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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6

     

     

     

    ***

     

     

     

    “내 이상형? 굳이 말하면 너 같은데.”

     

    유화가 세린을 바라보며 내뱉은 진심이 담긴 말.

     

    은은한 뜻을 담은 말에, 유화를 바라보고 있던 세린은 순간 눈을 깜박거렸다.

     

    “…….”

    “…….”

     

    자연스레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으며 세린은 고작 몇 초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그녀로선.

    정말 순수하게 ‘이해’가 안 갔다.

     

    ‘…농담이야?’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내뱉은 질문을 돌이켜봤다.

     

    간단한 이상형에 관한 질문. 그간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말이기도 하지만, 가볍게 대답하고 끝낼 말이었다고 생각했다.

     

    딱히 이상형이 없다던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돌연 나를 이상형이라 말했으니까.

     

    그런데도 이내 세린은 방송인 걸 자각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유화가 지금 방송이라고 조금 재밌게 말하려고 했나 봐요. 저도 순간 놀랐네요. 평소 장난기가 있는 거야 알았지만.”

     

    유화에게 짓궂은 면이 있냐면 있긴 했다.

     

    그런데, 설마 방송에서 이럴 줄은 나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가, 내 장난이 좀 심했어?”

     

    “……그럼. 나도 순간적으로 진짜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픽 웃음을 터트린 유화가 적당히 맞장구치자,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유화에게 조금 더 시선이 갔다.

     

    지금도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은은하지만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유화는 누구라도 홀릴 듯한 매혹적이었다.

     

    ……이후 자연스레 채팅창이 크게 불타오르며, 유화와 관련해 여러 후원이 더 쏟아졌다.

     

    [ㅁㅇㅁㅇ]

    [린 x 유화 난 이 결혼 찬성일세!]

    [ㅋㅋㅋㅋ와 진짜 뭐야]

    [유화 방송감 미쳤다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랜 친구였지만 난 너를 ㄷㄷㄷ]

    [린 찐텐으로 당황한 거 같은데]

     

    『ㅇㅇ 님이 100,000원 후원!!』

    《이궈궈든 ㅋㅋㅋㅋㅋ》

     

    『유화팬 님이 500,000원 후원!!』

    《감다살 ㄷㄷ 혹시 유화님은 스트리머 하실 생각 없나요?》

     

    그중엔 고액 후원도 더러 있어, 나는 여기까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이상 유화를 방송에 내보내면 더 큰 혼란이 일 것이라고.

     

    ‘그리고 당장 시청자가 50만을 넘는데.’

     

    이걸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엔 너무 많은 시청자였다.

     

    “아무튼, 오늘 방송 출연 후기까지만 듣고 유화 이제 그만 쉬게 해줄게요. 여러분도 조금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유화도 갑작스레 방송에 나온 거라 사실 저도 그리고 유화도 준비가 좀 덜 됐거든요. 그래서 유화야 마지막 인사 좀 해줄래?”

     

    “…어. 그냥 이렇게 친한 친구 방송에 나오게 돼서 재밌었고 또 여러모로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이렇게 많은 시청자분이 잘 호응해주시니까, 저도 편안한 시간이었어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봬요.”

     

    단 한 순간도 막힘없는 마무리 멘트. 그러면서 끝에서 가볍게 손마저 흔드는데 나는 보면서도 좀 놀랄 지경이었다.

     

    ‘진짜 긴장 하나도 안 하는구나.’

     

    아무리 유화가 과거 엄청난 배경을 지닌 건 알아도, 난 첫 방송에서 이렇게 태연하고 말을 잘할 줄은 몰랐다.

     

    “오늘 재밌었어. 나 그럼 캠 밖으로 나가면 되는 거지?”

     

    “아, 으응…….”

     

    유화가 내게 살며시 눈웃음짓는데, 그게 또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누가 이 상황을 보면 내가 스트리머가 아니라, 유화가 스트리머고 내가 게스트인줄 알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툭.

     

    그러다 내 손을 살며시 움켜쥐곤 유화가 떠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렇게 송출화면에서 유화가 벗어나자, 나는 곧바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이지,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 같다고 할까요……. 아무튼 여러분들께서도 다 좋게 호응해주셔서 유화도 즐겼던 것 같아요. 그럼 5분 쉬었다가 이만 2부 방송으로 다시 시작할게요.”

     

    딸깍.

     

    캠과 마이크를 꺼가면서도 정신이 좀 멍했다.

     

    시청자나 후원 열기를 보면 의심할 여지 없이 유화와의 합방은 반응이 무척 좋았다.

     

    그야 시청자 성비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은 만큼, 유화만 한 미녀가 방송에 나오는 건 당연히 플러스라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나로선 유화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이질적이었다.

     

    우연이라 말하며 갑자기 날 찾아온 것도.

    내 방송을 직관하겠다고 한 것도.

    도중에 방송해보고 싶다며 나와서 여러 말을 던진 것도…….

     

    내가 아는 유화답지 않다고 할까.

     

    ‘현대 세상이라서 그런가……?’

     

    어쩌면 나는 아직도 과거 유화가 보여준 천마로서의 모습에 얽매여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현대에 잘 적응한 유화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세린아.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이야?”

     

    “아니 그거야…… 누구라도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면 당황하지. 이상형을 물었는데, 거기서 나라고 답하면 내가 뭐라고 반응해야 해.”

     

    “나는 가볍게 답하려는 거였어. 다른 누구를 말하기도 그렇고, 지금 내가 가장 의식하는 사람이 바로 너기도 하니까. 그리고 보통 이런 대답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자주 하는 거 아니었어? 내가 본 방송에선 꽤 가볍게 말하던 것 같은데.”

