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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이번 제국파와 스타론의 대련 탓에 한동안 꽤나 난리가 났다.

   당연히 훈련장에 있던 경기장이 박살이 났으니 교수진들의 귀에도 들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교수진들은 딱히 학생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무학에서 이런 사건들은 꽤나 자주 일어나던 일이니까.

     

   단지, 조금 꾸중은 들었다.

     

   “크라슈 학생, 일의 경과는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제해주면 좋겠네요.”

     

   그 꾸중을 담당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부교수 카이란이었다.

     

   해적 여제 카이란.

   입학시험 당시, 크라슈에게 깨져버렸던 그녀는 크라슈를 보며 피로 섞인 얼굴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경기장을 치우게 된 부교수들에게 등 떠밀려 크라슈에게 자제를 부탁하러 온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입학시험 이후 줄곧 얼굴을 본 적 없던 그녀였기에 크라슈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윗사람의 허튼짓에 밑의 사람들이 얼마나 개고생하는지 크라슈도 대충 알기 때문이었다.

     

   “예, 그러겠습니다.”

     

   크라슈가 순순히 대답하자 카이란은 의외라는 눈빛을 했다.

     

   입학시험에서 보았던 크라슈는 패도적인 기세와 부교수에게까지 도발하는 오만함을 보였다.

     

   물론 그 오만함 뒷면에 상대를 방심시키려는 의도가 있음을 후에 눈치채긴 했으나.

   그런 것을 감안해도 그는 무려 샬롯의 동생이다.

     

   그녀처럼 다른 사람의 노고를 딱히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는 확실히 다른 이의 노고도 알아주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또래 아이들에게 볼 수 없는 어른스러운 면모였다.

     

   이맘때의 아이들은 보통 자신의 자존감과 프라이드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많아 전후 사정을 알고서 그런 소리를 하냐며 투덜거리기 마련이었으니까.

     

   특히, 귀족의 자제라는 이들은 더 그러하였다.

   하물며 크라슈는 부교수 카이란을 직접 꺾은 상황.

     

   그 자존심이 하늘을 찔러 부교수들을 무시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부교수들이 구태여 카이란을 등 떠민 이유도 카이란이 한 번 졌으니 감수해달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크라슈는 또래와는 다르게 어른스러웠다.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노고를 고려해주었다.

     

   “크라슈 학생, 사실 나이를 속이고 들어 왔나요?”

     

   카이란이 무심코 질문하자 크라슈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짧게 웃음을 삼키더니 물었다.

     

   “그럼 제가 몇 살같이 보이십니까?”

     

   어째선가 나이 있는 교수가 이제 막 들어온 신입 부교수에게 능글맞게 자기 나이를 묻는 모습이 떠올랐다.

     

   “어른스러워 보였기에 해본 농담이었습니다.”

     

   하여튼 이상한 학생이다.

     

   “어쨌든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라슈 학생이 수업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은 다들 알고 있으니 그런 부분만 주의해준다면 부교수는 물론 교수님들께서도 크라슈 학생을 무척이나 높게 평가하실 겁니다.”

   “다행인 일이네요.”

   “그럼 저는 이만……. 아.”

     

   떠나가려던 카이란은 문뜩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음을 깨달았다.

   크라슈가 의아하게 카이란을 바라보자 그녀는 살짝 조심스레 말했다.

     

   “그리고 더불어 여자관계가 너무 문란한 건 주의해주세요. 그 나이 때에 자주 있는 일이라곤 하나 그런 생활은 화를 부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다음 말은 크라슈를 얼빠진 표정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예?”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카이란은 이미 확고했다.

   그렇기에 크라슈는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리곤 서둘러 말했다.

     

   “……무슨 오해를 하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생활한 적 없습니다.”

   “네? 하지만 부교수들 말로는 매일 같이 여자가 바뀐다고……. 거기다가 타 학생의 시녀까지 방에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크라슈는 미약한 두통을 느꼈다.

