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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

   크라슈는 지금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글렌에게 들은 소식 때문이었다.

     

   독왕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

   크라슈는 과거 독왕의 암살 소식을 들은 적 있다.

     

   ‘비앙카.’

     

   회귀 전 독왕은 하덴하르츠 가문을 멸문시켰다.

   그건 황위 계승에서 밀린 2황자가 하덴하르츠에 망명을 왔고, 황가의 비밀을 풀었다는 이유였다.

     

   그날에서 홀로 살아남은 비앙카는 백귀가 되어 복수심에 독왕을 죽였다.

   그리고 그 끝에 일어난 제국과 스타론의 전쟁에서 비앙카는 끝내 독봉, 하링 라그렌에게 죽임당한다.

     

   그것이 회귀 전 일어났던 사건.

     

   그리고 지금 어쩌면 그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연하지만 비앙카 짓은 아니다.

   독왕은 하덴하르츠를 멸문시키지도 않았고, 비앙카가 백귀가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그런데 지금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크라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진 글렌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독왕을 중상 입힌 세계 침식자가 무려 4황녀를 시해하려 했다가 도망쳐 제국이 쫓고 있던 세계 침식자라고 한다.」

     

   뒤에 이어진 말을 듣자 크라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 세계 침식자가 누구인지 크라슈는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에벨아스크 베나포치.’

     

   실상이 어떻든.

   세간에 퍼진 이야기에서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를 시해하려 했던 진상은 밤까마귀 단의 수장인 에벨아스크다.

     

   그리고 어쩌면 독왕과 에벨아스크가 부딪치게 된 것이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크라슈는 과거, 그녀에게 독왕이 하덴하르츠를 해하지 못하도록 부탁한 적이 있었으니까.

     

   만약, 자신이 내뱉은 말 탓에 이번 일이 벌어진 거라면?

     

   회귀 전, 전에 없던 사건이 자신의 발언 탓에 터졌다는 소리가 되고 만다.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단, 하나의 사소한 날갯짓이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을지도 몰랐다.

     

   [ 크라슈, 그 녀석 짓이 아니다. ]

     

   그러는 순간 크림슨가든의 목소리가 브로치를 넘어 머릿속에 들어왔다.

   격렬하게 뛰던 심장이 차츰차츰 원래의 속도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잠시 순간적으로 멍해졌던 정신도 일깨워져 갔다.

     

   「내가 쫓아가 볼게.」

     

   크림슨가든의 발언 하나로 한순간에 현실로 돌아온 크라슈는 하링을 쫓기 시작했다.

     

   당장의 문제는 하링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과거 독왕의 죽음으로 인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크라슈가 가장 잘 알았으니까.

     

   “크림슨가든.”

     

   크라슈는 달리면서 진위를 파악하고자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하늘에서 까마귀 하나가 날아와 그의 어깨 위에 내려왔다.

     

   “에벨아스크 짓은 아닌 게 확실해?”

   [ 그래, 확실하다. ]

     

   크라슈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크라슈도 정신이 차갑게 돌아오자 에벨아스크 짓은 아닐 거라 확신했다.

     

   ‘아무리 하덴하르츠의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에벨아스크가 독왕과 전면 교전을 택할 리가 없어.’

     

   애초에 시기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2황자가 제국에서 쫓겨나 하덴하르츠로 망명하게 되는 것은 아무리 앞당겨진다 한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야, 아직 황제가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다른 황족들이 2황자를 자기 마음대로 쫓아낼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 누구 짓인 거야.”

   [ 독왕이 습격당한 건 사실이다. 녀석이 부상 당한 채 쓰러져 있던 걸 본 목격자가 많아. ]

     

   다음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의 눈이 서서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제국은 독왕이 누구에 당했는지 상관없이 우선, 에벨아스크에게 뒤집어씌운 건가.”

     

   무슨 상황인지 대충 파악한 크라슈의 눈이 살벌하게 떠졌다.

     

   “제국이 에벨아스크의 위치를 알아낸 거네.”

     

   에벨아스크는 밤까마귀의 수장이다.

   하물며 황녀 시해라는 일까지 그녀에게 덮어 씌워져 있는 마당.

     

   ‘무엇보다 에벨아스크를 놓치기 싫었겠지.’

     

   그녀의 유용성은 밤까마귀 때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그러니 제국으로서는 에벨아스크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 끊임없이 그녀를 뒤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제국은 에벨아스크가 하덴하르츠에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의 기사들이 국경을 넘는 순간 그건 그거대로 악수다.

