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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예르나는 한때 꽃반지를 끼고있던 손가락을 멍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 보고 있다보면 자연스레 루크와 반딧불이를 찾아 밤의 숲을 거닐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후훗, 정말 예뻤는데.’

    세상이 칙칙한 어둠에 감싸였어도, 루크는 여전히 밝은 빛이었다.

    그래. 마치, 반딧불이처럼.

    “오오, 여긴 꽤 아름다운 호수로구나.”

    루크가 호수를 보며 감탄한다.

    그래, 여긴 확실히 경치는 좋다.

    “그렇지? 언니도 자주 오곤 했어.”

    어쩌다 한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한 날이 있다.

    싫은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고, 슬픔으로 가슴이 가득차는 날, 그럴땐 이 호수에 와서 안식을 찾고는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렇게 적막한 곳이라면, 적어도 혼자서 우울할 수 있으니까.

    남들에게까지 자신의 우울을 퍼트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공허함은, 타인이 채워줄 수 없을거라 생각했으니까.

    오롯이, 자신이 딛고 일어서야 할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쉬는 날 없이 빽빽하게 일을 해도, 버는 돈 대부분을 양육시설에 기부해도,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이미 벌어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

    만에 하나라도, 잊어선 안 될것만 같아서.

    잊을 자격조차 내게는 없는 것 같아서.

    그렇기에, 이 질척한 감정은 결국 새어나오고 만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않게 연기하는 자신이, 어느순간 불쾌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호수에선 연기할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놓고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으니까.

    물론 탁 트인 넓은 경치가 너무나 좋기도 했지만…….

    멀직히 떠있는 달을 올려다보던 예르나의 시선이 내려와 루크와 마주친다.

    루크는 그런 예르나에게 살짝 미소짓고는, 아까 전의 예르나처럼 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후후, 날 보호키로 한 것이 그리도 후회되던가?”

    루크의 말에 예르나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다.

    맙소사, 자신의 좋지 않은 표정을 본 루크가 그런 오해를 할 줄이야.

    예르나는 허겁지겁 손짓을 하며 루크에게 말했다.

    “……그, 그럴리가! 나, 난 그냥…….”

    “농담일세, 그대가 날 얼마나 특별히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 항상 고마움 뿐이라네.”

    “……진짜.”

    루크는 턱선을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쏴아아-.

    불어드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파스슷, 하는 소리를 낸다.

    호숫가에 비친 달빛이 어지러진다.

    마침내 루크의 웨이브진 백금빛의 머릿결을 쓸어 살짝 들어올린다.

    한동안 그렇게 바람을 느끼던 루크의 주변에 반딧불이들이 다가와 빛을 두를 때, 흩어진 수면위 달빛을 바라보던 루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숲에서 눈을 뜬지도 이제 겨우 반년이로군.”

    “그러게, 벌써 반년이네.”

    예르나와 루크는 각자 그동안 있었던 일을 떠들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보고 의문을 품고, 예르나의 집을 처음 보고 넋을 놓았던 일.

    변깃물로 목욕을 한 일.

    세계수에 혼자서 견학을 갔다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던 일.

    심장에 서클을 새긴 또 다른 아이를 만나, 학교에 다니게 된 일.

    처음으로 요리를 해보고, 즐거웠던 일.

    식당에서 한번 엇갈려서 메리의 기숙사를 빌려야했던 일.

    박물관에 갔다가 마수학자와 만나 이야기하고, 연구소에 초대받은 일.

    숲에서 돌연 용으로 변해버려서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 모두들 애썼던 일.

    운동회에서 루크의 활약으로 많은 승리를 따냈지만, 결국 수상경력에 포함되지 않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일에.

    마탑에 가서 시험을 치르고, 난제를 증명해버린 일까지.

    굵직한 사건들만 이야기해도 참으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진짜, 그동안 별 일이 다 있었네.”

    “그래, 참으로 그렇군.”

    루크는 피식 웃었다.

    “고맙네, 예르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건 다 그대 덕분이라네.”

    “뭘 세상 다 산 것처럼 이야기하는거니. 아직도 창창한 나인데.”

    “하하하, 그런가?”

    그때의 루크의 웃음은 여느때보다도 훨씬, 해맑은 표정이었다.

    아마, 그 표정과 대화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별로 강렬한 기억도 아닌데.

    그럼에도, 다음에 호숫가에 가면 이 기억은 반드시 떠오를테지.

    아마, 이제 더이상 혼자 호숫가에서 우울해할 일은 없어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이다.

    “예르나 언니, 급하게 보고할 것이 있는데요.”

    ——

    “어린아이 발자국?”

    다프네의 보고를 들은 예르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고블린의 발자국을 잘못 본거 아니야?”

    “아뇨, 저랑 소르비가 확인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사진을 건네는 다프네.

    그것을 받아든 예르나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찍힌, 틀림없는 어린아이의 발자국 이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드물게도 정말 발구조가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긴 특별한 개체의 발자국일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인데…….

    “흔적은 따라가 봤어?”

    “네, 바로 쫓아봤는데……. 어느순간 갑자기 흔적이 사라져버리더라고요.”

