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7


    ​
    ​
    아이리스가 헤매고 있는 장소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던전과는 종류가 달랐다.
    ​
    ​
    노인의 던전은 고대부터 존재해왔던 전통적인 던전이라면, 아이리스가 헤매고 있는 던전은 현혹의 던전이라 불리는 진화된 던전이었다.
    ​
    ​
    현혹의 던전은 인간의 정신을 홀려 먹잇감을 던전 안으로 끌어당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앞뒤로 이어지는 길 한복판에 서 있게 된다.
    ​
    ​
    수십 개로 나뉜 길과 간간이 튀어나오는 몬스터, 정신을 좀먹는 정신계 디버프, 길을 되돌아가도 처음 있던 장소로 돌아갈 수 없는 살아서 움직이는 미로. 
    ​
    ​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갈 수는 없는 곳이 바로 이곳 현혹의 던전이다.
    ​
    ​
    일반적인 현혹의 던전은 주변을 지나가는 ‘인간’을 전부 홀리지만, 이 던전은 달랐다. 여자가 노인의 도움을 받아 조건을 바꾼 탓이다.
    ​
    ​
    그렇게 바꾼 조건은 아래와 같다.
    ​
    ‘던전 주변을 지나가는 인간’이 아닌, ‘초경을 겪은 외모가 빼어난 처녀 여성’으로.
    ​
    ​
    빼어난 외모의 기준은 여자의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아이리스 수준의 미녀가 아니고서야 던전으로 끌려오는 경우는 없었다.
    ​
    ​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고 헤매다가 모든 걸 포기하고 절망하는 모습이 정말 짜릿하지!’
    ​
    ​
    그녀는 황홀한 표정으로 미로를 헤매기 시작한 아이리스를 바라보며 입술을 할짝거렸다.
    ​
    ​
    ‘자 -… 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
    ​
    모든 것이 그녀가 생각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
    “킁킁? 어라? 분명 쭈인님 냄새를 쫓아가고 있었는데? 여긴 어디지?”
    ​
    ​
    아이리스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수인 제스와
    ​
    ​
    “…? 여긴..어디지? 분명 피아를 찾고 있었는데?”
    ​
    ​
    최근 머리를 자르지 못해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꽁지머리로 묶은 노아가 던전에 들어오고 말았다.
    ​
    ​
    태어나서 한 번 만나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가진 아이리스같은 여자, 그것도 처녀인 여자가 설마 마을에 세 명씩이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탓에 그녀는 제스와 노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
    ​
    여자는 수정구에 아이리스만을 띄워놓은 채 히죽거리기 바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 한 채.
    ​
    ​
    ***
    ​
    ​
    문제, 주인을 잃어버린 채 낯선 미로에 떨어진 수인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
    1. 얌전히 주인을 기다린다.
    2. 이성적인 생각을 통해 나갈 장소를 찾는다.
    ​
    ​
    “쮠님!”
    ​
    ​
    쿠구구궁, 콰과광!
    ​
    ​
    3. 눈앞에 있는 걸 벽들을 무참하게 파괴하며 미로를 미/로로 만든다.
    ​
    ​
    제스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지혜로운 수인은 빨리 죽는다고 배워 제 머리를 잘 쓰지 않거나 여우처럼 쓰고도 안 쓴 척할 뿐이다.
    ​
    ​
    그런 제스이기에 머리를 열심히 굴리면 눈앞에 있는 미로를 꿰뚫어 보고 탈출로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비효율적이었다.
    ​
    ​
    효율적으로 빠르게.
    ​
    ​
    두 가지의 조건을 넣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답은 쉽게 나왔다.
    ​
    ​
    쾅! 콰드득!
    ​
    ​
    눈에 보이는 벽을 전부 부숴버리면 되는 것이다. 못해도 1m 두께 정도 되는 돌벽이 제스의 손아귀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현혹의 던전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런 던전의 돌벽을 제스처럼 부숴버리는 건, 살아있는 생물의 장기를 조각조각 내 안에서부터 망가뜨리는 행동이나 다를 바 없었다.
    ​
    ​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던전 내부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
