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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폭쇄결(爆灑結)의 등장으로 5층 공략은 가속이 붙었다.

       

       가끔씩 의도치 않은 로켓 펀치가 나가곤 했지만, 시련의 탑에서는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였고. 제이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급진적인 가속은 결과적 후발선제(後發先制)를 가능케 했다. 뭔가 오묘한 무공의 이치가 아니라 로켓 추진을 이용한 결과였지만⋯⋯ 제이의 첫 발도를 거의 확정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이 뒤는 택틱의 영역이었다.

       

       패턴을 쪼개고 분석하여, 움직임에 대처하고, 발도를 막은 상태로 데미지를 누적하는 정교한 일련의 동작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택틱의 달인이 여기에 있었다. 압도적인 분석력과 근성, 일류의 마음가짐까지 갖춘 시련의 탑의 여왕, 루나 스테리.

       

       “한 번 더.”

       

       “알겠소!”

       

       “나 죽어⋯⋯.”

       

       그러나 아뿔싸!

       

       루나는 열 시간을 반복 작업으로 꼴아박아도 그것을 즐길 수 있었으나, 나약한 유사 무림인과 적탑 마법사는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트라이가 거듭되어, 현실 시간으로 열다섯 시간이 경과할 무렵.

       

       “한 번 더.”

       

       “아, 아아아알겠소우리는한번더하는것이오.”

       

       “⋯⋯나, 죽⋯⋯.”

       

       동료가 망가졌다.

       

       루나는 불만을 가득 담아서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심통 난 표정을 지었으나, 그런다고 망가진 동료가 수리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혹은, 휴식을 대체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루나의 두뇌가 논리를 착착 짜 맞춰나갔다. 공략의 진행 상황을 보건대, 스펙을 조금만 더 보충할 수 있다면 비벼볼 만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공짜 아티팩트라도 주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돈 없는 학생이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전투력 보충제가 필요했고, 루나는 그걸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도핑.”

       

       “⋯⋯그게 무슨 소리요?”

       

       “약 먹자.”

       

       바로 아카데미 암시장이다.

       

       ===============================================================

       

       아카데미 지하를 세 사람이 나란히 걸었다.

       

       루나가 가운데에서 이끌고, 엔버스는 끓어오르는 모험심에 가슴이 뛰었으며, 셀비어는 이런 좁은 공간에서 폭발 마법을 쓰면 다 죽겠구나 생각했다.

       

       벽면을 손바닥으로 훑으면 물기가 배어 나올 것 같이 축축한 땅굴. 드문드문 설치되어있는 램프등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이런 땅굴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이오?”

       

       “선배. 아마도.”

       

       그것도 까마득한 선배였을 것이다.

       

       아카데미에는 비밀이 많다.

       

       그 특수성도 특수성이지만, 온갖 기인이사들이 모이는 공간이라서 사건사고도 참 많이 일어난다. 우화의 대부분이 정신이상을 동반하는 편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미친놈들이 모이면 뭔가가 일어나는 법.

       

       그렇게 태어난 여러 비밀 중에는, 으슥한 지하 땅굴에 지어진 비밀 술집도 있었다. 본래는 아카데미에 금주령이 내려지던 시절 밀주를 위한 장소였으나.

       

       현재는 신뢰성은 낮지만 가격도 낮은 각종 약물을 판매하는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약을 판다고 했었지. 어떤 약을 파는데?”

       

       “거의 다.”

       

       루나는 예시를 들기 위해서 검지로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야간 시야 약물, 마력 증폭, 사고속도 증강, 근력 증강, 그리고 정력제.

       

       엔버스는 펄쩍 뛰었다.

       

       “⋯⋯내 고간에 손가락질하지 마시오!”

       

       “이렇게?”

       

       “손바닥으로 가리키지도, 그냥 이쪽으로 뭘 향하지 마시오.”

       

       “쩨쩨해.”

       

       좀 가리킨다고 닳느냐는 루나의 지적과, 내 마음이 닳는다는 엔버스의 콩트가 펼쳐지고 있을 때, 셀비어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말했다.

       

       “위에도 연금술 상점이 있잖아. 굳이 이런 음습한 곳에서 약물을 사야 할까?”

       

       “퀄리티, 여기가 나아.”

       

       “으음⋯⋯.”

       

       그렇다면 더더욱 수상하다. 퀄리티 좋은 약물을 굳이 숨겨서 판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사악하고 찜찜한 의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한.

       

       “⋯⋯비슷한 냄새가 난단 말이지.”

       

       고향의 냄새가 났다.

