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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기사단을 주로 육성해 운용하며 그를 이용한 전략 전술로 대륙에 정복전쟁을 걸었던 제국은 어느 순간 변화의 기조를 맞이했다.

     

    마녀 카밀라.

     

    그녀가 황제의 3황비로 입궁했을 때부터였다.

     

    카밀라는 대륙 곳곳에 흩어져 숨어있는 마법사들을 모아 마법을 전투에 활용하도록 체계를 만들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제국 전역에 설치해 제도에서 기사단이 어디로든 순식간에 진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모험가 출신의 마법사를 다수 기용하던 왕국과의 전쟁에서, 제국이 형세를 앞서나갈 계기를 만들었다.

     

    두 국가 간에 길게 늘어진 산맥 때문에 전쟁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이에 카밀라는 때마침 임신한 자식을 마도병기로서 제국에 바치고자 했다.

     

    모든 것은 자신을 지옥에서 구해준 황제를 위하여.

     

     

    하지만 계획했던 마도병기가 태어날 즈음 황제는 현자 시모어를 만났다.

     

    그가 7위계 마법으로 전장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고 황제의 생각은 바뀌었다.

     

    마법은 위험하다.

     

    대륙을 통일한다 한들 마법으로 망가진 땅을 취해선 의미가 없다.

     

    허나 이제서 마법사 없이 전쟁을 진행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미 제국은 충분히 위대해졌다. 황제는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았다.

     

     

    왕국과의 종전 협상은 싱겁게 끝났다.

     

    마법이 금지되진 않았지만 부대는 해체됐다. 카밀라는 궁정마법사 직을 시모어에게 넘겨주고 평범한 황비로 돌아왔다.

     

    “차라리 잘 되었다.”

     

    카밀라는 그리 생각했다. 그녀도 황제가 자신에게 준 애정의 증거가 단순한 병기로 소모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여생은 이 아이를 위해 살리라.”

     

    황제의 성을 이어받은 자신의 아이.

    젊은 시절 자신의 미모를 쏙 빼닮았다. 머리칼은 황제처럼 풍성한 금발이다.

     

    이만한 대국의 황실에서 살아남으려면 힘이 필요하다.

    카밀라는 표독한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제국 곳곳에 그녀를 위한 세력을 심어두기로 했다.

     

    “아셀라가 컸을 때 머리 찬 형제들이 귀족가와 상인 길드는 미리 선점했겠지. 하지만 국가에서는 뒷면도 중요한 법.”

     

    카밀라는 아셀라를 위해 뒷세계부터 세력을 넓히고자 방향성을 정했다.

     

    커진 제국에서 미처 관리하지 못하는 암거래상이나 용병, 범죄 조직, 주류가 되지 못한 귀족가들.

     

    강인한 통치자인 황제는 그들도 조만간 무너뜨릴 것이다. 미리 그들과 교류하여 재력과 자원을 흡수해 저장해놓으면 추후 아셀라는 어디에라도 써먹을 것이다.

     

    양지의 귀족가와의 접촉은 힘을 손에 넣은 후에 해야 한다. 아셀라에게는 좋은 혼약자도 찾아줄 수 있으리라.

     

     

    그녀에게는 눈에 띄지 않고 움직일 수단이 있었다.

     

    분신 마법.

     

    완벽하게 동일한 자신을 만들어낸다. 다시 합쳐졌을 땐 양쪽의 경험을 모두 흡수한다.

     

    그간은 마법의 경지를 높이기 위해 단련하는 용도로만 사용했기에 시전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가장 길었을 때가 3개월 정도였다.

     

    “뒷세계에 직접 들어가 조직을 관리하려면 못해도 몇 년은 필요하겠지.”

     

    카밀라가 마법을 시전했다.

     

    허공에 거울을 가져다 놓은 듯 그녀가 두 명이 되어 서로 손바닥을 마주친다.

     

    “가라, 내 분신이여. 힘을 손에 넣어라.”

     

    “물론. 기대되는데.”

     

    “아셀라를 위해.”

     

    분신은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카밀라는 분신과 밀담으로 교류하며 아셀라의 육아에 집중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과하지 않게 기본적인 예도를 가르쳤다. 똑똑한 아이였다. 참을성 있게 어떤 가르침도 금방 깨닫고는 몸가짐을 가지런히 한다.

     

    마법에도 재능이 있었다. 갓난아기 때 벌써 마나를 손바닥 사이에서 가지고 놀았다.

     

     

    아셀라가 막 다섯 살이 될 무렵, 월광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샤를로트 1황비가 견제한 모양이야.’

