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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유하늘의 아버지는 다소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걱정이 많아 유하늘이 뭘 하건 걱정하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늘 ‘그래, 알았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것이 유하늘과 아버지가 친밀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옛날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무뚝뚝한 인상이긴 했지만, 하는 행동도 옛날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아빠였으니까.

        

       유하늘이 뭔가 가지고 싶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평소에 그녀가 원하는 것을 유심히 보다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사 오거나, 한국에서 제일 이름난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말없이 지원해주고, 자기 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느새 퇴근해서 곁에 있는, 그런 아빠였다.

        

       그렇기에 유하늘은 아빠가 싫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무뚝뚝하고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이 없는 아빠였지만, 그 안에서 언제나 가족으로써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둘의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신뢰의 관계였다.

        

       그런 아빠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유하늘의 어머니는 유하늘이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할 때마다 걱정부터 하며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했지만, 유하늘의 아버지는 유하늘이 먼저 말을 하고 나면 그 이후로 다시 물어보는 일이 없었다.

        

       같이 노는 친구 이름이나 관계를 종종 물어보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굳이 그런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물어보기 쑥스러워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빠는 먼저 전화하거나 물어보는 것으로 걱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언제나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막상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오는 것이다.

        

       그런 아빠가, 드물게도 먼저 전화를 걸었다.

        

       유하늘은 우선 그 상황에 놀랐다.

        

       “어, 아빠?”

        

       복도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그래, 하늘아.]

        

       아빠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조금은 퉁명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무뚝뚝한 목소리.

        

       “……무슨 일 있어?”

        

       아빠가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유하늘은 사라네 집에서 자고 갈 때마다 먼저 집에 전화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다음날 언제쯤 돌아갈 것인지 미리 알렸다. 오늘도 당연히 그렇게 했다.

        

       그런데 평소라면 그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라는 말로 끝냈을 아빠가, 이렇게 다시 한번 전화를 한 것이다.

        

       [오늘 자러 간다고 했던 친구 집이, ‘예사라’라는 친구의 집이라고 했던가?]

        

       “……응.”

        

       여전히 평소의 아버지와 같은 말투였지만, 유하늘은 그 목소리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빠는 분명히 친구들에 대해서 잘 물어보지 않는데.

        

       유하늘이 학교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유하늘은 따지자면 말이 많은 편이었고, 엄마, 아빠와 식사하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물론 힘든 일은 빼고.

        

       너무 개인적인 일이나 심각한 일은 빼고, 말 그대로 즐거웠던 이야기만 골라서.

        

       왜냐하면, 자신이 학교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 엄마 아빠도 걱정할 테니까.

        

       그래도 요즘에는 걱정해야 할 일이 줄어서 말하는 게 훨씬 쉬웠었는데.

        

       [그래, 알았다.]

        

       “무슨 일 있어?”

        

       아빠가 그렇게만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것 같아, 유하늘은 다급하게 다시 물어보았다.

        

       [아니다. 재밌게 놀아라.]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무뚝뚝하고 짧은 대답뿐이었다.

        

       전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

        

       유하늘은 끊어진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일까.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주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사라에 대해서 물어본 것.

        

       평소의 아빠라면 유하늘이 누구와 논다고 해도 그 친구의 이름을 따로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유하늘이 학교 이야기할 때면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아 궁금하긴 한 모양이었지만.

        

       평소에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아빠였으니, 친구 이름 정도는 기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같이 놀고 있는 친구의 이름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아마 사라와 관련된 일이겠지. 일부러 사라 이름까지 확실하게 확인했으니까.

        

       최나경이 어떤 일을 저지른 걸까?

        

       유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

        

       유하늘의 아버지는 유진 그룹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일하는 회사가 유진 그룹과 일말의 관계도 없을 거라는 법은 없다.

        

       유하늘의 가슴 속 밑바닥, 제일 낮은 곳에서부터 죄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가족이 고통받게 되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 이야기를 사라에게 할 수도 없다.

        

       이건 유하늘 자신의 선택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유하늘 자신은 이미 사라에게 한 번 구원받았다.

