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7

     과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국노’ 그레이였을 때.

     타ㅡㅡ앙.

     나는 몰락한 왕국의 충성병자들을 죽였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멸망한 노스트럼에 충성하며 왕국 부흥을 외치던 이를 사로잡아, 그걸 노스트럼의 수호자였던 가문의 후계자가 처형한다.

     망가진 전 지브롤터 변경백은 검을 들 생각도 없었고, 당대의 지브롤터 변경백은 손에 피를 묻힐 생각이 없었다.

     “충성병자들 때문에, 자네가 매번 고생이 많아.”

     황제, 합스베르크가 언젠가 협곡으로 찾아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그런 말을 했었다.

     “이 나라는 너무나도 이상하군. 지금까지 제국이 수많은 나라를 점령했지만, 유독 이곳만큼 왕국 부활을 외치는 곳이 또 없어.”

     “통일제국에서는 이전처럼 살 수 있는 권력이 없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자네가 조금 전에 쏴 죽인 충성병자도?”

     “…….”

     혁명군, 콩키스타도르.

     망국의 공주 아래 있었던 이 기사들은 오로지 ‘노스트럼을 위하여’라는 명분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순수하고, 맹목적이고, 이기적이지. 가족마저도 내팽개친 채, 제대로 된 금전적인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도 없이 오직 약탈만으로 식량과 자본을 확보하는 테러리스트들이야. 그저, 노스트럼을 부활시키겠다는 의도 하나만으로.”

     황제가 충성병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민의를 대변하는 왕국부활운동이 아니었기에, 망국의 백성들에게 ‘식량지원’이라는 지지를 받지도 못했다.

     결국 그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약탈을 감행하고, 화물철도를 습격하고, 가도를 돌아다니는 마도 차량을 습격하는 등 주로 ‘강탈’로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우며 활동했다.

     오직, 왕국을 되살리기 위하여.

     “자네가 만일 저들이었다면, 저들처럼 왕국의 부흥을 위해 행동했겠는가?”

     “글쎄요.”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일일 텐데, 왜 저렇게까지 멸망한 나라를 위해 애쓰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저들의 입장이라면. 왕국을 부흥시키는 것이 가족을 살리고 가장 행복하게 사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런 이유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이해를 해보려고 했었다.

     “왕국 부흥 활동이라는 행동이, 망국의 부활이라는 것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한다면, 그건 합당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왕국 부활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예. 가령.”

     나는 그때.

     “합스베르크 황제를 죽이거나 이 땅에서 노스트럼을 부활시키는 것이 황제를 향한 ‘복수’다.”

     황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시늉을 했던 것 같다.

     “이거면 충분히 명분이 서지 않겠습니까?”

     “…흐하하!”

     그때, 황제가 그런 말을 했었다.

     “그래. 차라리 이건 이해라도 하지. 충성병자와 달리, 복수라는 감정은 지극히 인간적인 부분이니까.”

     총구를 겨눴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총을 옆으로 치우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를 적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복수심을 품게 하지 않게 해야겠지. 혹시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 혹시나 충성병자들을 처리하는 게 귀찮다면, 자네에게 있는 ‘처형인’의 직위를 다른 이에게 넘기겠네.”

     “됐습니다. 그 사람들 죽이는 거, 제가 떠맡는 게 가장 안전하니까요.”

     매국노 그레이는 사로잡혀 왔던 혁명군을 죽여왔다.

     “혁명군의 가족이 누군가를 향해 복수심을 품는다면, 차라리 제게 품는 것이 모두에게 편합니다.”

     그들의 가족은 원론적으로는 혁명에 나선 가족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그런 가족을 쏴 죽인 매국노 변경백을 향한 증오를 품었다.

     “제가 아니라 다른 이가 나선다면, 분명 복수심을 품은 이에게 테러를 당하겠죠. 그리고….”

     “그리고?”

     “처형인이 다른 이가 된다면, 제가 죽이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죽을 겁니다. 폐하.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네가 내게 조언을? 하하. 오랜만이군. 뭔가?”

     “죽이는 방법이 잔혹하게 쳐죽이면 제2의 충성병자가 태어나지만, 예우를 갖추어 죽인다면 그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호오.”

     “노스트럼의 사람들은 그러합니다.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더라도 사지를 자르고 고문하고, 그러한 공포는 결국 최종적으로는 영웅을 탄생시키기 마련이죠.”

