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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깊고도 어두운 밤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로즈마리를 기숙사로 데려왔다. 외출복 하나 달랑 차려입은 공녀님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신분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지, 속에 걸치고 있던 원피스 또한 고급 실크를 짜서 만든 상등품이었다. 어디까지나 초가을에 입고 나올 옷치고는 허술하다는 뜻이다.

       

        “다녀왔어? 뭐 하다가 이제….”

       

        내가 머무르는 기숙사에는 당연히 로테도 있었다. 로테는 나에게 잘 다녀왔냐는 인사를 전하려다가 불상처럼 우뚝 멈춰버리고 말았다.

       

        “어…? 공녀님께서 이런 시각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

        “갑자기 들어와서 죄송해요. 부득이한 사정이 생겼는데 하룻밤 묵을 수 있을까 해서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치맛자락을 슬쩍 들어 올리는 로즈마리.

       

        블루베리는 과거 일 때문에 인간, 그중에서도 제국인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런데도 로즈마리는 로테를 싫어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숙였다. 프로답다면 프로답다고 할 수 있는 자세였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네? 네…. 괜찮아요.”

       

       갑작스러운 공녀님의 습격에 오히려 로테가 정신을 못 차렸다. 로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도 없이 들어와서 하룻밤 묵게 해 달라는 것이 난처한 일이라는 건 누구나가 안다. 나는 로테에게 양해를 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도 버멜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러한 생각뿐이었다. 내가 로즈마리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녀석도 숨이 좀 트이겠지.

       

        자아, 슬슬 말해야 할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데….

       

        “다시 한번 죄송해요. 멋대로 들어와 버려서.”

        “아뇨, 아니에요! 그보다도 블랜튼 공작님께는 연락 드리셨나요?”

        “네. 아버님께는 오늘 외박한다고 미리 말해 두었어요.”

       

        이게 귀족 간의 대화인가. 액면가만 보면 기껏해야 한두 살 차이인데 상호 존대하는 모습이 풋풋하다.

       

       …사실 블루베리는 로테에게 반말을 시전해도 문제없는 나이지만 말이다. 

       

       “어…. 그러고 보니 기숙사 침대가 두 개뿐이네요. 제 침대를 빌려드릴게요.” 

       “됐어요. 바닥에 모피 하나 깔고 자도 되는걸요.”

       “안 돼요. 공녀님께 어떻게 그런 무례한 짓을 해요?”

       “괜찮아요. 바닥에서 자는 건 익숙해요.”

       “네…?”

         

        로테가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번지기 전에 로즈마리의 말을 가로챘다.

       

        “내가 끼고 잘게. 그리 좁은 침대도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로테는 로즈마리가 마수라는 걸 모른다.

       

        그와는 반대로, 로즈마리는 로테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물론 나를 봐서라도 로테에게 손은 안 대겠지. 하지만 돌발행동에는 몸짓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얘가 언제 어떤 식으로 이상한 말을 내뱉을지 모른다. 가령 방금처럼 핀트에 안 맞는 옛날얘기를 꺼내려고 한다거나.

       

        이런 위험물질은 내가 끼워놓고 자는 편이 안전하다. 원래 폭발물은 전문가가 다뤄야만 하는 법이니까.

       

        화장실에서 차례로 씻고 나온 뒤 침대에 누웠다. 로즈마리가 안쪽에 들어가고, 내가 바깥에 누운 모양새다.

       

        꽤나 전략적인 자리 배치였다. 이래야 얘가 여기서 꼼짝 못 하지.

       

        “으…. 역시 좁아.”

        “그냥 내가 밑으로 내려갈까?”

        “안 돼요. 천벌 받을 짓이에요!”

        “괜찮아. 익숙해.”

        “아.”

       

        나는 바닥에서 자는 걸 좋아한다. 아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익숙해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

       

        지구에서도 그랬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바닥에서 자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 일상은 대학교 졸업하고 다시 시작됐지. 아, 지난날을 생각하니 그립지…는 않구나 시발.

       

        “언니가 왜 바닥에서 자요. 그냥 이러고 있어요.”

       

        로즈마리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가만히만 있으면 한 외모 하는 녀석이다. 도저히 마수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외양이었다.

       

        그나마 내가 이런 몸이라서 얠 편하게 대하는 거지, 버멜이었다면 죽을 맛이었을 거다. 지식 치트가 없던 나를 위한 여신 나름의 배려인 건가? 난이도 조절 참 괜찮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우.”

       

        오늘 로테에게 11시간 연속으로 강의를 했더니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고개를 돌려보니 로테는 스탠드를 켠 채로 책상에 앉아있었다. 무언가를 쓰는 중이었다.

       

        “뭐해?”

        “오늘 너한테 배운 거 복습.”

        “성실하네. 모르면 내일 물어봐도 되는데.”

        “자기 전에 공부해 둬야 장기기억으로 넘어가지.”

       

        로테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아이다. 보통 대학 1학년 들어오면 다들 술 마시고 놀지 않나?

       

        풋풋했던 새내기 시절에는 나도 조금 풀어졌었는데…. 얘는 나라가 망해도 마도학 공부를 할 것 같았다. 이는 그만큼 로테가 마수 없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로테는 부동의 자세로 연필을 사각거렸다. 그것도 1시간 넘게 말이다. 1시간 집중이 뭐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대수 맞다. 로테는 오늘 강의만 10시간을 넘게 들었다. 심지어 한 번도 쉬지 않고.

