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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그러니까, 겨울이를 방치한 게 길드라고요···?”

       

       “으, 응···”

       

       “그게 뭔···”

       

       믿을 수가 없다.

       만민의 존경을 받는 여명 길드에서 아이를 방치하다니.

       대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감조차 안 잡혔다.

       

       “조금 변명해 보자면, 겨울이가 어른인 줄 알았어.”

       

       “겨울이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

       겨울이는 자신의 가슴 높이밖에 오지 않는 작은 아이였다.

       어른으로 착각할 요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권아린은 결국 미간을 찌푸리기로 했다.

       

       “겨울이가 원래 마나 없이 태어났거든. 그 때문인지 성장··· 성장 장애 비슷한 걸 앓고 있었어.”

       

       “성장 장애요?”

       

       “응. 키도 나보다 살짝 컸어.”

       

       평균 여성보다 몇 센티는 더 큰 한여름이었다.

       그 한여름보다 살짝 컸었다면, 어른으로 착각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일 년을 넘게 알려줘도 뿔토끼 한 마리 제대로 못 잡길래, 한심한 어른이네 하고 포기해버렸지 뭐야.”

       

       “······.”

       

       권아린은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밑바닥을 맴돌던 자신도 뿔토끼를 처음 잡기까지 일주일이 안 걸렸으니까.

       그만큼 뿔토끼는 몬스터라 부르기도 애매한 최약체 몬스터였다.

       

       “마나가 없는 사람은 뿔토끼조차 목숨을 걸고 잡아야 하더라. 난 그것도 모르고···”

       

       하아.

       한여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비난을 대비했던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평범한 질문이었다.

       

       “겨울이한테 미안하다고 했어요? 용서는 받았고?”

       

       “응. 했지.”

       

       “길드에서 겨울이 몸도 고쳐줬고요?”

       

       “응. 그건 운이 좋았어.”

       

       “아···”

       

       의미 없이 아이를 괴롭힌 건가 싶었는데, 오해와 오해가 겹쳤을 뿐인가.

       그렇다면 길드에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도 분명 그랬을 테니까.

       오히려 더···

       

       ‘나도 참 미련하게 살았다.’

       

       겨울이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그렇게 살았을 테지.

       자신보다 한심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권아린은 작은 아이가 자신의 삶을 바꿔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겨울이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보다 더 착실하게 살기로 했다.

       

       “겨울이가 용서해 준 일이라면, 제가 왈가왈부할 순 없겠네요.”

       

       “···응. 고마워.”

       

       “흠흠.”

       

       이런 분위기.

       아직은 어색하다.

       권아린이 뺨을 긁적였다.

       

       ‘언니가 나한테 진실을 알려준 건···’

       

       잘못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거겠지?

       한심하게 살아왔음에도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권아린은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보기로 했다.

       미련한 과거를 털어버린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수확한 채소를 천막에 내려놓고 공원으로 나왔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공원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저건···”

       

       연못 근처 잔디밭 위에 레비나스가 발을 쭉 뻗고 앉아있다.

       그녀는 뻗은 발을 좌우로 흔들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직 자고 있어야 할 이른 아침인데, 깨어있다니.

       나는 레비나스의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앉았다.

       

       “레비나스, 여기서 뭐 해?”

       

       “눈 기다린다!”

       

       “눈? 하늘에서 내리는 거?”

       

       “응! 왕아 눈은 언제 내리냐?!”

       

       눈을 보려면 반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여름이 오기 직전의 따듯한 날씨였으니까.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시간 낭비를 하지 않도록 알려주기로 했다.

       

       “눈이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

       

       “그, 그러냐? 이렇게 기다려도 안 오냐?”

       

       “응.”

       

       “에이··· 레비나스는 얼음 인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얼음 인간.

       눈사람을 말하는 건가?

       의문을 품는 순간에, 레비나스가 잔디밭 위에 털썩 드러누웠다.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나도 그녀를 따라 잔디밭에 드러우눴다.

       

       “눈사람 만들고 싶은 거야?”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돌려, 레비나스의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눈사람이 뭐냐?”

       

       “눈을 뭉쳐서 만든 사람.”

       

       “응! 그거! 레비나스는 차가운 얼음으로 인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얼음 인간.

       이 세계에서는 눈사람을 얼음 인간이라고 부르나?

       잘 몰랐기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만들어 보고 싶다라···’

       

       지금까지는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얼음 인간 만들어 본 적 없어?”

       

       “응! 왕이는 만들어 본 적 있냐?!”

       

       “아니, 나도 없어. 만들 시간이 없었거든.”

       

       과거의 내겐 노는 시간 따윈 사치였다.

       이렇게 누워서 레비나스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기적일 정도였다.

       

       “레비나스랑 완전 똑같다! 레비나스는 어른들이 못 만들게 했는데!”

       

       “참 나쁜 어른들이네.”

       

       “그래서 레비나스가 편을 바꿨잖아!”

       

       레비나스가 내 팔을 빼내고는 그 위에 베개 삼아 누웠다.

       눕느라 다리 사이로 내려온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양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레비나스랑 같은 편이라서 다행이다.”

       

       “레비나스도!”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지내면 여한이 없을 텐데.

       그렇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정유나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아가들, 뭐 해?”

       

       “마법사야!”