       

       셀비어의 고향 산제비 마을은 결코 좋은 곳이 아니었다. 이웃간의 우정이나 유대는 찾아볼 수 없었고, 관습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악함이라는 단어로 축약할 수 있을.

       

       새까만 호수에 빠진 인간의 말로는 둘 중 하나다. 익사하거나, 물귀신이 되거나. 

       

       현재는 행방이 묘연한 그녀의 소꿉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셀비어 또한 ‘마을 사람’이 되었으리라. 하여.

       

       묘한 꺼림칙함에, 셀비어는 어딘가 불편한 기분으로 동행했다.

       

       그 기색을 읽었음인가. 루나는 그녀를 달래듯이 이렇게 말했다.

       

       “덜어도 돼, 걱정. 운영하는 거, 높은 사람.”

       

       “⋯⋯⋯⋯?”

       

       “땅굴의 주인, 3황자.”

       

       “⋯⋯⋯⋯!!”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라는 제국의 3황자, 스레도 크라운. 그가 이곳의 주인이라는 말인가. 

       

       루나는 ‘그렇게 높으신 분이 운영하는 시설이니, 수상할 정도로 값이 싼 약물도 부자의 장난 같은 거겠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엔버스 또한 묘하게 안심한 기색으로,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뺐다. 그러나 셀비어는 알겠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확신으로 굳혔다.

       

       비밀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이었다. 그녀는 가렸음에도 드러나는 몸매와, 애교가 묻어나는 고혹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방문하셨네요⋯⋯?”

       

       “도핑제. 신체 능력 상승 쪽.”

       

       “아카데미 수행평가는 다음 달로 알고 있는데⋯⋯ 의뢰라도 나가시려는 걸까요? 아니면 야밤에 누구 하나를 손 봐 줄 생각이라던가?”

       

       여성은 은근히 사용처를 캐내려고 들었지만, 루나는 손을 내저었다. 상품이나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마침 좋은 물건이 들어왔거든요⋯⋯.”

       

       선반에서 약물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셀비어는 ‘오’ 하고 놀랐다. 확실히, 아카데미의 연금술 상점보다도 이쪽의 퀄리티가 더 나았다.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냈던 수도의 연금술 공방과 비견될 정도다. 

       

       그 반응을 캐치한 여성은, 후드 아래로 미소를 지으면서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기도 했다. 엄지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사이즈의 약 보관함이었다.

       

       “혹시 좀 더 효과가 뛰어난 약을 찾고 계신 거라면, 이 약은 어떠세요? 아주 훌륭하답니다. 고명한 연금술사가 은퇴 이후 소일거리로 조금씩만 생산하는 물건인데⋯⋯.”

       

       “안 사. 이거 줘.”

       

       “⋯⋯네, 구매 감사드립니다.”

       

       루나는 여인의 호객 행위를 단칼에 자르고, 원래 구매하려던 도핑제를 샀다. 그리고 용무를 마쳤다는 듯 쿨하게 통로를 벗어났다.

       

       힘에 대한 집착이 있는 편인 엔버스는, 특별한 약이라는 이야기에 떠나가면서도 약 보관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셀비어는 ‘특별한 약’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고향의 냄새에, 몸서리를 치면서 자리를 떠났다.

       

       세 물고기가 낚싯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미끼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

       

       마약 거래상에게서 먹으면 안 될 것을 구매한 것 같은 비주얼의 거래였으나, 루나가 집어 온 것은 제대로 된 도핑제였다. 여러 몸에 좋은 영약들을 배합해 만들어 낸 것으로, 전반적인 신체 능력을 올려주었다.

       

       약간의 환각 증세가 나타날 수 있지만, 그건 사제에게 한 번 들르면 깨끗하게 사라지는 디버프다. 리스크가 거의 없는 좋은 약이었다.

       

       그러나 엔버스는 도핑에 취했다.

       

       “이게⋯⋯ 약의 힘? 이 좋은 걸 안 하고 있었다니, 인생의 절반은 손해를 본 것 같소!”

       

       “자제.”

       

       “앞으로도 약을 꾸준히 먹는다면, 그렇다면, 나는 예정보다 빠르게 저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자제하라잖아.”

       

       엔버스의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루나와 셀비어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저거, 그대로 내버려두면⋯⋯ 당장이라도 아래로 내려가서 ‘특별한 약’을 사 먹으려고 들 것 같았다.

       

       루나는 살짝 후회했다.

