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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이예나가 지도로 찍어 보낸 가게는 개방감 있는 펍이었다. 조명이야 나름 어둑어둑하다지만, 공간을 분리하는 칸막이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번화가에 있는 이런 펍에서 여자 둘, 그것도 이예나가 포함된 여자 둘이 술을 마시고 있으면……대체 시간당 몇 명이 번호며 합석이며 요청하러 찾아올까. 아크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런 관심을 즐길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단순히 본인 얼굴의 파급력을 모르는 거겠지.

         

        ‘이제 겨우 21살이니까. 엄한 집안에서 여학교만 다녔으면……아니, 그래도 말이 안 되는데.’

         

       예전같으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이런 저런 오해를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예나와 지내다 보면, 이 사람은 정말로 본인이 주변에서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름 이예나 기능장이라 자칭할 수 있는 아크로서는, 그런 점이 더욱 걱정스러웠다.

         

        -짤랑

       

       작은 종소리와 함께, 짙은 갈색으로 선팅된 문이 가벼이 열렸다. 

       

       이예나를 발견하는 건 아크에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멀리서도 묘한 아우라를 풍기는 이예나의 모습이, 문을 열자마자 보였으니.

         

        그 앞에서 세상 어색한 포즈로 서 있는 남자와 함께.

         

        “어?”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럼 그렇지. 헌팅……아니면, 그냥 번호를 물어보는 걸까.

         

        어느 쪽이든,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태는 제법 빠르게 종결되었다.

         

        무슨 말을 한 걸까. 잠시 당황하는 듯하던 남자가, 고개를 한 번 푹 숙이고는 어깨를 늘어트린 채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가고-

         

        “아. 오셨어요.”

         

        이쪽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이예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천천히 흔들었다.

         

        -하아, 하.

         

        또각또각 소리가 울리도록 급하게 달리느라 부족해진 호흡을 다스리며, 아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맞은 편의 의자에 앉았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아크님 방송 보고 있었어요.”

         

        “네……? 매니저 목록에 안 보였는데……?”

         

        “요즘은 부계정이 기본인가 보더라고요. 저도 유행에 합류하기로 했어요.”

         

        그리 말하며, 이예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잔 시키러 가요. 가서 주문해야 되는 시스템이라. 아, 하우스 와인도 있던데……와인으로 하실래요?”

         

        아크는 이예나를 처음으로 만났던, 아이리시 커피를 마셨던 카페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도 저리 천연덕스럽게 술을 주문하러 갔었지. 그리고-

         

        ‘……와인, 그때 좋아한다고 말했었구나.’

         

        의외로 세심한 걸까. 아니,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거겠지. 별걸 다 기억한다고 농담을 던질까 싶으면서도, 어째서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온갖 생맥주가 구비된 바에 다가가, 이예나에게 추천을 구한 맥주를 주문하고, 다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부드러운 침묵이 흐르게 된 건, 누구의 탓일까.

         

        어쩌면 펍 이곳저곳에서 자신들을 흘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일지도 몰랐다. 평소라면, 혹시 알아봤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내심 기대했을 시선들.

         

        그러나 지금은, 묘하게 불편했다. 자기를 알아본 누군가로 인하여 이예나의 신상이 공개되고 마는 건 아닐지. 혹여 어딘가에서 도촬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지. 만에 하나라도 그리하는 이가 아크 자신의 팬을 자칭하는 사람이라면……이예나의 얼굴을 앞으로 어찌 봐야 할까.

         

        그렇게 이런 저런 망상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이 가슴에 켜켜이 쌓이는 사이에도, 이예나는 언제나와 같이 무심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예나님.”

         

        “네.”

         

        “그러고 보니까, 저 궁금한 거. 아까 저 오기 직전에 왔던 남자분한테 뭐라고 했길래 그렇게 당황하면서 간 거예요?”

       

       저 무심에 화가 나서- 조금은 난감해하길 바라는 짓궂음을 섞어 던진 질문이었는데.

         

        “아. 미안한데, 여자 좋아한다고 했어요.”

        

        “네, 네?”

