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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하는 가게는 곧잘 폐업하곤 했다.

        

       딱히 무슨 저주를 받아서는 아니다. 그저, 소란스럽지 않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가게를 선호했을 뿐이지. 그리고 그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가게는, 보통 매우 고급스럽거나- 아니면, 빠르게 망하고 있는 가게였고.

        

       그러니 주머니사정이 그리 풍족한 적 없던 내가 아끼던 가게들은, 대부분 정해진 결과를 향해 달려가곤 했던 것이다.

        

       간혹, 제법 괜찮은 가게가 사람이 많지 않을 때도 드물게 있었지만-

        

       “죄송합니다. 저희 이제 곧 마감 시간이어서요.”

        

       “아, 네네! 일어날게요. 죄송합니다.”

        

       이건 보통, 영업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일 뿐이다. 지금처럼.

        

       1시 30분……늦은 시간이라면 늦은 시간이기는 한데.

        

       “마무리하기는 조금 아쉬운데. 아크님은 어때요?”

        

       “응? 아니, 마감한다고 하잖아……알바님들 힘드실 텐데 일어나야지.”

        

       당황하는 표정으로 다독이듯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아크.

        

       ……왜 재촉하는 느낌이……아. 설마, 마감 시간이고 뭐고 버텨보자는 의미로 이해한 건가.

        

       “……여기서 말고, 다른 데서 한 잔 더 하실 건지 물어본 거예요.”

        

       “아! 아, 응. 좋아.”

       

       ……진짠가 본데.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낮은 건가. 영업시간이 끝난 가게에서 안 나가겠다고 진상을 부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걱정을 하는 건지.

        

       하물며 나처럼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그럴 리가 있나. 상상조차 못해본 일이다.

        

       “일단 나갈까요.”

        

       그렇게 펍에서 쫓기듯 나오고, 다른 가게에 들어갔다가……곧 영업을 종료하니 안 된다는 안내를 듣고 다시 나오기를 몇 차례.

        

       아직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하고 들어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선객이 있는 가게들도, 새벽 2시를 앞두고 새로운 손님을 받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으니.

        

       하긴. 지금 있는 일이야 어찌어찌 해도……퇴근 직전에 새로운 일 들어오는 건 싫은 법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할 수 있는데…….

        

       ……아까 조금 더 남아있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마감시간 아슬아슬할 때까지. 넘기겠다는 건 아니지만…….

        

       또 다른 가게에 들어갔던 아크가 머리 위로 X자를 그리며 나왔다. 저기도 안 되나.

        

       이 동네는 새벽 늦게까지 영업하는 분위기가 아닌 걸까. 나름 번화가니, 계속 찾다 보면 받아주는 가게가 없지는 않겠지만- 또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마감시간이라는 안내와……오해를 받기는 싫은데.

        

       “집에서 마실까요.”

        

       약간은 홧김에 던진 즉흥적인 제안이었다. 슬슬 다리도 아프고, 무엇보다 술이 조금씩 깨는 느낌이었으니.

        

       쫓겨나지 않을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

        

       * * * *

        

       “적당히 앉으세요. 의자가 하나는 있긴 한데……어차피 탁자가 좌식이라.”

        

       이게 대체 무슨 흐름인지. 아직도 약간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감추며, 아크는 집주인의 인도에 따라 바닥에 앉았다.

        

       도무지 연 가게를 찾을 수가 없어서, 함께 방황하다가……갑자기 집으로 초대하고는, 술은 다 구비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던-

        

       “화이트, 레드, 샴페인 있어요. 로제는 없네요. 취향이 아니라.”

        

       부엌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이예나가, 이어서 손을 스윽 내밀어 보였다. 한 손으로 와인 병 3개의 주둥이를 쥔 채였다.

        

       “……어, 예나는 악력이 좋구나.”

        

       “요령이 있어요. 아무튼……어떤 걸로 하실래요?”

        

       “나는 다 좋아. 너는 뭐 마시고 싶은데? 레드?”

       

       “저도 다 좋아요. 술은 공평하니까……그래도, 말 나온 김에 레드 좋네요. 따지고 보면 이것도 레드캡이고.”

        

       “레드캡?”

