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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1

     

     

     

    ***

     

     

     

    “먼저. 유화야. 어제 네가 내게 한 행동에 대해 나도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어. 그리고 지금 어떤 의미인지도 확실히 알아. 이제 와서 네 마음을 모른다거나 다른 대답을 하고 싶지는 않아.”

     

    차분한 세린의 음성이 울렸다.

     

    그리고 세린을 바라보던 유화에겐 그저 듣기 좋게 들렸다.

     

    “그런 네 태도는 꽤 마음에 들어.”

     

    사실 유화는 지난밤까지만 해도 전혀 다른 생각을 했었다.

     

    ‘내가 먼저 행동해야 할 줄 알았는데.’

     

    사실 세린이는 나와의 관계에 대해 망설이며 시간을 두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실은 그 두 가지 모두 아니었다.

     

    꽤 충격적이었을 텐데, 세린은 먼저 행동했다.

     

    먼저 내게 연락하고.

    먼저 날 찾아왔다.

    지금도 날 응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날 떳떳하게 마주 보려고 행동한다는 게.

     

    “…….”

     

    말없이 날 빤히 보는 세린의 시선에 가슴이 조금 더 빨리 뛰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은 참 신기했다.

     

    ‘서로가 뒤가 없지.’

     

    내가 먼저 칼을 뽑아 들었고,

    그 칼을 받은 세린은 곧바로 내게 거리를 좁혀온 형국으로 제 칼을 내밀었다.

     

    서로가 진심으로 부딪혀야 할 때였다.

    그래야 훗날 조금의 후회 없이 서로를 바라볼 것이다.

     

    “먼저 말했듯이, 나는 지금 네가 아닌 세 사람과 사귀고 있어.”

     

    “알아. 그 세 사람의 이름이 은하와 수아…… 마지막으로 유정이었지.”

     

    “…그래, 네가 세 사람의 이름을 잘 아는 것처럼 나는 현재 그 세 사람과의 관계를 깨트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지??”

     

    태연스레 답하면서 내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알고도 마음먹은 거니까.

    알고도 난 세린에게 다가선 거니까.

     

    “유화야. 너는… 그런 나라도 가능하겠어?”

     

    “가능하고 말고가 어딨겠어. 내가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지. 그리고 세린아, 너도 알잖아. 내가 가지고 싶으면 무조건 가져야만 하는 사람인걸.”

     

    애초에 연인이 있다고 포기할 거였으면 나는 이 세상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과거, 나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세린을 찾아 헤맸고 끝에서 이 세상으로 오길 선택했다.

     

    그게 뜻하는 건 하나였다.

     

    나는 ‘내 마음’을 모를 때조차도 본능적으로 행동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하물며.’

     

    이렇게 마음을 확고히 자각한 지금. 내가 무엇이 두렵다고 멈칫하며 주저해야 할까.

     

    “아니, 유화야. 지금 네 행동 자체가 문제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조금 답답하다는 듯한 세린의 물음에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문제라니, 대체 무슨 문제가 된다고 말하는 거야?”

     

    “아니, 나는 지금 네 여자가 아니란 말이야. 다른 여자가 이미 내 곁에 있고, 내 마음에도 그 세 사람이 있어. 그런데…….”

     

    “그래서? 그럼 너는 내가 너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단숨에 그 말을 잘라내면서도 눈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말도 안 되는 소릴.’

     

    아무래도, 세린은 지금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 말은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

     

    주춤한 세린을 보면서도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이지 우스운 생각이었다.

     

    일찍이 내가 그런 것에 구애받고, 상황에 따라 마음을 바꿀 사람이었다면 어제 그렇게 행동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상식적으로는 연인이 있는 여자를, 포기하는 게 분명 맞는 걸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게 ‘나’는 아니었다.

     

    “유화야, 있지. 내 말은 당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거야. 내가 지금 네 마음을 받아들이기도,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기에도 굉장히 곤란한 상태니까.”

