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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미노타우로스는 벌써 몇백 년간 한 번도 토벌에 실패한 적 없는 계층 수호자다.

       

       심지어 그중 300년가량은 아예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공략법이 완벽하게 공유된 몬스터인 데다가, 겨우 2층의 수호자라 여차할 때 도와줄 중견 모험가를 구하기도 쉽기 때문.

       

       미노타우로스 토벌에 필요한 스펙이 부족해서 참가조차 못 한 거라면 모를까, 토벌에 참여했으면 잡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연회는 이미 준비 중일 거라는 소리지? 우리는 그냥 찾아가면 되고?”

       

       내 질문에 허망한 표정의 로즈마리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입장까지는 내 일행이라는 식으로 둘러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회장 안쪽에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을 거다. 특히 어머님에겐…….”

       

       “아, 됐어요.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크윽!”

       

       실수로 고대의 대악마라도 일깨운 사람처럼 분함과 죄책감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는 로즈마리.

       

       무슨 소리를 할 때마다 저 모양인 걸 봐서는 원래 저런 사람인가 보다.

       

       하기야. 엘프 기준으로 100살 좀 넘긴 로즈마리는 이제 막 성인이 된 거나 마찬가지.

       

       인간도 20대까지 중2병이 안 낫는 사람들이 있으니 로즈마리도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하여 이상할 건 없지.

       

       참고로 늦게까지 중2병이 안 낫는 사람 중 글재주가 있는 사람은 십중팔구 작가 일을 시작한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면…….

       

       머리를 휘휘 저으며 암울한 생각을 떨쳐내고는 리디아에게 물었다.

       

       “리디아 님. 혼자서 괜찮겠어요?”

       

       “어느 정도의 무력이 필요한 건데?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에이. 제가 리디아 님에게 무도한 짓을 시키겠어요?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답니다. 그저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실 정도면 충분해요.”

       

       “그럼 나 혼자서도 충분해. 하지만 혹시 모르니 베니도 같이 데려가면 확실할 거야.”

       

       “으음. 그렇게 할까요? 로즈마리의 초대라는 명목으로 참석하는 거니 드레스 코드는 맞춰야 하잖아요. 옷 빌리러 가는 김에 베니도 데려오죠. 엘리는….”

       

       “엘리 선배는 과해. 그리고 엘리 선배는 요나 네가 관련되면 눈이 뒤집어지는 경향이 있잖아.”

       

       “아차차. 리디아 님과 달리 선빵을 날릴 수 있다는 거죠?”

       

       “응. 그리고 엘리 선배의 선빵을 막아낼 사람은 판 그레이브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베니만 데려가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논의. 이미 지상에 올라왔음에도 도망칠 생각조차 없는지, 흐느적거리는 로즈마리가 말없이 구경 중인 자신의 호위에게 물었다.

       

       “베리. 지금이라도 이 흉계를 어머님에게 알려드리면….”

       

       “전 리디아 씨를 따돌릴 자신이 없습니다.”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오늘 있었던 일의 증인이 되어줄 수는 있죠.”

       

       “그건 호위의 역할이 아냐…!”

       

       비통한 비명을 내지르는 로즈마리를 데리고 베니의 공방으로 향했다.

       

       ***

       

       팬티 바람으로 집에서 뒹굴거리던 베니를 납치해 그대로 상업 거리의 고오급 양복점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베니가 내 손등을 깨무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지만, 다행히 샤도우가 베니의 손등을 깨무는 것으로 반항은 진압되었다.

       

       뜻하지 않게 샤도우의 입안을 목격한 로즈마리가 정신을 잃는 일이 있었긴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사이즈 조절 마법이 걸려, 내 작은 몸뚱이에도 딱 맞는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뒤에야 나온 가게.

       

       다행…아니, 아쉽게도 리디아는 혹시 모를 무력행사를 위해 갑옷을 벗을 수 없다며 배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비키니 아머를 입은 채였지만.

       

       베니는 평소와 달리 화려한 장식이 달린 보랏빛 드레스를 빌려 입었다. 평소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를 드러낸다는 점은 동일했지만.

       

       “와! 몸매!”

       

       “집에서 쉬고 있다가 갑자기 불려 나온 것도 억울한데 자꾸 놀릴래?!”

       

       “전 진심인데요! 애초에 그런 야한 옷을 입어놓고 무슨 말을 하길 바라는 건데요!”

       

       “야하다니 어디가……아, 요나 너 설마 등이 좀 파인 드레스 입었다고 그러는 거야? 헤에? 흐응? 그렇구나? 아직 요나가 어리긴 해.”

