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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138 – 세 번째 종목>

     

    무겁다.

    모브는 걷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적이 언제적 일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적어도 근래의 5년 내에는 없었다.

    재회의 약속만을 남기고 떠난 소꿉친구 자쿠.

    그와 재회하기까지 그는 매년 1월 1일을 제외한 모든 날을 수련과 사냥, 부업으로 보냈다.

    재회한 친구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우왓. 모브, 너 몸에 뭘 달고 다니는 거야?”

    “훈련도구.”

    “독한 녀석. 여긴 기숙사잖아. 설마 방까지 그거 차고 돌아다니는 거야?”

    “나도 벗고 싶어.”

    “크으, 대단한 녀석. 벗고 싶지만 만족할 만큼 신체를 단련하기 전까지는 벗지 않겠다는 거지?”

     

    같은 방을 쓰는 4인실 룸메이트들은 복장 터지는 소리로 속을 뒤집었다.

     

    “야, 근데 샤워할 때도 그거 차는 건 아니지?”

    “…플라톤 교수님한테 클린마법 무료이용권 받았어.”

    “와. 그거 벗기 싫어서 그렇게까지 해?”

    “근데 플라톤 교수님이 누구야?”

    “기사학부 강의에는 안 보이던데.”

    “상급반 공통강의 교수님.”

    “대박. 자기 커리큘럼에 없는 교수님까지 찾아가서 부탁할 정도로 단련에 진심이라고?”

    “와. 얘같이 노력하는 애들이 낙제위기에서 탈출하는 거지.”

    “인정. 넌 진짜 사나이가 맞다, 모브.”

    “…”

     

    10년 동안 굽힌 적 없는 자존심이 괜히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뭐하는 거야 시발. 살려달라고 이거 벗게 도와달라고 말해야지.’

     

    머릿속으로 천사날개가 달린 자신이 미련한 훈련은 그만두고 구조요청이나 하라고 속삭였다.

     

    ‘근데 오크노디가 직접 도와주기까지 했는데 이거 다른 교수님 도움 받아서 푸는 게 맞나?’

     

    반대로 악마날개가 달린 자신이 머릿속에서 그리 꼬드기니 그것도 맞는 말 같았다.

     

    “옘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잠 못드는 모브.

    침상에서 뒤척이며 괴로워하는 그의 중얼거림에 룸메이트들은 생각했다.

    저렇게 괴로워도 절대로 훈련도구를 해제할 생각은 하지 않는 독한 녀석이라고.

     

     

    * *

     

     

    다음날.

    정규강의시간을 보내며 모브는 지칠 대로 지친 얼굴로 활을 들었다.

     

    꾸드득.

     

    시위를 당기는 팔이 천근처럼 무겁다.

    그럴만도 했다.

    평상시에 비해 육체가 부담하는 중량이 훨씬 크다.

    장갑과 신발, 네 피스가 각각 5kg.

    합계 20kg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런데 강의실에서 얼굴을 마주친 오크노디는 싱글벙글 웃고만 있다.

     

    “어때? 적응 좀 됐어?”

    “나름대로는.”

     

    밤새 잠자리도 불편해서 잠을 설쳤는지 눈 밑은 퀭하고 가끔씩 멍한 기색도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오크노디는 시원스레 말했다.

     

    “어제보다 나아졌네!”

    “정말? 고작 하루만인데?”

    “원래 기행을 벌이면 성장속도에 가산이 붙거든. ‘착용해제 불가능’ 상태 덕분에 성장가속이 나름 고배율로 붙었나봐!”

    “…거 참 달갑잖은 성장가속이네.”

    “그래도 낙제 당하는 것보단 낫지?”

    “…뭐, 그렇지. 덕분에 살긴 할 것 같아.”

    “그렇지? 막 고맙고 그러지?”

     

    모브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고맙다는 소리가 듣고 싶었나.

    아니면 걱정을 한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하드코어한 수련을 따라오지 못하고 원망이라도 할까봐 말이다.

    솔직히 모브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자신만 아니었다면 이딴 훈련은 당장 어제 때려 쳤을 학생들이 태반일 거라고 추측되었다.

    오크노디가 저리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당연히 고맙지. 힘들기는 해도 그만큼 보람이 있다면야 이거 참는 건 문제도 아니야. 어떻게든 이 은혜는 꼭 갚을 거야.”

    “잘됐다! 그럼 저녁에 시간 좀 비워둬.”

    “오. 다른 훈련이라도 하게?”