     

   이 시기에 제국은 무작정 스타론과 전쟁할 마음이 없으니까.

     

   [ 그래, 그래서 독왕을 그 꼴로 만든 세계 침식자가 스타론에 숨어들었다며 정식으로 제국 기사단의 입국 허가를 요청하고 있는 거다. ]

     

   그러니 차라리 일을 크게 벌려 버린 것이다.

   그들로서는 에벨아스크만 잡을 수 있다면 어찌 되었든 이득이다.

     

   그러니 일을 크게 벌려 스타론이든 자신들이든 뭐든 써서 에벨아스크를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스타론이 잡는다면 황녀 시해 사건의 죄를 묻는다며 송환 요청을 할 것이고.

   자신들이 잡는다면 그야 더할 나위 없는 결과니까.

     

   “제국 기사단의 입국 허가 장소는.”

   [ 하덴하르츠. ]

     

   역시나.

     

   “독왕을 진짜로 그 꼴로 만든 이가 누구인지는 확인됐어?”

   [ 그 부분은 아직이다. ]

     

   크라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정보가 모자라.’

     

   크라슈는 독왕과 마주해본 적이 없다.

     

   독봉인 하링조차도 당시에는 한 기수 위의 선배였을 뿐, 접점이 거의 없었을 정도니까.

     

   하물며 하링은 이후 백귀에게 복수하겠다며 창공의 세대까지 나가 버렸다.

     

   그러니 이렇다 할 정보가 떠오르는 게 없었다.

   크라슈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확실한 건 이전에는 없었던 사건이다.’

     

   분명히 이 사건은 이번 회차에 벌어진 여러 일들이 나비 효과를 부른 것일 거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크라슈는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어.’

     

   독왕이 어떤 이유로든 하덴하르츠와 연관된 것.

   제국이 하덴하르츠에게 파고들려는 것.

     

   이 여러 가지들이 왜인지 이전 회차와 같은 결과를 답습하는 그것 같았다.

   마치, 이 세상은 원래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정해진 틀은 차곡차곡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 같았다.

     

   스타론은 제국의 요청을 반드시 거절할 것이다.

   자국에 제국의 기사단을 들이는 짓을 할 리가 없으니까.

     

   제국과 스타론은 본래 사이가 좋지 못하다.

   제국은 이걸 빌미 삼아 이런저런 요구를 취할 가능성도 있었다.

     

   황녀를 시해하려 했고, 천하십강까지 중상 입힌 세계 침식자를 잡기 위해 검을 들었는데.

   고작해야 국가적 이익을 위해 대의를 막는다는 식으로 꼬투리를 잡으며 말이다.

     

   그 결과, 제국과 스타론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번 일은 최종적으로 전쟁까지 번지게 될 계기 중 하나였다.

     

   ‘독왕의 하덴하르츠 멸문 사건은 그저 계기였을 뿐이라는 거냐.’

     

   제국과 스타론은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가 어긋나 있었다.

   그리고 하덴하르츠 멸문 건은 그저 정말 전쟁을 일으킬 시발점이었을 뿐.

     

   전쟁을 일으킬 단 하나의 계기를 어쩌면 두 국가 모두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사소한 계기로 일어난 모든 전쟁이 대부분 이전부터 전쟁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니까 아서는.’

     

   제국과 스타론의 전쟁을 막고자 움직이지 않았다.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국가 간에 벌어지는 사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아서도 몇 번이고 막으려고 해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결과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본 순간 그는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쟁을 막는 게 아닌 전쟁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크라슈가 까득 이를 깨물었다.

     

   ‘이 썩을 국가들이 지네끼리 싸우게 둘까 보냐.’

     

   제국과 스타론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서로의 전력을 너무 소비한 탓에 세계 침식을 제어하지 못했다.

   문제는 제국과 스타론만이 아니다.

     

   어떻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두 국가다.

   두 국가의 전쟁은 당연히 주변국에도 그대로 여파를 끼쳤고, 그 결과 다른 왕국들도 자신을 지키고자 걸어 잠갔다.

     

   세계 침식의 대창궐 시대인 것이다.

     

   ‘거기에 연이어 세계 침식자들과 인간의 전쟁.’

     

   세계 침식이 범람하여 최흉으로 번지는 것은 어쩌면 전부 제국과 스타론의 전쟁이 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전쟁만큼은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막아야 할까.