       

       큐브에 함께 갇혔을 때의 기억이 날아간 건지, 고혹스러운(귀엽다)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등을 선보이는(아기 냄새가 난다) 베니.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파인 드레스 등짝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흐약!”

       

       꼬리를 잡힌 고양이처럼 펄쩍 뛰는 베니. 실제로 꼬리뼈 쪽을 손가락으로 누르긴 했지.

       

       순식간에 제압된 베니의 모습에 샤도우가 잠시 눈치를 보다 조용히 그림자 속으로 숨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뒤를 돌았다.

       

       “히익!”

       

       기겁하며 자신의 엉덩이를 가리는 로즈마리를 향해 방긋 웃어주었다.

       

       “그럼 갈까요?”

       

       “아, 알겠다!”

       

       삐걱이며 앞장서는 로즈마리.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크레이들 상회의 본점.

       

       그러니까 만물상 에덴의 바로 옆 건물이라는 소리다.

       

       “허어. 무슨 연회를 상회에서 열어? 자기 저택 같은 곳에서 한다는 거 아니었어?”

       

       “멍청한 소리를. 판 그레이브의 땅값이 얼마인데 그런 어마어마한 대저택을 세운단 말이냐. 어차피 연회도 비즈니스의 연장일 뿐이다. 상회 건물 안에 연회장을 만들어 두면 연회장을 설치 및 유지 비용, 개최 비용 같은 것을 전부 경비 처리할 수 있지. 절세할 수 있는 세금이 얼마인데 그런 무식한 구시대의 귀족 같은 사치를…….”

       

       “응애. 나 아기 요나. 그런 어려운 이야기 몰라. 돈은 이렇게 하면 나오는 거 아냐?”

       

       소매치기 스킬로 샤샥 훔친 로즈마리의 지갑을 보여주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다만 놀란 포인트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지만.

       

       “어느새?! 그보다 돈은 정당하게 벌어야지 훔치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것도 배우지 못한 거냐! 이러니까 품성이 부족……흠흠. 아무것도 아니다.”

       

       성실한 건지 오만한 건지 모를 발언을 쏟아내려다 리디아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사리는 로즈마리.

       

       낄낄 웃으며 그녀의 지갑에서 1실버를 꺼내 챙기고는 돌려주었다.

       

       “1실버는 대체 왜…?”

       

       “지갑 찾아줬으니 그 포상금이죠.”

       

       “찾아줘? 포상금?”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는 로즈마리였으나, 차마 더 따질 여력이 없는지 피곤한 한숨을 내뱉으며 지갑을 한층 깊숙한 주머니에 숨긴다.

       

       그리고는 간단히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순식간에 처음 봤을 때의 고압적인 재벌 2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적당히 말이나 맞춰라. …대신 약속은 꼭 지키고.”

       

       “아하핫! 걱정마세요. 다른 엘프 분들에게 먼저 위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요. 애초에 그런 일은 리디아 님이 좌시하지 않을걸요?”

       

       “그 리디아 경조차 네놈 때문에…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제발 약속만 지켜다오.”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한 로즈마리가 한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당당한 태도로 크레이들 상회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를 따라가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현대의 백화점을 연상케 하는 넓고 깔끔한 공간.

       

       매대에 올라온 물건이 죄다 모험가들을 위한 소모품이나 적당한 품질의 장비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는 점이 다를 뿐.

       

       역시 크레이들 상회. 마탑, 공방 연합과 더불어 판 그레이브의 경제를 삼분하는 단체다운 모습이다.

       

       다른 상점과는 확연히 다른 규모. 얼핏 살펴본 바로는 품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가격은 저렴하기까지 하다.

       

       전체적으로 가성비를 추구한다는 느낌. 하긴 1층은 다 그런 법이지. 위로 올라갈수록 비싼 물건을 팔고 있는 구조이리라.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안을 자세히 둘러보자 바글바글한 손님과 그런 그들에게 상품을 안내하던 직원들이 보인다.

       

       놀랍게도 직원들은 전부 엘프 남자로 이루어져 있더라.

       

       내 눈에는 역겨운 남탕으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 눈에는 그렇지만도 않겠지.

       

       어지간한 연예인급 남자가 나긋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주는데 싫어할 만한 여자가 이 남녀역전 세계에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사람보다 장비를 더 뚫어져라 관찰하는 리디아 정도겠지.

       

       베니는 한눈을 팔길래 발을 밟아줬다.

       

       꾸욱.

