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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학생회장이 뽑혔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학생회장이 된 것.

     기존의 관점에 따르면, 학생회장은 막말로 학생들의 시종이었다.

     물론 같은 귀족끼리 시종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관계를 사교계에서 찾아보자면, 지브롤터 백작이 그나마 비슷하지 않을까.

     왕국을 수호하는 호구.

     학생들을 위해 일하는 호구.

     그런데, 그게 ‘왕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학생회, 이거 사실상 나리아 친위대 아니냐?”

     여론은 언제나 실시간으로 변하고, 그 여론은 학생들의 사담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카페테리아.

     “이사장님. 주문하신 달의 불빛차와 바스크 치즈케이크입니다.”

     “고맙군.”

     아쉽게도 아스타시아가 수업 중이라, 나는 오늘도 이렇게 홀로 상점가의 카페-야외좌석에 앉아 솜누스 차를 마시며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제국에서는 호출벨이라는 물건을 쓰고는 하는데, 그걸 도입할 생각은 없나?”

     “하, 하하…. 그랬다가는 제가 쫓겨날걸요.”

     “하긴. 벨 울렸다고 찾으러 오라고 하면 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어. 고맙군.”

     음료와 차를 내어다 준 점원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자리를 떠났다.

     홀짝.

     동시에 내 맞은편, 커피에 물을 잔뜩 태우는 걸로도 모자라 얼음까지 넣어둔 아이스커피를 단숨에 들이킨 신입생이 냅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신입생은 내 앞에 놓여있는 케이크와 음료를 슬쩍 보고는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졌고, 나는 찻잔을 들며 다시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친위대라고는 하기 좀 그런데. 친위대는 동아리 아니야?”

     “동아리는 왕궁으로 치면 왕실기사단인 황금여명 기사단인 거고, 여기 이쪽 학생회는 왕실 행정관들인 셈이지.”

     “부학생회장은 재상이고 임원들은 12대신이라는 거야? 머리 아프네….”

     약 140표를 확보한 나리아.

     그녀는 동시에 왕국 애호 동아리의 회장이기도 하다.

     “학생회장이 동아리 회장도 될 수 있는 거야?”

     “학생처에 물어보니까 안 된다고 하더라. 기사단장 자리를 넘겨줘야 할 것 같던데.”

     “동아리 회장이 아니고?”

     “그거나 그거나.”

     어느덧, 왕국 애호 동아리는 나리아의 친위 기사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미치겠네. 그거 탈퇴한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겠지?”

     “뭐? 탈퇴? 너 혹시 왕국을 떠나겠다는 거냐?”

     “하 씨. 너까지 그러지 마라. 그 소리 때문에 아주 그냥 머리가 아프니까.”

     “흐흐흐.”

     그 사이에 피로감이 잔뜩 짙어져 불만이 생기기는 했으나, 농담으로라도 논리는 통하고 있는 게 문제.

     “절반도 안 되는데 1등 했다고 학생회장을 하는 게 말이나 되나.”

     “그러면 어쩔 건데? 이미 당선되어서 아카데미에서도 학생회장으로 임명했는데.”

     “쓰읍…. 학생회, 그러면 완전 왕국의 미래가 되어버린 거네?”

     “너, 지금 바로 취직 당하고 싶냐? 흐흐. 학생회 안 들어간다? 매국노 되는 거야.”

     “아, 미친. 나 말고 다른 충성스러운 사람 불러서 쓰라고 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 안 하면 매국노.

     나리아는 그걸 우선 동아리에 써먹었지만, 이후로도 자주 그럴 것이다.

     “너, 혹시 나리아 공주님에게 투표하지 않은 160 매국노 중 한 명이냐?”

     “아니거든. 나는 누아르한테 투표했거든?”

     “뭣, 혹시 반역자?”

     “미친. 지브롤터가 반역자라고 몰아세우는 거냐?”