   어울리는 이들이 여성진이 많긴 하니 앞쪽은 불가피했지만, 뒤에는 분명히 리리나의 이야기였다.

     

   짧게 한숨을 내쉰 크라슈는 착잡한 눈으로 카이란을 보았다.

     

   “정말 그런 거 없으니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저 약혼자도 있습니다.”

     

   크라슈는 최근 일들을 떠올리곤 진지하게 비앙카와의 결혼을 생각했다.

   내년이면 그녀도 15살이니까, 식을 올린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비앙카도 원해야 하겠지만.’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의사를 물어보는 건 괜찮겠지.

     

   [ 결혼으로 해결될 거라는 그 발상이 참 웃기는구나. ]

     

   그러는 순간 크라슈의 생각을 읽은 크림슨가든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 네가 결혼한다 한들 주변에 여자가 꼬이면 주위에서는 결혼하고도 여자를 꾀는 난봉꾼 취급할 텐데. 악명이 더해지면 더해졌지. 약해질 것 같으냐? ]

     

   크라슈의 얼굴이 굳었다.

   정말 그렇다면 결혼으로 해결 안 된다 이 소리인 건가.

     

   [ 그러니까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차라리 잘라 버리라고. ]

     

   왜 마지막 결론은 항상 그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 애초에 네 녀석이 꼬시고 다니지만 않으면 될 텐데. 얼굴이랑 배경이 번지르르한 놈이 여자에 익숙해서는 쯧쯧. ]

     

   크림슨가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넘긴 크라슈는 카이란을 돌아보았다.

     

   “어찌 되었든 정말로 오해입니다. 그런 쪽 이야기가 많다면 주의하겠습니다.”

   “제 오해라니 미안하군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카이란과 헤어진 후 크라슈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곧 무학 수업 시간이라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걷는 크라슈의 얼굴은 여러모로 착잡했다.

     

   살다 보니 여난으로 고생을 하게 되는 일도 있는 법이구나.

     

   ‘내 평소 행실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하는 건가.’

     

   하다못해 소문대로 난봉꾼처럼 여자들을 휘어잡았으면 모를까.

   크라슈는 평소 행실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비앙카라도 오면 좀 나을까.’

     

   비앙카라면 하루종일 붙어 다녀도 무어라 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왜인지 약혼자가 여러모로 그리웠다.

   비앙카랑 있을 때는 이런 일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 네 약혼자가 와서 아카데미 생활하는 널 보면 때려죽일 것이다. ]

     

   옆에 있는 크림슨가든은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

     

   “그보다 슬슬 네가 라헬른 아카데미에 심어 놓은 종이 누군지나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 비밀이다. 직접 알아보거라. ]

     

   하여튼 비밀만 많아서는.

     

   “윽!”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복도 저편에서 자신을 보자마자 뒤돌아서 줄행랑치는 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다름 아닌 그 날 크라슈에게 시비를 걸었던 제국파 놈들이었다.

     

   크라슈는 그들을 시큰둥하게 보았다.

   왜냐하면 그 날 이후 그들은 크라슈를 보기만 해도 발작하며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 날의 기억은 그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덕분에 그들에게 크라슈는 수틀리면 다 뒤집어엎는 수라로 각인 되어 있었다.

     

   그러니 괜히 화를 당하기 전에 먼저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이다.

     

   더불어 크라슈는 소문 하나를 들었다.

   판드라 녀석이 기숙사 방에 틀어박혔다는 모양이다.

     

   크라슈에게 박살이 난 것은 물론, 오줌까지 지리며 창피를 당했으니.

   그로서는 도저히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지금도 크라슈의 이름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킨다고 할 정도다.

     

   ‘꼴좋네.’

     

   동시에 아이들의 시선도 덩달아 바뀌었다.

   아르솔더를 꺾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호승심과 언짢음을 느끼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선은 이제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의미는 크라슈가 샬롯만큼이나 건드리면 안 되는 인물이라는 것을 그들이 은연중에 인정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아르솔더가 꺾였다는 건 의미가 컸다.

