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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에단이 내 새로운 단검을 맞춰주겠다는 호의적인 제안을 했을 뿐인데, 내가 뻔뻔한 오해로 귀족 교류회니 뭐니 이상한 말을 꺼내버린 직후.

         

        밀려오는 수치심에 얼굴을 감싸고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있으니 에단이 나를 위로하듯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미안, 릴리스. 내가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했어야 했는데.”

         

        “…아니요. 제가 감히 멍청한 착각을 했습니다, 에단 도련님.”

         

        “머, 멍청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릴리스가 내 약혼자로 오해받는 걸 부정하지 않는 건 나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 테니, 방금 저와 나누셨던 대화는 전부 잊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이대로는 도저히 창피해서 도련님에게 고개를 들 수가….”

         

        “…무슨 이야기? 우리 그레인스톤으로 가자는 이야기하던 중 아니었어?”

         

         

        …그래도 블랙우드 공자답게 분위기 파악은 진짜 잘하네.

         

        에단이 정말로 내 말을 잊어버린 것처럼 태연한 태도로 말해준 덕에 나도 화끈거리는 얼굴을 어떻게든 진정시킬 수 있었고.

         

        아직 얼굴에 열기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대화는 이어가야 했으니 뻔뻔한 자세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레인스톤 마을이라면 하프 드워프 대장장이분께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작은 마을이로군요.”

         

        “…아, 응. 그렇지.”

         

        “그런 작은 마을에는 무슨 이유로 방문하십니까? 혹시 새 검을 맞추실 생각입니까, 에단 도련님?”

         

        “…그건 아니고, 릴리스의 단검을 새로 만들어주려고.”

         

        “제 단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말 예상하지 못한 말씀이었습니다, 에단 도련님.”

         

        “…….”

         

         

        무언가를 참으려는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어떻게든 감정을 절제하는 에단.

         

        뭐, 이걸로 내가 에단과 함께 귀족 교류회에 참가하려 했었다는 뻔뻔한 세계선은 어떻게든 사라진 셈 치고.

         

        이번에야말로 내 검을 새로 맞춰주겠다는 에단에게 가장 먼저 든 의문을 건넸다.

         

         

        “그나저나, 새 단검을 맞추러 그레인스톤까지 갈 필요가 있습니까?”

         

        “응?”

         

        “저야 물론 좋은 단검을 맞출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만, 괜히 저를 데리고 가시느라 에단 도련님께서 번거로우신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무슨 말이야. 릴리스 네 검을 맞추러 가는 건데 번거로운 일은 아니지.”

         

        “네?”

         

         

        본인 검도 아니고 전속 메이드의 단검을 맞추는 건데 그게 번거롭지 않다고?

         

        대체 무슨 의미로 전한 말인가 싶어 잠시 고민이 든 순간이었으나, 곧바로 에단이 내게 말한 말의 다른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2학기의 수확제를 생각하고 있나 보네.’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매년 1학기의 마무리 해사가 전투부 학생들의 평가전이듯, 2학기의 마무리 행사는 전교생이 전부 참여하는 수확제였고.

         

        수확제에서 전투부 학생들이 하는 것 중 하나가 아카데미 근처에 있는 숲 사냥터에서 사냥감을 잡아 오는 것이었고, 이 시기에는 일 년 중 유일하게 학년과 부서에 관계없이 파티를 짜서 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곳에서 에단이 자신의 파티에 나를 넣을 생각이라면 내 전력을 강화하는 게 딱히 번거로운 일은 아니긴 하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 나는 곧바로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에단 도련님. 에단 도련님이 제 단검을 맞춰주신다는 게 왜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말해줄 수 있어? 릴리스를 의심하는 건 아닌데, 왠지 또 이상한 오해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에단 도련님의 전속 메이드인 제 전력이 증가하는 것은 곧 에단 도련님의 전력이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 때문 아닙니까?”

         

        “……응?”

         

        “…혹시 틀렸습니까?”

         

        “아, 아니…. 릴리스가 웬일로 이상한 오해를 안 하고 제대로 이해한 건가 싶어서….”

         

         

        …방금 에단이 순간적으로 나에게 무언가 조금 박한 평가를 했던 것 같은데.

         

        그냥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적당히 넘어갔다.

         

         

        “아무튼, 갈 거면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거로 하자.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출발하고 싶지만,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으니까.”

         

        “네? 그레인스톤 마을은 블랙우드 영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지 않습니까? 지금 출발한다면 아마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마부한테 지금 당장 출발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떠나기 전에 마차 정비도 한 번 해두긴 해야 할 테고.”

         

        “겨우 그레인스톤까지 가는 여행길에 굳이 마차까지 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응?”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에단이 나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물어왔고.

         

        나는 곧바로 양손으로 고삐를 쥐는 시늉을 하며 에단의 눈앞에서 양 주먹을 흔들었다.

         

         

        “저와 에단 도련님 두 명뿐인 여정이라면, 굳이 마차에 의존하지 않고 말 한 마리면 충분하겠죠.”

         

        “…정말로?”

         

        “지금 출발하면 저녁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에단 도련님.”

         

         

        그레인스톤으로 향할 원정대의 인원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 ⁎ ⁎

         

         

         

        그레인스톤으로의 원정이 정해지고, 에단과 함께 나온 마구간 앞.

         

        제법 오랜만에 마주한 늠름한 자태를 가진 한 마리 백마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잠시 잊고 있던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오랜만에 뵙네요, 제라온.”

         

       ‘히이잉!’

         

        “제가 아카데미에 다녀온 사이 저를 잊으신 건 아니겠죠? 일단 건강해 보여서 좋네요.”

