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73

     

     

     

    ***

     

     

     

     

    ㅡ충격이었다.

     

    그것도 이 세상에 와서 세린을 만난 이후, 천류화가 느낀 최대의 충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아리라고…….’

     

    겉보기엔 보랏빛 머리칼을 지닌 특이한 느낌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짧게나마 말을 나누며, 시선을 교차하는 사이 불현듯 깨달았다.

     

    이 여자는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혹시…… 말이에요. 유화 씨는 세린이 방송 자주 챙겨보는 편이에요?”

     

    “예. 친한 만큼 방송도 자주 챙겨보는 편이죠.”

     

    “아, 그럼, 말이 좀 더 쉽겠네요. 저도 세린이 방송 다 챙겨보는 편이라서요. 그럼…… 혹시 인상 깊은 에피소드 같은 것도 있어요?”

     

    “글쎄요. 대부분 재밌게 본 편이라서 굳이 하나를 말하기가 좀 애매한데요.”

     

    자연스레 답하면서도 묘했다.

     

    무엇보다 날 마주하는 유아리라는 여자의 시선이 평범하지 않았다

     

    ‘나한테 뭘 알아내려고 하는 건가?’

     

    한서윤이란 이름의 여자가 내게 보인 반응에 비해 느낌이 너무 달랐다. 마치 날 아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도 기이할 정도로 기시감이 느껴졌다.

     

    ‘유아리라는 여자와 나는 초면이 분명할 텐데.’

     

    이상할 정도로 초면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분명 본 적이 없을 텐데.

     

    내가 그리 생각하던 차였다.

     

    “그럼 심연이라는 것도 알아요?”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그건 정말이지, 뜻밖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게 조금도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심연이란 키워드 자체는, 어찌 보면 이 세상에서 서브 컬쳐계열이나 여러 방면에서 쓰이는 단어 정도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내게 꺼낸 심연이란 말이 직감적으로 단 하나를 뜻함을 알았다.

     

    “심연이라면 혹시…….”

     

    “아, 그게 세린이가 방송에서 마지막으로 이겼던 시련이 심연이잖아요. 왜 바란의 혈사대라던가 하는 시련이 나왔던 거 말이에요. 비록 끝까지 방송에 나오지 않았지만, 세린이에게 저는 따로 얘길 들었거든요.”

     

    멈칫.

     

    나도 모르게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

     

    그리고 불현듯 유아리란 여자를 다시금 위아래로 살펴보게 됐다.

     

    기시감.

    왜 그런 느낌을 느꼈는지 이젠 확연히 알 것 같았다.

     

    저 선명한 보랏빛 머리칼도, 그 외에 날 바라보는 눈도 나는 분명히 본 기억이 있었다.

     

    ‘…아리케?’

     

    심연을 대적하던 당시 내가 지키지 못했다고 여겼던 특별한 인연.

     

    끝에서 기적처럼 그녀가 다시 살아났고, 끝에서 도움을 받아 심연을 처치한 순간 나는 끝이라 여겼다.

     

    다시는 아리케와 재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야 어나더 월드 속의 인연이라고 여겼으니까.’

     

    세린과의 인연과 달리, 어나더 월드 속의 인연은 내가 현실에서 절대 마주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생각은…… 틀렸었다.

     

    “역시, 유화 씨도 아는 거죠?”

     

    확신을 담은 그녀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이 현실이 내게 이토록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런데 겨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더 확인해야 했다.

     

    내 생각이 옳은 건지, 정말 유아리라는 여자가 아리케인 건지도.

     

    “예. 그럼 혹시 아리케……라는 캐릭터도 아시겠네요?”

     

    “그럼요. 그때 시련을 본 만큼 전 그 ‘누구보다’ 잘 알아요.”

     

    돌아온 건 즉답이었다.

     

    그건 단 하나를 뜻했다. 아리케라는 인외의 존재가 지금. 완전한 인간이 되어 내 앞에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세린과 같은 세상에 살아가며 버젓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하나부터 끝까지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차원을 넘기엔 어나더 월드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나조차 어나더 월드 속에선 이 세상으로 올 생각을 할 수 없다.

     

    그건 무척 묘한 차원이라고 느낄 정도로 다른 별개의 공간이니까.

     

    그런데 아리케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

     

    “아리케가 정말 그럼….”

     

    끄덕.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긍하는 모습에 나는 끝까지 말조차 잇지 못했다.

     

    “…그럼 넌 정말 그 ‘천류화’라는 말이야? 아니, 그런데 그건 너무 말이 안 되는데.”

