찾아달라고 하였는데, 어디….’

         

       진성은 가장 먼저 상자에 기록된 것을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려다가 이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이런. 이건 내가 알아볼 수가 없구나.”

         

       원시적인 형태의 글귀와 그림이 적혀있었다.

       아마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민속학자에게 해석을 맡겨야만 하리라.

         

       진성은 얼굴에 실망을 감추지 않으며 다른 것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확인한 것은 두루마리에 기록한 것이었다.

         

       펼쳐진 두루마리에는 해서(楷書)로 단정하게 글이 적혀있었는데,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글귀 중간중간에는 괴물 비슷한 형상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그림이 마치 아주 못생긴 어린아이와 똑 닮아있었다.

         

       ‘가고시마의 산중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풍습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열매를 남기는 것이라….’

         

       진성은 천천히 그 글을 읽었다.

         

       ‘자그마한 나무는 상관이 없으나 커다란 나무에 열린 것들은 반드시 그것을 모두 취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산에서 사는 어떠한 것 때문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야만보(ヤマンボ)라고 불렀다. 이것은 갓난아기와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 키가 2척에서 3척 정도 되며, 그 피부는 까무잡잡하여 어두컴컴한 산중에서는 쉬이 발견하기가 어렵다….’

         

       두루마리의 앞부분은 야만보에 대한 요괴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우-이’라는 소리를 낸다는 것.

       열매를 필요 이상으로 주운 사람을 홀리게 해 산을 벗어날 수 없게 한다는 것.

       사람의 감각을 어지럽혀 산을 헤매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평소에는 나무에 앉아 있지만, 사람이 보이면 바로 뒤에 숨어버린다는 것 등.

         

       그리고 중반부에 이르면 주술에 관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하였으니.

         

       ‘가고시마의 어떤 마을에서는 이러한 야만보를 신으로 모셔 그의 힘을 얻기를 원하였다. 떠돌이들이 모여 만든 그 마을에서는 무사니 귀족이니 하는 작자들이 마을을 찾아오지 않는 것은 물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길을 찾지 못하게 해준다는 요괴 야만보의 힘을 빌리기를 갈망하였고, 이윽고 그 갈망의 결과 마을을 숨길 힘을 얻게 되었다….’

         

       주술의 이름은 야만보의 나무 그늘.

       그 효과는, 주술의 힘이 닿는 것들을 사람들의 눈에서 숨기는 것이었다.

         

       ‘나쁘진 않군. 열매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만 제외한다면야….’

         

       주술을 사용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메밀잣밤나무의 열매를 제물로 바쳐야만 했는데, 그 양이 범상치가 않았다. 사람 하나를 숨기는 정도라면 한 아름이면 되었지만, 그것이 건물이 되고 마을이 된다면 아마 꽤 많은 양을 필요로 하리라.

         

       하지만 돈이야 넉넉한 데다가, 부족하면 또 아무 곳에서나 가져오면 그만이다.

         

       “좋아, 나쁘지 않구나.”

         

       진성은 후반부에 적힌 주술의 대가에 대해 읽고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주술의 대가는 땅이 황폐해지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주술 범위 내의 땅이 가지고 있는 유기성 영양분이 대가로 필요했다.

         

       농민들에게 있어서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대가이며, 이 주술을 만들게 된 마을에서도 재앙이라고 여겼을 대가일 테지만….

         

       진성은 이 대가가 꿀처럼 달게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문제) 노백곰은 오늘 백신을 맞았다. 이 백신의 역할과 기능을 동북 아시아 지역의 주술적 관점으로 서술하시오.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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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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