    “어깨랑 무릎에도 5kg짜리 보호대를 주문했거든. 이건 미리 천을 덧댔고 스트랩도 준비해서 위치조절도 가능하니까 탈착도 쉬울 거야!”

    “…여기서 무게를 더?”

    “그리고 식사에 쓸 수저랑 젓가락도 5kg 사양으로 새로 주문했는데 바로 나올 거야. 오늘 저녁부터는 그걸로 밥 먹어!”

    “…그걸로 끝이지?”

    “응!”

    “하아… 젓가락은 두 개가 한 세트니까 세 피스고, 팔꿈치랑 무릎 보호대가 네 피스니까 일곱 피스 35kg이 더 늘어버리는 건가.”

     

    무슨 전신갑옷 중량적응훈련이냐고.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그에게 “아참!”이라며 오크노디가 덧붙였다.

     

    “생활용품은 전부 이 자루에다가 넣어와!”

    “…왜?”

    “전부 다 5kg짜리로 제작해서 줄 거야!”

     

    그만해.

    살려줘.

    모브는 찔끔 새어나오는 눈물을 참으려고 한동안 고개를 든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게 감격스러웠어? 히히. 우리 사이에 그렇게까지 감동받지 않아도 되는데!”

     

    앞으로 오크노디한테 훈련을 도와달라는 말은 두 번 다시 꺼내지 말자.

    뒤늦은 후회가 몰아닥쳤다.

     

     

    * *

     

     

    하급반 학생들이 금요일의 시험을 위해 필사적으로 막판 준비에 돌입하는 사이, 상급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평온한 한 주를 누리고 있었다.

     

    “공지 봤어? 목요일에 플라톤 교수님이 교복이랑 체육복 둘 다 가져오라고 한 거.”

    “또 수영이야?”

    “수영이면 체육복 입고 오라는 말은 안했겠지.”

     

    약간의 불길한 기분이야 남아있지만 그래도 힘겨웠던 처음 삼주 간에 비하면 넷째 주는 아카데미 생활도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웃음을 지을 여유가 생겼다.

     

    “자, 이리 오너라!”

     

    야외강의장.

    오늘도 위풍당당하게 소리를 치며 나타난 조각상 교수님의 뒤로 지축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도대체 뭘 데리고 나타났나 했더니 말과 소, 당나귀에 치타 등등 온갖 짐승들이 다 튀어나왔다.

     

    “으갸앗! 이게 다 머냐!”

    “허접♡ 야만인♡ 변방출신은 저런 것도 몰라~?”

     

    매스각키 2황녀가 자신만만하게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전부 고기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잖아. 요리실습시간이 틀림없다구♡”

    “앗, 행렬 뒤에서 골렘도 나타났어!”

    “…”

    “그럼 골렘도 먹는거다냐?”

     

    면전에서 무시당해서 기분이 나빠졌던 제냐가 회심의 썩소를 지으며 역으로 매스각키 황녀를 몰아붙였다.

     

    “제국황실은 골렘도 먹고 굉장하다냐. 발에 채이는 돌멩이가 있으면 간식 삼아 먹으라고 꼭 선물해주겠다냐!”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저런 걸 고귀한 황녀인 내가 먹을 리가 없잖아.”

    “그럼 누가 먹는다냐~? 자신만만하게 먹을 것이라고 말한 주제에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해본 소리라고 꼬리를 내릴 셈이다냐? 수인들은 그런 걸 패배한 암캐라고 부른다냐!”

    “패, 패배한 암캐애애?!”

     

    굴욕적이다.

    차마 그런 멸칭을 받아들일 수 없어 발언을 철회하지 못하고 헤매는 황녀.

    작은 것이 머리를 쥐어싸매며 끙끙 앓는 모습이 딱해보였는지 북부대공녀 아이린이 불쑥 참견했다.

     

    “오크노디가 먹을 걸지도 모르지.”

    “…냐아?”

    “오크노디는 돌을 먹으니까.”

     

    설득력 있는 주장에 매스각키 황녀가 간신히 한숨 돌리며 무리로 돌아갔다.

     

    “들었냐? 니가 먹을 거랜다.”

    “흥. 전 저런 무식하게 덩치만 큰 돌멩이는 먹지 않아요. 저한테도 기준이라는 게 있다고요.”

    “…결국 먹기는 먹는다는 거냐.”

     

    손오천이 황당해하였다.

     

    “워워. 다들 주목하라. 이 동물들은 너희를 습격하려고 데려온 것도 아니고, 3분 뒤에 풀어버릴 테니 따라잡히기 전에 도망치라고 데려온 것도 아니다. 그건 선배들의 강의내용이니 안심해도 좋단다!”