    ​
    거기다 던전 중간중간에 숨겨져 있는 보호 마법진과 디버프 마법진 등 다양한 마법진을 전부 부숴버린 바람에 던전은 점차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
    ​
    난동은 제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
    ​
    스릉 -.. 쿠웅!
    ​
    ​
    얼마나 벽을 깔끔하게 갈라버린 건지, 한 번의 휘두름으로 벽이 자로 그은 것처럼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
    ​
    “피아! 들리면 대답해!”
    ​
    ​
    노아는 굳은 표정으로 잘린 벽을 넘어갔다. 부서진 돌벽 조각이 그녀의 발에 밟혔다. 그리곤 다시 제 앞을 가리는 벽을 ㅂㅕㄱ으로 만들어버렸다.
    ​
    ​
    시간이 지날수록 던전 내부는 엉망이 되어갔고, 흡사 톱니바퀴에 돌조각이 걸린 메드사이어티스트의 로봇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
    ​
    “오빠? 여기 있어?”
    ​
    ​
    이에 따라 원래는 드러나선 안 되는 길까지 드러나 아이리스가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녀는 어둑한 길을 따라 걸으며 눈을 위험하게 빛냈다. 제 오빠와 일정 시간 이상을 떨어져 있게 되면서 인내심이 팍팍 떨어지고 있는 탓이었다.
    ​
    기분 탓인지 머리카락이 더 탁하게 물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
    ​
    개판 3초 전인 상황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이가 있었으니. 
    ​
    ​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
    아이리스를 던전에 끌고 온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
    ​
    “저년들은 도대체 누구고! 몬스터들은 왜 저렇게 약해진 거야! 마법은 왜 발동하지 않는 거고!?”
    ​
    ​
    제스의 손짓 한 번에 광역기라도 당한 것처럼 한 번에 날아가 버리고, 노아가 휘두른 칼질 한 번에 목이 후두둑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보자 그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
    ​
    초보자 던전에 고인물들이 떨어진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
    ​
    ​
    둘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에 아이리스가 들어가선 안 되는 비밀 공간까지 침범하자 그녀는 정말 기절할 것만 같았다.
    ​
    ​
    “아.. 안돼! 거긴 중요한 마도구가 있다고!”
    ​
    ​
    정신이 완전히 무너진 이들이 홀린 듯이 제 발로 향하게 되는 ‘처리실’. 아이리스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장소였다. 
    ​
    ​
    애초에 던전 내에 들어온 이의 정신이 완전히 망가져야만 통로가 열리기에 안으로 들어가면 중요한 마도구들이 무방비하게 놓여있었다. 그게 하나라도 망가지게 되면 처녀의 피를 뽑아내 젊음을 되찾는 건 불가능했다.
    ​
    ​
    ‘으아아! 그게 망가지면 당분간은 젊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
    ​
    ​
    하지만 마도구는 어디까지나 마도구.
    ​
    ​
    다시 구하려고 한다면 불가능할 거 까진 없었다. 온갖 잔혹한 물건이 매일 같이 만들어지는 마왕의 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
    ​
    최악은 아니었으나, 작은 피해라도 보면 최악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게 인간의 심리였다. 
    ​
    ​
    ‘이대로는 안 돼! 당장 막아야 해!’
    ​
    ​
    그녀는 자신이 무대 위에 올라가면 어떤 최악을 맞이하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아이리스가 마도구를 망가뜨리는 걸 막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
    ​
    배우가 전부 무대 위에 올라왔고, 개그 필터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
    ​
    ‘분명 지하에 수호 골렘이 있었지? 그놈들을 조종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
    ​
    …그렇게 순애를 파괴하는 여자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
    ​
    ***
    ​
    ​
    비릿한 혈 향이 벽과 바닥에 스며든 ‘처치실’. 아이리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방 안을 훑어보았다.
    ​
    ​
    ‘…기분나빠. 빨리 밖으로 나가야겠어.’
    ​