       

        금안족인 나조차도 체력이 달려 눈꺼풀이 감길 정도다. 그런데도 로테는 새벽까지 저러고 있었다.

       

        마침내 로테가 하품과 함께 펜을 내려놓았다. 로즈마리는 벽에 붙어서 쌕쌕거리고 있다. 블루베리가 잠에 든 걸 확인한 나는 눈을 감기 전 로테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 했어?”

        “아니. 나머지는 내일…. 아니지, 오늘이구나. 오늘 동아리 가서 해야지.”

        “그래. 졸릴 텐데 얼른 누워.”

       

        로테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처럼 침대 사이를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녀가 이불을 덮는 걸 확인한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잘 넘겼구나. 로즈마리가 크게 이상한 행동을 벌이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럼 굿나잇이다! 라고 속으로 외치며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

        “…….” 

       

        찬연한 금색 눈동자가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동아리요?”

       

        ……방금 한 말 취소.

       

       

        **

       

       

        전쟁터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불면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출처? 나는 일반인이라 이런 것쯤은 출처 몰라도 알 수 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새벽을 꼴딱 새 버렸다. 로즈마리 녀석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있어야 말이지.

       

        이러고 있으니 당사자의 입장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감시나 스토킹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게다가 버멜은 무슨 몸에 참기름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니 미칠 노릇이겠지. 그래, 첩보 활동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니까.

       

        “언니, 준비 다 됐어요?”

        “아직.”

       

        양치질을 하고 있자니 로즈마리가 화장실 문을 열고 쳐들어왔다. 안 그래도 멍때리고 있어서 반쯤 해이해진 상태였는데, 적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니까 살짝 놀랐다.

       

        “넌 왜?”

       “저 인간이 나더러 양치하래요.”

       

        로즈마리의 오른손에는 비상용으로 구비해 놓은 새 칫솔이 들려있었다. 민트 맛 치약이 듬뿍 짜인 걸 보니 로테가 한 짓이다.

       

        “그럼 들어와.”

        “아이 씨….”

       

        화장실은 두 평이 조금 안 되는 공간이다. 폐소공포증 환자가 질색하는 장소로 딱이다.

       

        “나랑 비집고 잘 때도 별 탈 없었잖아. 이거 가지고 뭐.”

        “그건 언니 곁이라 참을 만했던 거구요.”

       

        얼씨구.

       

        “그리고 여기 화장실은 창문 하나 없잖아요. 전 죽어도 못 들어가요.”

        “어휴. 잠깐 기다려 봐.”

       

        나는 물을 뱉어내고는 옷을 갈아입고 있는 로테에게 가서 양해를 구했다. 공녀님이 화장실 안은 무섭다고 땡깡을 피우시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먼저 동아리 부실로 가줄 수 있느냐면서.

       

        “그러지 뭐. 준비되면 바로 따라와.”

       

        블라우스 단추를 잠그고 있던 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테는 지체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야 로즈마리는 양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조금 이상했다.

       

        “그건 또 뭐야.” 

        “이거요? WD-50이라는 치약인데 한번 써보실래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스프레이를 꺼낸 로즈마리가 그것을 대뜸 자기 입에 뿌려댔다.

       

        -치익, 치익

       

        민트 치약과는 다른 기기묘묘한 냄새가 방안을 적신다. 좆됐음을 감지한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어 환기했다.

       

        “수분은 이를 썩게 만들어요. 상식 아닌가요?” 

       

        대체 누구를 위한 상식이냐고.

       

        “저급품이긴 해도 휴대용으로 나름 쓸 만 해요. 아니면 저희 집에 강중유도 있으니까 그거 써 보러 오실래요? 글쎄 그게 말이죠, 치석 제거에 어찌나 효과적인지….”

       

        진짜 한시라도 빨리 이 몸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번에 베릴륨 알갱이로 파르페 장식해 놓은 것도 그렇고, 인간으로서 알고 있던 상식이 붕괴하는 느낌이라 못 버티겠다.

       

        그 뒤로 블루베리의 쇼호스트 광고를 들으며 5분간 양치질을 계속했다. 방에서 냄새가 빠지려면 1시간은 기다려야 할 듯싶다.

       

        그러나 난감한 점은 이것 하나가 아니었다.

       

        “아카데미 생활의 꽃은 동아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마침 동아리 하나 들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가을에는 신입 부원을 안 받으니까 내년에 기다려야 하나 막막했거든요. 언니가 여기 있어서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새벽에 나와 로테의 대화를 엿들은 로즈마리는 있는 핑계 없는 핑계를 다 들어 연성부를 구경해 보고 싶다고 졸라댔다. 놀랍지 않게도 그 제안을 수긍한 건 로테였다.

       

        그래, 로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우리는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로즈마리는 나비춤을 추는 것처럼 로브를 팔락거리며 복도를 사뿐사뿐 뛰어갔다.

       

        [연성부 동아리]

       

        “여기예요?”

       

        푯말을 가리키며 묻는 꼬맹이가 하나. 어쩐지 예의 바른 프레이를 보는 느낌이다.

       

        나는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아니라고 발뺌하기엔 너무 늦었다.

       

        로즈마리는 최대한 완력 조절을 하며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끼이익, 하고 나무로 된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리고.

       

        “…아.”

       

        블루베리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일(一)자를 세로로 세워 놓은 듯한 물체의 그림자가.

       

        “아.”

       

        맞다.

       

        어제 저거 안 치우고 나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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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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