     

    “너는 참 신기한 말을 하는구나, 그냥 간단히 생각해. 내 말을 듣고 어제 네 마음이 어땠는지, 넌 단지 그것만 생각하면 돼.”

     

    나는 원론적인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난 확신했다. 세린이 나를 싫어하거나 밀어낼 생각이 없다는걸.

     

    애초에 나도 세린이 지금과 다른 상황이라고 해도 내 행동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세 여자와 사귀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조금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내가 그 여자들에 비해 무엇이 떨어진다고.’

     

    세린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

     

    순간 말문이 막힌 세린을 보며 나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너야 지금 많이 혼란스럽겠지. 세린아,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네가 보기엔 내가 그저 내 입장만 내세운다고 생각해도 이해해.”

     

    “그러면 왜…….”

     

    “그러니까, 너는 나를 받아들이는 게 나을 거야.”

     

    고민에 대한 답을 아주 직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스스로 답을 고르지 못하겠다면, 아예 내가 정해주겠다고.

     

    멈칫.

     

    “유화야. 내 입장을 이해한다며, 그럼 지금 네 말이 얼마나…….”

     

    “뭐가 어려워? 네 입장을 이렇게 많이 생각하니까, 나도 아예 답을 알려주는 거야. 넌 그냥 이런 나를 받아들이면 돼.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도 말고, 지금처럼 혼란스러워하지도 마.”

     

    확고히 말하면서도 자연스레 손을 뻗었다.

     

    덥석!

     

    그대로 세린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

     

    순간 크게 놀란 듯 내 손을 뿌리치며 저항하려 했지만, 난 보란 듯이 세린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스륵!

     

    ‘우습기는.’

     

    발버둥 치는 손을 더 강하게 잡고 테이블에 누르면서도, 강렬하게 시선을 주었다.

     

    애초에 세린 자기 자신도 알 것이다.

     

    지금 직접 날 찾아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내게 저항하려 해봤자,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도.

     

    “진짜 너는…….”

     

    결국 손에서 힘을 뺀 세린이 체념하듯 날 바라보자, 나는 태연히 눈을 마주쳤다.

     

    “세린아. 너는 애초에 날 받아들이기 위해서 이렇게 날 찾아온 거잖아?”

     

    나는 그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날 거절하거나, 아니면 다른 말을 할 거였다면 세린은 날 찾아오면 안 됐다고.

     

    이렇게 내 앞에서 자기 의견을 피력할 거라면 그 뜻은 하나여야 했다.

     

    ‘날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나는 시종일관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다른 말과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봤자, 날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보이니까.

     

    “…아직이야. 나는 너와 더 제대로 대화한 다음에 내 뜻을 말하려고 했어.”

     

    질끈 입술을 짓씹으며 답하는 모습조차, 오히려 내겐 색다르게 보였다.

     

    ‘정말 사랑이란 게 이런 걸까.’

     

    평소의 모습도, 그리고 평소 보기 힘들었던 이러한 모습도 내겐 그저 매력적으로 보였다.

     

    세린이 지금 내게 보여주는 모습은 그저 아양과 앙탈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뜻을 이미 전했어. 네가 다른 말을 해봤자, 나는 그저 똑같은 말을 돌려주는 거겠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왜, 네가 나를 받아들일 거라는 거?”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그리고 강하게 잡고 있던 손을 툭 놓아주었다.

     

    스륵!

     

    바로 손을 회수하는 세린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하아. 내가 앞에서 말했잖아. 지금 내가 널 받아들이기에도 복잡하고, 널 거부하기에도 복잡한 상황이라는 거.”

     

    “나도 알아. 모두 알고서 그렇게 행동한 거니까.”

     

    마음에 틈이 없었기에, 억지로 그 틈을 만들려면 무리할 수밖에 없다.

     

    세린을 정말 크게 당황하게 만들고, 그렇게 당황한 순간 그 몸에 나라는 존재를 강하게 각인시킨다.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면, 강제로 의식할 수밖에 없도록.

