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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

         

         

         야간 탐색은 순조로웠다. 이반은 감각의 한 귀퉁이에서 끊임없이 깜빡이는 사선 감지를 느끼며 설핏 웃었다.

         

         거리와 방향을 특정하기 어렵도록 살짝 살짝, 간을 보듯 총구를 겨누는 테크닉이다. 초인을 상대하는, 그리고 초인을 꼬여내는 함정이다.

         

         틸레스의 요원치고는 제법 고급 기술을 활용하는군. 답지 않게도.

         

         이반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척 걸음을 옮겼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이 용의 흔적을 찾고 있다고 여기도록.

         

         적이 유능할수록 점점 더 기분이 고조되어 갔다. 유능한 요원은 그렇지 못한 요원보다 반드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때, 그의 곁으로 유진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형님, 지금….”

         “안다.”

         

         

         상태창의 탐지 거리는 1km 정도인가?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근거리 레이더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 이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쪽을 돌아보지 말고, 700m 9시 방향. 맞나?”

         “예, 형님.”

         “500m 안쪽으로 접근할 때까진 모르는 척해라.”

         “예, 형님.”

         

         

         이반은 도끼자루에 손을 얹고 아랑곳없이 걸었다. 앞장서서, 우두머리처럼.

         

         

        -찌릿.

         

         

         사선 감지의 경고가 보다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이래도 안 와? 이래도 안 피해? 그런 식으로 속삭이는 것처럼.

         

         초인이라면 결코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릇 총을 사용한다는 것은 약자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초인은 총구가 자신을 향한 순간 사수를 찾아 달려가는 족속들이다.

         

         초인의 교리는 그런 식으로 전해져 온다. 초인의 전투가 일반인들의 생존성을 크게 끌어 올리는 탓이다. 즉, 사선 감지가 없는 일반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초인은 총구 앞에 몸을 던지기 마련이다.

         

         그 교리를 역으로 이용하는 테크닉 따위는, 그래. 10년 전의 것이다. 틸레스치고는 대단히 현대적인 기법이라 하겠지만, 크라실로프에선 그것을 구시대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초인을. 심지어 초인의 영역에 닿아 있는 ‘훈련 받은 요원’을 상대할 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마.

         

         이반은 천천히 걷다가, 문득 멈췄다.

         

         

         “500m 맞나.”

         “네, 형님.”

         “인내심이 부족하시군. 천천히 따라와라.”

         

         

         이반은 메마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

         

         

         탓, 하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유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이반의 형체를 쫓았다. 두 발자국 사이에 이미 이반은 수풀 너머로 달려가 있었다.

         

         

        -타앙—!!

         

         

         총성이 울렸다. 타앙, 탕. 다급하게.

         

         

         “뭐, 뭐예요? 갑자기?!”

         “누구랑 싸우는 거야 저 아저씨는 또!!”

         

         

         평범하게 용 사냥을 나왔던 일행이 당황할 때, 유진은 허탈하게 투덜거렸다.

         

         

         “레벨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

         

         

        *

         

         

         나무를 박찬다. 정면으로, 강하게.

         

         그 순간 얽혀 오는 사선이 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이반은 공중에서 허리를 틀어 각도를 빗겼다. 한 치의 오차를 두고 각각 발포된 총탄이 그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쳤다.

         

         피잉, 현이 끊어지는 날선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다시 땅을 박차고, 몸을 틀어 나무 위로 올랐다.

         

         

        -카앙!

         

         

         다음 순간 날아든 총탄을 도끼날로 튕겨내고 몸을 던졌다. 총성은 더 이상 없었다. 조준과 격발, 그 찰나의 간극 사이에.

         

         이미 이반은 두 사내 앞에 내려 앉았다.

         

         

         “뭐—!”

         

        -스걱!

         

         

         경악 속에서 입을 열던 사내가 허물어졌다. 깨끗하게 갈라진 상체가 비틀리며 지면을 굴렀다. 갈길 잃은 혈액이 촤악, 부채꼴로 퍼지며 그 곁의 사내를 덮었다.

         

         겁에 질린 사내는 총구를 들어 이반을 겨누었다.

         

         

        -스각—

         

         

         총열이 도끼에 걸려 ‘잘려 나갔다’. 강철로 만들어진 질 좋은 군용 권총, 틸레스 군수공장에서 뽑은 군용품. 기름조차 벗겨지지 않은 신품이로군. 이반은 공중에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총열을 힐끗 바라보았다.

         

         시선이 그대로 내려갔다.

         

         어둠에 잠든 숲, 달빛이 가을의 마른 나뭇가지에 걸려 흩어졌다. 횃불 하나 없이 어둑한 이 작은 공터에서, 피에 젖은 사내는 덜덜 떨며 뒤로 물러섰다.

         

         그 앞에, 이반이 길게 진 그림자를 드리우며 한 걸음 다가섰다. 새파란 눈동자 한 쌍이 그림자 사이에서 우묵하게 빛났다.

