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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138화. 비사 ( 2 )

       

       

       

       

       

       사박 사박.

       

       아스라이 밟히는 모래 알갱이들이 발을 간지럽히며 흐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기묘한 바다. 애초에 바다가 맞기는 한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옆에서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걷는 붉은 머리의 여성. 베일을 벗은 금빛 눈동자가 달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착각마저 들었다.

       

       뭔가 걸으면서 이야기해준다고 했는데, 이야기는 시작도 안 하고 이렇게 계속 걷기만 하고 있으니… 나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어색한 침묵이 숨통을 조여온다.

       

       

       “…제 이름은.”

       

       “아, 네!”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한 여성. 곁눈질로 연신 얼굴을 훔쳐보다가 재빨리 눈동자를 원위치시키며 대답한다. 나도 모르게 약간 크게 대답하기는 했는데, 이 정도는 모르겠지?

       

       

       “케넬름. 케넬름 입니다.”

       

       “아, 예. 케넬름, 씨? 제 이름은ㅡ”

       

       “알고 있습니다.”

       

       “어? 어떻게…”

       

       사박 사박.

       

       

       내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 않고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케넬름. 

       

       

       “이름은 알고 있지만, 감히 제가 어떻게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여, 위대하신 분이라고 칭하겠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시길.”

       

       “예? 아니, 저를요? 왜요?”

       

       “그대께선 참으로 위대하시기 때문이지요.”

       

       “…꼭 그렇게 불러야겠어요?”

       

       

       묵묵히 허리를 접으면서 다시 무릎을 꿇으려는 케넬름. 치마가 말려 올라가면서 하얀 허벅지가 드러난다.

       

       

       “아니! 왜 갑자기 또 그래요! 얼른, 얼른 일어나요!”

       

       “제가 어찌 감히 위대하신 분의 존함을 입에 담겠습니까? 부디 저에게 무례를 범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냐고요! 어휴. 일단 알겠으니까, 좀 일어나요!”

       

       “그렇다면, 제가 위대하신 분이라고 칭하는 것을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예, 예… 마음대로 하세요.”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진 뒤에야 바닥에 닿은 이마를 떼는 케넬름. 이 사람… 정상이 아니다. 생긴 것은 멀쩡하다 못해 절세 미녀인데, 내용물이 좀 이상했다.

       

       케넬름이 몸을 일으켜 천천히 모래사장을 걸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그렇죠. 위대하신 분이시여, 그대께서는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게임이요?”

       

       

       갑자기 게임? 뜬금없는 질문에 케넬름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조금은 쓴웃음을 짓는 케넬름. 사람이 예쁘니까 그것마저도 한 편의 그림이 된다.

       

       

       “예, 게임. 한낱 오락에 불과한 유흥거리. 단순한 즐거움을 위한 수단. 그런데 그것이 진짜 생명과 같다면, 게임에서 죽고 사는 것들이 실제로 죽고 사는 생명이라면… 어떠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위대하신 분이여, 그대는 게임을 하나 하고 계실 겁니다.”

       

       “어, 그렇긴 한데.”

       

       “그 게임이 이상하다고 느끼신 적 없으신가요? 게임치고는 엉성한 구성, 기괴한 난이도와 불균형적인 결제… 그리고 간혹 경험하신 기묘한 꿈들.”

       

       “그걸, 어떻게…”

       

       

       케넬름의 황금빛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보인다. 우스꽝스럽고 멍청한 표정.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가늠조차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게임에 나오는 드워프와 영웅들, 주민과 괴물들. 그 모든 것이 전부 진짜 현실이라면, 위대하신 분께서 행하시는 그대로 다른 세계에서 일어난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네?”

       

       

       지나친 이야기에 머리가 그 말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에서는 멍청한 반문이 흘러나온다. 케넬름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가. 내가 하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그것도 다른 세계?

       

       케넬름은 나를 바라보며 쓰게, 어쩌면 애달프게 웃었다.

       

       

       “이걸 봐주세요.”

       

       샤아아ㅡ

       

       

       케넬름이 아래에서 위로 손짓하다 까만 바닷물이 꿀렁이더니 허공을 날아올라 티비처럼 납작하게 변하더니 무언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다. 찬찬히 살펴보자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인다.

       

       

       “신전이랑 광산? 저건 내 일꾼들이잖아.”

       

       “한눈에 알아보시는군요. 예, 맞습니다.”

       

       

       케넬름이 천천히 손짓하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거울이 천천히 다가와 내 앞으로 향했다. 마치 거대한 스크린을 보는 듯한 기분. 혹시나 하고 이리저리 손짓하니, 그에 맞춰 보이는 모습이 움직인다.

       

       – 씰룩 씰룩

       

       잔디밭에 덩그러니 놓인 서리알도 보인다. 알을 끌어안은 드워프들을 떨쳐내기 위해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모습.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케넬름이 내 손을 잡더니 천천히 화면으로 이끌었다.

       

       

       “어, 어어?”

       

       꿀렁.

       

       일순간 화면이 크게 출렁이더니 내 손은 마법처럼 화면을 통과하여, 서서히 서리알을 향해 다가갔다. 이 기묘한 경험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티비 속에 손을 뻗어서 그 물건을 집어오는 마술?

       

       꾸물 꾸물ㅡ

       

       화면을 빠져나온 손 안에서 연신 꿈틀거리는 서리알. 차가운 서리알의 감촉은, 이게 명백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이, 이이게 도대체 무슨?”