     “그런가.”

     혁명군 활동을 하는 자들에 대하여, 황제도 나도 그들의 행동 원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차라리 복수심으로 이렇게까지 독기를 품은 자들이라는 게 받아들이기 쉽겠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도 아니고, 오직 멸망한 나라를 되살려 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행동한다니 말이야.”

     오직 노스트럼을 위해서.

     “자네는 이런 자들, 이해할 수 있나?”

     “이해 못 합니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이들에게, 전통과 역사에 따른 맹목적인 충성이라는 개념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얼마 전에 제국의 역사학자들이 회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 이런 이들을 정말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그래도 조금 노스트럼 입장에서 우호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애국(愛國), 말입니까?”

     “그래.”

     국가를 향해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국가를 사랑하는 지경에 이른 자들.

     “그 사랑을 나, 합스베르크 제국으로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황제가 끝끝내 꺾지 못해, 결국 ‘몰살’이라는 선택을 내리게 만든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중심에 나리아가 있었고, 그 옆에 팰우드 롤랜드가 있었다.

     나의 벗.

     * * *

     

     ‘여전하네.’

     회귀 전이나 후의 사람은 서로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가, 여러 사람을 살펴보며 그 근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팰우드 롤랜드, 롤랜드 후작가의 후계자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불편하십니까, 총장님?”

     “아니. 노스트럼의 기사라면 응당 저러는 게 맞지.”

     팰우드의 갑작스러운 사퇴 및 지지 선언에 대하여, 총장은 기쁜 기색과 불편함을 동시에 내비쳤다.

     “선거는 망했군.”

     “하아….”

     바토리 부총장은 한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한탄했고, 나는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안심하십시오, 총장님. 원래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지지선언을 하는 건, 반대로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게 안심할 일인가?”

     “선거가 공명정대하게 진행될 것을 기대하는 ‘총장님’께 말씀드린 겁니다. 하지만 윈체스터 대공께 말씀드린다면, 저런 식으로 뒤이어 자진 사퇴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건 분명 나리아 공주에게 좋은 일이겠죠.”

     반감이 생기든 말든, 뒤에 올라오는 후보들은 아무리 인성이 안 좋아도 최소한 자기 주변에 다섯 표 정도를 가진 이들이다.

     “저들을 향한 표가 과연 어디로 튈 것인가. 분위기에 휩쓸려 나리아를 향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에게 갈 것인가.”

     “으음….”

     “애초에 이 투표는 시작부터 삼파전이었습니다.”

     “누아르. 블론드. …나리아.”

     바토리 부총장이 손가락 세 개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입맛을 다셨다.

     “전통적인 왕국의 수호자. 제국에서 온 신성. 그리고….”

     “지금까지 왕족 스스로 학생회장이 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어쩌면 나리아가 최초일 겁니다.”

     “…이거, 기대하기 힘들 정도인데.”

     바토리 부총장은 반쯤 포기한 얼굴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이제는 얼마나 나리아 공주께서 표를 가져가시냐. 그 차이겠어.”

     “얼마 정도 예상하셨습니까? 블론드 학생.”

     “최소 40, 많으면 60?”

     “진짜 많네요.”

     1/5.

     신입생 300명 중에 많으면 60명이 제국 사람에게 투표를 한다?

     “만일 나머지 16명의 후보가 60표 이하로 받았다면, 아마 선거 끝난 뒤부터 혈전이 일어날 겁니다.”

     “누가 제국 유학생에게 투표했는가.”

     “예. 검증 작업이 일어날지도 모르죠.”

     학생회장으로 당선된다면 분명 누가 누구에게 투표를 했는지, 충성병자의 자질을 가진 자들은 색출 작업에 나설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만일 나리아든 누아르든 아무나 이긴다면, 표가 얼마나 나오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어째서?”

     “비밀 투표니까요. 설령 들킨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를 덧붙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블론드가 패배한다면, 그냥 ‘장난이었다’라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

     “그래도 저렇게 호기롭게 나왔는데 남자답다는 포부. 제국인 10표만 받으면 불쌍할 것 같다는 동정. 나 하나쯤이야 하는 장난. 원래 생각한 후보에게 찍었어야 했는데, 다른 후보의 칸에 도장을 찍은 실수.”