    ​
    제국 사람이라면 기겁을 하다못해 악몽에 나올까 무서운 장면이지만, 마왕의 땅에선 흔한 장면이었기에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
    ​
    고문 도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온갖 마도구들을 슥 훑어보다가 무언가가 시선에 들어왔다. 둥근 손잡이 같은 게 벽 중간 부분에 달려있었다.
    ​
    ​
    ‘빠져나가는 문인가?’
    ​
    ​
    콰직.
    ​
    ​
    아이리스는 아무런 생각 없이 손잡이처럼 생긴 물건을 돌려보았다가 그대로 산산이 부숴버리고 말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손잡이가 아니라 진한 흑색의 광석이 받침대 같은 것에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
    ​
    “음..”
    ​
    ​
    아이리스는 미련없이 조각난 광석을 바닥에 버려버렸다. 그렇게 수호 골렘을 조종할 수 있는 핵이 부서지고 말았다. 이를 시작으로 아이리스는 온갖 물건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
    ​
    의도한 건 아니었다.
    ​
    ​
    방 탈출 게임에 참가한 손님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것도 탈출할 때 사용하는 건가?’하면서 천장을 뜯어보고, 소화전도 뜯어보는 것처럼.
    ​
    ​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이곳저곳을 건드렸을 뿐이다.
    ​
    ​
    “아, 찾았다.”
    ​
    ​
    아이리스는 방 안에 있는 모든 마도구를 망가뜨린 후에야 책장 뒤에 있는 통로를 찾을 수 있었다. 
    ​
    ​
    …특정한 방법으로 가구를 옮겨야만 나타나는 통로였지만 이를 아이리스가 알 방법은 없었다.
    ​
    ​
    ‘오빠…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건 아니겠지?’
    ​
    ​
    아이리스는 눈을 위험하게 빛내며 발걸음을 재촉하여 안으로 향했다. 
    ​
    ​
    그 시각, 중년의 여자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몸이 꽤 젊어졌지만, 완전히 젊은 몸은 아니었던 탓에 관절이 삐그덕거렸다. 하지만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
    ​
    쿠웅! 쿵!
    ​
    ​
    그녀의 뒤로 높이가 3m가 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골렘 무리가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꺄아아악! 나는 이 던전에 주인이라고!”
    ​
    ​
    비명을 내지르며 소리 질러 보지만 골렘은 명령을 듣지 않았다. 아이리스가 수호 골렘을 조종할 수 있는 보석을 부순 탓에 골렘은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이를 적으로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
    이를 알 리 없는 여자는 머리가 산발이 된 채 화장이 번진 얼굴로 미친 듯이 달려야 했다.
    ​
    ​
    그로부터 3분은 더 달리다가 겨우겨우 비밀 통로로 들어와 숨을 돌렸다.
    ​
    ​
    “허억,허어어억…!”
    ​
    ​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굴이 폭삭 늙어버린 채 습한 날의 빨래처럼 바닥에 축 늘어졌다.
    ​
    ​
    “이럴, 이럴 순 없어… 전부 꿈일 거야…전부…”
    ​
    ​
    그녀는 도저히 답이 없는 상황에 제 얼굴을 감싸 쥔 채 중얼중얼 거렸다.
    ​
    ​
    “어,어어?”
    ​
    ​
    그러다가 제 얼굴을 더듬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는 후다닥 제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거울을 꺼냈다.
    ​
    ​
    “꺄아아아아아아악!”
    ​
    ​
    골렘에게 쫓겨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지르지 않았던 귀곡성 같은 비명이 비밀 통로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안돼! 안돼! 내 미모가! 내 젊음이…!”
    ​
    ​
    옅은 주름 자국만 있던 팽팽한 얼굴은 어디 가고 볼살이 홀쭉하게 빠져 축 늘어진 피부와 자글자글한 주름이 얼굴에 가득했다. 거기다 머리카락은 서서히 뿌리부터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다음화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후다닥)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아이리스가 헤매고 있는 장소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던전과는 종류가 달랐다.