     “앗…! 노, 농담. 미안. 거기까지는 좀 내가 과했지. 크흠.”

     아무리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지브롤터 한 명이 떡하니 자리 잡은.

     아니 애초에 이런 탁 트인 카페의 야외테라스-공공장소에서 저런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

     ‘진짜 뭐 안 하면 매국노가 되겠지.’

     매국노 농담은 어느 순간 농담이 아니라 사실 나열과 같은 상황이 될 터.

     “크흠. 야, 그런데 있잖아.”

     가령.

     “‘그 이사’, 제국 유학생 연설 끝날 때는 박수쳐주다가, 다른 후보들한테는 박수 설렁설렁치더라?”

     “뭐?”

     모두가 박수를 칠 때 가만히 앉아있는 인간이라거나.

     “내가 봤어. 나리아 공주님이 연단에서 당선 소감 발표할 때는 아예 자리에 없던데?”

     “그냥 동생이 당선되지 않아서 그랬던 거 아니야?”

     “동생 때는 아예 박수도 안 쳤다는 소문이 있어요, 이 친구야.”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라거나.

     “뭐야. 혹시 그 소문 사실이야? 지브롤터가 제국에 엄청 호의적이게 된 게 그 이사 때문이라는 거.”

     “모르지. 황손녀님 끼고 지내는 거 보면 반쯤 기정사실이던데.”

     “만일 왕국이랑 제국이 다시 전쟁이라도 하게 된다면….”

     “흐흐흐. 진짜 매국노 탄생하는 거 아닐까 몰라.”

     아는 사람은 ‘혹시’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모르는 사람도 나중에는 ‘엇?!’하는 소리가 나오게끔, 나는 지금 열심히 매국노의 기반을 쌓아나가고 있다.

     

     ‘갑자기 매국노 되겠다고 하면 그건 충격 전개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은 없어서.’

     훗날.

     조금 과격한 발언을 하는 이가 화가 난 나머지 ‘그 새끼 나라 팔아먹을 줄 알았다!’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그래서 지금처럼-

     “저, 이, 이사장님…?”

     “누구지?”

     “크흠! 저는 앤디 제퍼슨이라고 합니다!”

     진짜배기 매국노, 폐기해야 할 쓰레기들이 하나둘 내 근처로 다가오게끔 만드는 것이 내가 이렇게 밖에 나온 목적.

     

     “그래. 무슨 일이지?”

     “크흠. 그게 그러니까, 조금 말씀드리기 민망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10초 주도록 하지.”

     “아, 그!”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식으로 나왔을 때, 우물쭈물하며 타이밍을 놓친다.

     ‘하지만 준비된 사기꾼은 그렇지 않아.’

     사기꾼에게 있어 재능은 미리 온갖 레퍼토리를 짜는 준비력.

     “혹시 ‘녹음기’라는 물건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녹음마법? 별로 관심 없다. 10초. 끝.”

     “아뇨, 녹음기!! 들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글쎄, 목소리를 녹음에서 그걸 반복 재생해 준다니까요! 마법사도 아닌데!”

     “케이크에 침 튀기지 말고. 쯧, 이건 먹지도 못하겠군.”

     “자, 잠시만요! 그…!”

     또 하나가 있다면.

     “아스타시아 황손녀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원하실 때 언제든지 들으실 수 있습니다!”

     순발력.

     “……이건 그대가 먹고.”

     나는 케이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래. 한 번 설명해 보지.”

     역시나.

     ‘나는 이런 자를 상대하는 게 편해.’

     아스타시아 황손녀에게 미쳐있는 그레이 지브롤터를 연기하고 있으니, 그걸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용감한 벌레가 꼬인다.

     “그래. 녹음기라는 게 뭐라고?”

     * * *

     늦은 밤.

     아카데미 제국 유학생 4층 거실.

     “그냥 제가 귓가에 대고 속삭여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스타시아는 두 손을 자기 입에 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녹음이 필요한가…?”

