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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감독관의 신호에 따라 공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그녀는 침착하게 그것들을 받아 그물 바구니 안으로 던져 넣었다.

         

       어떤 각도에서 날아와도 그녀의 중심이 무너지는 법은 없었다.

       그녀의 별명인 ‘황금 천칭(Golden Balance)’은 이 절대적인 균형감각 덕분에 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움직임에 감탄했다.

       그녀의 몸은 조금도 불필요한 동작 없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엘라가 보인 화려한 임기응변과는 대조되었다.

       그녀는 레이나와 달리 중간중간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는 퍼포먼스를 곁들였다.

         

       공을 바로 넣지 않고 모아서 한 손으로 저글링을 하다가 연발로 던져넣거나, 손에 든 공을 던져 날아오는 공에 맞춰서, 던진 공은 그물 속으로, 꺾인 공은 손에 쏙 받아내는 것 같은 묘기를 부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시험 성적에 영향을 가는 일이 없었으니 가히 신기(神技)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레이나의 동작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손목 한 번 꺾는 것도 허투로 하지 않았다.

       필요한 경우에만 필요한 만큼 움직였다.

         

       관중들은 덕분에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다들 레이나를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능력이 또래에 비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천재를 두고 나란히 비교해보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모든 동작과 기술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쌓인 것이라는 것을.

         

       1분이 지났다.

       레이나도 50개의 공을 전부 바구니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까지 했다!

         

       시험이 종료되기 5초 전에 마지막 공이 쏘아져 나왔다.

         

       보통 수험생들이라면 그 시간에 바닥에 떨어진 공들을 주워 하나라도 그물에 더 던져 넣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앞의 49개를 다 넣은 덕분에, 날아오는 마지막 공을 손바닥으로 쳐서 그물 안으로 집음으로써 시험을 종료시켰다.

         

       그렇게 레이나가 모든 공을 넣기까지 걸린 시간은 55.4초였다.

       엘라가 기록한 55.8초보다 빨랐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정거리의 차이였다.

         

       레이나의 키는 178cm.

       엘라의 키는 162cm.

       신장에서 오는 그 차이 때문에 마지막 0.4초가 벌어진 것이다.

         

       가까스로 손에 넣은 승리였다.

       레이나는 객석 쪽을 돌아봤다.

         

       겨우 이겼냐며 빈정대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것만으로 그녀는 안심이었다.

       경멸과 조롱이 없는 것만 해도.

         

       그런데 그녀는 거기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두 손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연기하는 것을 잊고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 차갑고 냉정한 아버지가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벅차오르는 감동에 몸이 떨렸다.

         

       드디어 인정받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 앞에서 드디어 그가 진심으로 그녀의 성과를 칭찬해준 것이다.

       큰소리로 ‘아빠!’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부풀었던 그녀의 기대는 뒤늦게 급속도로 싸늘하게 굳고 말았다.

       무겁고 단단한 무언가가 목구멍을 틀어막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터무니없는 착각을 했다는 것을.

         

       상대의 표정을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분명 지금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웃고 있었다.

         

       다만,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광란의 토마토 세례’라는 기구였다.

         

       그곳에는…….

         

       “와!”

       “대단하다!”

       “엘라! 엘라!”

         

       관중들이 뜨거운 열기가 섞인 함성을 내질렀다.

         

       엘라는 더는 가짜 토마토가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그녀가 걸친 비옷은 깨끗했다.

       바닥만 물감으로 질척이고 있을 뿐이었다.

         

       “오염률 0%! 최고점 획득!”

         

       감독관의 외침에 강당 전체가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엘라는 그 자리에서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 보였다.

       철퍽 하면서 바닥에 고인 물감들이 튀어 올랐다.

       색색의 물방울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엘라는 그 사이에서 몸을 슬쩍 비틀어 그것들을 피했다.

       물감이 다시 후루룩 바닥에 떨어져 내렸으나, 그녀의 비옷에는 역시 단 한 방울의 물감도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감탄을 넘어 경악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뭐야, 뭐야, 저게 뭐냐고?”

       “우와아아!”

       “엘라! 에에엘라아아!”

         

       엘라는 비 오는 날 물장난을 치는 어린애처럼 물감 위를 찰박거리며 가로질렀다.

       그녀는 이렇게 밟거나 저렇게 밟았을 때, 물방울이 어떻게 튀어 오르는지 알고 있었다.