노인의 던전은 고대부터 존재해왔던 전통적인 던전이라면, 아이리스가 헤매고 있는 던전은 현혹의 던전이라 불리는 진화된 던전이었다.

현혹의 던전은 인간의 정신을 홀려 먹잇감을 던전 안으로 끌어당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앞뒤로 이어지는 길 한복판에 서 있게 된다.

수십 개로 나뉜 길과 간간이 튀어나오는 몬스터, 정신을 좀먹는 정신계 디버프, 길을 되돌아가도 처음 있던 장소로 돌아갈 수 없는 살아서 움직이는 미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갈 수는 없는 곳이 바로 이곳 현혹의 던전이다.

일반적인 현혹의 던전은 주변을 지나가는 ‘인간’을 전부 홀리지만, 이 던전은 달랐다. 여자가 노인의 도움을 받아 조건을 바꾼 탓이다.

그렇게 바꾼 조건은 아래와 같다.

‘던전 주변을 지나가는 인간’이 아닌, ‘초경을 겪은 외모가 빼어난 처녀 여성’으로.

빼어난 외모의 기준은 여자의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아이리스 수준의 미녀가 아니고서야 던전으로 끌려오는 경우는 없었다.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고 헤매다가 모든 걸 포기하고 절망하는 모습이 정말 짜릿하지!’

그녀는 황홀한 표정으로 미로를 헤매기 시작한 아이리스를 바라보며 입술을 할짝거렸다.

‘자 -… 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그녀가 생각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킁킁? 어라? 분명 쭈인님 냄새를 쫓아가고 있었는데? 여긴 어디지?”

아이리스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수인 제스와

“…? 여긴..어디지? 분명 피아를 찾고 있었는데?”

최근 머리를 자르지 못해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꽁지머리로 묶은 노아가 던전에 들어오고 말았다.

태어나서 한 번 만나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가진 아이리스같은 여자, 그것도 처녀인 여자가 설마 마을에 세 명씩이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탓에 그녀는 제스와 노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자는 수정구에 아이리스만을 띄워놓은 채 히죽거리기 바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 한 채.

***

문제, 주인을 잃어버린 채 낯선 미로에 떨어진 수인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1. 얌전히 주인을 기다린다.

2. 이성적인 생각을 통해 나갈 장소를 찾는다.

“쮠님!”

쿠구구궁, 콰과광!

3. 눈앞에 있는 걸 벽들을 무참하게 파괴하며 미로를 미/로로 만든다.

제스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지혜로운 수인은 빨리 죽는다고 배워 제 머리를 잘 쓰지 않거나 여우처럼 쓰고도 안 쓴 척할 뿐이다.

그런 제스이기에 머리를 열심히 굴리면 눈앞에 있는 미로를 꿰뚫어 보고 탈출로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비효율적이었다.

효율적으로 빠르게.

두 가지의 조건을 넣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답은 쉽게 나왔다.

쾅! 콰드득!

눈에 보이는 벽을 전부 부숴버리면 되는 것이다. 못해도 1m 두께 정도 되는 돌벽이 제스의 손아귀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현혹의 던전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런 던전의 돌벽을 제스처럼 부숴버리는 건, 살아있는 생물의 장기를 조각조각 내 안에서부터 망가뜨리는 행동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던전 내부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던전 중간중간에 숨겨져 있는 보호 마법진과 디버프 마법진 등 다양한 마법진을 전부 부숴버린 바람에 던전은 점차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난동은 제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스릉 -.. 쿠웅!

얼마나 벽을 깔끔하게 갈라버린 건지, 한 번의 휘두름으로 벽이 자로 그은 것처럼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피아! 들리면 대답해!”

노아는 굳은 표정으로 잘린 벽을 넘어갔다. 부서진 돌벽 조각이 그녀의 발에 밟혔다. 그리곤 다시 제 앞을 가리는 벽을 ㅂㅕㄱ으로 만들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던전 내부는 엉망이 되어갔고, 흡사 톱니바퀴에 돌조각이 걸린 메드사이어티스트의 로봇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여기 있어?”

이에 따라 원래는 드러나선 안 되는 길까지 드러나 아이리스가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녀는 어둑한 길을 따라 걸으며 눈을 위험하게 빛냈다. 제 오빠와 일정 시간 이상을 떨어져 있게 되면서 인내심이 팍팍 떨어지고 있는 탓이었다.

기분 탓인지 머리카락이 더 탁하게 물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개판 3초 전인 상황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이가 있었으니.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이리스를 던전에 끌고 온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저년들은 도대체 누구고! 몬스터들은 왜 저렇게 약해진 거야! 마법은 왜 발동하지 않는 거고!?”

제스의 손짓 한 번에 광역기라도 당한 것처럼 한 번에 날아가 버리고, 노아가 휘두른 칼질 한 번에 목이 후두둑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보자 그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초보자 던전에 고인물들이 떨어진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

둘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에 아이리스가 들어가선 안 되는 비밀 공간까지 침범하자 그녀는 정말 기절할 것만 같았다.

“아.. 안돼! 거긴 중요한 마도구가 있다고!”

정신이 완전히 무너진 이들이 홀린 듯이 제 발로 향하게 되는 ‘처리실’. 아이리스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장소였다.