    “……어느순간 사라졌다라…….”

    예르나는 눈가를 짚었다.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은 있었으니까.

    “혹시, 공중형 몬스터에게 잡혔다던가.”

    예르나의 말에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대체 어쩌자고 이런 깊고 위험한 숲에 그런 아이가 혼자서 들어와 길을 잃었단 말인가.

    사실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아이가 혼자서 어떻게 이 숲에 왔는지 보다는, 당장 그 아이의 안전이 중요한 것이니까.

    그나마 다행인것은, ‘사냥’의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혈흔이나, 살점, 또는 충격의 흔적같은 것들.

    그렇다는 얘기는 다행히 아직 아이는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긴데…….

    “알겠어. 일단 비행형 몬스터들 서식지로 인원을 보내서 확인해보고, 만약 흔적을 발견하면 곧바로 이야기 해줘.”

    “네, 알겠어요.”

    제발 그냥 착각이기를, 이라고 빌면서 예르나와 다프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

    “루크! 우리가 이번에 소풍을 어디로 가는지 알아?”

    “글쎄, 어디로 가길래 그리 들떠있는게냐?”

    “놀라지 마, 무려! 베리튼이야!”

    “베리튼?”

    베리튼이라면 한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진짜’ 세계수가 있다는 먼 거리의 국가.

    국토의 대부분이 숲이라고 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엘프 대부분이 그 나라에서 살아간다고 전해진다.

    말 그대로, 엘프들의 나라인 것이다.

    ‘그러고보니, 예르나도 이쪽 출신이라고 했던가.’

    “되게 기대된다, 그치! 베리튼의 세계수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엘프들의 고향이라, 꽤 흥미가 생긴다.

    이 시대의 엘프들은 과연 어떤 생활을 할지.

    세계수야 당장 인간이 길러낸 인공세계수도 5000년 전의 세계수와 달라진 것이 없다보니 어딜가나 비슷할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게 흥미가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루크는 곧장 대답했다.

    “좋군, 언제 간다지?”

    “다음주 월요일! 일정은 4박5일로 잡혀있어! 루크, 너도 올거지?”

    “물론이지, 꼭 가겠다.”

    “좋아! 그렇게 말씀드려놓을게!”

    “그래, 고맙다. 메리, 수고해주거라.”

    “응! 끊을게! 월요일날 보자! 필요한 물품들은 문자로 보내줄게!”

    “그래, 그래.”

    뚝, 전화를 끊자, 루크를 바라보던 한 붉은머리의 거한이 입을 열었다.

    “너, 학교에서 베리튼 가나보다?”

    두말할 것 없이, 다이튼이다.

    루크는 그런 다이튼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들었나? 뭐, 그렇다는군.”

    “이야, 요즘 무슨 학교에서 외국을 다 간다냐. 역시 명문아카데미라 다른가. 그럼, 얼마나 있는데?”

    “4박 5일, 일주일은 있는 모양이더군.”

    “일주일? 허어, 그정도면 소풍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불러야겠군.”

    다이튼은 지긋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가 입을 연다.

    “그럼, 갈땐 뭘 타고가냐? 비행기타고 가는 거야?”

    “아마 그럴걸세.”

    -기차는 안타?

    실망스러운 듯 보이는 파이의 반응.

    워프트레인도 한번쯤 타보고싶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리튼까지 가는 것은 없다.

    너무 먼 거리는 워프마법의 가성비가 극도로 떨어지니까.

    애초에, 워프트레인이라고 진짜 워프를 하는 것도 아닌 모양이고.

    그러자, 다이튼이 웃으며 말한다.

    “그럼, 그거 알아 루크?”

    그 말에 루크는 살짝 귀가 쫑긋했다.

    “무엇을 말인가?”

    “비행기를 탈 때는 말이지, 신발을 벗고 타는거야. 알아?”

    “탈것을 타는데 왜 신발을 벗는 거지?”

    “응, 요즘 비행기들은 오랜 비행을 대비해서 실내랑 거의 비슷하게 만들거든. 그래서 신발은 타기전에 벗는게 예의야. 집에 들어갈땐 신발을 벗는 거잖아?”

    “오. 그게 사실인가?”

    루크는 그것이 꽤 말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이튼은 딱히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적도 없는 것 같고, 그럴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래, 사실이야. 나도 비행기를 처음 탈땐 몰라서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구.”

    “그렇군, 알려줘서 고맙네. 다이튼. 역시, 그대는 참 친절하구나.”

    “하하, 별 말씀을.”

    그렇게 다이튼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루크는 콧노래를 부르며 산책로로 향했다.

    그런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다이튼은 피식 웃었다.

    “소풍이라. 좋을 때네.”

    그동안 디아나를 돌보며 돈도 벌다보니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어딜 놀러 갈 생각조차 하질 못했는데.

    아카데미도 겨우 졸업해서 수학여행은 커녕, 소풍도 못 가봤었다.

    ‘해외여행, 나도 가고싶다.’

    이왕이면 예르나랑.

    ……꼬셔볼까?

    이거, 좀 좋은 생각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행기탈땐 신발 벗는게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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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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