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7

        

         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개념이 있다.

         

         동시 출현인, 두번째 자아, 누군가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이론.

         괴담으로 치부되는 요괴나 사람을 홀리는 악마, 마주칠 경우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죽는다는 도시전설.

         

         한 단어에 이렇게 많은 해석이 붙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 물건이다.

         저 중에서 정답이라 할 게 있는지, 지금 이 상황에 대입할 이론은 어느 것인지는 차지하고.

         

         어디까지나 내 기준상 봐 줄만 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흔하디 흔한 한국 남자와, 한 때 그가 온갖 욕망과 이성을 담아서 빚어낸 가상의 캐릭터였던 미소녀를 동일인물이라 주장하면 무슨 비약이냐고 태클 걸 인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씨발 뭐라고 하던 상관없었다.

         부정할 테면 부정하고, 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질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지랄해봐라.

         

         저건 ‘나’고 나는…… 나다.

         논리나 이성으로 설명하기 이전에, 정확하게 영상을 확대해서 얼굴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기도 전에 이미 본능이 알아챘었으니까.

         

         진실(Fact)이라는 녀석은 사물의 단면이자 그림자와도 같아서 사람이 바라보는 각도와 내리쬐는 빛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고 섣부른 정의를 내리는 것처럼, 확고부동한 진실을 마주했더라도 그게 맞을지언정 전부는 아닐 수도 있으니 항상 경계하고 주의해야 하나.

         

         진리(Truth)라는 것은 불변하며 그 자체로도 오롯한 이치이자 도리.

         아무리 혼란스럽고 믿을 것 하나 없는 처지라 하더라도 의존할 수 있는 기치일지니, 나는 내가 믿는-수호하는- 위치에서 물러설 생각 따위 없었다.

         

         – $%^#님… 괜찮%^&……!! –

         

         비산하는 살점, 모래사장에 뿌려지는 선혈. 연구소에 달린 녹화 장비라 그런지 화질도 더럽게 좋다.

         

         몇 번을 돌려봐도 망막에 새겨지는 장면은 동일하다.

         갑자기 녹화 품질이 떨어지고, 공간이 일그러지며 얼빠진 바보가 굴러 떨어지듯 허공에서 튀어나온 다음 어떻게 상황을 미처 파악해보기도 전에 바람 구멍이 숭숭 뚫려서 쓰러진다.

         

         이게 왜 당당하게 연구일지의 0번 참고 자료로 처달려있는 거야?

         얼씨구? 심지어 누가 친절하게 주석까지 달아 놨네. 뭐라고 씨부렸는지 어디 한 번 볼….

         

         – 아나스타샤님! 제발 진정하시고 먼저 심호흡부터 해주시길…!! –

         

         “어?! 뭐??”

         

         합금 코팅된 서늘한 기계 손가락이 흘러내린 앞머리를 헤치고 들어와 달아오른 뺨에 닿았다.

         화면을 파먹어 들어갈 기세로 숙여졌던 머리가 차가운 금속 표면이 주는 차가움과 그와 비교되리만치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는 손길에 노출되니 정신이 퍼뜩 든다.

         

         고개를 들어 제로의 홀로 스캐너와 눈을 마주친다.

         그제야 먹먹하던 청각과 모자이크 된 것 마냥 반쯤 흐려졌던 시각(Tunnel Vision)이 정상적으로 외부 정보들을 전달해온다.

         

         아무래도… 최대한 냉정하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침착은 개뿔 주변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머리에 피가 쏠렸던 모양이다.

         

         “…후우.”

         

         그렇게 몇 초간, 저릿저릿해서 감각도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열기가 가득 들어찼던 내 피부와 나만큼이나 당황한 것 같은 깡통 로봇의 냉기가 뒤섞여서 미지근해지고 나서야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조금 진정되셨습니까? –

         

         “…너나 그 미친듯이 발광하는 스캐너 좀 어떻게 해봐. 슬슬 눈 아프니까.”

         

         인간이 실수하는 것보다 정밀기계가 오작동을 하는 게 더 무서운 일이라는 걸 얘는 알랑가 몰라.

         나야 차가운 물 한 잔 마시면 떙이지만. 너는 머리 열고 여기저기 검사해야 겨우 잘못된 곳을 알 수 있….

         

         – 아, 이건 정밀 분석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고화질 녹화를 진행하고 있기에. 촬영 중임을 표시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

         

         “당장 지워. 소프트웨어를 통째로 갈아엎어버리기 전에.”

         

         냅다 으르렁거리자마자 스캐너가 정상 밝기로 되돌아왔다.

         사람이 기껏 고맙다고 할랬더니, 어디서 못된 걸 배워서 도촬을 하고 있어 도촬을.