     “예. 필요합니다. 없을 때 듣고 싶은 거니까요.”

     “하나 구해드릴까요? 저기 회장님께 부탁드리면….”

     “금방 들여올 수 있겠죠. 이미 상용화된 물건이니까.”

     녹음기.

     제국에서 만들어진 물건이기는 하지만, 마도 연금술이라기보다는 왕국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물건.

     “소리 저장 마법을 담은 마석을 언제 어디에서든 재생할 수 있다면 그게 녹음기죠.”

     예전부터 존재했던 물건이다.

     왕국에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노스트럼 왕국의 뒷골목에는 특정 소리를 녹음한 마석이 비싸게 팔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작 1분도 안 되는 짧은소리지만, 그게 약 누군가의 월급이나 연봉만큼 비싸게 팔릴 때가 있죠.”

     “그 안에 들어있는 소리가 그만큼 가치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요. 마법이라서. 마법은 귀족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조금 씁쓸하네요. 그런데 앤디, 그 남자가 제안한 녹음기는 그러면…?”

     “제국형 녹음기를 말하는 겁니다.”

     

     앤디 제퍼슨, 미래의 사기꾼이 제안한 녹음기는 좀 더 보편화되고 양산할 수 있는 쪽의 물건이다.

     “노스트럼에서는 소리 녹음마법을 마법사가 걸어줘야 하는 반면, 제국에서는 마석에 해당 마법이 발현되도록 마법진을 마석에 새겨넣어서 팔고 있죠. 제 정보가 맞습니까?”

     “네. 맞아요. 제국 마도연금술의 기본은 해당 마법을 마석에 집어넣어서 대량생산하는 거죠.”

     화염마법을 담은 ‘라이터’라거나, 투사 및 기억마법을 담고 있는 ‘카메라’라거나, 음성 증폭 마법이 걸려있는 ‘마이크’라거나.

     녹음기 또한 마찬가지다.

     “앤디 제퍼슨은 녹음기 자체보다는, 녹음기를 통해 녹음된 소리를 팔려고 하더군요.”

     “소리…?”

     “예. 바로 이것.”

     나는 목을 가다듬은 다음, 목에 마나를 담았다.

     “노스트럼을 다시 위대하게.”

     “…….”

     “어색합니까?”

     “뭔가, 당신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조금…?”

     “하지만 팔릴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말이 팔린다고요?”

     “다른 걸 녹음해야겠군요.”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사랑합니다, 아스타시아.”

     “엇.”

     “이거면 얼마에 팔릴 것 같습니까?”

     “비매품인데요. 팔 생각 없는데요.”

     “제 목소리가 아스타시아의 겁니까?”

     “네.”

     뻔뻔하기 그지없는 아스타시아의 답이었으나.

     “하아. 알겠어요. 뭘 팔려고 하는 건지.”

     그녀는 바로 내 의도를 이해했다.

     “나리아의 연설이라거나 그녀의 ‘애국행보’를 팔려고 하는 거군요?”

     “팔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 단순히 기록하려는 걸 수도 있고.”

     “네?”

     “앤디 제퍼슨이라는 인간은 여러모로 복잡한 인간입니다. 강약약강이며 박쥐 같은 인간이라, 언제든 자기 이득이 되는 쪽으로 붙는 인간이죠.”

     “하지만 블론드에게 표를 줬다면서요?”

     “예.”

     한 가지.

     “투표함을 까고 보니, 그렇게 결과가 나왔죠.”

     “그러면 말로는 애국하는 척하면서, 제국주의자인 거 아녜요?”

     “투표 결과만 보면 그렇긴 합니다.”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어지간한 건-회귀로 인한 요소를 제외하면-전부 말해주는 편이다.

     “아스타시아. 어떤 이들은 ‘학생회장은 학생들의 노예이며, 제국 유학생을 시켰을 때 개처럼 일하는 걸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왕국에 충성하는…왕국에서 일하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죠.”