         

         

         “에타크리히의… 사람이 아닐 텐데… 너는….”

         “쉿.”

         

         

         이반은 도끼를 빙글 돌려 자루를 고쳐 쥐었다. 잠시 숨을 들이쉬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청각을 강화할 때, 그는 근처를 지나치는 설치류의 발걸음조차 들을 수 있다.

         

         후각을 강화할 때, 그는 산의 사면을 타고 흐르는 바람에서 산 전체의 짐승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이 거리에서 준비한 ‘초인을 위한 함정’은, 사실 초인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었다. 이 요원들 모두 어설프게 초인의 영역에 한 발 걸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전장에서 이 수준의 초인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그 전장을 모두 돌파하고도 살아남은 이들이 지금의 용사 파티다.

         

         고작 이 정도로 질 베르를 죽이려 했다고?

         

         이반은 작은 불쾌감과, 작은 혐오감 속에서 도끼 자루를 고쳐 쥐었다.

         

         

         “나, 나는…!”

         “쉿.”

         

         

         다시 한번 혀를 차고는, 이반의 손이 휙 하고 흔들렸다. 도끼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건너편 수풀 너머로 사라졌다.

         

         촤악! 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수풀 너머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반은 그 방향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대답할 입은 하나면 충분하지.”

         “이… 괴물…!”

         “괴물?”

         

         

         이반은 무표정하게 단검과 포션을 꺼내 들었다. 저벅저벅 걸어가서, 사내의 가슴팍에 발을 얹으며 물었다.

         

         

         “고작 나를 괴물이라 말하는 놈들이, 대체 어떻게 질 베르를 죽이려 했지?”

         “그,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는 그저….”

         “그만.”

         

         

         이반은 사내의 가슴을 조금 더 강하게 밟았다. 커흑,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이 쥐어짜이는 신음이 발 아래에서 들렸다.

         

         

         “내가 말하면, 너는 듣는다.”

         “크흑…!”

         “내가 물으면, 너는 답한다.”

         “흐읍…!”

         “대답은 신중히 해야 할 게다. 해야 할 말이 많고, 같은 것을 많이. 아주 충분히 물어볼 예정이니까. 대답이 틀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는 죽지 못한다.”

         

         

         이반의 말에 사내는 산발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반을 똑바로 올려보며 입을 열었다.

         

         

         “크라실로프…! 과거의 망령이구나!”

         “그건 내가 물은 것이 아니었다.”

         

        -스걱!

         

         

         단검이 흐릿해지고, 사내의 어깨 어림에서 핏물이 튀었다. 사내는 끅끅거리며 신음을 흘리다가 곧 이를 악 다물었다.

         

         

         “호국경이란 작자가 마침내 나라를 외국에 팔았구나! 각하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 이 나라는 썩었…”

         

         

        -스각!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게다, 멍청한 북부인!!”

         

         

         사내는 결연한 얼굴로 마력을 돌렸다. 마법사였나. 이반은 혀를 차며 발을 뗐다. 공격 주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하는 일종의 금제였던 모양이다.

         

         마력이 사내의 몸 안을 파고들자, 사내는 파르르 떨며 눈을 뒤집고 허물어졌다. 꺽, 하는 신음과 함께 입에서 거품이 밀려나왔다.

         

         강제로 심장을 멈췄군. 혈류를 차단해 자결했어.

         

         이반의 손이 벼락처럼 움직여 사내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바싹 세운 손가락이 가슴 어림에 박혀들어가고, 마력이 거칠게 흘러 들어가 사내의 심장을 꽈악 움켜쥐었다.

         

         타인의 몸에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대개 심장의 형태는 비슷하기 마련이다. 이반의 마력은 사내의 심실근을 옭아매어 두근, 두근, 맥박치기 시작했다.

         

         창백해졌던 사내의 얼굴에 다시 핏기가 돌았다. 끄윽, 큭!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천천히 몸을 떨었다.

         

         

         “어, 어떻… 어떻게…?”

         “죽을 수 없다고 했을 텐데.”

         

         

         이반은 사내의 가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슬쩍 돌렸다.

         

         

         “유진.”

         “예, 형님.”

         “아이들을 질 베르에게 보내라. 이 산에서 가장 안전한 곳일 테니. 그리고 너는 남아.”

         “예? 아, 예. 저는 왜….”

         “너도 배워야 하니까.”

         

         

         용사 파티는 이런 험한 일을, 이렇게 궂은 일을 배울 필요가 없다. 이것은 용사가 하기엔 너무 더럽고 ‘재미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에서 이반이 대신 처리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없을 때, 용사 파티의 일원 중 하나는 이런 일을 해야 했다.

         

         굳이 따지자면 루시아가 있지만, 글쎄. 적어도 이런 방면에선 ‘상태창’이 있는 유진이 보다 더 유익하다. 루시아의 특기는 엔리케와 같다. 암살과 침투.

         

         척후와 심문은 이반의 역할이었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그러니 이번 시대에는, 당대의 용사 파티에는 이반의 역할을 대신할 인원이 필요했다.