     

    능력도 없는 권터 1황자를 황태자에 앉혀달라 황제에게 다짜고짜 요구하질 않나, 그녀도 자식 욕심이 많았다.

     

    전부터 자신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남편의 젊고 유능한 첩실이 질투 난 모양이지.

     

    ‘오히려 좋은 기회야. 아셀라도 다른 형제들처럼 당당하게 궁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월광궁은 작은 궁이지만 아셀라라면 얼마든지 성장시킬 것이다.

     

    카밀라는 자신의 딸을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밀라는 아셀라와 조만간 이사 갈 월광궁으로 견학을 갔다.

     

    아직 텅 빈 내부를 둘러보던 도중이었다.

     

    ―화아악!

     

    갑작스레 바닥에 숨겨졌던 주문진이 발동하며 카밀라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쓰러졌다.

     

    호위기사, 시종, 심지어 아셀라까지.

     

    “아셀라!”

     

    카밀라는 자신의 딸부터 챙겼다. 기절한 아셀라에게 검은 마나가 흘러 들어간다.

     

    “저주, 술식 대상으로 지정했어. 대체 누가!”

     

    카밀라가 즉시 디스펠을 시전했지만 주문이 튕겨나온다. 상당한 경지의 저주였다.

     

    또각, 또각.

     

    어둠 속에서 흑마술사들과 함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구나, 제국의 3황비.”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분신이었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카밀라는 그 즉시 분신마법을 해제하고 시전을 파기했다.

     

    “아악…!”

     

    하지만 오히려 거부당하며 자신의 마력회로로 분신의 마나가 역류해 타오르는 현상이 일어났다.

     

    “유감이구나. 분신마법을 개발했으면서 그에 대한 이해조차 못 하고 있었다니.”

     

    “너어, 어떻게…!”

     

    “마법으로 완전히 같은 자신을 만들었다. 그럼 시전이 종료됐을 때 어느 쪽이 본체이고 분신인지 누가 정의하지?”

     

    분신이 생긋 웃었다.

     

    “아니, 애초에 나는 너와 완벽하게 똑같은 분신이었을까?”

     

    카밀라는 당연히 시전자인 자신이 본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답을 알려주마. 시전 종료 시 마력의 경지가 더 높은 쪽이 본체가 된단다.”

     

    “뭐라고….”

     

    분신이 자신의 경지가 카밀라보다 높다고 대답했다.

     

    그녀와 떨어져 있던 수 년 간, 그녀는 다른 음모를 꾸며왔던 것이다.

     

    “대체 왜!”

     

    “겨우 남의 분신으로 금방 사라질 운명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하다니, 기만도 정도가 있지.”

     

    분신이 카밀라를 증오스럽게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분신이 자신만의 자아를 가진 경우는 없었다.

    떨어진 기간이 너무 길었다. 이렇게까지 엇갈리리라고 카밀라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설령 그렇다 한들 너도 나잖아! 함께 아셀라를 위해 함께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배신했단 말이야!”

     

    카밀라의 분노에 분신이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게 네 딸이지 내 핏줄이더냐?”

     

    카밀라는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했다.

     

    자신에게 충만한 모성애가 저 분신에게는 손톱만큼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카밀라가 자신의 마력회로로 역류한 분신의 마나를 느꼈다.

     

    …결은 비슷해도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마력회로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류가 나는 게 그 증거였다.

     

    마나가 다르다, 즉 동일인물이 아니다.

     

    분신은 애초부터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근본에서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카밀라는 분신 마법이 아니라 창조 마법을 썼던 걸지도 몰랐다. 자신을 복제한 존재를 창조해왔을 뿐.

     

    “네가 명령한 대로 나는 제국의 뒷면과 많이 접촉해왔다.”

     

    분신이 팔을 치켜들었다. 마법진에서 쏘아진 밧줄이 카밀라의 몸을 구속했다.

     

    “흑마술사와 암살자, 범죄 조직들. 아직은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쓸만한 장기말이 한둘은 생기겠지. 이후에는 앞면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내가 그들을 직접 쓰라고는 안 했잖아. 대체 그래서 뭘 하려고!”

     

    “당연한 일 아닌가. 흑마술사는 흑마술을 퍼트리는 게 상도이겠지.”

     

    “너…!”

     

    카밀라가 치를 떨었다. 그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원리였다.

     

    자신이 저렇게 변했다면 이유는 하나.

     

    “악마와 계약했구나…!”

