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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테세우르 제국의 황제. 크리스.

       그의 눈앞엔 자그마한 빛줄기가 일렁였다.

       다른 이에겐 보이지 않는 빛줄기가 그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했다.

         

       진리.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다.

       크리스는 호출에 한숨을 푹 쉬고서, 처리할 일들을 뒤로 미뤄두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여전히 때 하나 타지 않아 새하얀 초대장을 찾았다.

         

       “망할….”

         

       초대장을 열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러긴 싫었다.

       갤러리 분탕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야, 황제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때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진심으로 갤러리의 멸망을 바랬던가? 그건 아니었다.

       갤러리에서 꾸준히 글을 읽는다. 크리스도 갤럼이었다.

         

       주딱을 진심으로 혐오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일을 훼방하는 게 조금 미울 뿐.

       그것을 제외하면 사적인 감정은 없었다.

         

       갤러리 분탕 모임의 실체가 궁금했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참여했을 뿐인데. 이렇게 일이 될 줄은….

         

       “후우.”

         

       크리스는 초대장을 보며 작게 심호흡했다.

       호출이 올 때마다 참석을 해야 한다니, 이만큼 귀찮은 일이 있을까.

       하지만 참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모른다.’

         

       이 부분에서 크리스는 섬뜩함을 느꼈다.

       초월자가 필멸자 따위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했으니.

         

       사락.

       크리스가 초대장을 펼치자,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공간에 도착했다.

         

       새하얀 방.

       그곳에서 서로는 서로를 볼 수 없었다.

       기껏 해봐야 보이는 건 미약한 실루엣 정도.

       상대의 얼굴형이 어떤지. 어떤 체형인지. 다른 종족인지.

       그 정도를 판단하는 게 고작인 공간이다.

         

       크리스는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깍지를 껴 인중에 붙였다.

       팔꿈치는 책상에 단단히 고정함으로.

       말을 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엿보였다.

         

       이번엔 어떻게 해야 무난하게 보낼 수 있을까.

       또 다시 침묵으로 응수해야 좋지 않을까.

       고민하던 황제였으나….

         

       “?”

         

       평소와 달라진 시야에 시선을 좌우로 옮겼다.

       이전과 같은 자리가 아니었다.

       여기는 모두의 주목이 쏠리는 자리.

       ‘질서’라 불리는 초월자의 바로 옆자리였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질서와 눈이 마주친다.

       그런 자리라, 크리스의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망할… 바로 옆자리라니.’

       옆자리란 그냥 단순히 옆자리가 아니다.

       내포된 의미는 황제인 그가 더욱 잘 알았다.

         

       권력자가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이 녀석은 내가 아끼는 녀석이다.

       내 오른팔이다. 얘를 건들면 내가 죽이겠다. 등등.

       많은 뜻을 함축하는 것이 절대자의 옆자리다.

         

       그만큼 애지중지하면서 아끼겠다는 의미인데….

       황제의 경악은 끝나지 않았다.

         

       ‘맙소사.’

         

       반대쪽 자리가 비어있다니!

       오른쪽 자리에만 사람이 있고 반대쪽 좌석엔 사람이 비어있다?

         

       그 말은 즉.압도적인 2인자의 자리임을 의미한다!

         

       ─난 얘 말곤 좋아하는 애가 없는데?

         

       라는 뜻과 일맥상통!

       초월자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크리스가 좆됨을 직감했다.

         

       ‘탈출해야 한다…!’

         

       저번의 일이 마음에 들었음이 틀림없었다.

       갤러리에 타격을 주진 못했어도 성공적으로 영향을 줬으니, 가능성을 본 걸까.

       아무튼 마음에 들었음을 부정할 순 없었다.

         

       ‘시선이 따갑다….’

         

       초월자의 시선은 다른 건가.

       옆통수를 찌르는 시선에 크리스는 집에 가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부모님이 보고 싶기도 하고… 달달한 커피가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여기에서 도망치는 건 하수의 일.

       현재 직업. 황제.

       무수한 정치경력 보유 중.

       정치 고수 크리스는 살아남을 각을 보았다.

         

       ‘어이 신입.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조금만 무능함을 보이고 다른 이들이 치고 올라온다면 자연스레 빠질 수 있을 터.

       2인자 자리를 누군가 강탈했으면 좋겠다.

       빨리 왼팔로 올라와라! 언제든지 물러서는 건 가능하다!

       공짜로 주마! 헐값에 2인자 자리를 넘겨주마!

         

       그러한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으음….”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

       “갤러리를 터트리려면 더 크게 터트려야지. 작게 터트릴 바엔 안 하는 것만 못하지 않겠어?”

       “이번엔 난 안 해.”

       “?”

         

       어째서!!!

       크리스가 속으로 울부짖었다.

         

       기대한 게 잘못이었나.

       하긴, 범죄자들을 모아놓은 이 모임에서 성실함과 계획적인 진행을 바란다는 것부터가 무리였나?

         

       “나도 이번엔 쉴래.”

       “힛. 갤러리를 터트리려면 가장 고점에서 터트리는 게 짜릿할 것 같은데?”

         

       웅성웅성.

       회의 시작 3분.

       그 짧은 시간에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순 없으니.”

       “맞지 맞지.”

       “어떻게 바로 뚝딱 준비하겠어.”

       “뭐, 항상 일을 벌이는 건 아니잖아? 아이디어 정도만 나눠도 충분하니까.”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도 좋지.”

       “….”

         

       이 녀석들 정말로 할 생각은 있는 건가?

       제발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어도 좋으니 뭔가 해다오.

       크리스의 부탁은 이들에게 닿지 않았다.

         

       “아이디어라… 그렇지.”

