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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

         

       그거야 황폐해져도 상관없는 곳에서 사용하면 문제가 없다.

         

       게다가 유기성 영양분이라는 것 역시 비료를 이용해 땅의 지력을 끌어올리면 문제가 없다. 예전에야 구아노(Guano)를 이용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에서는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즉, 관리만 잘한다면 아주 효율적인 은신처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 진성이 직접 유적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리세가 구해다가 자신에게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는 것.

         

       ‘내가 알 수 있는 것을 다른 이들이 모를 리가 없다.’

         

       진성은 리세에게 문자를 보냈다.

         

       『 보낸 사진 중에 두루마리는 어디서 구하였느냐? 』

       『 정치인 중 한 명의 가문의 창고에 보관된 것을 가져왔습니다. 』

         

       그 답장을 받고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함부로 사용하면 아니 될 물건이군.’

         

       아주 높은 확률로 그 정치인은, 혹은 그 정치인 가문은 이 ‘야만보의 나무 그늘’ 주술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즉,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는 말이다.

       잘못 사용하면 어떤 대가가 필요할지 모르는 주술이니만큼 훗날 사용하는 것이 옳으리라.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사진을 확인해보았다.

         

       다음에 본 것은 대나무에 기록된 것이었다.

       대나무는 잘 썼다고는 빈말로라도 말하기 힘든 글씨체로 삐뚤삐뚤 글자가 적혀있었는데, 그 형태가 마치 손가락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손바닥에 날카로운 것을 억지로 쥐고 대나무를 이리저리 파서 만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장에서의 생존은 곧 경지와 관련이 되어있다. 이르기를 무공이라는 것은 마음의 수양을 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으나 이러한 난세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곧 도에 이름을 뜻하는 것이니. 연자여, 이 대나무에 나의 일생과 그 깨달음을 적어….’

         

       진성은 여기까지 읽고 피식 웃었다.

         

       대나무에 기록된 것은 주술이 아니라 무공이었다.

         

       진성은 혹시 몰라 다른 사진도 살펴보았지만,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오직 무공만이 적혀있었다. 무공뿐만이 아니라 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 난전일 경우 은근슬쩍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방법, 전쟁이 끝난 후 패전 무사가 되었을 때 농민들에게 사냥당하지 않는 방법 등이 적혀있었다.

         

       ‘이건 나중에 이아린에게 가져다주면 쓸모가 있으렷다.’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사진을 보았다.

         

       마지막 남은 사진.

       한지를 엮어 만든 책.

         

       진성은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그것을 보았고, 그리고 찍힌 사진을 보자마자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용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책에 적힌 내용 사이사이에 박힌 삽화가 그가 일본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치를 떨게 했던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삽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본풍 그림이었다. 사람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요괴 비슷한 것이 그려져 있기도 했으며, 동물 같은 것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잘 살펴보면 그냥 평지에 적혀있는 것 같은 글씨와는 달리 그림은 묘하게 입체감이 있었고,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이 찍힌 사진만 쓸데없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마치 그림이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내용은 딱 봐도 이것저것 기워 붙인 것이지만…. 하. 이것 참, 기이하구나! 기이해.’

         

       이는 그 그림이 한지 위에 하얀 종이를 덧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먹이나 물감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아주 특별한 재료’를 넣은 것이 분명했다.

         

       진성은 바로 리세에게 문자를 보냈다.

         

       『 한지를 엮어 만든 서책. 누구한테 받았느냐? 』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답장이 돌아왔다.

         

       『 정치인 우치카와 료스케(内川亮介)입니다. 』

       『 사진도 보내보거라. 』

         

       기억이 없는 이름이었기에 진성은 리세에게 사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리세가 보내온 사진을 받자 아, 하면서 무릎을 ‘탁’ 치면서 기억 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자로구나.”

         

       얼마 전 일본에서 수살귀를 이용해 정치인들을 단체로 홀릴 때, 그때 자신을 대신해 물귀신을 부르는 강령술을 행했던 정치인.

       일러준 비방대로 행동한 덕분에 물귀신에게 홀리지 않았으며, 자신이 원하던 대로 영안을 손에 얻어 특별해지기까지 한 그 남자였다.

         

       하지만 남을 짓밟고 위에 오르려는 권력욕이 매우 강한데다가 은인이니 뭐니 할 것 없이 오직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그 관상 역시 토강여유(吐剛茹柔)의 상 그 자체였으니 조만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하였는데….