       감독관 앞에 도착해 장화를 벗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비옷은 여전히 깨끗했다.

         

       “이거 다시 재활용하면 되겠네요!”

         

       엘라는 비옷을 건너 감독 학생에게 건넸다.

       그는 공손하게 그것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수험생들은 예비 신입생이었다.

       그렇기에 감독 학생들은 그들을 후배라 여기며 은근 낮춰보곤 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엘라 앞에서는 쩔쩔맸다.

       그녀의 실력과 여유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자연스레 그들을 압도한 것이다.

         

       기구에서 내린 엘라는 ‘땅볼 외야수’에 걸린 기록을 확인하더니 앞에 선 레이나를 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내 기록을 깼어? 좀 분한걸? 한 번 더 도전하는 건 안 되겠지? 아쉽네…….”

         

       그녀의 재잘거림을 듣는 순간, 레이나는 그녀의 뺨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꽉 쥐었다.

         

       “야.”

         

       레이나는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온갖 감정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꺼져 줄래?”

         

       그녀의 말에 생글거리던 엘라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가 곧 풀렸다.

         

       “미안, 미안. 우리 경쟁자였지? 내가 너무 들떠 있었네.”

         

       엘라는 그렇게 말하곤 바로 다음 시험을 치르러 떠났다.

         

       레이나는 다시 객석을 살폈다.

       아까 그것은 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시선은 여전히 엘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레이나는 제자리에 주저앉아서 울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잘하면 될 거야.

       잘하면.

       그래도 쟤는 남이고.

       나는 아빠 딸이잖아.

       그래. 이기는 거야.

       13승 12패라도 좋으니까.

       이기면…….

         

       레이나는 그렇게 자신을 다잡고 다음 시험을 치렀다.

         

       지몬 마기어는 딸이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관심이 없었다.

       현재 그는 엘라의 다음 시험을 살펴보느라 바빴다.

         

       그는 엘라가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그녀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러나저러나 그는 무려 인스피라를 4개나 받은 키르쿠스의 열혈 신도였다.

       저런 훌륭한 재주를 보고 그가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와!”

       “단장님, 레이나가 상대의 기록 하나를 또 뒤집었어요!”

         

       황금 카니발의 동료들은 그래도 제 식구라고 레이나에게도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

       그러나 로드 판타스틱은 그쪽을 흘끗 바라보고는 조소했다.

         

       “봤네. 조금의 참신함도 없더군. 체격 차이에서 나오는 힘. 그걸로 이겼지.”

         

       그의 반응에 동료들은 서로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다가 고개를 돌렸다.

       다들 딸을 향한 그의 냉정함에 질린 모양이었다.

         

       지몬은 기구에서 내려오는 레이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도도한 표정과 자세.

       잘 꾸몄지만 직접 그것을 단련시킨 사람은 그녀의 가면 뒤에 웅크린 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순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그의 마음의 문은 금방 닫혀 버렸다.

         

       그는 엘라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손뼉을 치지도, 어떤 호응도 해 주지 않았다.

         

       그는 방금 시작된 엘라의 일곱 번째 과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학교를 나온 마야는 테트로미노 광장을 정처 없이 걸었다.

       바닥을 빼곡하게 메운 일곱 종류의 블록들 사이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그녀는 곧 광장과 바로 맞닿아 있는 카페 앞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품에서 도넛 모양의 납작한 금속 원반을 꺼냈다.

         

       메모리 디스크.

       환상 마법사들이 자신의 환상을 기록할 때 쓰는 도구였다.

       이것은 오직 환상 마법사들만이 기록할 수 있었고, 재생하는 것도 환상 마법사만이 가능했다.

         

       그녀의 손에 든 이것은 엄마가 남긴 유품이었다.

       엄마는 자신을 낳으시고 얼마 안 있어서, 일손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지인의 부탁에 하늘도시로 올랐다가 그만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엄마가 죽는 순간까지도 품에 쥐고 있던 물건이 바로 이것이었다.

         

       메모리 디스크의 표면에는 딸을 향해 이것을 남긴다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1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글씨는 거의 희미해졌지만, 이것을 그녀의 손으로 직접 재생시켜 본다는 목표만은 여전히 마야의 가슴에 깊게 남아 있었다.