     

    그녀 역시 날 보며 불신을 느끼는 듯하자, 이젠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아리케라는 인외의 존재는 지금, 내 앞에 유아리라는 인간이 되어 현실에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그건 당사자인 나와 그녀밖에 알 수 없는 진실이었다.

     

    “자자. 언니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우선 과일 먹으면서 대화 나눠요.”

     

    불현듯 들린 말에 놀란 정신을 애써 바로잡았다.

     

    그리고 멍하니 세린을 바라보게 됐다.

     

    “…….”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꽤 놀란 듯한 표정인데, 정작 놀라야 할 사람은 나와 유아리였다. 그래서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이런 사실이 있으면 나한테 진작에 알려줘야지. 왜 여태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착!

     

    내 앞에 잔을 내려놓는 세린이 작게 미소 짓자, 나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리 씨.”

     

    세린에게 시선을 떼며 자연스레 유아리와 눈을 마주쳐갔다.

     

    “…예, 유화 씨.”

     

    “우리 그럼, 말 놓을까요?”

     

    나는 선뜻 말하면서도 그저 편안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재회라니.’

     

    너무 뜻밖의 재회임에도 선명한 기쁨이 느껴졌다.

     

    “좋아요! 우리 말 놓아요.”

     

    싱긋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며 나는 확실히 내 기억 속의 아리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마지막 순간과 지금 가장 큰 다른 게 있다면.

     

    서로가 웃으며 편하게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는 자그마한 위험조차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

     

     

     

    “와, 청담 플리아나라면 수아와 같은 오피스텔에 머무시는 거네요?”

     

    “예. 그렇죠. 세린이에게도 들었어요. 수아 씨라던가 유정 씨라는 사람도 저와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고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날 흘겨보는 유화를 보며,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

     

    서윤이와 아리조차 날 동시에 바라보는데 그 눈빛은 내게 간접적으로 묻고 있었다.

     

    내가 두 사람과 연인 사이임을 밝혔는지 아닌지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정면 돌파했다.

     

    “유화에겐 다 설명했어. 내가 수아랑 그리고 유정 씨와도 사귄다는 거.”

     

    말하면서도 좀 민망했다.

     

    겉으로 말하면 확실히 내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건지 느낌이 확 오니까.

     

    “진짜 유화 언니 우리 언니 찐친인가보다…… 그걸 말했다고?”

     

    “나도 유화 정도면 믿을 수 있을 것 같긴 해.”

     

    놀란 서윤이와 자연스레 말을 놓는 아리를 보며 나도 유화에게 시선이 갔다.

     

    “맞아요. 세린이랑 비밀 없이 다 마음을 교류하는 사이라서…… 처음 들었을 땐 놀랐지만 이내 수긍했어요. 세린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싶었으니까요.”

     

    “아니, 내가 그럴 수도 있다니. 말이 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 네가 세 사람이랑 동시에 사귀는 거, 일반인들은 꿈이나 꾸겠어? 다 너니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은하 씨 같은 경우엔 심지어 엄청 유명하신 분이잖아.”

     

    씨익 웃으며 날 보는 유화의 모습에 나는 마치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나도 내가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내가 너무 좋은 사람들이랑 사귀니까.

     

    “그래도 신기하네요. 우리 언니에게 유화 언니처럼 예쁜 분이랑 친하셨을 줄이야. 심지어 이렇게 가까이에 사는 줄도 몰랐어요.”

     

    “최근에 연락이 닿았으니까요. 그전까지 나도 그리고 세린이나 많이 바빴어요.”

     

    “그러시구나.”

     

    서윤이가 멍하니 깨닫던 차. 나는 멍하니 유화를 바라보는 아리에게 시선이 갔다.

     

    반쯤 혼이 나간 표정인데, 처음으로 아리가 나보다 더 많이 시선을 주는 사람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나…….’

     

    날 최우선시하며 거의 나만 바라봤던 아리니까.

     

    이렇게 유화를 홀린 듯 바라보는 게 나로선 마냥 신기했다.

     

    “아리야. 너 유화 되게 좋아하나 보다?”

     

    “……좋아한다기보단 좀 신기해서 그렇지.”

     

    내 말에 아리가 모처럼 어색하게 웃는데 나는 그게 무척 귀엽게만 보였다.

     

     

    …….

     

     

    이후 여러 대화가 오가며 점심도 함께하게 되었다.

     

    서윤이와 아리의 점심에 유화가 꽤 놀란 듯 감탄을 토해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는 이어졌다.

     

    “되게 맛있어요.”

     

    “고마워요. 유화 언니! 더 많이 드세요. 저희 되게 많이 준비했어요.”

     

    “……예.”

     

    그런 유화를 보면서도, 새삼 이렇게 넷이서 밥을 먹는 것도 의미가 커 보였다.