     

   ‘난 지금 기껏해야 학생 신분이다.’

     

   아서가 전쟁을 손 놓고 있던 이유도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고작해야 학생의 신분으로는 나라 사이를 중재시키거나 할 권리가 없었으니까.

     

   크라슈가 달려 나가며 한참 고민하던 그때.

   번뜩 떠오른 게 있었다.

     

   원래도 하링을 쫓아 달리던 크라슈의 발걸음이 좀 더 빨라졌다.

     

   독왕의 딸, 하링 라그렌.

   그녀가 이번 일 해결의 열쇠가 되어줄지도 몰랐다.

     

   달리던 크라슈의 발걸음이 점차 멈추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도착한 장소가 여자 기숙사였기 때문이었다.

     

   하링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방이었다.

     

   아마 제대로 된 상황을 묻고자 방에 있는 연락 도구를 이용해 본가에 연락을 넣은 거겠지.

     

   무학 수업과 달리 오늘 빈 수업이 있어서일까.

   여자 기숙사 앞이라 여성 비율이 늘어나며 시선이 끌리기 시작했다.

     

   “어, 저분은.”

   “크라슈 발하임 님?”

   “누굴 만나러 오셨나 봐.”

     

   여자아이들이 왜인지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크라슈를 보았다.

   하지만 크라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하링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여자 기숙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신?”

     

   그러던 중 때마침 나오던 아스트리아와 크라슈가 마주쳤다.

   그녀는 크라슈를 보자 화색을 띄웠지만 곧 서둘러 표정을 고쳤다.

     

   “무슨 일로 여기 있어?”

     

   그녀는 나름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스트리아.”

     

   하지만 크라슈가 그녀를 보자마자 화색을 보였다.

   자신을 보고, 기뻐하는 것 같은 크라슈의 얼굴에 아스트리아가 순간 움찔거렸다.

     

   그러곤 무심코 그녀가 헤실거리는 웃음을 슬쩍 지었을 때였다.

     

   “잘됐다. 하링 라그렌 좀 불러줘.”

     

   그러나 그 표정은 얼마 못 가 바로 부서졌다.

   

   

   

   

     

   아스트리아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크라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게 마음 있는 남자가 눈 뜨자마자 다른 여자를 찾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눈가를 애처롭게 파르르 떨던 아스트리아는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왜?”

     

   대답하던 크라슈는 아스트리아의 어깨가 떨리고 있음을 눈치챘다.

     

   마음이 있는 남자가 대뜸 다른 여자를 찾고 있다.

   그것도 여자 기숙사 앞까지 와서.

     

   당연히 아스트리아 입장에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네가 뭘 생각하는지는 대충 보이는데. 그런 거 아니다.”

     

   그러니 크라슈는 바로 그녀의 오해를 정정해 주었다.

     

   “제국과 스타론 사이에 문제가 생겼어. 세계 침식자로 인해 독왕이 중상을 입었고, 제국은 그 세계 침식자가 스타론의 하덴하르츠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 단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스케일의 일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방금까지 질투와 충격으로 어긋났던 아스트리아의 얼굴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스트리아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날 부르지 않았다고?”

     

   무려 천하십강이 중상을 입은 마당.

   치료를 위해 당연히 급하게 성녀부터 부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제국은 그러지 않았다.

   하물며 성녀인 아스트리아는 이 소식조차 크라슈의 입을 통해서 알았다.

     

   “그보다 당신 이런 일에 끼려는 거야?”

     

   크라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건은 커도 너무 컸다.

   사실상 두 국가의 씨름 구도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런 곳에 크라슈가 끼려고 하는 것에 그녀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크라슈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칫하면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전쟁.

   그 말을 듣자 살짝 인상을 찌푸렸던 아스트리아가 몸을 돌렸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어지간히 큰일인가 보네. 알았어. 불러와 줄게.”

     

   아스트리아답게 공과 사는 역시 잘 구분해 준다.

   그녀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아스트리아, 고맙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크라슈가 말을 걸자 아스트리아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곤 이내 살짝 크라슈를 흘기곤 흥하고 고개를 돌렸다.

     

   “……감사 인사 들으려고 한 일은 아니니까 됐어.”

     

   그렇게 말하는 아스트리아였지만 내심 기분은 좋은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떠나고, 크라슈는 홀로 서서 여성 기숙사 쪽을 바라보았다.

     

   부디 하링이 너무 제멋대로 활동하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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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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