     앤디 제퍼슨이 그렇다.

     “녹음기로 팔려고 하는 건 나리아의 애국적 행보…연설입니다.”

     “연설을 팔아요?”

     “예. 아무래도 그 인간, 나리아의 연설에 반한 것 같더군요.”

     “나리아의…연설?”

     “나리아 본인이 아니라, 나리아가 가진 능력에 반한 겁니다.”

     목소리로 사람을 속이며 사기 치고 다니던 인간 아니랄까 봐, 목소리를 가지고 뭔가를 하는 방법을 빠르게 깨쳤다.

     “그리고 녹음기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나마 거기에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저라고 생각했던 거죠.”

     “으음….”

     “같은 귀족이면서 동시에 돈도 많아 보이며, 심지어 친제국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인간.”

     “건방지네요.”

     “건방지다?”

     “그런 건 일단 이해하지만, 당신을 이용하기 위해 저를 걸고넘어졌다는 거!”

     아스타시아는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덕분에 저는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잖아요. 당신을 이용하려면 뭐든지 저를 걸고넘어지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

     “틀린 말은 아니긴 하죠.”

     “하아…. 아무리 그렇게 해서 이용하는 걸 바란다고는 하지만….”

     “걱정되는 게 있습니까?”

     “…제국신문에는 실리지 않은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아스타시아가 진지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사벨라 황태자비. 그녀가 한 말이 한 때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부인했죠.”

     “무슨 말을?”

     “사랑을 속삭이는 평범한 말이었는데, 그 대상이…합스베르크 황태자가 아니었던 거예요.”

     “…….”

     잠시.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분명 ‘테르시안’이라고 불렀는데, 그 뒤에 따르는 말은 전하가 아닌 폐하였단 말이죠? 덕분에 구설수가 많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군가가 녹음기를 이용하여 교묘히 편집한 거라고 결론이 나왔죠. 실제로 그런 게 발견되기도 했고.”

     “편집이라.”

     “조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제일 걱정스럽네요.”

     “…….”

     조작이라.

     “조작인 척 조작하는 것도 방법이네요.”

     “네?”

     “음, 뭐.”

     “…말하지 않으면 괴롭힐 거예요!”

     아스타시아가 단숨에 내게로 달려들었다.

     “말해주세요. 어서. 무슨 생각을 한 거죠?”

     “들으면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을 텐데?”

     “그냥 가능성으로 생각할게요. 네?”

     “으음…어쩐다….”

     나를 향해 계속 달라붙어 몸을 간지럽히려는 아스타시아의 행동에, 나는 이 말을 해도 될지 의문이 들었다.

     “일단은….”

     “말하지 않으면 오늘은 혼자 잘 거예요.”

     “황제랑 이사벨라 황태자비가 진짜로 사랑하는 거고, 그걸 녹음기를 통한 조작이라고 역으로 사건을 위장한 것 같습니다.”

     “…….”

     “아마도.”

     “음. 그렇군요.”

     아스타시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내게 얼굴을 묻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들으니까 조금 안타깝네요.”

     “그냥 의혹일 뿐입니다.”

     “당신이 하는 말이 그냥 의혹이거나 거짓일 리가 없잖아요. 그렇죠?”

     “마냥 모든 걸 믿으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제가 모든 걸 진실로 믿는다면, 그때도 거짓말을 하실 건가요?”

     “거짓을 말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러면….”

     아스타시아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녹음해서 팔려고 했던 그 말도, 거짓말 아닌 거죠?”

     “…….”

     “헤헹.”

     아스타시아는 나를 향해 혀를 내밀며, 이겼다는 듯이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했잖아요.”

     “…앗.”

     “따라오시죠.”

     

     나는 그대로 아스타시아를 번쩍 들어, 안방으로 향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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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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