     

    ‘진짜 생각도 못 했지.’

     

    아리와 유화와 그리고 서윤이와 내가 함께 식사하는 날이 온다니.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광경이 현실로 펼쳐져 있었다.

     

    “아, 세린아.”

     

    “응. 왜?”

     

    그러다 유화의 부름에 나는 부드럽게 답했다.

     

    “오늘 너 방송하는 거 지켜봐도 돼?”

     

    “내 방송?”

     

    “응. 이런 기회 잘 없잖아. 앞으로 자주 만날 거긴 하지만, 그래도 네가 방송하는 모습도 한번 지켜보고 싶어서.”

     

    “……그거야 뭐, 어려운 일은 아니긴 한데.”

     

    말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기분이 좀 묘하다고 할까.

     

    내가 방송하며 뭐, 남 보기 부끄럽거나 이상한 방송을 해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여준다는 건 느낌이 또 다르니까.

     

    “…….”

     

    빤히 내 대답을 기다리는 유화의 시선에 나는 결국 이겨낼 수 없었다.

     

    “꼭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돼.”

     

    “고마워, 세린아.”

     

    유화가 밝은 눈웃음마저 짓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뭐가 저렇게 예뻐……?’

     

    나도 사실 여자에 대해선 어지간히 내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유화를 마주하며 깨지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와.”

     

    “…….”

     

    서윤이와 아리조차 지금 눈웃음 지은 유화의 고혹적인 자태에 홀린 듯 시선을 주고 있으니까.

     

    오히려 유화가 비현실적이라고 봐야 했다.

     

    달그락.

     

    “그래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방송이 막 생각만큼 재밌진 않을 거야.”

     

    “그거야 괜찮아. 난 그냥 세린이 네가 방송하는 모습이 궁금한 거니까.”

     

    대수롭지 않은 천류화의 대답 속에 나는 애써 식사를 마저 이어 나갔다.

     

     

     

    ***

     

     

     

    오후 1시를 넘어서 거실 소파에 기댄 아리는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말도 안 돼.’

     

    멀지 않은 공간에 천류화가 있는데, 그게 그렇게 이질적일 수 없었다.

     

    매일같이 세린이를 보면서 여자에 대한 미모의 역치가 자연스레 올라갔는데, 그게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저런 모습이구나.’

     

    세린의 모습을 한 천류화를 봤기에 나는 사뭇 상상하지 못했었다.

     

    천류화가 실제로 어떠한 모습일지.

     

    그리고 실제로 마주한 느낌은 너무너무 달랐다.

     

    “왜 그렇게 봐?”

     

    “……아니, 그냥 너무 예뻐서 바라봤어.”

     

    잠시 자리를 비운 서윤이와 세린이로 인해 둘이 있는 지금, 나는 괜히 뻘쭘했다.

     

    너무 반가운데.

    그 반가움을 표현하기가 이상하리만큼 민망하다.

     

    그리고 상황이 상황이라 과거에 대해 자세히 묻기엔 여의찮았다.

     

    “아리, 너도 충분히 예뻐.”

     

    작게 웃는 천류화를 보며 나도 모르게 다시금 충격이 느껴졌다.

     

    “고, 고마워.”

     

    그리고 천류화가 왜 이 세상에 있을까 하며 지난 시간 내내 생각했고 답은 하나였다.

     

    “유화야. 하나 물어봐도 돼?”

     

    “뭐든 물어봐.”

     

    태연한 답에 나는 작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 있는 이유는, 역시 세린이 때문이지?”

     

    “…….”

     

    여유롭게 날 보던 유화의 눈빛이 순간 굳자, 나는 직감했다.

     

    ‘역시.’

     

    세린이었다.

     

    천류화가 모종의 방법으로 이 세상에 있는지 알 수 없어도, 그 궁극적인 목표.

     

    그 근원에는 항상 세린이가 존재한다고.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냥, 직감적으로 느꼈어. 너도 분명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같은 마음이라고…….”

     

    “응. 나도 세린이 때문에 지금 이 공간에 있는 거니까.”

     

    픽 웃으면서도 마음이 좀 편해졌다.

     

    천류화와의 재회.

     

    그런데 그녀의 마음이 나와 같음을 알자, 마치 마음이 통한 사람이 생긴 기분이었다.

     

    “잠깐만. 아리야 그럼 너는…….”

     

    멍하니 말을 잇는 유화를 보며 살며시 손을 올렸다.

    그리고 제 입가에 가져다 댔다.

     

    “언제 서윤이 나올지 모르니까.”

     

    나는 내 마음을 굳이 밖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천류화는 아마 다를 거라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엇…!!
    다음화 보기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