       

       정유나가 우리의 발치에 서 있다.

       내 꼬리가 제멋대로 그녀의 발목을 둘러 감았다.

       

       “노는 중이야?”

       

       “아니! 놀려고 했는데 얼음이 없어서 못 놀았다!”

       

       “얼음? 얼음으로 뭐 하게?”

       

       정유나가 마법으로 얼음을 피워냈다.

       그녀의 손 위에 주먹만 한 얼음이 생성되었으나, 레비나스는 딱히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레비나스는 얼음 인간을 만들고 싶은데, 얼음이 없어서 못 만들었다!”

       

       “저런, 못 놀았구나?”

       

       “정답!”

       

       레비나스가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손으로 큰 동그라미를 만들었는데, 동물왕 카드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나오는 연출이었다.

       

       “음··· 그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볼래? 얼음 인간 만들어 줄게.”

       

       “정말루냐?!”

       

       “응. 마법사잖아.”

       

       당연히 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정유나는 마법사 중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마법사였으니까.

       그녀라면 마법으로 눈을 내리게 할 수 있을 터였다.

       

       “헉! 그러면 왕이랑 얌전히 기다리겠다!”

       

       “후후, 금방 올게.”

       

       정유나가 저만치 떠나갔다.

       발목에 둘러감은 꼬리가 풀려서 아쉬웠다.

       그렇게 우리는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로우니 졸음이 쏟아진다.

       레비나스도 마찬가지였는지,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다.

       

       정유나가 돌아올 때까지 낮잠을 자볼까?

       나는 잠에든 레비나스를 지켜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쿠웅-!

       

       땅이 울린다.

       큰 소리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쿵-!

       

       거대한 무언가가 최대한 조심하며 다가오는 느낌.

       소리가 들려온 곳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

       

       차갑고도 거대한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레비나스를 들어 올렸다.

       

       “뭐냐···?”

       

       내 품에 안긴 레비나스가 눈을 문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쯤에서 울린 쿵 소리에 레비나스가 몸서리를 쳤다.

       

       “으갹!”

       

       거대한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전신이 얼음으로 뒤덮힌 괴물이었다.

       

       일단 레비나스를 대피시켜야겠지?

       곧바로 뒤를 돌아 달아나려는 찰나, 얼음 몬스터의 뒤에서 정유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렸어?”

       

       “마, 마법사야!”

       

       레비나스가 겁에 질린 얼굴로 정유나를 불렀다.

       그러나 정유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만 볼 뿐이었다.

       

       “노, 놀랐니?”

       

       정유나가 괴물의 몸 위에 손을 얹었다.

       얼음 괴물이 고개를 떨구며 움직임을 멈췄다.

       전기가 끊긴 기계를 보는 것만 같았다.

       

       “마, 만든 거예요?”

       

       “응. 얼음 인간 만들어 보고 싶다 했잖아. 그래서 골렘 뼈대만 만들어 왔어.”

       

       얼음 인간을 얼음 골렘으로 착각한 건가?

       골렘의 위압감에 뒷걸음질을 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고, 골렘이 아니라 눈사람···”

       

       “눈사람···?”

       

       “네, 네에··· 눈 뭉치고 돌돌 굴려서 만드는 거···”

       

       “아.”

       

       정유나가 작동을 멈춘 골렘처럼 굳어버렸다.

       가만히 서서 숨만 내쉬다가, 얼마 뒤 다시금 입을 열어왔다.

       

       “얼음 인간이 눈사람이었구나?”

       

       “네, 네···”

       

       “···미안, 얼음 인간이라길래 착각해 버렸다.”

       

       역시, 이 세계에서도 눈사람은 눈사람이라 부르는 건가.

       얼음 인간은 레비나스만의 단어인 듯싶었다.

       

       이건 절대로 정유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이의 언어체계는 가끔 이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사과 안 하셔도 돼요. 골렘 멋있어요.”

       

       “응. 고마워.”

       

       후후.

       눈웃음을 지은 정유나가 골렘을 뒤로 물렸다.

       놀란 우리를 배려해 준 것이었다.

       

       “마법사야! 저거 얼음으로 만든 인간이냐?!”

       

       “응. 눈사람인 줄 모르고, 그냥 통 얼음으로 만들어 왔지 뭐야?”

       

       “헉!”

       

       품에 안긴 레비나스가 골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까이 가고 싶다는 걸 알기에, 그녀를 안고 골렘을 향해 이동했다.

       

       골렘의 표면에 손을 올린 레비나스가 손을 움찔 떨었다.

       

       “차갑다!”

       

       “응. 얼음이니까.”

       

       레비나스가 혓바닥을 내밀고는 골렘의 몸을 핥았다.

       딱히 더러워 보이지는 않았기에, 핥도록 내버려 두었다.

       

       할짝할짝-

       

       아래에서 위로.

       몇 번이고 골렘을 핥던 레비나스가, 혓바닥을 붙인 채 우뚝 멈춰 섰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레비나스의 옆모습을 살펴보았다.

       

       “부, 부터따···”

       

       레비나스의 혓바닥이 골렘의 얼음에 딱 붙어 버렸다.

       그녀가 머리를 뒤로 빼려 했으나, 붙어버린 분홍빛 혓바닥만 길게 늘어날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다들 얼음에 혓바닥 붙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먼데용은…!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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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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