     전부, 보육원에서 놀이 때마다 투표했을 때 일어난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몇몇 반란표 때문에, 결과가 본인이 원하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

     “선거는 전쟁입니다. 이기면 그만이죠.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라….”

     “천천히 지켜보도록 하죠. 마침, 연설도 다 끝났으니.”

     17명, 마지막.

     모든 후보의 연설이 끝난 뒤, 곧 투표가 시작되었다.

     투표가 완료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30분.

     300명이 전부 1표씩 기표소에 들어가 도장을 찍고, 마석으로 제작된 투표함에 들어간 용지를 헥스 자작과 학생처 직원들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직접 표를 열며 실시간으로 기록한 결과.

     “…제1차 학생회장 선거의 당선인. 140표를 받은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1등.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짝짝짝짝.

     절반가량의 지지를 받은 나리아가 학생회장이 되었다.

     * * *

     늦은 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신입생 전체를 상대로 학생회장 당선을 축하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태양의 홀 앞 야외 광장에서 연회를 펼치는 사이.

     “고생하셨습니다, 헥스 자작님.”

     “…다리 아파서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이 7층 건물 창문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뭐지?”

     “여기는 그래도 되는 곳이니까요.”

     “그 지팡이는 언제까지 그러고 다닐 거냐?”

     “지팡이가 필요 없어질 때?”

     나는 학생처 건물의 꼭대기 층인 7층, 헥스 자작의 사무실에 몰래 잠입했다.

     “선거 진행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뭘. 예상대로 되어서 다행이지. 변수는 크게 없었어.”

     “나리아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네가 입후보한 것도 아닌데 뭘.”

     헥스 자작은 벽에 걸어둔 큼지막한 개표 결과 용지를 가리켰다.

     

     “누아르, 74표. 14살이 이 정도로 받았으면 많이 받은 거지.”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었나요.” 

     “어른이라면 모를까, 20대 미만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1살 차이가 얼마나 큰데? 그나마 지브롤터니까 이렇게 많이 받은 거지.”

     “그렇겠네요.”

     “야. 네가 나섰으면 얼마나 받았을 것 같아?”

     “137표.”

     “…뭔데, 그 애매하면서 구체적인 수치는.”

     “그냥, 그럴 것 같아서.”

     별 의미는 없다.

     누군가의 기억 구석에 처박혀있는, 생애 처음으로 맛본 패배의 기억이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어디 한번 말해봐.”

     헥스 자작이 진지한 얼굴로 가운데에 있는 ‘투표함’을 가리켰다.

     “이걸로 이제 뭘 어떻게 하려고?”

     “모르가니아 가문의 첩보부, ‘검은장미’의 수장께 묻습니다.”

     “…….”

     “검은장미의 모토는 무엇입니까?”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은 없다.”

     헥스 자작은 반쯤 감긴 눈으로 순순히 답했다.

     “그런데 이건 불가능해. 기표소에 영상 마석을 설치한 것도 아니고, 뭔가 이상한 조작을 한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투표를 준비한 건 학생처 직원 중에서도 제국인들이었고….”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습니다. 몇 가지 장난질, 그리고 ‘시간’에 대한 개념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도 없죠.”

     스르륵.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투표함이 열린다.

     “알고 싶잖아요?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이미 한 번 쏟아졌다가 펼쳐진 종이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지만, 나는 그중에서 나리아에게 찍힌 표 중 몇 개를 ‘골라내어’ 집어 들었다.

     “순서, 기억, 시간. 이것만 있으면 알아내는 것도 문제없죠.”

     “…무슨 소리를 하려고?”

     “300명이 투표를 한 순서를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있고, 그중 중간중간 ‘표식’을 박아놓은 채로 나열하면 이 무분별한 구성의 종이가 전부 다 순서대로 나열될 겁니다.”

     나는 하나, 누아르에게 도장이 찍힌 표를 앞쪽에 놓았다.

     “이 표의 주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누아르한테 표를 준 친구만 74명인데?”

     “137번째에 표를 준 웬즈데이입니다.”

     “…….”

     헥스 자작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34번째. 85번째. 이건…쳇, 299번째.”

     “야. 이거, 너 설마….”

     “보육원 출신들에게 모두 같은 지시를 내렸습니다. 도장을 찍을 때, 그 위치를 지정하도록 만들었죠. 나리아에게. 좌하단 규격에 원이 딱 맞게, 그러면서 도장 왼쪽 위 부분으로 힘을 줘서 원의 바깥쪽이 굵게 찍히도록.”