     

   그들 또한 은연중에 부교수는 무시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지만.

   아르솔더의 경우에는 죄다 직접 겪어 봤으니 말이다.

     

   더불어 그날 이후로 유달리 태도가 변한 녀석이 있었다.

     

   “크라슈 왔군. 자리를 맡아 두었다.”

     

   크라슈가 무학 수업을 들으러 반에 들어서자 냉큼 일어난 한 녀석이 크라슈에게 초롱초롱 빛내는 눈을 보냈다.

     

   그 녀석은 다름 아닌 메리의 사촌 동생인 글렌 다이아나이었다.

     

   그를 물끄러미 본 크라슈는 뒷 목을 매만졌다.

   그날 이후 글렌은 크라슈를 보기만 하면 저런 식으로 충성적인 면모를 보였다.

     

   아르솔더만큼은 아니나 그 또한 무를 경외하는 버릇이 있다.

   강한 이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를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렌은 과거에는 신창이라 불리던 메리를 적극적으로 따랐었다.

   하지만 메리는 이제 더 이상 그가 존경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황녀를 시해하려 했음은 물론 늘 당당하던 태도도 전부 사라져 쭈구리 메리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글렌은 메리를 싫어했다.

   그러던 도중 이번 전투에서 크라슈는 약자를 위해 싸워주는 기사도와 무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함께 소속된 이들을 위해 불의에 맞설 수 있는 기사도.

   주위 이들을 격려하고, 스스로 해법에 다가갈 수 있도록 조언하는 여유로움.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는 무.

     

   그 실상은 어떻든 글렌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같은 나이 또래임에도 크라슈가 보여준 것들은.

   글렌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저렇게 되고 싶다.

   나 또한 저런 인물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을 품은 순간 글렌의 동경심이 크라슈에게 팍하니 꽂혀 버렸다.

   그 결과 글렌은 지금과 같이 크라슈만 보면 저런 초롱초롱한 눈빛이 된 것이었다.

     

   15살.

   이맘때 아이들에게 흔히 품는 동경심이었다.

     

   “크라슈, 거기 말고, 여기 앉으면 돼.”

     

   그리고 어째선가 그런 글렌과 경쟁의식을 태우는 인물이 있었다.

     

   “……하링 라그렌, 무슨 소리지? 내가 먼저 말했잖나.”

     

   그녀는 다름 아닌 하링이었다.

   크라슈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듯 줄곧 문 쪽을 힐끗거리던 그녀는 크라슈가 오자마자 화색을 보였다.

     

   그러다가 글렌에게 선수를 당하자 눈썹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크라슈는 나랑 더 친하니까.”

   “그건 본인 생각 아닌가?”

   “나는 크라슈랑 함께 임무도 갔어.”

   “그건.”

     

   글렌은 반박하려다가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링이 등을 곧게 편 채 살짝 우쭐거렸다.

     

   그리고 크라슈는 어째선가 피곤한 기분을 느꼈다.

   이 바보들이 대체 뭘 하는 거지.

     

   동시에 카이란의 조언이 생각났다.

   문란하지 말랐던가.

     

   그래도 이번에는 한 명은 남자니까 이번에는 상관없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

     

   이제 막 성인이 된 녀석들의 아웅다웅은 더 볼 수 없었던 크라슈는 그냥 아무 자리나 앉았다.

   저 두 녀석 옆에는 도저히 못 앉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크라슈는 두 사람을 너무 얕봤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가 다른 자리에 앉은 즉시 일어나 그의 양옆에 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순간에 둘 사이에 끼게 된 것이다.

     

   “하링 라그렌, 크라슈가 불편해하지 않나.”

   “그건 네가 옆에 있어서 그래.”

     

   둘의 기 싸움에 크라슈가 서서히 미약한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을까.

   크라슈는 교실 문밖에서 어수선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익숙한 녀석이 서 있었다.