         

       ‘벌써 움직인다?’

         

       아직은 쓸모가 있다고 여겼거늘.

         

       진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진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리세가 보내준 문자에서 한자를 복사한 뒤 인터넷에 그것을 쳐보았더니 여러 기사가 나왔다.

         

       기사에는 최근 료스케의 사진이 찍혀 있었는데, 진성은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떤 사진에서는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떤 사진에서는 무언지 모를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떤 사진에서는 목줄을 벗어나려 하는 것처럼 넥타이를 쥐고 있었다.

       어떤 사진에서는 그 모습이 별것이 없었으나, 그의 위에 떠 있는 별이 대신 진성에게 말을 해주고 있었다.

         

       사진에 찍힌 별이 말했다.

       산산이 부서져 버린 유리 가루처럼 흩뿌려진 별이, 별의 모양이, 사진에 박제된 별의 빛남이 그에게 속삭였다.

         

       제 주제를 모르는 녀석은 제물로 바쳐져야 마땅해.

         

       진성은 사진에 찍힌 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어두컴컴하게 변한 산중.

       귀신이 손사래를 치는 것처럼 냉기를 품은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 손아귀를 뻗어 목을 조르려고 하는 듯 이파리를 떨궈 그에게 날려 보내고 있었다. 바닥에서는 지저의 깊숙한 곳에서 망자들이 기어 올라오는 것처럼 냉기가 강해졌고, 나무 하나하나는 가만히 보고 있자면 어둠 속에서 기이하게 휘어지며 사람의 형상 비스름한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진성은, 오염이 덜 된 하늘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별을 보았다.

         

       밝게 빛나는 인공위성의 근처에서 희미하게, 주술로 눈을 강화해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

         

       진성은 음산한 산중의 분위기를 몸에 걸치고, 자신을 공포에 질리게 하려는 냉기를 몸속 깊숙한 곳에 받아들이며 자연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미동도 없이 우뚝 서서 나무가 되었고, 나무가 고개를 들어 별의 정기를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꼿꼿하게 선 채 별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 동안 있었을까.

       진성이 서 있는 곳에 하얀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구름에서 벗어난 달이 그에게 빛을 주는 것 같이 보였으나, 그 빛이 내리쬐는 경로에는 분명히 흐릿한 별들이 있었다.

         

       진성은 때를 놓치지 않고 손바닥을 내밀어 별빛에 노출했고,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하늘을 가리는 구름에 이리저리 어두운 부분이 생기며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는 그의 손바닥을 덮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고, 이리저리 모양새를 바꿔가며 점차 세밀한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몇 번 형태를 만들더니 이윽고 해줄 말은 다 했다는 듯 그대로 빛을 거두고 사라져버렸고, 진성은 그제야 손바닥을 내리곤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보자. 달과 별은 등 뒤에서 꽂히는 칼, 무리를 이루는 늑대, 불과 함께하는 습격, 반달을 말해주었으니.’

         

       등 뒤에서 꽂히는 칼은 료스케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요.

       무리를 이루는 늑대는 칼을 휘두르는 데 오직 료스케의 힘만이 아닌, 다른 이를 끌어들였다는 것이요.

       불과 달은 상반되는 음양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분명히 음양사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반달이라는 것은 아직 그것이 이루어지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진성은 스마트폰으로 다시 한번 그림을 보았다.

         

       ‘식신이로구나.’

         

       진성은 리세에게 문자를 보냈다.

         

       『 우치카와 료스케가 나를 비수로 찌르려 하는 것 같구나. 몰락을 시켜야 할 것 같으니 정치인들에게 일러 그를 견제하게 하여라. 다만 이는 배신을 눈치챈 것이 아닌, 그를 향한 질투와 못마땅함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

         

       그가 문자를 그렇게 보내자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답장이 돌아왔다.

         

       『 감히 신주님의 은혜도 잊고 이빨을 드러내다니! 』

         

       리세가 보낸 답장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에 분노가 담겨있는 듯했다.

         

       『 그리고 료스케란 녀석은 강한 자에게는 넙죽 엎드리는 상임에도 이러한 일을 하였다. 이는 분명히 자기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불리해 보여 그런 것이니, 료스케의 주변에 누가 접근을 하였는지.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인지 잘 조사하도록 하여라. 』

         

       진성은 그렇게 문자를 보내곤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축지를 연달아 사용하며 이동하였다.

         

       목적지는 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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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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