       

       “아팟!”

       

       “베니는 눈을 감거나 저만 보세요.”

       

       “또 왜!”

       

       “저 미치는 꼴 보고 싶어요??”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 좀 해! 이러면 됐지?”

       

       베니의 큰 소리가 들린 걸까. 순간 이쪽에 집중된 시선. 자연스레 직원들이 로즈마리를 발견하고 직각으로 허리를 꺾어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어. 올라가 볼 테니 일들 봐.”

       

       로즈마리가 대충 손을 휘저으며 인사를 받아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본래의 업무에 집중하는 엘프들.

       

       멋있긴 한데 뭔가 위화감이 드는 풍경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로즈마리.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오늘 연회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손님을 받아요?”

       

       “당연한 거 아냐? 하루 쉬면 매출 손해가 얼마인데. 연회장에만 못 올라오게 잘 관리하면 그만이잖아.”

       

       “…그럼 후계자인 로즈마리가 왔을 때 막 절도있게 인사했으면서 바로 일하러 돌아간 건요?”

       

       “인사는 좋은 인상을 심어줄지언정 돈이 나오진 않잖아. 심지어 나는 거래처 사람도 아니고. 이것도 당연한 일 아냐?”

       

       “당연한…건가요?”

       

       “…아! 몰랐을 수도 있겠네. 우리 직원은 일정 이상의 수익을 내면 그에 비례하는 인센티브를 받거든. 돈이 되는 일에 집중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이건 이해되지?”

       

       “…….”

       

       분명 내가 엘프를 돈미새로 설정하긴 했다.

       

       나도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엘프 사장이 운영하는 몇몇 가게를 나름 애용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이 정도로 본격적인 돈미새 무브를 보자 감탄만 나온다.

       

       크레이들의 상회주 정도로 벌면 가오도 잡고 싶을 텐데,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냥 영업 강행이라니.

       

       심지어 그 밑에서 일하는 엘프들도 다들 비슷한 마인드로 보인다.

       

       “제가 인정할게요. 정말 돈에 미쳐계시네요!”

       

       “? 칭찬 고마워?”

       

       로즈마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언젠가 가챠겜 하나 만들어보고 싶네요.

    제 소설 속 등장인물을 가챠로 뽑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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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EP.138





       미노타우로스는 벌써 몇백 년간 한 번도 토벌에 실패한 적 없는 계층 수호자다.


       


       심지어 그중 300년가량은 아예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공략법이 완벽하게 공유된 몬스터인 데다가, 겨우 2층의 수호자라 여차할 때 도와줄 중견 모험가를 구하기도 쉽기 때문.


       


       미노타우로스 토벌에 필요한 스펙이 부족해서 참가조차 못 한 거라면 모를까, 토벌에 참여했으면 잡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연회는 이미 준비 중일 거라는 소리지? 우리는 그냥 찾아가면 되고?”


       


       내 질문에 허망한 표정의 로즈마리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입장까지는 내 일행이라는 식으로 둘러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회장 안쪽에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을 거다. 특히 어머님에겐…….”


       


       “아, 됐어요.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크윽!”


       


       실수로 고대의 대악마라도 일깨운 사람처럼 분함과 죄책감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는 로즈마리.


       


       무슨 소리를 할 때마다 저 모양인 걸 봐서는 원래 저런 사람인가 보다.


       


       하기야. 엘프 기준으로 100살 좀 넘긴 로즈마리는 이제 막 성인이 된 거나 마찬가지.


       


       인간도 20대까지 중2병이 안 낫는 사람들이 있으니 로즈마리도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하여 이상할 건 없지.


       


       참고로 늦게까지 중2병이 안 낫는 사람 중 글재주가 있는 사람은 십중팔구 작가 일을 시작한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면…….


       


       머리를 휘휘 저으며 암울한 생각을 떨쳐내고는 리디아에게 물었다.


       


       “리디아 님. 혼자서 괜찮겠어요?”


       


       “어느 정도의 무력이 필요한 건데?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에이. 제가 리디아 님에게 무도한 짓을 시키겠어요?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답니다. 그저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실 정도면 충분해요.”


       


       “그럼 나 혼자서도 충분해. 하지만 혹시 모르니 베니도 같이 데려가면 확실할 거야.”


       


       “으음. 그렇게 할까요? 로즈마리의 초대라는 명목으로 참석하는 거니 드레스 코드는 맞춰야 하잖아요. 옷 빌리러 가는 김에 베니도 데려오죠. 엘리는….”