         

       ‘히히이이잉!’

         

         

        디트마이어의 승마 강의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던 블랙우드 가문의 백마, 제라온.

         

        다행히 나와 함께 했던 석 달 남짓의 추억을 딱히 잊어버리지는 않은 듯 제라온 또한 내 얼굴을 마주하고 반갑게 화답하는 모습이었다.

         

         

        “…릴리스, 여기 보니까 루시나라고 적혀 있는데? 게다가 암컷에게 제라온은 조금….”

         

        “일단은 함께 밖으로 나가시죠, 제라온.”

         

       ‘히이잉!!’

         

         

        사소한 것에 쓸데없이 토를 다는 에단의 말은 적당히 무시한 채 제라온의 고삐를 쥐고 마구간 밖으로 나섰고.

         

        오랜만에 이 친구의 등에 타서 달릴 생각을 하니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첫 승마 수업을 이 친구랑 시작해서 여러모로 정이 많이 쌓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차를 운전하는 것과 직접 말을 모는 것은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말 위에 올라타서 달리는 쪽이 마차 운전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마차보다 조금 더 흔들리기는 하지만 어차피 직접 운전하면 오히려 그 부분은 적게 느껴지기 마련이었고, 승마를 즐기는 가장 큰 영역인 속도감 부분을 아무런 방해 없이 즐길 수 있었으니까.

         

         

        “괜찮겠어, 릴리스?”

         

        “승마는 마차 운전보다도 더 일전에 깨우친 내용입니다, 에단 도련님. 제가 직접 운전하는 마차에 탑승하신 적 있는 도련님께서 걱정하시는 이유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당연히 릴리스의 승마 실력이야 알고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그쪽이 아닌데….”

         

        “네?”

         

         

        무언가 바로 대답하기는 조금 어려운 건이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망설이는 에단의 모습.

         

        그리고는 뜬금없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을 고백하며 그레인스톤 마을로의 여정을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승마를 못 해, 릴리스.”

         

        “네, 알고 있습니다. 에단 도련님께서는 승마술을 배우시는 대신 검술 수련에 시간을 쏟으셨으니까요.”

         

        “그러니까 릴리스의 말대로 말을 타고 그레인스톤으로 향한다면, 릴리스가 앞에 타서 말의 고삐를 쥐고 나는 릴리스의 뒤에 붙어서 함께 타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그냥, 말을 타고 함께 이동할 뿐인 것 아닙니까? 딱히 문제가 될 것 없습니다.”

         

        “…….”

         

         

        내 마지막 대답을 끝으로 갑자기 조용해진 에단.

         

        그리고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알았어, 릴리스가 상관없다면야.”

         

        “네?”

         

        “릴리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그냥 이렇게 둘이 타고 가는 거로 하자.”

         

        “…혹시, 기분이 언짢으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에단 도련님?”

         

        “아니. 그런 건 전혀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됐으니까 빨리 출발하자, 릴리스.”

         

        “……네.”

         

         

        뭔가, 확실하게 별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 모습인데.

         

        함께 곁에서 지내온 세월이 적지 않았던 만큼 나름 평소 생활에서도 그가 싫어할 만한 행동 같은 건 눈치껏 해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에단은 명백하게 나를 향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듯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에단 성격이라면 아마 금방 풀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모습에 조금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에단의 말대로 제라온의 등 뒤에 올라탔고.

         

        내가 말 위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뒤쪽에서 에단이 내 뒤에 따라 올라타는 감각이 느껴졌다.

         

         

        -털썩.

         

        “지금부터 그레인스톤 마을로 출발하겠습니다, 에단 도련님.”

         

        “…그래.”

         

        “혹시나 승마 도중 떨어지지 않도록 제 몸을 꼭 붙들어 주십시오.”

         

        “…그래.”

         

        -말캉.

         

        “…흐읏?!”

         

         

        등 뒤에서 뻗어진 손길이 순간적으로 내 가슴을 만진 것 같은 감각에 내 입에서는 저절로 살짝 부끄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고.

         

        갑자기 뒤에서 내 가슴을 붙잡은 에단의 행동이 무슨 의도인가 싶어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에단이 먼저 사과를 전해왔다.

         

         

        “…에단 도련….”

         

        “미안, 릴리스. 실수였어.”

         

        “네?”

         

        “등 뒤에서 릴리스의 몸을 붙잡으려다가 어쩔 수 없이 닿아버린 것 같아. 미안, 릴리스.”

         

        “…….”

         

         

        일부러 만진 게 아니라 실수였으면…딱히 열을 내며 추궁할 필요까지는 없으려나.

         

        하긴, 애초에 내가 먼저 말 하나를 같이 타고 이동하자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이런 거로 뭐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겠네. 이 정도 신체 접촉이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런 말 하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가슴 정도는 이미 몇 번이나 만져졌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려면 충분히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알겠습니다, 에단 도련님. 다음에는 주의해주십시오.”

         

        “응.”

         

        -말캉.

         

        “…으흣.”

         

        “미안, 자세를 조금 바꾸려다가.”

         

        “…괜찮습니다, 에단 도련님.”

         

         

        처음에 무심코 내 가슴을 쥐었던 것도 그렇고, 혹시 일부러 이러는 건….

         

        에이, 설마. 에단이 어떤 녀석인데, 일부러는 아니겠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던 좋지 못한 상상을 집어치운 채 두 손으로 붙든 제라온의 고삐를 한 차례 찰싹였고.

         

         

        나와 에단, 두 사람을 태운 한 마리의 백마는 그레인스톤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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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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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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