         

         “너… ‘이거’ 다 담을 빈 공간은 충분해?”

         

         화장실에서 안 돌아왔는지, 아니면 오늘은 땡땡이 치고 숙소에서 쉬려는 건지는 몰라도 자칭 눈치 빠른 마리나는 아직 자리에 없었지만.

         방금 전까지 얘기를 나눴던 켄은 이쪽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는 말이라도 붙일 심산인지 연신 기웃거리고 있었다.

         

         한 쪽에 기계 눈알을 달아 놔서 보나마나 시력도 끝내주게 좋을 텐데, 괜히 여기서 화면에 자료를 띄워 놓은 채로 살피다가 걸리면 큰일 난다.

         

         여기서는 사이버웨어를 통해서만 몰래 몰래 보던가, 아예 예쁘게 포장해서 싸들고 방에 들어가서 찬찬히 살피는 게 무조건 맞는 판단이겠지.

         

         – 죄송합니다. 일반적인 텍스트 파일이라면 몇 백만개도 여유롭겠으나, 고용량 첨부 자료와 별도의 인증 플러그인이 많아서 용량이 들쭉날쭉한 기업 보안 문서의 경우 정확한 가늠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

         

         거기까지 말한 제로는 외부로 고스란히 표출되는 음성 모듈이 아니라, 통신 채널을 이용해 눈앞에 메시지를 띄워주었다.

         

         [ …20dB(decibel; 주로 소리를 표현할 때 쓰는 무차원 단위)이하의 목소리를 유지해 주셔야 감청 위협이 줄어듭니다. ]

         

         “쯧….”

         

         가볍게 혀를 찼다. 아주 사방이 잠재적 위협투성이구나.

         

         최근 느긋한 가정집에 얹혀 지내면서 안전권까지 내려갔던 스트레스 수치가 다시금 폭증하는 것 같았지만 겨우 진정했다.

         

         …진짜 조금만 참자. 여기만 어떻게 잘 마무리하면 진짜로 더이상 과거사에 얽매일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드드득…!!

         

         “아….”

         

         일단 대놓고 의자를 끌어서 작업하던 서버랙 반대편으로 넘어가버리자 명백한 거절을 감지한 켄이 시무룩해하는 게 언뜻 보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팀원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나 친목회보다 훨씬 중요한 용무가 있어서 어울려주기 힘들었다.

         

         어정쩡하게 일부만 복원된 자료를 추가로 다듬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 드러난 부분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실험 데이터나 시료들을 일일이 살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알아먹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지금 내가 찾는 건 과거와 현재의 괴리를, 어긋남을 해소해줄 뚜렷한 인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망할 스너프 필름에 달린 각주가 굉장히 짧은 건 아쉬웠다. 그만큼 주는 정보가 너무나도 적었으니…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계시(Revelation)’라고만 적어 놓으면 누가 제대로 알아먹는다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가릴 것 없이 음흉해 죽겠다. 이게 무슨 눈치 게임인 줄 아나? 할 말이 있으면 시원하게 털어놓을 것이지 그럴싸하고 멋있는 말만 툭툭 던져 대기는.

         

         뒤적뒤적.

         언젠가 한 번 그랬던 것처럼, 담겨있는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상자를 살피듯 신호를 넓게 흩뿌려서 내부를 헤집는다. 무작정 뒤지는 건 아니고 가느다란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더듬는 과정에 가까웠다.

         

         분명 0번 참고자료라 딱지가 붙어있었으니 그걸 참조해서 작성된 레퍼런스 파일도 어딘가에 있을 게 틀림없다는 예측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적중했다.

         

         ‘…오호라.’

         

         정보의 바다에 내던져졌을 때 손상될라, 흡사 질긴 청테이프로 몇 겹이나 휘감아 놓은 듯한 봉인이 베풀어진 상자가 손에 걸렸으니.

         

         깨끗하게 돌려놓을 계획도 없겠다 마구잡이로 포장을 잡아뜯고 안에 있는 내용물을 건져냈다.

         

         양식은커녕 파일이 수정된 날짜도 중구난방. 깐깐한 메가코프의 은닉 자료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형태의 난잡한 괴문서.

         이건…… 누군가가 남긴 일종의 수기手記인 것 같은데, 연구소 서버에 이런 물건을 사적으로 남길 정도면 꽤 높은 인물이라고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작성자 B.M? 비즈니스 모델스러운 이니셜을 가진 누군가 씨가 유용한 정보를 잔뜩 기록해 주셨기를 바라며 자세를 잡고 우선 가장 낡은 기록부터 펼쳤다.