         

        “최근엔 딱히 생각해본 적 없으니 거짓말인 것 같기도 한데……예전엔 그랬으니까. 못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요.”

         

        작게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에 정작 넋이 나간 건 아크였다.

         

        “아, 그……어, 저, 저한테 그 믿고? 얘기해주셔서, 어……감사하고, 무조건 비밀로 할 테니까-”

         

        -흐흫.

         

        패닉에 빠진 채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달래듯이 들려오는 웃음소리.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앉은 이예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조명 탓일까.

         

        ‘담배가 너무 어울리는- 아니, 실례도 정도가 있지. 제발 정신차리자.’

         

        “짠, 할까요.”

         

        복잡한 생각을 저 편으로 미뤄둔 채, 아크는 그저 손에 쥐어진 잔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맞부딪혔다.

         

        .

        .

        .

          

        그렇게, 약 두 시간 후.

         

        “그러면, 응? 그거도 얘기해줘. 도적은 대체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니, 거야? 애정캐 수준을 넘었잖아야요…….”

         

        “우리 도적 좋아요. 수박도에도 적혀있을 거야.”

         

        “아니, 장난치지 말, 마시! 아니, 말거……암튼! 진짜로.”

         

        많은 얘기와, 그보다 많은 술잔이 오갔다.

         

        아크는 자신이 지금 전례가 없을 정도로 취한 상태라는 사실을 또다시 떠올렸다.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생각.

         

        분명, 한 시간 전에도 이 생각을 했어- 라고, 한 줌 남은 이성이 소리쳤으나……제대로 닿지 않았다.

         

        그 누구도 아크에게 술을 강요한 적 없음에도, 맥주와 와인에 이어 하이볼까지 들이켜는 중이었으니.

         

        ‘왜 이렇게 됐지.’

         

        처음엔, 고민상담 시간도 있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시청자가 선을 넘었을 때 어떻게 해야하나 모르겠는데, 그 와중에 선을 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가장 작고 넘어도 되는 선을 넘은 사람이 가장 미안해하고 있어서 뭐가 제일 재밌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나.

         

        질문의 마무리가 조금 이상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물론, 조언도 이래저래 했다. 스트리머로서 살아가며 느꼈던 일들과, 돌아간다면 달리 내릴 판단들에 관한 이야기들.

         

        그에 호응하듯 이예나는 다른 질문들도 조심스레 내밀었고, 술김에 호쾌하게 대답했는데-

         

        ‘언제 반대로 됐지.’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반대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건지. 아무리 떠올리려 노력해보아도, 기억은 나타나지 않았다.

         

        몇 분 전의 과거를 하염없이 살피려던 아크의 의식이 다시 눈앞의 사람으로 향했다.

         

        이예나의 미간은 살며시 찌푸려져 있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도 했으나, 그저 괴로움에 휘둘리는 듯도 한…….

         

        ‘무슨, 얼굴을 찌푸려도 그림이 되고…….’

         

        어두운 술집, 흐릿한 조명 아래에서 아크는 저도 모르게 몸을 살며시 앞으로 기울였다. 어쩌면, 그저 만취한 탓에 무게중심을 잃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괜찮으니, 힘들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던 순간-

         

        “그러게. 왜 그럴까. 이제 와서는, 꿈……인 듯도 싶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임 캐릭터가 꿈인 건 좀…….’

         

        반사적으로 던질 뻔했던 태클을 가까스로 제때 삼킨 자신을 칭찬하며, 아크는 계속 얘기하라는 마음을 담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꿈 꿔본 적 있나요. 너무 생생해서, 깨고 나서도 그냥 있었던 일 같은…….”

         

        “아, 진짜 자면서 꾸는 꿈 얘기였어요? 네, 있죠……?”

         

        “그런데, 1년이 되도록 기억같이 생생한 꿈이면 그게 꿈이 맞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리 말하며, 이예나는 소주잔의 테두리에 손가락을 올려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아니, 소주잔은 대체 언제-’

         

        점점 격해지는 그 움직임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사람이 아니라, 잔이.

         

        ‘당장 지금이라도 쓰러트리면, 저 안에, 그-’

         

        아크는 조금은 다급하게 반문했다.