       “맞아. 저번에… 갤러리 유저들의 비율을 계산한 것은 좋은 방식이었다.”

       “그렇지? 갤러리 유저 비율이 3할 정도만 되면 대량 학살이 괜찮다니까?”

       “하지만 그만큼 갤러리의 활동량이 많아지는 것은….”

       “아핫. 그것도 고려해서 활동이 많아 보이는 곳을 터트려야지. 예를 들어 제국이라거나?”

       “….”

         

       흰색 실루엣의 여인이 히죽 웃음을 흘렸다.

         

       ‘제국은 왜?’

         

       아무렇지 않게 무서운 말을 지껄이는 그들의 대화에 크리스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무거나 해달라 했더니 원숭이 손이 대답한 것인가.

       크리스는 간절해졌다.

         

       ‘저 대량 학살자가 활동하는 건 안 된다….’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도달한 결론이었다.

       저 녀석은 절대 안 된다. 차라리 다른 녀석이 낫다.

         

       그렇게만 된다면 침묵을 유지한 채, 묻혀갈 수 있을 터.

       평소처럼 손깍지를 긴 채, 입을 다문 그였지만.

       옆에서 들린 초월자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침묵이 깨졌다.

         

       “그대.”

       “…예.”

       “그대에겐 좋은 아이디어가 있나?”

       “….”

         

       왜 나에게만 이러는 걸까.

       왜 나한테만 엄격한 건데.

       크리스는 침을 삼키면서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크리스가 누구인가.

       갤러리의 멸망을 바라는 악질 분탕 코스프레에 불과한 범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어이 형씨 실력 다시 구경하고 싶은데?”

       “이번엔 또 어떤 계책이 존재하지?”

       “저번엔 일부러 아주 조금 타격을 입히는 정도로 끝냈으니… 이번엔 매우 기대가 된단 말이야.”

       “….”

         

       다른 녀석들도 기대의 목소리를 낸다.

       크리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거 아니란 말이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이딴 자리 맡고 싶지 않다.

       갤러리 분탕질 아이디어조차 없다…!

       궁금해서 왔다가 못 나간 것뿐인데!

       크리스의 입술이 끝내 열렸다.

         

       “하나 준비하고 있는 게 있지.”

       “호오… 그대가 그리 말하니 기대가 되는 구나.”

       “하지만 이번의 작전은 나도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겠느니라.”

       “현생의 일로 인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만.”

       “아아. 현생… 그런 것에 묶여있는 존재였지.”

         

       진리의 목소리에 망설임의 기색이 보였다.

       통했나?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느니라. 얼마든지.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지 않느냐.”

         

       아니다!

       이런 대답이 나오질 않길 기대했는데.

       크리스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

       “그대에겐 항상 기대가 많노라. 기다리겠다.”

       “….”

       “하지만 중요한 순간이 빠르게 찾아온다면.”

       “….”

       “그대가 또 활동해주어야겠네.”

         

       순간 크리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건 완전히 2인자로 인정하겠다는 말 아닌가.

       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혹은 죽는다.

       막강한 이지선다 압박에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크리스의 응답에 질서가 작게 웃었다.

       이런 좆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쥐어짜내는 크리스를 누군가가 빤히 지켜보았다.

         

         

       ***

         

         

       “완전히… 좆됐군.”

         

       발을 빼려다가 푹 빠져버렸다.

       이제는 어중간하게 빼려고 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질서’가 인정하는 분위기를 풍긴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모든 일이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큭….”

         

       황제. 크리스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기록될까.

       갤러리를 파괴하기 위해 행동한 극악무도한 황제.

       대륙의 위기를 불러온 황제.

       어떤 식으로 기록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건 죽기보다 싫었다.

         

       “젠장….”

         

       차라리 지금 자결해서 오점을 남기지 않는 게 정답일까.

       그의 멘탈이 쿠크다스처럼 산산조각 나는 동안, 누군가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폐하. 접니다.”

       “…에르샤.”

       “저녁 연회의 준비가 끝나갑니다.”

       “아.”

         

       잠시 까먹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제국 내부에서 도는 흉흉한 분위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었지.

         

       “그리고 오센 왕국으로부터 답신이 왔습니다. 긍정적인 대답입니다.”

       “…준비가 되면 나가도록 하겠다.”

         

       하아.

       황제는 마른세수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그에겐 할 일이 남아있었다.

         

       ***

         

         

       테세우르 제국의 수도 카발.

       그곳에서 연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제국 곳곳에서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가 연회를 열고 모두에게 초대장을 보낸다는 건.

       연회 총동원령 소집 명령과 다를 바 없었다.

         

       초대장을 못 받은 하급 귀족을 제외하고.

       명령에 불복종한다면 앞으로의 귀족 인생이 어떻게 될 지는 불 보듯이 뻔한 일.

         

       그건 제국의 2인자. 르하임 공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못난 놈 제치고 잘난 놈 보내고.

       아득바득 살아남은 그에게 이러한 연회는 이제 놀러가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놀러가는 것처럼 이번 연회는 가족과 동행했다.

         

       “마리아. 연회에 참석하는 건 무섭지 않느냐.”

       “조금 두렵긴 하지만… 괜찮아요. 오랜만에… 가보고 싶으니까요….”

         

       마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답하자, 르하임 공작이 그런 딸을 기특하게 쳐다보았다.

       소심하고 연약한 딸이 연회에 가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냈으니까.

         

       “연회에 가서 무엇을 할지 생각은 해두었느냐.”

       “…네. 당연히.”

       “페하께도 인사를 드려야 한단다.”

       “예. 그것도.”

         

       마리아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히죽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 편 더잇슴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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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I Became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ly Gallery 이세계 갤러리 주딱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minding the board 24/7 when I got dragged into 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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