       


       “엘리 선배는 과해. 그리고 엘리 선배는 요나 네가 관련되면 눈이 뒤집어지는 경향이 있잖아.”


       


       “아차차. 리디아 님과 달리 선빵을 날릴 수 있다는 거죠?”


       


       “응. 그리고 엘리 선배의 선빵을 막아낼 사람은 판 그레이브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베니만 데려가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논의. 이미 지상에 올라왔음에도 도망칠 생각조차 없는지, 흐느적거리는 로즈마리가 말없이 구경 중인 자신의 호위에게 물었다.


       


       “베리. 지금이라도 이 흉계를 어머님에게 알려드리면….”


       


       “전 리디아 씨를 따돌릴 자신이 없습니다.”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오늘 있었던 일의 증인이 되어줄 수는 있죠.”


       


       “그건 호위의 역할이 아냐…!”


       


       비통한 비명을 내지르는 로즈마리를 데리고 베니의 공방으로 향했다.


       


       ***


       


       팬티 바람으로 집에서 뒹굴거리던 베니를 납치해 그대로 상업 거리의 고오급 양복점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베니가 내 손등을 깨무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지만, 다행히 샤도우가 베니의 손등을 깨무는 것으로 반항은 진압되었다.


       


       뜻하지 않게 샤도우의 입안을 목격한 로즈마리가 정신을 잃는 일이 있었긴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사이즈 조절 마법이 걸려, 내 작은 몸뚱이에도 딱 맞는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뒤에야 나온 가게.


       


       다행…아니, 아쉽게도 리디아는 혹시 모를 무력행사를 위해 갑옷을 벗을 수 없다며 배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비키니 아머를 입은 채였지만.


       


       베니는 평소와 달리 화려한 장식이 달린 보랏빛 드레스를 빌려 입었다. 평소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를 드러낸다는 점은 동일했지만.


       


       “와! 몸매!”


       


       “집에서 쉬고 있다가 갑자기 불려 나온 것도 억울한데 자꾸 놀릴래?!”


       


       “전 진심인데요! 애초에 그런 야한 옷을 입어놓고 무슨 말을 하길 바라는 건데요!”


       


       “야하다니 어디가……아, 요나 너 설마 등이 좀 파인 드레스 입었다고 그러는 거야? 헤에? 흐응? 그렇구나? 아직 요나가 어리긴 해.”


       


       큐브에 함께 갇혔을 때의 기억이 날아간 건지, 고혹스러운(귀엽다)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등을 선보이는(아기 냄새가 난다) 베니.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파인 드레스 등짝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흐약!”


       


       꼬리를 잡힌 고양이처럼 펄쩍 뛰는 베니. 실제로 꼬리뼈 쪽을 손가락으로 누르긴 했지.


       


       순식간에 제압된 베니의 모습에 샤도우가 잠시 눈치를 보다 조용히 그림자 속으로 숨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뒤를 돌았다.


       


       “히익!”


       


       기겁하며 자신의 엉덩이를 가리는 로즈마리를 향해 방긋 웃어주었다.


       


       “그럼 갈까요?”


       


       “아, 알겠다!”


       


       삐걱이며 앞장서는 로즈마리.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크레이들 상회의 본점.


       


       그러니까 만물상 에덴의 바로 옆 건물이라는 소리다.


       


       “허어. 무슨 연회를 상회에서 열어? 자기 저택 같은 곳에서 한다는 거 아니었어?”


       


       “멍청한 소리를. 판 그레이브의 땅값이 얼마인데 그런 어마어마한 대저택을 세운단 말이냐. 어차피 연회도 비즈니스의 연장일 뿐이다. 상회 건물 안에 연회장을 만들어 두면 연회장을 설치 및 유지 비용, 개최 비용 같은 것을 전부 경비 처리할 수 있지. 절세할 수 있는 세금이 얼마인데 그런 무식한 구시대의 귀족 같은 사치를…….”


       


       “응애. 나 아기 요나. 그런 어려운 이야기 몰라. 돈은 이렇게 하면 나오는 거 아냐?”


       


       소매치기 스킬로 샤샥 훔친 로즈마리의 지갑을 보여주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다만 놀란 포인트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지만.


       


       “어느새?! 그보다 돈은 정당하게 벌어야지 훔치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것도 배우지 못한 거냐! 이러니까 품성이 부족……흠흠. 아무것도 아니다.”


       


       성실한 건지 오만한 건지 모를 발언을 쏟아내려다 리디아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사리는 로즈마리.