애초에 던전 내에 들어온 이의 정신이 완전히 망가져야만 통로가 열리기에 안으로 들어가면 중요한 마도구들이 무방비하게 놓여있었다. 그게 하나라도 망가지게 되면 처녀의 피를 뽑아내 젊음을 되찾는 건 불가능했다.

‘으아아! 그게 망가지면 당분간은 젊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

하지만 마도구는 어디까지나 마도구.

다시 구하려고 한다면 불가능할 거 까진 없었다. 온갖 잔혹한 물건이 매일 같이 만들어지는 마왕의 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최악은 아니었으나, 작은 피해라도 보면 최악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게 인간의 심리였다.

‘이대로는 안 돼! 당장 막아야 해!’

그녀는 자신이 무대 위에 올라가면 어떤 최악을 맞이하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아이리스가 마도구를 망가뜨리는 걸 막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우가 전부 무대 위에 올라왔고, 개그 필터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분명 지하에 수호 골렘이 있었지? 그놈들을 조종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그렇게 순애를 파괴하는 여자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

비릿한 혈 향이 벽과 바닥에 스며든 ‘처치실’. 아이리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방 안을 훑어보았다.

‘…기분나빠. 빨리 밖으로 나가야겠어.’

제국 사람이라면 기겁을 하다못해 악몽에 나올까 무서운 장면이지만, 마왕의 땅에선 흔한 장면이었기에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고문 도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온갖 마도구들을 슥 훑어보다가 무언가가 시선에 들어왔다. 둥근 손잡이 같은 게 벽 중간 부분에 달려있었다.

‘빠져나가는 문인가?’

콰직.

아이리스는 아무런 생각 없이 손잡이처럼 생긴 물건을 돌려보았다가 그대로 산산이 부숴버리고 말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손잡이가 아니라 진한 흑색의 광석이 받침대 같은 것에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음..”

아이리스는 미련없이 조각난 광석을 바닥에 버려버렸다. 그렇게 수호 골렘을 조종할 수 있는 핵이 부서지고 말았다. 이를 시작으로 아이리스는 온갖 물건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방 탈출 게임에 참가한 손님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것도 탈출할 때 사용하는 건가?’하면서 천장을 뜯어보고, 소화전도 뜯어보는 것처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이곳저곳을 건드렸을 뿐이다.

“아, 찾았다.”

아이리스는 방 안에 있는 모든 마도구를 망가뜨린 후에야 책장 뒤에 있는 통로를 찾을 수 있었다.

…특정한 방법으로 가구를 옮겨야만 나타나는 통로였지만 이를 아이리스가 알 방법은 없었다.

‘오빠…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이리스는 눈을 위험하게 빛내며 발걸음을 재촉하여 안으로 향했다.

그 시각, 중년의 여자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몸이 꽤 젊어졌지만, 완전히 젊은 몸은 아니었던 탓에 관절이 삐그덕거렸다. 하지만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쿠웅! 쿵!

그녀의 뒤로 높이가 3m가 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골렘 무리가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꺄아아악! 나는 이 던전에 주인이라고!”

비명을 내지르며 소리 질러 보지만 골렘은 명령을 듣지 않았다. 아이리스가 수호 골렘을 조종할 수 있는 보석을 부순 탓에 골렘은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이를 적으로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 리 없는 여자는 머리가 산발이 된 채 화장이 번진 얼굴로 미친 듯이 달려야 했다.

그로부터 3분은 더 달리다가 겨우겨우 비밀 통로로 들어와 숨을 돌렸다.

“허억,허어어억…!”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굴이 폭삭 늙어버린 채 습한 날의 빨래처럼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이럴, 이럴 순 없어… 전부 꿈일 거야…전부…”

그녀는 도저히 답이 없는 상황에 제 얼굴을 감싸 쥔 채 중얼중얼 거렸다.

“어,어어?”

그러다가 제 얼굴을 더듬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는 후다닥 제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거울을 꺼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골렘에게 쫓겨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지르지 않았던 귀곡성 같은 비명이 비밀 통로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안돼! 안돼! 내 미모가! 내 젊음이…!”

옅은 주름 자국만 있던 팽팽한 얼굴은 어디 가고 볼살이 홀쭉하게 빠져 축 늘어진 피부와 자글자글한 주름이 얼굴에 가득했다. 거기다 머리카락은 서서히 뿌리부터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