     

    그래서 어제 충동적으로 행동하면서도 멈칫거림은 없었다. 내 행동이 옳은 걸 알기에, 세린을 가지려면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것도 알았으니까.

     

    “천류화!”

     

    이제 와서 소리치며 차갑게 눈을 굳혀봤자, 나는 그저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 어떤 위협을 해봤자, 나한테는 정말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세린이 먼저 내게 마음을 비춘 이상 저런 세린의 모습은 그저 앙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내가 작은 웃음을 흘리며 바라만 보자, 세린은 뭔가 분한 듯 입술을 짓씹었다.

     

    잘근잘근.

     

    그런 세린을 마주하며 살며시 다리를 꼬았다.

     

    스륵.

     

    그리고 아예 턱을 괸 채, 오히려 보란 듯이 세린의 모습을 찬찬히 감상하듯 훑었다.

     

    내게 휘말린 듯,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 게 무언가 분해 보였다.

     

    그런데 그게 나는…….

     

    “예쁘네.”

     

    “…뭐?”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도 예쁘다고, 그래서 널 더 가지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어.”

     

    “아니, 넌 진짜…….”

     

    “그래서 아침은 먹었어?”

     

    “…아침이야 먹었지. 그런데 이 상황에 넌 나한테 그런 걸 물어봐? 유화야, 넌 진짜 내가 무슨 마음으로 여기 찾아온 건지…….”

     

    “모르지, 그런데 네가 뭘 선택할지는 알아. 날 받아들이고 그대로 날 사랑하게 되겠지.”

     

    담담히 말을 끊어 가면서도 마음은 그저 즐거웠다.

     

    ‘쉽구나.’

     

    일이 너무나도 쉽게 풀렸다.

     

    적어도 며칠, 혹은 시간의 유예 후에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린이 내게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단숨에 휘어잡아 내게 빠져들게 하겠다고. 꽤 강수를 둘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

     

    말문이 막힌 세린을 보며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사락.

     

    그리고 그대로 걸음을 옮겨 세린의 근처로 다가섰다.

     

    “뭐, 뭔데…… 왜 다가오는 건데?”

     

    “왜긴.”

     

    털썩.

     

    보란 듯이 세린의 곁에 몸을 앉히며 더 가까이서 세린을 마주쳐갔다.

     

    움찔.

     

    순간 내게서 멀어지려고, 자기 몸을 지키려 하는데 난 그걸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덥석!

     

    “……이 손 놓도록 해.”

     

    “싫은데.”

     

    “아니, 너 진짜…… 왜 이렇게까지 날 곤란하게 만들어? 하루 만에 이렇게 급변하듯 행동하면 내가 막 널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줄 것 같아? 있잖아, 사람 감정이란 건 전혀 그렇지 않아.”

     

    내게 팔이 붙잡힌 채, 발버둥 치듯 답하는 세린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태연했다.

     

    그야 나는 그간 알게 모르게 시선을 느꼈었다.

     

    마주할 때마다, 날 훑어보는 세린의 묘한 시선을. 그게 내 외모에 감탄하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즐기듯 그 시선을 받아냈다.

     

    그래서 알았다.

     

    지금 내 행동을, 진심으로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도.

     

    “한세린.”

     

    “…뭐, 왜.”

     

    “너 생각보다 나 좋아했구나.”

     

    “뭐?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순간 크게 당황한 세린을 보며 단숨에 고개를 기울여갔다.

     

    그냥 눈을 보면 알았다.

    세린이 날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비록 그게 내가 세린을 좋아하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좋아하고 있잖아.’

     

    네가 나를.

    그래서 이렇게 날 찾아온 거였다.

     

    쪽.

     

    살며시 그 얼굴을 감싸며 입을 맞춰가면서도 가슴이 야릇하게 간질거렸다.

     

    “……웁!”

     

    끝에서 입술을 피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저 웃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야말로 천마인 겁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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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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