   그쪽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환한 웃음과 함께 입술에 손을 대었다가 쪽하고 크라슈에게 보냈다.

     

   “요, 내 남친.”

     

   달링 단펠리온.

     

   녀석이 발언하자마자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군거림을 듣자 크라슈는 카이란의 조언의 의미를 되새겼다.

     

   사실 그 소문의 대부분은 이 녀석의 호칭 탓이지 않을까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크라슈가 뚜벅뚜벅 걸어가 달링의 앞에 다가가 그녀의 입술을 손으로 콱 잡았다.

   달링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크라슈를 올려다보자 크라슈가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호칭, 똑바로.”

   “흐입, 익.”

     

   달링이 무어라 말하려 하길래 입술을 놔주자 그녀는 자기 입술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내 첫 입술을 이렇게 강제로 빼앗아 가다니. 나 이제 어떻게 시집 가?”

     

   크라슈는 달링의 입막음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그렇기에 결국 그녀를 끌고 이동하기로 했다.

     

   평소에는 무학관까지 직접 찾아오지 않는 그녀다.

   그런 그녀가 온 시점에서 뭔가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는 거겠지.

     

   수업 시간까지 조금 남았으니 빠르게 이동한 크라슈는 인적이 드문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달링을 놔준 뒤 그녀를 돌아보았다.

     

   달링은 새초롬한 소녀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반대쪽 팔을 감싸고 있었다.

   몸을 이리저리 꼬는 모습이 묘하게 불쾌하다.

   

   

   

   

     

   “이런 인적 드문 곳이라니. 정말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남친이니까 허락하긴 할 거지만.”

   “그래서 웬일로 네가 직접 찾아왔냐?”

     

   크라슈는 달링의 말을 더 들어주지 않고, 목적을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크라슈를 보며 말했다.

     

   “그야 1차를 완성했거든.”

     

   돌아온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달링에게 부탁한 저주와 독을 혼합해 만든 순간 강화 영약.

   그것이 드디어 1차로나마 완성된 것이었다.

     

   “여기.”

     

   크라슈가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달링은 곧장 주머니를 풀어 약병 하나를 건넸다.

   그 약병에는 하링의 독단과 같이 자그마한 단이 다섯 개 정도 넣어져 있었다.

     

   “개량의 여지는 잔뜩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 쓸 수 있는 수준이긴 해. 효력은 저번에 이야기했듯이 그런 느낌이고, 패널티도 마찬가지야.”

     

   이걸 만들어 내다니.

   크라슈는 병을 꽉 쥐며 달링을 오랜만에 다시 본 표정을 지었다.

     

   “달링, 넌 역시 천재가 맞다.”

   “후후, 더 칭찬해.”

   “연금술의 대가, 달링 단펠리온.”

   “호호호.”

     

   입까지 가리며 함박웃음을 짓던 달링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전해주러 오다니. 너도 어지간히 완성된 게 마음에 들었는 모양이네.”

   “그야, 저주를 혼합해서 만드는 건 나도 처음이니까. 자랑하고픈 마음이었거든.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말해주고 싶은 게 있기도 해서.”

     

   병 안을 흔들어보던 크라슈가 달링을 의아하게 돌아보았다.

   이것 말고 다른 볼일이라니.

     

   “같은 연금과의 한 명이 시그린 에파니아에게 불려 갔었어.”

     

   돌아온 말을 듣고, 크라슈의 표정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달링은 크라슈가 시그린과 이래저래 얽혀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애초에 시그린과 샬롯의 사이를 잘 아는 그녀다.

   어떤 식이든 크라슈는 시그린과 얽힐 수밖에 없는 관계다.

     

   “호출받고 갔던 녀석이 돌아와서 만들던 걸 슬쩍 훔쳐봤었거든.”

     

   달링은 당당하게 훔쳐봤다고 말했다.

     

   “독약이라도 만드냐.”

   “아니, 독약이랑은 좀 더 다른 종류지.”