       

       그녀는 몸에 좋은 거 값싸게 사서 파티원에게 먹이고, 시련의 탑을 25시간 휴식 없이 달리고 싶었던 거지, 누구 하나를 약물 중독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얼간이가 아니고서야 당연히 약물의 오남용을 경계하며, 건전한 소비를 할 것이라 생각하여 암시장을 소개해 준 것인데. 생각해 보니 엔버스는 좀 얼간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어쩌지.”

       

       “⋯⋯일단 약효 돌 때 5층을 깨고 생각할까? 쟤는, 번갈아 가면서 감시하고.”

       

       “⋯⋯응.”

       

       루나는 엔버스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공략 욕구에 반 정도는 어울려 줄 수 있는 사람이니, 그가 망가져 버린다거나 하면 아쉬울 것 같았다. 보통 12시간 연속 챌린지는 싫어하니까.

       

       가능하면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은데.

       

       “제이 나오라고 하시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소-!!”

       

       “으휴.”

       

       우선은 공략이다. 싸우면서 부디 평정심을 찾기를 바라며, 루나는 파티원들과 함께 시련의 탑에 뛰어들었다.

       

       ⋯⋯⋯⋯.

       

       “『폭쇄결(爆灑結)』!”

       

       파앙──!!

       

       엔버스의 오른팔이 쏘아져 제이의 발도를 막았다. 모든 택틱은 이 시점으로부터 뻗어나간다.

       

       클리어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발도를 막는다.

       2) 잡는다.

       

       그러니 언제나 제1 목표는 발도의 봉쇄. 

       

       트라이 초기에는 ‘발도 막기’ 담당과 ‘데미지 넣기’ 담당을 따로 쪼개어 도전했던 적이 있었다. 엔버스와 셀비어가 공격을 맡았고, 루나가 발도를 방해하는 구도였다.

       

       아군오사가 발생한다든가, 셀비어의 화염구가 엔버스를 할로윈 파티처럼 만들어버린다든가 하는 일이 생겼지만, 반복은 안정을 낳는다. 결국은 합이 맞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끗이 모자랐다. 바로 방향 전환의 문제였다.

       

       발도를 방해하려면 가능한 한 제이의 정면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후면에서 발도를 막으려면 까다롭고 어려웠다.

       

       폭쇄결(爆灑結)은 직선적인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폭쇄결의 폭발적인 가속을 교묘한 곡선으로 운용하려고 들면, 팔이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어버리는 마술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면에서 때려 박는 방법이 안정성이 높았는데.

       

       제이가 몸을 반 바퀴 돌리면 문제가 생겨난다. 정면을 맞추려거든 엔버스와 루나가 네다섯 발짝은 족히 뛰어야 한다.

       

       안 그래도 제이와 학생들 간에는 속도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었다. 동선까지 불리한 상황에서는 따라잡을 길이 없다. 

       

       그래서 탄생한 택틱이 바로.

       

       발도 봉쇄, 데미지 : 엔버스, 루나

       원거리 화력 투사 : 셀비어

       

       합격(合擊).

       

       정면에 위치한 사람이 알아서 어떻게든 발도를 막으며 버틴다. 후면에 위치한 사람은 제이의 동선을 제한하고, 압박과 동시에 타격을 넣는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합격기만이 활로였다.

       

       “⋯⋯⋯⋯!!”

       

       팔꿈치가 들리면 철산고의 전조다. 빼빼 마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할 정도의 힘은, 맞은 사람을 밀어내고도 남는다.

       

       밀려나면 발도를 봉쇄할 수 없다. 그러니 후면에 위치한 루나가 도와줘야 한다.

       

       “『폭쇄결(爆灑結)』.”

       

       투웅──!!

       

       엔버스의 것보다도 안정적인 폭쇄결이 루나의 로우킥을 가속했다. 제이의 오금을 차서 하체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하체가 무너지면, 철산고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퍽!

       

       엔버스가 살짝 밀려났다. 제이는 그를 떨쳐내고 발도하려 했지만, 이 정도 거리는 폭쇄결의 커버 범위 내였다. 

       

       폭쇄결의 장점은, 자세가 무너져도 쏘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엔버스는 밀려나는 도중에 손바닥을 뻗어 제이의 칼 손잡이를 조준했다. 그리고 관절이 부서져라 마력을 터트렸다.

       

       “『폭쇄결(爆灑結)』──!”

       

       쾅──!!

       

       엔버스의 팔이 발사되고, 팔과 연결된 몸이 끌려갔다. 어깨와 팔꿈치의 살갗이 내부로부터 찢기며, 피가 배어 나왔다. 

       

       터업.

       

       그러나, 발도는 확실히 막았다.