        

       그런 사라에게, 또다시 다른 구원을 바라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방 안에서 기다리던 수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

        

       —결국, 그렇게 협의 아닌 협의가 이루어졌다.

        

       씻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한다는 명분에 따라, ‘사라’와 돌아가며 함께 씻는다는 협의.

        

       ‘씻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한다는 것 치고는 정작 소희와 수아가 함께 씻거나, 유하늘과 다른 아이가 함께 씻는다는 선택지는 없었지만.

        

       다들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쪽으로는 이상하게 둔감한 ‘사라’는 그 조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자신과 다른 아이들이 이어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걸까?

        

       그런 어리숙한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사라만큼 귀엽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그런 귀여운 모습을 보고도, 아까 그 전화를 받았던 유하늘의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하늘.”

        

       그리고 그런 그녀의 심리 변화를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무슨 일이라도 있어?”

        

       ‘사라’였다.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며 그런 질문을 하는 ‘사라’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귀여웠다.

        

       왜냐하면, 그녀의 모습이 바로 사라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라와 ‘사라’는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유하늘이었지만, 그래도 같은 몸으로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반칙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같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두 사람이 쌍둥이였고, 서로 다른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이렇게 반응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조금 자괴감이 생기는 유하늘이었다.

        

       “……아냐.”

        

       “뭐야, 무슨 일 있으면 빨리 말해. 얼굴에 다 쓰여 있으니까.”

        

       “응?”

        

       “너, 평소에 사라랑 있으면 언제나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었잖아. 그런데 지금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으면 내가 신경이 쓰이겠어, 안 쓰이겠어?”

        

       “어어?”

        

       그 말에, 유하늘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 그런 걸 구분할 수 있어?”

        

       “내가 바보야?”

        

       ‘사라’는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유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평소에 제일 자주 붙어 다니는 애들이 너희들인데? 그거 알아? 너희들, 나랑 같이 붙어있는 시간만 따지면 양혜인 씨보다 훨씬 길다는 거. 나는 평소에 그 사람 눈으로 너희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 눈치는 있거든?”

        

       그리고 콧방귀를 한 번 뀌고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포커페이스의 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만두는 게 좋아. 프로 도박꾼이 아니어도 너희들의 다채로운 표정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특히 평소에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사람이 죽상을 하고 있으면 바로 티가 나는 법이니까. 그렇지?”

        

       그렇게 말한 ‘사라’는, 주변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소희와 수아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봐, 쟤들도 동의하잖아. 그러니까 얼른 말해. 찝찝하니까.”

        

       “……정말로 그렇게 보였어?”

        

       “그렇다니까?”

        

       “…….”

        

       ‘사라’의 말에, 유하늘은 ‘사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나를 도와주고 싶다는 말이야?”

        

       그리고 영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다.

        

       ‘사라’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당연하지. 나라면 뭐라도 도움이 될 테니까. 일단 사람 수명에 관련된 거 아니면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지 않겠어? 아, 아니다. 사람 수명에 관한 거라도 최대한 도와줄 수 있겠다.”

        

       “…….”

        

       혼자 중얼중얼 말을 늘어놓는 ‘사라’를, 유하늘은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으엫!?”

        

       기습적으로, ‘사라’를 확 끌어안았다.

        

       유하늘을 ‘친한 친구’ 이상으로 보고 있지 않은 ‘사라’는, 그 행동에 아주 당황한 모양이었다.

        

       “어, 야, 무슨 짓이야!?”

        

       그리고, 유하늘에게 이미 한 번 ‘당할 뻔’한 적이 있는 ‘사라’는, 이 행위에 엄청난 위협을 느꼈다.

        

       마치 사자 품에 들어간 고슴도치처럼 온몸을 뒤틀면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유하늘의 팔 힘은 ‘사라’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거 안 놔!?”

        

       “……정말 고마워.”

        

       버둥거리던 ‘사라’의 움직임은, 유하늘의 그 말을 듣고 멈추었다.

        

       “……정말로.”

        

       “……어, 어어…….”

        

       ‘사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한동안 그렇게 유하늘의 품에 안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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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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