       

       

       정말로 내 게임이 다른 세계랑 연결되어 있다고? 

       

       

       “아직은 시기상조라 생각하여 제가 숨겨왔지만, 더 이상 숨기는 것은 위대하신 분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케넬름은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가슴 앞으로 손을 깍지끼며 기도하는 자세를 한다. 커다란 가슴이 팔 사이에 끼면서 눈을 두기 곤란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저희 세상은 악마에 유린당하고 힘없는 자들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 세상을 구원하시어, 그대가 마땅히 누려야 할 영광과 명예를 되찾으소서. 그리하여 그대의 영광과 빛을 영원토록 노래하고, 영웅들이 어둠에 쓰러지지 않게 비추소서.”

       

       “허…”

       

       “위대하신 분이시여. 부디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ㅡ”

       

       스윽.

       

       케넬름이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대의 여섯 번째 옥좌에 앉으소서.”

       

       꿈틀!

       

       손에 쥔 서리알이 펄쩍 뛰며 대답을 재촉했다.

       

       

       

       

       

       *****

       

       

       

       

       

       케니스는 스산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았다. 데모닉이 그녀에게 털어놓은 그날의 숨겨진 이야기들은 큰 충격이었다.

       

       로페누스의 광기와 신을 만들겠다는 끔찍한 의식, 이에 함께한 만신전.

       

       그리고 의식의 실패와 별빛의 타락, 악마들의 습격까지.

       

       어느 것 하나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데모닉은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케니스를 바라보았다.

       

       

       “만신전을 너무 원망하지는 말거라. 그 사건 이후, 수많은 이들이 형장의 이슬이 되거나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그들은… 그저 너무 지쳤을 뿐이야. 긴 기다림과 기약 없는 약속에 지치고 힘들었을 때, 로페누스의 말은 굉장히 달콤하게 들렸겠지.”

       

       꽈악.

       

       데모닉의 말에 케니스는 힘껏 주먹을 쥐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광인의 헛소리에 만신전이 자신과 어머니를 희생하다니, 더욱이 이런 끔찍한 사건을 만신전이 숨겨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어요… 도대체 왜 만신전이 저와 엄마를!! 이런 끔찍한 일을 도대체 왜 숨긴거죠?”

       

       “내가 만신전과 거래했다. 이 사건을 은폐하는 데 동의하는 대신, 너를 돌봐주고 나를 보호해주기로.”

       

       “네…?”

       

       

       데모닉을 보호하다니? 케니스의 고개가 휙 돌아가며 데모닉을 바라보았다. 데모닉은 쓰게 웃으며 케니스를 마주 봤다.

       

       

       “로페누스, 그 썩을 녀석의 배후에는 악마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악마는 타락한 별빛을 먹어 치워서 키운 격으로 내 영혼까지 넘봤고, 그 자리에서는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화악!

       

       데모닉은 웃옷을 젖혀 가슴팍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빼곡하게 새겨진 온갖 흉터들. 찢어지고 갈라진 상처와 불로 지진 흔적들이 가득했는데, 그중 절반 정도는 데모닉 스스로 새긴 것이었다.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은 것.

       

       그가 지난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보여주는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 흉터들의 가운데에 새겨진, 이제는 흐릿해진 뱀 모양의 상처.

       

       

       “이건 그 악마가 나에게 새긴 표식이다. 정확히는 표식이었던 거지. 내 영혼을 추적하고 먹어 치우겠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야.”

       

       “그런…”

       

       

       아가리를 쩍 벌린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의 흉터는 얼마나 상처가 깊은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만신전은 사건을 숨기고 싶어 했고, 나는 너를 보호하고 악마로부터 숨어야했다. 하여 너를 고아원에 맡겨서 나한테서 떨어트리고, 만신전은 나를 악마로부터 숨겨줄 항마의 부적을 주기적으로 만들어줬다.”

       

       “…”

       

       

       “결국, 그렇게 된 거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모두 악마의 농간에 놀아난 거지.

       

       

       데모닉은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목에 건 로켓을 케니스에게 내밀었다. 딸칵하는 소리를 내며 열린 로켓에는 한 여인의 초상화가 있었다. 붉은 머리에 금빛 눈동자가 초승달을 그리며 웃는 여인.

       

       

       “이건 너에게 주마. 리아도 그걸 더 좋아하겠지.”

       

       

       케니스가 떨리는 손으로 로켓을 받아 초상화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리아, 그녀의 어머니.

       

       밝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신혼 때의 모습인 걸까. 순백의 하얀 드레스를 입은 리아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덧없는 하얀 눈망울처럼. 새하얀 눈꽃과도 같았다.

       

       데모닉은 천천히 케니스의 손을 이끌어 앞으로 나아갔다.

       

       

       “미안하구나, 케니스. 너에게 좀 더 일찍 말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많이 부족해서, 용기가 없어서…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스스로에 대한 책망과 자조가 가득한 말. 지난 세월을 얼마나 후회로 얼룩진 시간으로 보냈는지, 케니스는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없었다.

       

       

       “아빠…”

       

       

       어두운 밤을 묵묵히 걸어가는 데모닉의 등은 조금은 작아 보였고, 어쩌면 굉장히 지쳐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황금처럼 번쩍이는 후원, 감사합니다!! 주인공아 어서 과금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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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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