     

    천연덕스레 말하는 모습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남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어놓고, 자긴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모습이라니.

     

    “네가 어떤 방송을 본 건지 몰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런 건 분위기가 되게 묘해지곤 해. 특히 이 세계에선 같은 성별끼리 사귀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니까. 사람들이 진짜 오해한단 말이야.”

     

    “…그렇구나. 하긴 그렇긴 하지.”

     

    “그렇구나가 아니라…… 아니야 됐어. 그만 말하자. 아무튼, 유화야. 네가 지닌 분위기상 하는 말들이 다 사실처럼 느껴지니까 너도 조금은 말조심해야 해.”

     

    설명하면서 나는 진이 다 빠진 듯했다.

     

    탓하기보단 그냥 주의해야 한다고 느꼈다. 아무리 지식이 있다고 해도 그 며칠 만에 유화가 이 현대인과 같아질 순 없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지.’

     

    당장 캠을 끈 것도, 마이크를 끈 것도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숨 돌릴 틈이 있으니 나도 마음을 바로잡으니까.

     

    “그래, 세린아. 너무 그렇게 힘들어하지 마. 내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어?”

     

    “……그냥 장난인 거 아니까, 이젠 괜찮지.”

     

    말하면서도 정말 그랬다.

     

    장난인 거야 아니까 그런 건데. 진짜였으면 나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았다.

     

    “나 반은 진심이야.”

     

    툭.

     

    하지만 이어진 말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치켜떠야 했다.

     

    “……유화야?”

     

    “네가 알듯이, 나 그렇게 쉽게 말하는 사람 아닌 거 알잖아. 과거에도 그랬고, 이 세상에 와서 내 가치관이 조금 바뀌었다고 해도 난 실언을 별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아.”

     

    갑자기 표정을 가라앉힌 유화를 보면서도 나는 정신이 붕 떠버린 듯했다.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또한 장난인지, 아닌지.

    그런데 장난으로 보기엔 유화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다.

     

    날 바라보는 눈빛이.

     

    “반은 또 거짓이니까.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말고.”

     

    “아니, 내가 어떻게 안 놀…….”

     

    덥석.

     

    말하다 말고 손이 잡혔는데, 나도 모르게 멍했다.

     

    ‘언제?’

     

    언제 내 손을 잡았는지도 모르겠고, 언제 이렇게 거리가 좁혀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의식한 순간.

     

    와락.

     

    “아.”

     

    나는 어느새 유화의 품에 안겨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그 이유 중엔 너도 포함되어 있다고.”

     

    “…유, 유화야?”

     

    “네 말대로 이 세상에선 동성끼리도 연애가 되는 걸로 알아. 내가 살던 중원과도, 사상도 가치관도 전부 다르지. 얼마 전에 네가 내게 여러 연인을 소개해준 것처럼 말이야.”

     

    “으, 으응. 그건 그렇지.”

     

    멍하니 답하면서 사고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너라면 이 세상에선 내 성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해.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걸 반드시 가져야만 내 직성이 풀린다는 것도 말이지.”

     

    “…….”

     

    나는 그만 입술을 다물었다.

     

    멍하니 유화의 어깨에 기댄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급작스럽다.

    그런데 이건 도저히 장난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유화는 지금 날 품에 안고서 자신의 마음을 느닷없이 풀어놓고 있었다.

     

    그것도 강압적인 음성으로.

     

    “싫으면 한번 밀어봐. 날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

     

    그대로 살며시 날 품에서 떼어놓은 유화가 그대로 고개를 숙여오는데, 나는 멍했다.

     

    ‘힘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지금 날 안은 유화의 손에선 기이한 힘이 느껴진다.

     

    마치 갇힌 것처럼. 내가 유화를 밀어낼 수 없다고.

     

    ‘이건…….’

     

    답이 정해져 있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유화는 내게 이럴 셈이었다.

     

    이렇게 날 안을 때부터.

    내가 거부하지 못하게끔 자신의 힘을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ㅡ쪽.

     

    그렇게 고개를 숙인 유화의 입술이 그대로 내 입술에 와닿자, 나는 두 눈이 부릅떠졌다.

     

    “……!”

     

    눈 뜬 채로, 코를 베인 듯한 느낌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현실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순간에 벌어진 사고.

     

    그대로 고개를 떼어낸 유화가 날 빤히 바라보자, 나는 멍하니 입을 열었다.

     

    “……유화야. 잠깐만, 대체 지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말하면서도 나는 당황스러움이 너무 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

     

    그런데도 유화는 밑도 끝도 없었다.

     

    고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 살며시 날 품에서 놓아주었다.

     

    스륵.

     

    품에서 풀리자마자, 나는 전신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뒤늦게 알았다.

    내가 진심으로 유화에게 저항하려 했음을.

     

    유화의 돌발 행동에 내가 저항하려 했음에도, 날 안고서 그대로 입술을 빼앗는 그 행동에 나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

     

    하지만 여전히 날 빤히 바라보는 유화의 눈빛에서 그 마음이 느꼈다.

     

    내가 혹시라도 저항하려 한 순간, 유화가 더 큰 힘으로 날 강제하려 했을 거라는 사실을.

     

    “혹시 싫었어?”

     

    야릇하게 웃으며 묻는 유화를 보며, 내 마음은 굉장히 복잡했다.

     

    본래 유화는 내가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입은 수많은 은혜도, 유일하게 서로가 같은 과거를 공유한다는 특별한 관계까지.

    그래서 내 마음을 모두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유화’라고 생각했다.

    그녀와는 앞으로 정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도우며 살 게 될 거라고 여겼는데.

    “난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어…….”

    지금은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나조차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치타 그 자체인 겁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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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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