     “그런 걸 언제 지시한 건데? 너, 그런 거 알려줄 상황은-”

     “보육원 출신.”

     아카데미에서의 활동에 대한 사전 작업은 이미 보육원에서의 놀이 활동으로 전부 준비되어 있다.

     “첩보원끼리 접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정보 교환이 된다면, 그걸 적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는 없겠죠. 흐흐. 그냥, 애들 장난인 겁니다.”

     “……장난질이 좀 심한데.”

     “심하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죠.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건데.”

     나는 몇 가지 표를 훑다가, 137번의 옆에 표 하나를 놓았다.

     “이건 순전히 인간의 몸 자체에 의지해야 하는 부분이고 막노동에 가깝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헥스 자작님.”

     “제일 불안한 소리를 하는데, 물어보자. 그래. 네가 미리 심어둔 애들 표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다고 쳐. 그런데 다른 사람들 표는 어떻게 조사하려고?”

     “퍼즐놀이 해본 적 있으십니까?”

     “퍼즐?”

     “예. 피스를 맞추는 퍼즐 말입니다. 짜 맞추는 놀이를 하면 하나의 그림이 만들어지는 퍼즐.”

     나는 표를 쭉 훑은 뒤, 137번째 표의 옆에 다른 표를 하나 붙였다.

     “제국에서 제작된 투표용지이며 아무런 마법적 조치는 없지만, ‘인쇄물’이죠. 그리고 이 인쇄용지는….”

     나는 136번째에 놓아둔 투표용지를 흔들었다.

     “크기가 작습니다.”

     “……?”

     “한 장이 그대로 투표용지가 된 게 아니라, 하나의 단면에 여러 개의 투표용지가 나오도록 인쇄한 뒤에 이걸 물리적으로 잘랐다는 거죠.”

     136번째와 137번을 빳빳하게 펼쳐, 그걸 옆으로 붙인다.

     “짜잔.”

     “…….”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긴 하죠. 상급 기사가 오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하지만 마스터급의 인재가 눈에 마나를 불어넣는다면. 손가락 끝에 감각을 집중해서 잘린 종이의 결조차 인지할 수 있다면.”

     나는 오른쪽 다리를 가볍게 툭 풀고 의자에 앉은 뒤, 집무실의 넓은 책상 위에 전지를 깔고 번호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헥스 자작님. 일하실 시간입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미친 짓이지만, 궁금하시잖아요. 누가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 왕국의 공주인가, 왕국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왕국인이면서 제국인을 향해 표를 던졌는가?” 

     “으, 으으…!!”

     “시간은 많습니다. 헥스 자작님만이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제가 최대한 돕겠습니다.”

     “너도 할 수 있으면서…!”

     “무슨 그런 위험한 말씀을. 돕겠다고 했잖습니까. 그냥 퍼즐 놀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나는 13번의 아래, 나리아에게 찍힌 표를 펼치며 그 아래에 이름을 적어넣었다.

     “이런 거 찾아내는 게 원래 첩보부 역할 아니겠습니까.”

     “…아스타시아?”

     “예.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재밌는 놀이.

     “간첩색출.”

     “……!”

     “아스타시아는 왜 나리아에게 표를 던졌을까. 그 이유는 모르지만, 표를 줬다는 것 하나만은 알 수 있죠.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87번째.

     “앤디 제퍼슨. 스스로 나리아 공주의 친위대를 자처하던 이 인간은 왜 제국유학생 블론드에게 표를 줬을까.”

     “…….”

     “평소의 말과 행동이 투표 결과와 다른 이들, 찾아내는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너. 진짜, 하아….”

     헥스 자작이 얌전히 안경을 벗으며, 손으로 눈을 쓱 훑었다.

     “어느 누가 교직원 회의에서 그렇게 부르짖었던 비밀 투표 원칙은 당일날 바로 죽었군.”

     “투표함을 뒤져서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아내는 게 불법인 것도 아닌데요, 뭘.”

     “뭐라고?”

     “왕국법에도 제국법에도, 이거 위법 아닙니다. 애초에 관련법이 없으니까요.”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미션] 파쇄기에 갈린 종이 결대로 짜맞춰서 기밀보안문서(1급) 복구하기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