        

       아크는 순간 검색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와인을 좋아함에도, 유명한 품종이나 브랜드를 잘 알지는 못했으니. 알코올과 동거하는 듯한 이예나가 추천하는 와인이라면 분명 제법 괜찮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던 아크의 기대가 산산조각 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다리기 지쳤다는 듯이 와인 3병을 모두 들고 온 이예나는, 빨간 뚜껑으로 덮인 소주를 따고 있었으니.

        

       ‘빨간 뚜껑……아.’

        

       “……설마 그게 레드캡이야?”

        

       “네.”

        

       태연하게 병뚜껑을 비틀어 여는 모습을 보며, 아크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같이 마실게.”

        

       소주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살면서 굳이 소주를 찾아서 마신 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소주가 마시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으니.

        

       하지만-

        

       함께 하겠다는 말만으로도 표정이 사뭇 밝아지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도 정색하며 거절할 정도로 싫어하지도 않았다.

        

       아크에게 소주란 그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

       .

       .

        

       “아, 이거! 이거 우리 뒤풀이 사진이네? 잘 나왔다! 누가 찍은 거였지 이거?”

        

       “다른 사진을 찍은 사람들과 달리, 술을 안 마신 종업원이 찍었어요. 여기 잘 보면 나무꾼 뒤통수도 나와요.”

        

       “오……그렇네. 5명 다 나온 사진이구나. 어? 강아지는 뭐야? 강아지 키워?”

        

       “4차로 간 편의점에서 만난 강아지예요. 기억 안 나시나요. 아리가 강아지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사진을 한 20장은 찍어서……지니님이 강아지 주인한테 대신 사과하시고.”

        

       “아……그때구나.”

        

       그럼 생판 남의 강아지란 소리 아닌가. 대체 왜 저걸 저렇게 소중하다는 듯이 벽에 붙여 둔 건지. 도무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아크는 그날의 뒤풀이가 그만큼 좋은 기억이었다는 의미로 선해하기로 했다. 

       

       무리하게 이해하려 해봐야 주화입마에 빠질 뿐이라는 건, 이예나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었으니.

        

       그렇게,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새벽 2시 30분.

        

       생활감 있는 따스한 방에서 마셔서 그런 걸까. 평소 술을 즐기지 않던 아크로서도, 몸을 휘감듯 올라오는 취기가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포근하고……나른한.’

        

       침대에 기대어 앉아, 몸에 힘을 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에 단검과 후드라도 줄줄이 걸려있을 것만 같았던 이예나의 방은 의외로 평범했다. 바닥에 빈 소주병이 5개 정도 가지런히 놓여있다는 사실을 눈감아줄 때 얘기지만.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큼지막한 책상 위에는, 두 개의 모니터와 그다지 비싸보이지 않는 마이크, 그리고-

        

       “오카리나, 진짜 하는 거였구나?”

        

       악보 거치대와 오카리나가 놓여 있었다.

        

       악보에 제법 빼곡히 적힌 이런 저런 메모들이 눈에 밟히는 건 왜일까.

        

       “네. 한 곡 해드릴까요?”

        

       “……새벽 2시 반인데?”

        

       “작게 불면 돼요. 어제 새벽 3시에는 스테레오로 전쟁영화 트는 사람도 있었고……기타리스트가 꿈인 친구도 하나 있는 것 같던데. 오카리나 정도면 여기서 조용한 편에 속해요.”

        

       “……아니, 아니……괜찮아.”

        

       “음……그러면 방송이나 잠깐 할까요.”

        

       “어? 방송?”

       

       “집까지 초대했는데, 정작 집에서 할 게 없으면 호스트로서 자격이 없잖아요. 잠시만요.”

        

       중력을 거스르기라도 하는 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이예나가, 책상 옆에 놓인 서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캠은 어떻게 할까요. 저는 안 나올 거라……지니님 편한 대로.”

        

       “어, 나 방송 화장 그대로 와서, 조금만 고치면 되니까……켜도 돼. 근데 괜히 위험하지 않겠어? 술도 마셨고. 혹시 실수로 잠깐이라도 카메라 앵글에 들어가면 어떡해.”

        

       “음……글쎄요. 신상 드러나는 게 무서워서 캠을 안 켜는 건 아니어서……그리고, 오늘은 이거 쓸 생각이니까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 말하며 이예나는 머리에 무언가를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첫 방송에서 사용했던, 스마트폰 머리 거치대였다.