     

   달링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크라슈에게 다가와 귀를 가져다 대라고 했다.

   사람도 없는데 뭐 하러 그러나 싶지만, 크라슈는 장단에 맞춰 주었다.

     

   그러자 달링이 아주 작게 크라슈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미약이야. 그것도 내 제조법을 훔쳐봤더라고.”

     

   돌아온 말을 듣고, 크라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미약은 둘째 치고, 이 녀석은 왜 제조법을 만들어 놓은 거지?

     

   “관심 있어?”

     

   원한다면 주겠다는 듯이 그녀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됐다.”

     

   그런 거 있어봤자 쓸 곳도 없다.

     

   “어차피 내건 장난으로 만들어 본 거라 큰 효과는 없겠지만, 훔쳐 간 발리안이라는 친구도 연금술 쪽으로는 꽤 해.”

     

   발리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크라슈는 인상을 찡그렸다.

     

   괴연금술사 발리안

     

   연금성주라 불리는 달링 탓에 늘 이인자로 밀려나 있던 그는 어느 시점부터 이상한 것만 잔뜩 만들어내어 그런 이명이 붙은 자였다.

   왕도를 걸어 봤자 어차피 달링에게 밀리니 사도로 빠져 버린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다.

   지금의 달링과 같이 그 당시에 달링도 그의 실력을 높이 샀으니까.

     

   ‘연금술의 정점인, ‘알익시르’를 완성한 게 달링과 발리안의 합작품이었으니까.’

     

   통칭 현자의 돌이라 불리는 궁극의 물질.

   그것을 만들어낸 게 바로 이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꽤 개량을 하는 모양이야. 마시면 몸에 확실히 흡수되도록 내 남친의 머리카락까지 구해놨던데?”

   “그 머리카락 그대로 놔뒀냐.”

   “응, 만들어지면 내가 쓸까 해서.”

     

   크라슈가 황당한 눈으로 달링을 보자 그녀는 눈을 반달 형태로 휘었다.

     

   “농담이야. 그래도 괜히 의심 사면 대응하기 더 힘들어지니까. 그냥 안 건드렸어.”

     

   달링다운 대처다.

     

   “……그보다 그딴 걸 만들어서 어디다 쓰게?”

   “나야 모르지.”

     

   달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도 크라슈에게 알려주려고 왔을 뿐 거기까지 아는 건 없었으니까.

     

   “크라슈, 네게 먹이고, 시그린 에파니아가 유혹하려는 거 아니야?”

     

   크라슈는 입을 가렸다.

   순간적으로 토악질이 쏠렸기 때문이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다른 건 몰라도 그딴 일이 생기면 크라슈는 정말로 시그린의 목을 쳐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하러 온 이야기는 이걸로 끝.”

     

   달링은 그렇게 말하고는 기다랗게 하품을 내뱉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밤새도록 순간 강화 영약을 만드느라 시간을 쏟았던 모양이다.

     

   “고생했다. 나중에 답례할게.”

   “그럼 샬롯이랑 다리라도 놔줄래?”

   “답례 물품은 따로 생각해 놔라.”

     

   말도 안 되는 답례품은 못 주는 법이다.

   장난스레 웃던 달링은 그렇게 크라슈와 인사를 나누고는 걸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크라슈가 다시금 교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타다다닥!

     

   크라슈는 복도 끝에서 멀어지는 발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짧은 검은 단발 사이 자줏빛의 머리카락이 엿보였다.

     

   “……하링?”

     

   곧 교수가 올 시간인데 뛰쳐나간 그녀를 보고, 크라슈가 고개를 기울였을 때였다.

   때마침 밖으로 나온 글렌과 크라슈가 마주쳤다.

     

   “크라슈.”

   “뭐야, 뭔일 났냐?”

     

   잠깐 사이, 싸우기라도 한 건가.

   크라슈가 그렇게 생각하자 글렌이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독왕님께서 세계 침식자에게 중상을 입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도 생각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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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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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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