    “우리 2학년 되면 저런 강의 듣는 거야?”

    “진급하기 진짜 싫다…”

     

    수군수군.

    금방 떠들기 시작하는 1학년들의 모습에 플라톤 교수의 얼굴이 험상궂게 굳었다.

     

    “사일런스 매직!!”

     

    힘찬 외침과 함께 작은 돌 부스러기를 엄지 위에 올려 검지로 튕겨낸 교수.

    빡 소리와 함께 두려움에 질려 수다를 떨던 학생들의 머리에 돌 부스러기가 박혔다.

     

    “악!”

    “아파…!”

    “침묵물리마법의 힘이 두렵거든 입을 다물거라. 강의시간이지 않느냐?”

    “…”

     

    교수의 물리마법이 두려웠던 학생들이 조용해지자 다시금 플라톤 교수가 친절한 어조로 돌아와서 동물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 동물들은 기승을 위해 데려왔단다.”

    “기승이요?”

    “매번 말하지 않았느냐? 본 교수는 진정한 철인의 양성을 통해 고국을 구원하고자 교수직에 머무르고 있다고. 철인은 우선 강인한 신체를 지녀야하지.”

    “그게 동물들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깨달음이 느리구나. 지난 강의들에서는 내게서 뭘 배웠느냐?”

    “달리기랑 수영이요.”

    “그 연장선상으로 이번에는 기승기능을 연마한다.”

     

    달리기. 수영. 기승.

    철인양성을 위한 삼종세트.

    그 나열에 플라톤 교수와 같은 국가 출신인 아카디아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교수님. 설마 저희들, 중간고사에서는… 그걸 하는 건가요?”

    “하하하! 역시 자랑스러운 피렌체 왕국의 후예답구나. 그렇다. 너희들은 피렌체 왕국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스포츠, 철인삼종경기를 할 것이다. 기승은 그 중 마지막인 세 번째 경기의 종목이다!”

    “그게 뭐가 무섭다고 저리 난리냐?”

     

    무식한 손오천의 물음에 영리한 지젤이 답했다.

     

    “하나씩은 할 만할지도 모르죠.”

    “그런데?”

    “철인삼종경기는 셋을 동시에, 연이어 진행합니다.”

     

    강의 하나만으로도 숨넘어가던 학생들은 셋을 한 번에 몰아서 한다는 소식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거나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 그렇게 쫄지 말아요.”

     

    가혹한 시험에 맞서 뉴비들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구석은 있다.

    겁먹은 이사벨과 지젤, 근처에 쓰러진 롯토에게 넌지시 조언을 해줬다.

     

    “기승은 탑승물을 다루는 기능이에요. 자기한테 편한 탑승물을 고르면 날먹으로 넘어갈 수 있거든요. 탑승물만 잘 고르면 가장 쉬울 걸요?”

     

    세 개나 힘든 것보다는 둘만 힘든 것이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었는지 지젤이 한결 안도했다.

     

    “승마에 익숙한 사람이 말을 고르면 편하기는 하겠군요. 그런데 치타 같은 걸 고르면 어떻게 됩니까?”

    “음… 서열정리부터 해야겠죠?”

    “…….”

    “육식동물 자존심에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등에 태우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참고로 상급반 학생은 44명.

    교수님이 가져온 탑승물은 100개.

    그중 말은 10마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소나 당나귀, 치타 따위를 타야 한다.

     

    “그럼 원하는 탑승물을 고르게. 중간고사까지 함께 할 탑승물이니 되도록 신중하게.”

    “교수님. 한 탑승물에 여러 희망자가 모이면 어떻게 합니까?”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나? 싸워서 제일 강한 놈이 가지는 거지.”

     

    싸움판이 열리기 1분 전의 일이었다.

     

    “다들 왜 저렇게 싸우는 걸까요? 저처럼 말을 욕심내지 않으면 될 텐데.”

    “…네가 탄 골렘도 욕심내는 애들 많았거든?”

     

    옆에서 다른 골렘의 등에 올라타 있던 헤스티아가 어이 없다는 얼굴로 핀잔을 주었다.

     

    “에이, 거짓말. 그럼 왜 아무도 저한테 안 덤벼요?”

    “미래의 악마군주하고 싸우고 싶지 않다던가 마왕후보에게 원한을 사고 싶지 않다던데. 무슨 말인지 혹시 알아?”

    “그,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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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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