         

         유진은 이반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형님… 이건….”

         

         

         유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걸레짝이 된 사내에게 힐링을 퍼붓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사제의 치유와 힐링 포션으로도 치료할 수 있는 임계점을 이미 넘겼다.

         

         핏물로 범벅이 된 이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쇠비린내가 짙게 풍겼다. 숲의 그늘 아래에서,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흩어졌던 정보들이 퍼즐처럼 맞물리며 도형을 그려 나간다. 틸레스의 몰락이라는 그림을.

         

         

         “유진.”

         “예, 형님.”

         “이 세상 모든 국가엔 멸망의 스위치가 들어가 있다.”

         “네…?”

         “들어라.”

         

         

         이반은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전대의 용사 파티는 너무 유능했어. 연합의 멸망을 막아낸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마족의 위협을 거의 완전히 근절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엔 다음 대의 용사 파티가 만들어졌다.”

         “…예.”

         “그럴 만한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설령 마왕이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지금의 ‘연합 왕국’은 이겨낼 수 있겠지. 전대 용사 파티는 여전히 현역이고, 마족은 연합 왕국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으니까.”

         “…예, 형님.”

         “그렇다면 용사가 필요할 수준의 위협은 어떻게 도래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이미 겪어본 일이기도 하고.”

         

         

         이반은 눈을 떴다. 그는 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세상 모든 국가엔 제각기의 이유로 멸망의 스위치가 들어가 있다. 크라실로프의 것처럼. 내전이라는 형태로. 마족이라는 형태로. 그것이 새로운 용사 파티와 함께, 빙의자들까지 필요했던 이유겠지. ‘주’가 실존한다면, 그런 뜻일 게다.”

         

         

         유진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형님, 지금 그런 말을 하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에타크리히 공작에게 경고를….”

         “늦었다.”

         

         

        -피이이잉—!! 파앙—!!

         

         

         숲 너머에서 신호탄 하나가 터졌다. 용을 발견했을 때 터트리기로 했던 신호탄이다.

         

         어둑한 밤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신호탄과 거의 동시에 불기둥이 치솟았다. 용의 숨결이다. 성벽과 강철을 녹이는.

         

         방심했던가? 그럴 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했다. 자신마저 있었다.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단 하나, 정보. 오직 그것뿐.

       

         

         하지만 결국 모두 변명일 뿐이다. 끝내 내전은 저지하지 못했다.

         

         

         “지금부턴 더 이상 설명할 시간이 없다. 질 베르에게 돌아가는 대로, 너는 당장 일행을 수습하고 상 마틸렌느로 돌아가야 하니.”

         “형님….”

         “이 자리의 수도 방위군은 전 병력의 절반이야. 아직 수도에는 그 정도의 병력이 더 남아있다. 그곳에서 일행과 함께 버텨라. 내 말을 잊지 말고, 명심해라.”

         

         

        -피이이잉—!

        -파앙-!

         

        -피이이잉—!! 파앙—!!

         

         

         축제의 폭죽처럼. 불꽃놀이를 하듯이, 밤하늘 곳곳에 신호탄이 터졌다.

         

         용을 발견했다는 신호탄이, 사방에서. 각각의 제대가 지니고 있던 모든 신호탄이 도미노처럼 사방에서 터져 나갔다.

         

         베르니니 산맥 전역에서 불꽃이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었다.

         

         하늘이 불타는 것만 같다. 대낮처럼, 그러나 신호탄의 음울한 붉은 빛으로 환하게.

         

         그림자가 짓눌려 사그라든다. 창공의 수많은 광원에 산맥의 그림자가 낮게 몸을 낮춰 도사렸다.

         

         이반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질 베르는… 내가 살려보마.”

         

         

         용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용의 도래는 미끼 따위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도 함정이며, 동시에 대백작과 마족들의 주력이라 하겠다.

         

         틸레스는 동북부를 상실할 것이다. 동부 전선은 이제 중앙과 고립되어 보급 없이 마족군을 홀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대백작들은 이제 절반 남은 수도 군단만을 상대하면 그만이다. 수도가 넘어가면, 왕실이 무너지면, 틸레스는 끝이다.

         

         이반의 머릿속엔 틸레스 전역의 군사 지도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틸레스의 남은 수명은 이제 보름도 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지도가 이 순간, 신호탄이 터진 베르니니의 밤하늘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

         

         [퀘스트 상태 갱신!]

         [목표 : 틸레스 3대 백작가의 내전 저지. (실패)]

         

         [수행 가능 목표]

         [목표 : 상 마틸렌느 수성전 승리. (신규)]

         [목표 : 파괴된 영지가 총 15개 이하로 유지될 것. (2/15)]

         [목표 : 질 베르 드 에타크리히의 생존.]

         [목표 : 막시밀리앙 드 이투알레와의 조우.]

         [목표 : 틸레스 왕가의 존속.]

         

         [보상 : 연합 왕국의 존치 10년 연장.]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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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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