     

    뒷세계를 돌아다니며 흑마술에 심취해버린 게 틀림없었다.

     

    분신이 대답 대신 미소와 함께 팔을 떨어트렸다. 카밀라의 다리도 함께 잘려나갔다.

     

    “아악!!”

     

    물리적으로 몸만 날아간 게 아니었다. 영혼까지 함께 잘려나갔다.

     

    “혈육의 정은 무시할 수 없는 법. 네 딸이 황제가 되면 내 꼭두각시가 되어 흑마술을 퍼트려주리라.”

     

    “안 돼! 아셀라는 못 줘!!”

     

    파악, 분신이 손을 휘두를 때마다 점점 카밀라의 영혼이 잘게 찢어지며 작아진다.

     

    “경지에 다다른 네 마법의 재능은 인정하마. 특별히 사용해주지.”

     

    ―화악!

     

    주문이 시전된다.

     

    분신, 아니. 이제는 카밀라가 된 흑마술사가 형체만 겨우 남은 영혼을 짓눌러서 압축해 저주 안으로 밀어넣었다.

     

    “네 딸의 재능이 되어라. 핏줄이 황제가 되도록 도울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기절한 아셀라에게 저주가 스며든다.

     

    카밀라였던 영혼은 이미 인식체계와 자아를 잃고,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안 돼, 안 돼!!

    ―돌려줘, 내 딸을 돌려줘!!

    ―아셀라, 아셀라아…!

    ―아아아아아아아…!!

     

     

     

    조용하게.

     

    월광궁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자그마한 소녀와 침묵만이 남았다.

     

    “당분간 호위기사는 새로 구할 때까지 너희들이 위장하렴.”

     

    “황녀는 어떻게 할까요?”

     

    카밀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반항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교육해야지.”

     

     

     

    ***

     

     

     

    ―돌■줘, 돌려■, ■려줘■어!!!

    ―아■, 아셀■, ■셀라를!!!

     

    내 목을 조르며 고함을 질러대는 악령을 무시하고 기구를 교체한다.

     

    박리 과정에서 출혈이 소량 있었다. 거즈로 닦아낸다. 혈관의 절단면은 봉합은 마쳐놨으니 필름 처리만 끝내면 된다.

     

    아주 조금, 조금의 시간만 있으면 되거늘.

     

    ―아아아아아아!!

     

    악령이 너무 시끄러웠다.

     

    “선생님…!”

    “해주사님…”

     

    다른 팀원들이 숨을 죽이고 우리를 지켜본다.

     

    “후우.”

     

    휴고가 주문진에서 뻗은 밧줄로 악령의 머리통과 목을 팽팽하게 묶은 상태다. 나를 못 덮치게 동여맸지만 그 정도가 한계다.

     

    완벽하게 조종 단계에 들어가지는 못해 해주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클로에가 바로 옆에서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켜준다. 여전히 적절히 견인을 맡아줬기에 마무리 작업을 할 각도가 나왔다.

     

    40초, 40초만 있으면 된다.

     

    ―아아아아악!! 아셀라아!!!

     

    “조용히 해, 카밀라 3황비.”

     

    참다 못 한 내가 시선은 상태창에 고정한 채로 악령에게 한 마디 했다.

     

    “지금 네 딸을 고치고 있잖아.”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순간 악령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합!”

     

    휴고가 틈을 놓치지 않았다. 힘을 가하며 팔을 당긴다. 저주가 기세를 잃고 휴고에게 통제권을 뺏겼다.

     

    촤륵, 휴고의 앞에 신성력이 뭉치며 해주구의 형태로 구성됐다.

     

    “필름 흡착.”

     

    동맥에 이어 담낭관에도 필름을 붙인다. 상처가 아물 때 같이 녹아 신체의 일부처럼 기능하게 된다.

     

    모든 처리가 끝났다. 사실상 수술 과정은 여기까지다.

     

    “됐어. 장비 제거.”

     

    “장비 제거.”

     

    클로에가 힘을 빼고 장기를 원위치한다. 장비를 꺼내고 기압을 정상화, 남은 실린더 세 개를 제거한다.

     

    “으음.”

     

    머리 위에선 카밀라의 혼이 해주되지 않으려 휴고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휴고는 해주구의 상단부를 회전시키며 이마에서 땀방울을 떨어트렸다.

     

    어차피 카밀라는 아셀라에 집착하고 있으니 여기서 도망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이지만 마저 해내는 수밖에.

     

    “봉합한다.”

     

    나는 바늘에 실을 꿰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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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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