       

       거친 마력의 운용. 데미지가 거의 없이 폭쇄결을 쏘아 내는 루나와 비교하면 초라한 기술이었으나, 마력기관에 장애가 생긴 엔버스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충분했다.

       

       도핑 덕분에, 앞으로 일곱 번은 더 발사할 수 있었으니까──!

       

       제이는 등을 빙글 돌렸다. 엔버스의 정면에 있으면 칼을 뽑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악수(惡手)였다. 루나에게는 준비된 기술이 있었다.

       

       “『폭쇄결(爆灑結) : 연(連)』.”

       

       전신의 힘을 끌어서 치는 요령과 같다. 다만, 모든 관절부의 회전에 폭쇄결의 추진력을 더할 뿐이다. 

       

       쾅. 쾅. 쾅⋯⋯!!

       

       발끝에서부터 작은 폭발과 함께 가속한다.

       

       발목, 무릎, 골반, 허리, 어깨를 거쳐,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증폭률로 주먹을 때린다. 주먹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속도로 쏘아진 멋진 어퍼컷이었다.

       

       으적──!!

       

       제이의 턱이 강제로 다물리며 위로 휙 꺾였다.

       

       그로기.

       

       강력한 타격에 의해 발생하는 찰나의 비틀거림. 여기서 셀비어는 미리 외워두고 있었던 주문의 마지막 음절을 내뱉는다.

       

       “터져 죽어라, 『작약탄』!!”

       

       콰앙──!!

       

       엔버스와 루나가 동시에 자세를 낮춘다. 셀비어의 불화살이 제이의 머리에 직격, 폭발했다.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렇게 하면 한 사이클이 끝난다.

       

       폭발로 인한 연기 사이로, 아직 죽지 않은 제이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체력은 아직 한참이나 더 남아 있었다. 그러니,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

       

       “──도망쳐라, 내게서!”

       

       발도술의 제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카타나를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칼을 뽑으려고 하는 것인지,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인지, 의도를 분간할 수 없었다.

       

       우웅.

       

       그러나 카타나가 한번 크게 울음을 토해낸 뒤엔.

       

       끼긱.

       

       칼집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카타나의 날이 조금 드러난다. 

       

       쿠웅-! 까드득! 

       

       루나는 폭쇄결을 응용, 내리밟듯이  발로 차서 카타나를 도로 집어넣었다. 제이는 손을 뻗어 루나의 발목을 잡아채려고 들었다. 

       

       엔버스는 뒤에서 제이의 팔뚝을 휘감았다. 그러나 제이의 완력이 한참이나 우세, 나아가는 그의 손을 저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역추진이다.

       

       “크아아아아── 『폭쇄결(爆灑結)』!!”

       

       쾅, 콰앙──!!

       

       제이의 팔뚝을 붙잡은 채로, 반대 방향으로 폭쇄결을 터트린다. 발생하는 추진력으로 완력을 갈음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1초간의 길항(拮抗).

       

       루나는 카타나 손잡이를 발 받침 삼아 내디뎌, 제이의 턱에 올려 차기를 날린다. 공격력이 부족하기에 급소만을,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노린다.

       

       맞물려간다. 계속, 하염없이⋯⋯.

       

       무한하게 도전하는 톱니바퀴에 끼인 제이의 결말은 둘 중 하나였다. 회전을 버텨 내어 살든가, 결국 으깨져 죽든가.

       

       20분을 내리 싸웠다.

       

       엔버스와 루나가 팔다리 한 쪽씩을 못 쓰게 되었을 때, 제이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고, 마.”

       

       집요하게 턱을 노려 박살 낸 탓에, 제이는 ‘마검으로부터 해방시켜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친 마법사의 필사의 표정 연기 덕분에, 어떤 느낌이었던지는 전해졌다. 간신히⋯⋯!

       

       시련의 탑 5층 클리어.

       

       ===============================================================

       

       셀비어는 6층을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진짜 안 돼. 사람 불러.”

       

       “그, 특별한 약이라는 걸 먹으면 어떻소.”

       

       “약쟁이.”

       

       “너 도핑했다고 베네트 이길 것 같애? 아니잖아. 그리고 탑 최상층은 그 베네트도 못 깼고. 정신 좀 차려!”

       

       엔버스는 무자비한 팩트의 세례에 침울해졌다. 루나는 위로의 두드림이라도 건네려다가, 약에 집착하려는 엔버스에 대한 징벌의 의미로, 대신 중지를 치켜세워줬다.

       

       엿을 먹은 엔버스가 꿍시렁거리는 사이, 셀비어는 니오레와 접선했다.