         

        “무슨, 무슨 꿈이었는데요? ……얘기해 줄 수 있어요?”

         

        “꿈……다 얘기하긴 너무 긴데. 아, 도적 물어보셨죠. 그러면……도적이 1티어 캐릭에, 프로 경기란 프로 경기마다 도적이 나오고……그렇네요. 그런 꿈이었어요.”

         

        농담할 타이밍이 아니지 않느냐는 볼맨소리를 내뱉으려던 아크는, 이예나의 눈망울을 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조명이 조금 전보다 많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이예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차라리, 그게 옳게 된 세상이니, 현실도 그렇게 되어야 하니 따위의-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헛소리를 늘어놓으면 모를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체, 뭐라 말해야 할까.

         

        “……망겜이네요.”

         

        -흐흫.

         

        쭈욱, 하고 잔에 가득 채워둔 소주를 들이킨 이예나가, 배시시 웃고는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를 머금었다. 눈매는 여전히 늘어지듯 처진 채.

         

        “망겜이었죠. 얼마나 망겜이었는지, 우리 지니씨는 상상도 못할거야. 아무튼……그랬는데. 꿈을 깨고 나니 도적은 쓰레기 캐릭, 아무도 안 하는 캐릭, 하면 욕 먹는 캐릭……그렇더라고요. 뭐, 사실 꿈이랑 현실이랑, 그것만 달랐던 건 아니에요. 오히려 비슷한게 더 적었지…….”

         

        이예나는 다시금 소주잔을 가득 채워 입으로 기울였다. 그리 하며 낮은 목소리로 사람도 다른 마당에, 라고 말하는 의미를, 아크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를 아크의 탓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리라.

         

        “하지만, 다른 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으니까. 이거라도, 이거라도 꿈이랑 똑같아지면 조금 숨통이 트이려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그렇네요.”

         

        처연한- 아니, 후련한 걸까. 옅은 한숨을 내쉰 이예나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자리에 깊게 누웠다.

         

        술 때문일까.

         

        아크는 어째서인지, 이예나가 그대로 가라앉아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와, 꿈에도 나오나가 나와요? 진짜 나오나 사랑 하나는 인정해야겠네. 나, 져, 아니, 저도 나름 나오나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예나님 본 이후로는 어디가서 함부로 말도 못하겠어서 무서워요.”

         

        “그런가. 흫. 뭐, 나오나……좋아하긴 하죠. 그래도, 꿈에 나왔다고 사랑하는 건지는……. 음.”

         

        말을 흐리며 잔을 내려놓은 이예나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아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맞추기가 버거웠으나, 피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 탓에, 아크는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이예나와 두 눈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원처럼 느껴지는 몇 초가 흐르고-

       

       이예나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조명을 비추는, 거울처럼 투명한 눈이었다.

         

        -흐흫

         

        “아닐 거예요. 지니씨……아니, 이름은 몰랐지. 아크씨도 그 꿈에 나왔으니까. 응.”

         

        이건 대체 또 무슨 말인지. 아크는 취기가 점차 몸에서 온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제가요?”

         

        “네. 방송……자주는 아닌데, 몇 번 봤어요. 그래서……깨고 나서는 뭔가 더 친밀한 느낌이었고. 지니님이 같은 꿈 꾼 것도 아닐 테니, 당혹스럽기만 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분명, 이어질 이야기가 있는 접속사였다. 그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예나는 아크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소주 병의 주둥이에 손가락을 올리고는 이리, 저리 병을 기울이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지만.

        

       “……제가요?”

       

       가까스로 찾아낸 숨을 폐로 옮겨 던져낸 작은 질문.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이예나는 계속하여, 양 손의 검지손가락마다 하나씩 잡은 두 병을 쓰러지기 직전까지 기울여가며 굴리고 있었다. 시선을 잡아끄는, 보고 있으면 조마조마한 서커스같은-

       

       그런 광경.

         

        분명, 그래서 눈을 뗄 수 없는 거라고 아크는 되뇌었다.

         

        분명, 그래서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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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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