         

       신비를 추구하는 보통의 환상 마법사라면 이것을 무리 없이 재생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가 사용하는 것은 보통의 환상 마법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메모리 디스크들을 구해서 그것에 새겨진 패턴 하나하나를 다면체로 구현해보고 귀납적으로 추론해 나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최소 1년 이상은 걸릴 작업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는 신비에 눈을 떴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더라고 생각했던 ‘상’의 신비에 발을 들여놓았다.

       마귀와 생사를 건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비어있다는 마음의 도화지에 어떤 감정이 번지고 말았다.

         

       그 덕분에 계산이 아닌 마음의 작용을 통해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직 한 종류이긴 했지만.

         

       -에오옹…….

         

       환상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 앞에서 기지개 켰다.

       놈은 그녀가 기억하는 월리처럼 걸었고 월리처럼 행동했다.

         

       일일이 동작 하나하나를 계산해줄 필요가 없었다.

       기억에 있는 대로 떠올리면 그만이었다.

         

       마야는 녀석을 계속 떠올리며 메모리 디스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금속 원반의 표면에 온갖 색이 번쩍이더니 환상이 튀어나왔다.

         

       떼죽음을 당한 고양이 사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고양이 벽돌로 쌓인 건물에 깔려 죽어가고 있었다.

       고양이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양이 소리를 냈다.

       그러다 다른 고양이의 등장에 고양이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고, 피가 퍽 하고 튀며 환상이 중단되었다.

         

       등장하는 모든 고양이는 생긴 것도 털 색깔도 전부 월리의 것과 같았다.

       이것이 그녀의 현재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재생해본 메모리 디스크였다.

         

       -왜오옹…….

         

       옆에서 월리가 뭔가 끔찍한 것을 본 것처럼 인상을 써댔다.

         

       보다시피 그녀가 터득한 신비는 메모리 디스크를 구현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터득한 상의 신비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고양이 월리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방금 그녀가 재생한 환상은 거의 모든 요소가 윌리로 이루어진 바보 같은 환상이었다.

         

       대강의 내용은 유추할 수 있었으나, 구현된 환상이 이래서야, 자신이 제대로 디스크를 읽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저 테러에 대해 그녀가 막연히 가지고 있는 이미자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었다.

       이건 철저한 계산이 아니라 마음이 작용하는 마법이었으니까.

         

       이것이 그녀가 3주 동안 노력한 결과였다.

       마야는 디스크를 다시 품에 갈무리해 넣었다.

         

       막혔을 때는 스승님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게 맞았다.

       그라면 분명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발상으로 길을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그러면 그는 여전히 그녀를 손이 많이 가는 꼬마, 도움이 필요한 아이, 가르침을 내려야 하는 제자 이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앞에서 한 명의 ……마법사로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다.

         

       정 안되면 처음 계획했던 귀납적 방식이 있었기에 그녀는 환상을 구현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상의 신비가 가진 영역을 넓힐 수 있을까?

       자신에게 마음의 그릇이 생긴 계기가 뭐였더라?

         

       그녀는 월리가 처음으로 구현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지쳐서 쓰러진 단장님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 강당을 뛰쳐나올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다시 단장님을 품에 안아보라고?

         

       -베베베베벳

         

       옆에서 월리가 히죽히죽 웃으며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마야는 녀석을 내동댕이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때, 멀리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야 양! 핫핫, 시간이 거의 다 됐군요? 다시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스벤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가스통이 있었다.

         

       “염동력으로 이분 좀 부축해주지 않겠습니까? 제가 하려고 했다가 팔이 뽑힐 뻔했어요. 알다시피 관절이 약한지라……핫핫!”

         

       그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염동력으로 비틀거리는 노인의 몸을 받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게……보드카를 김 빠진 맥주라고 건넸더니……진짜로 믿어버리셔서……250mL를 한 번에…….”

       “…….”

       “우웨에엑!”

         

       가스통이 한바탕 토를 했다.

       그 밑에 있던 월리가 그것을 직격으로 맞았다.

         

       -웨오옹!

         

       환상이기 때문에 그에게 묻지는 않은 게 다행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리자리아 님, 100코인 후원! 더욱 위를 지향하도록 꾸준히 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화 님, 100코인 후원! 뒤늦게라도 봐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상한 올리브 님, 20코인 후원! 네! 잘 받았습니다! 후원금은 모두 일러스트를 뽑는 데 사용할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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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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