        

       * * * *

        

       광질에서 겉바속촉, 갱생광질, 그리고 갱생도질까지.

        

       지난 몇 개월 간 (무려 현금 결제를 해가며) 변경한 그의 아이디는, 그동안 그라데이션처럼 진해진 팬심을 명징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승리!=

        

       물론, 가장 뚜렷한 증거는 늘어난 도적 실력이었지만.

        

       [갱생도질(도적): 도적 캐리다]

       [갱생도질(도적): 인정 못하겠는 놈들은 지하로 오도록]

       

       [로비트론(광전사): 챌린저가 마스터에서 예능캐로 지랄하면서 캐리거리면 안 부끄러움?]

       

       [갱생도질(도적): 예능캐?]

       [갱생도질(도적): 친추 받아라]

        

       오늘도 5승째. 주어진 할당량인 도적 5판을, 자체적으로 5승으로 바꾸어 달성하고 있는 그의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시비를 건 놈이 막상 결투를 청하자 비겁하게 꼬리를 말고 도주하는 촌극까지 관람했으니……더 이상 바랄 나위 없는 하루다.

        

       ‘방송이나 좀 켜주면 딱 좋을-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이 방송 중입니다!]

       [뒤풀이 뒤풀이 뒤풀이]

        

       시야 한 구석에 떠오르는 알림을 홀린 듯이 클릭했다. 공지도 없었는데. 방송 초기에야 새벽 랜덤 방송도 종종 켰다지만, 최근엔 제법 규칙적이던 스케줄이었다.

        

       ‘무슨 일 있나?’

        

       짧은 로딩이 끝나고 떠오른 화면은, 약간은 익숙한 구도였다.

        

       모니터 2개. 뭐가 담겼는지 모두가 아는 에스프레소 잔. 그리고…….

        

       “켰어?”

        

       “아. 잘 들리시나요.”

        

       “와, 시청자수 올라가는 속도가 무슨……. 새벽 3시 다 돼 가는데 장난 아니네.”

        

       2개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는 당연히 아따먹이고, 다른 하나는…….

       

       아크다. 아따먹의 방송으로 본진을 옮기기 전까지는 가장 좋아하던 스트리머였던.

        

       그 둘의 합방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시청자수 언급 밴 아니었나요.”

        

       “그건 우리 방송 룰이고……아따먹 방송은 도적 욕만 안 하면 된다고 유명하던데. 아니야?”

        

       “저희 시청자들은 새벽에 할 일 없어서 방송에 우르르 몰려오는 도적들이라는 건가요. 사과해주세요. 도게자하실 거면 바지 빌려드릴게요.”

       

       “아니, 무슨-! 조금 전까지 안 이랬잖아. 와, 여러분들. 얘 방송 키니까 사람이 이상해졌어요. 진짜로. 네? 아, 저는 아크입니다! 아따먹님 시청자 여러분 반가워요. 오늘 아따먹님이랑 둘이 술 한잔하다가, 아따먹님이 갑자기 방송 켜고 싶다고 해서 급방송 켰어요.”

        

       “방제 뭐냐……뒤풀이의 뒤풀이로 만난 술자리의 뒤풀이를 위한 방송이란 뜻이예요.”

        

       “……설명 들으니까 더 헷갈려.”

        

       “술이 부족해서 그래요. 자.”

        

       쪼르륵, 술을 따르는 소리.

        

       흔들리는 카메라에 채팅창이 불평을 토하는 사이, 도질은 바쁘게 도네이션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었다.

        

       ‘아, 충전한 거 아직 남았네. 일단 빨리 도네를-’

        

       -갱생도질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뒤풀이 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ㅎㅎ 아크 아따먹 합방 최고에요】

        

       “아, 후원 감사합니다. 갱생도질님……아, 전적 인증 잘 보고 있어요. 저번 달부터 5승으로 채우시던데. 앞으로도 파이팅.”

        

       “어? 저 분 광질님이라는데? 맞아?”

        

       “이젠 도질이에요. 다시 광전사로……그러면 저를 포함한 5천만 도적 유저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도적부흥운동회 선봉장인데, 절대 뺏길 수 없지.”

        

       그의 입장에선, 보람이 차고 넘치는 도네이션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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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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