         

         

         [ 2192년 8월 4일 토요일. …아마기의 숙원 사업은 여전히 허황된 점이 많다. 인간 육체가 품은 비밀을, 뇌가 간직한 모든 신비를 아직 밝혀낸 것도 아니거늘. 다짜고짜 그걸 전부 관장하고 제어하는 총괄 시스템을 개발해서 해결한다니? ]

         

         [ 인간을 살펴보는데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미들웨어(Middleware; 데이터와 사용자, 서로 다른 애플리케이션 간의 혁신이 원활하도록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는 점은 나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나. 이건… 걷는 게 불편하다면 달리고, 사칙연산보다 먼저 기호 논리학을 통달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

         

         [ …9월 20일 목요일. 100명의 표본의 바탕으로 일반적인 진화 모델을 설계하였으나, 이번에도 101명째 무작위 시민을 추가하자 예측 신뢰도가 급락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싸구려 통계지에서도 인용하지 않을 수준까지. ]

         

         [ 2193년 1월 2일 수요일.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큰 폭으로 증액되었다. 몸담은 기업의 대대적인 성공을 축하해야 할지, 혹은 설계도를 짜던 배양뇌가 또 과부하 되어서 죽은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

         

         [ 3월 18일 월요일…. 한걸음이 모자라다. 불규칙을 포함하는 규칙, 역설마저 포용하는 정설. 결정적으로 진화의 갈림길에서 우리 인류가 고르지 않았던 선택지에 대한 단서가 부족하다. 이걸 알아내지 않고서야 결과는 무작정 뽑아낼 수 있을지언정, 인간 대상의 보편적인 시술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

         

       

       

         [ 신께서 나에게 친히 해답을 내려 주셨다. ]

         

         

         오싹한 문구 바로 다음에 예의 그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나를 쏴 죽이는 게 어떤 식으로 지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는지 존나게 궁금한데, 아쉽게도 오늘은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 같았다.

         

         “응? 귀염둥아? 오늘은 야근하게? 우리 에이스께서 밤을 새신다면 나도 같이 매달려야….”

         

         “…아냐, 이제 들어갈 거야. 그리고 이건 아직 복구가 덜 끝났으니까 절대 건드리지 마. 절대.”

         

         그야 개운하게 씻고 일하다가 저녁 먹고 나서는 칼같이 숙소로 돌아가던 인간이 늦은 시간까지 계속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신경 쓰이겠지.

         자신도 남아서 업무 보조를 맞추겠다고 자처하는 마리나를 그런 게 아니라며 잡아떼어냈다.

         

         괜히 의심받을 수 있는 행동은 피하는 게 좋았기에 올바른 대처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머리를 화면 쪽으로 들이밀려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료도 복사하지 못하고 급하게 화면을 닫아버렸다.

         

         일부라도 챙겨서 방에서 더 확인하려고 했는데… 쩝.

         

         …….

         …폭!

         

         – 슈트는 벗고 누워 주셔야 제가 정리할 수 있습니다만. –

         

         “……몰라 인마!”

         

         잔소리를 일삼는 제로를 무시하고 얼굴을 마구 침구에다가 비볐다.

         

         서버실 쪽을 힐끔거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방으로 털레털레 돌아와서 침대에 뛰어들었다.

         푹신한 감촉이 배배 꼬인 속을 조금은 달래 주었지만 근본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제 내일부터는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작업 치고, 진짜 민감한 자료가 파묻혀 있다는 걸 알았으니 행동거지도 조심하고… 더럽게 바빠지겠네.

         

         “하….”

         

         시간이 촉박하다는 감정이 들자 아쉬워졌다.

         진짜 아무나, 거기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더라도 참 좋았을 텐데….

         

         수기를 작성한 B.M이 누구인지, 쓰러진 내가 어떻게 됐는지, 정확히 하고 있던 연구가 무엇인지.

         답은 없는데 질문만 켜켜이 쌓이고 있으니 뭐가 얹힌 것처럼 불편한 것도 당연하지 그래.

         

         그렇게 멍하니 빈둥거리다가, 결국 시선이 주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밍기적밍기적 외투를 벗던 와중에 간과한 사실이 떠올랐다.

         

         ……아이, 십 잠깐만. 내가 바보인 거야, 아니면 얘가 눈치가 없는 거야.

         

         “얌마… 제로? 너는 뭐 기억나는 거 없어? 최초로 내가 눈을 떴을 때, 너는 이미 그… 거기를 청소하고 있었잖아.”

         

         – ……. –

         

         나는 절대 유일한 생존자도, 혼자서 살아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삐삐쀼쀼.

    햐얌 님의 2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토요일 하루 정도는 정기 휴일로 잡고 싶기는 한데, 또 막상 주 6일 연재로 줄여 놓고도 펑크내거나 지각을 할까봐….
    조금 더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치과 다니기 시작하면 휴재할 일이 바로 생길 거라는 예상도 있지만요.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모두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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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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