       


       낄낄 웃으며 그녀의 지갑에서 1실버를 꺼내 챙기고는 돌려주었다.


       


       “1실버는 대체 왜…?”


       


       “지갑 찾아줬으니 그 포상금이죠.”


       


       “찾아줘? 포상금?”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는 로즈마리였으나, 차마 더 따질 여력이 없는지 피곤한 한숨을 내뱉으며 지갑을 한층 깊숙한 주머니에 숨긴다.


       


       그리고는 간단히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순식간에 처음 봤을 때의 고압적인 재벌 2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적당히 말이나 맞춰라. …대신 약속은 꼭 지키고.”


       


       “아하핫! 걱정마세요. 다른 엘프 분들에게 먼저 위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요. 애초에 그런 일은 리디아 님이 좌시하지 않을걸요?”


       


       “그 리디아 경조차 네놈 때문에…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제발 약속만 지켜다오.”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한 로즈마리가 한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당당한 태도로 크레이들 상회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를 따라가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현대의 백화점을 연상케 하는 넓고 깔끔한 공간.


       


       매대에 올라온 물건이 죄다 모험가들을 위한 소모품이나 적당한 품질의 장비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는 점이 다를 뿐.


       


       역시 크레이들 상회. 마탑, 공방 연합과 더불어 판 그레이브의 경제를 삼분하는 단체다운 모습이다.


       


       다른 상점과는 확연히 다른 규모. 얼핏 살펴본 바로는 품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가격은 저렴하기까지 하다.


       


       전체적으로 가성비를 추구한다는 느낌. 하긴 1층은 다 그런 법이지. 위로 올라갈수록 비싼 물건을 팔고 있는 구조이리라.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안을 자세히 둘러보자 바글바글한 손님과 그런 그들에게 상품을 안내하던 직원들이 보인다.


       


       놀랍게도 직원들은 전부 엘프 남자로 이루어져 있더라.


       


       내 눈에는 역겨운 남탕으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 눈에는 그렇지만도 않겠지.


       


       어지간한 연예인급 남자가 나긋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주는데 싫어할 만한 여자가 이 남녀역전 세계에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사람보다 장비를 더 뚫어져라 관찰하는 리디아 정도겠지.


       


       베니는 한눈을 팔길래 발을 밟아줬다.


       


       꾸욱.


       


       “아팟!”


       


       “베니는 눈을 감거나 저만 보세요.”


       


       “또 왜!”


       


       “저 미치는 꼴 보고 싶어요??”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 좀 해! 이러면 됐지?”


       


       베니의 큰 소리가 들린 걸까. 순간 이쪽에 집중된 시선. 자연스레 직원들이 로즈마리를 발견하고 직각으로 허리를 꺾어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어. 올라가 볼 테니 일들 봐.”


       


       로즈마리가 대충 손을 휘저으며 인사를 받아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본래의 업무에 집중하는 엘프들.


       


       멋있긴 한데 뭔가 위화감이 드는 풍경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로즈마리.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오늘 연회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손님을 받아요?”


       


       “당연한 거 아냐? 하루 쉬면 매출 손해가 얼마인데. 연회장에만 못 올라오게 잘 관리하면 그만이잖아.”


       


       “…그럼 후계자인 로즈마리가 왔을 때 막 절도있게 인사했으면서 바로 일하러 돌아간 건요?”


       


       “인사는 좋은 인상을 심어줄지언정 돈이 나오진 않잖아. 심지어 나는 거래처 사람도 아니고. 이것도 당연한 일 아냐?”


       


       “당연한…건가요?”


       


       “…아! 몰랐을 수도 있겠네. 우리 직원은 일정 이상의 수익을 내면 그에 비례하는 인센티브를 받거든. 돈이 되는 일에 집중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이건 이해되지?”


       


       “…….”


       


       분명 내가 엘프를 돈미새로 설정하긴 했다.


       


       나도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엘프 사장이 운영하는 몇몇 가게를 나름 애용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이 정도로 본격적인 돈미새 무브를 보자 감탄만 나온다.


       


       크레이들의 상회주 정도로 벌면 가오도 잡고 싶을 텐데,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냥 영업 강행이라니.


       


       심지어 그 밑에서 일하는 엘프들도 다들 비슷한 마인드로 보인다.


       


       “제가 인정할게요. 정말 돈에 미쳐계시네요!”


       


       “? 칭찬 고마워?”


       


       로즈마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언젠가 가챠겜 하나 만들어보고 싶네요.

    제 소설 속 등장인물을 가챠로 뽑는 거임...!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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