       

       시련의 탑에 뭔가 숨겨진 컨텐츠가 있다는 것과, 그 테마가 탑에 갇힌 인물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들은 니오레는, 즉각 베네트와 타라에게 보고했고.

       

       성녀 파티는 완전무장을 갖추고 시련의 탑 앞으로 모였다. 

       

       그들의 장비는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여신 교단에서의 입지를 야금야금 넓히고 있었으므로, 그럴 때마다 교단의 창고를 털어 파티의 자산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니오레는 교단의 압류품들을 둘둘 두르고 있던 탓에, 어떻게 보면 불길한 흑마법사처럼 보였다. 커다란 해골 지팡이도 들었고 해서.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의 비주얼도 세션의 영향을 받아 ‘적들의 사기를 깎는’형태로 디자인되어, 성녀 파티에 갱생 흑마법사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게 가슴 큰 여자 쪽이라더라 하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또한, 자그마한 해골 소환수를 통해서 말도 곧잘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음질이 그리 좋지 않았던지라, 셋이서 떠들 때는 여전히 텔레파시-도구를 이용했다.

       

       베네트는 성기사용 아티팩트를 둘둘 둘러서, 어디 어느 각도에서 봐도 용사처럼 보이는 비주얼이 되었다. 순백의 갑주는 빛을 내는 검 호원(護願)과 제법 잘 어울렸다. 

       

       타라의 복장은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여러 장신구들이 첨가되어서 조금 더⋯⋯ 천박해보이는 편이었다. 본인도 그걸 알았다. 부끄러움도 느꼈다. 

       

       하지만 요망한 니오레와의 어필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희생이 필요한 법이었다.

       

       “너희가 히든 피스 발견자인가?”

       

       “그, 그렇, 그렇소⋯⋯.”

       

       엔버스는 태양 앞의 반딧불이처럼 쪼그라들었다. 베네트는 부쩍 생기가 도는 표정으로 엔버스 파티에게 말을 꺼냈다.

       

       “설명해 보도록.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우리는 네 아랫사람이 아닌데, 베네트.”

       

       “⋯⋯미안하군. 입에 붙은 말투라서.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 건은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정중하게 부탁하지. 설명해 주겠나?”

       

       -이제는 부드러운 말도 곧잘 하시네요 베네트! 오늘도 멋져요.

       

       “성녀의 호위 기사님이니까 당연한 일이야. 오늘도 진짜 멋있어.”

       

       오글오글.

       

       셀비어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주 그냥 염병을 떨고 있다고 말하려다, 쟤네가 자신보다 세니까 참았다. 약자는 이토록 서러운 것이었다.

       

       제발 너희들은 세금 네 배로 내라. 셀비어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기도한 뒤에, 시련의 탑에 대한 이야기를 쭉 늘어놓았다.

       

       베네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하더니, 툭 내뱉었다.

       

       “이건 가짜가 아닐 거다.”

       

       “⋯⋯너도 환상 마법을 실제라고 착각하는 거야?”

       

       “반대다. 너희가 실제를 환상 마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지. 그게 미친 마법사의 수작이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저 훈련 시설이라고 생각했다만⋯⋯.”

       

       베네트는 차원 마법사인 미친 마법사가, 다른 차원을 여행하다가 마주친 면면들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대사를 반복하는 탑의 주민들은 골렘과 비슷한 느낌이었으므로.

       

       그러나, 8층의 거지가 아카데미 학생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세계의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한 지금⋯⋯.

       

       명확한 의도가 보이지 않은가.

       

       미친 마법사가 베네트 파티를 보내 이세계를 구원하고 /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려던 악신 소환술을 분쇄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새로운 이세계와 연결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이것은 위협을 막아내기 위한 전조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베네트는 쭈그러든 엔버스를 바라보았다.

       

       “⋯⋯⋯⋯.”

       

       “⋯⋯⋯⋯.”

       

       ⋯⋯괜찮나?

       

       아니, 그래, 뭔가가 있겠지. 그는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아득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니까. 그가 흑마법사였던 베네트를 골랐던 것처럼, 저 녀석 또한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돕는다. 

       

       “아카데미를 떠나기 전까지는 도와주지.”

       

       베네트의 그 말에, 셀비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니오레. 너희 어디 가?”

       

       -아, 동부전선에 초대를 받았거든요. 1황녀님한테⋯⋯.

       

       기간제 파티원이 시련의 탑 공략조에 합류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짝 일찍 올렸구요. 오늘은 고봉밥이랍니다. 맛있게 드셔요⋯⋯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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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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