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82

    ***

    어느새 하루가 끝나간다.

    그리고 오늘은 평일의 끝이었다. 바로 내일부턴 주말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난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하아.”

    입을 타고 새어 나오는 건 그저 짙은 한숨뿐.

    유화의 집에서 심란했던 시간도 흘러갔고, 집으로 돌아와 오늘의 방송을 이어가며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시간도 어찌어찌 흘렀다.

    그리고 이젠 밤이었다.

    털썩.

    멍하니 침대에 몸을 눕혀가면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을 새우고, 오늘 하루도 그리 평탄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는데 여전히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본래라면 깊은 잠에 빠져야 함에도, 계속 잠이 잘 오지 않을 만큼.

    “혹시 내가 이상한 거야?”

    멍하니 툭 중얼거리며 눈을 깜박거렸다.

    창을 타고 들어온 희미한 달빛이 내부를 비추는 지금.

    진짜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오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유화와 제대로 합의를 보려는 게 완전히 망가졌다.

    내가 내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고,

    유화는 여유롭게 나를 대하며 더 과감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나는 마치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유화에게 당해낼 수 없었다.

    애초에 그게 당연했던 걸지도 몰랐다.

    “누가 유화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설득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 동안 어나더 월드 내에서 유화가 내게 힘을 빌려줬던 것. 그리고 여러 고비를 넘겨주게 손을 빌려준 건 내가 그녀를 설득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처음 강신에 대한 조건은 ‘강자를 대할 때’라는 것이었고,

    그 외엔 과거 유화에게 남겨두었던 작은 빚을 대가로 그녀의 힘을 빌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 유화는 내게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로 날 도와줄 뿐.

    그렇기에 그건 그녀가 하고 싶기에 그런 거였다. 그녀가 날 도와주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지.”

    유화가 내게 강경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더 과감하게 행동할 때, 내가 유화를 제지하거나 설득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더 묘했다.

    나를 더 심란하게 했고, 내 마음이 혼란으로 물들게 만든다.

    지금 내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유화는 거칠 게 없다는 듯 내게 다가와 거리를 좁혀버리니까.

    스륵.

    문득 오늘 강제로 키스를 당했던 제 입술을 매만졌다. 입술을 머뭇거리면서 불현듯 유화의 음성이 울리는 듯했다.

    ㅡ너 생각보다 나 좋아했구나.

    야릇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던 유화는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그리고 직후 그녀에게 입술을 빼앗겼을 때.

    “…….”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저항하려는 시도도, 유화에게서 벗어난다는 것도.

    그래서 그저 받아들였다.

    유화가 내게 해오는 서투른 키스에 호응해주며, 살며시 유화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냥 깨달은 거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유화에게 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본래라면 그 마음이 연애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감정이었겠지만, 유화가 갑자기 폭탄의 도화선을 터트린 것처럼, 내 마음에도 거대한 불을 붙여버렸다.

    그래서 유화가 전혀 다르게 보이고, 그녀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자각하고, 의식했다.

    유화가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걸 나는 부정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눈치도 너무 빠르니까.”

    내가 무슨 선택을 할지도, 유화는 아마 연락한 순간부터 깨달았을 것이다.

    유화는 그런 여자니까.

    애초에 천마라는 자리가, 그저 강하다고만 해서 오를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니까.

    “내가 받아들일 걸 알았으니까, 시종일관 여유를 비춘 거였겠지.”

    뒤늦게 그 태도도 이해가 됐다.

    그 당시 유화가 보인 여유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내심 조금 기분이 나쁘기까지 했는데 이젠 다 이해가 됐다.

    내가 여지를 흘렸으니까.

    스르륵.

    서서히 얼굴을 쓸어가면서도 눈가가 반쯤 감기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지금도 굉장히 피곤했다. 지난밤을 모두 지새우고서, 오늘도 여러 일정도 무리 없이 다 소화했다.

    사실상 몇십 시간을 연달아 깨어있는 건데. 초인 같은 게 아니니까 당연히 나도 잠을 자야 했다. 

    “……세 사람을 어떻게 봐.”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을 붙잡는 건 유화보다도 다른 세 사람이었다.

    오늘 유화를 만나고 느꼈다.

    그리고 여러 생각 끝에 내가 유화를 당해내지 못함도 알았다.

    그럼 그것에 대해 더 고민해도 의미가 없다.

    나는 받아들일 거니까.

    유화가 내게 접근하고, 다가오는 걸 나 스스로도 막고 싶지 않아졌으니까.

    “내일 세 사람이랑 만나서 어떻게 말해야 하지.”

    멍하니 중얼거리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답이 없다.

    이건 진짜 나는 답이 주제라고 없다고 생각했다.

    세 사람이랑 사귄 지 이제 한 달이 되어가는 이때. 내가 사귀는 여자를 늘린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부스럭.

    몸을 뒤척여 가면서도 피곤한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번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눈은 더욱 감겼다.

    마음이 극도로 심란함에도 육체가 더 지쳐가니까, 한계를 호소하듯 강제로 나를 잠에 빠트리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강제로 고민이 끊겼다.

    ***

    1월 22일 토요일.

    아침 10시.

    거실엔 서윤이와 아리가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린이는 아직도 자?”

    “네. 아무래도 언니가 좀 많이 피곤한가 봐요. 아침 먹으라고 깨우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게 놔뒀거든요.”

    “……하긴. 그렇겠지.”

    아리가 순간 작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서윤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리 언니, 언니가 왜 저러는지 혹시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요?”

    “아니, 뭐…… 그냥 이번 주 자체가 세린이가 힘들만 했잖아. 처음으로 얼굴 공개하고, 매일 방송 이어간데다 캠도 매일같이 소통 시간에는 켰으니까. 그게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겠어?”

    “그것도 그럴까요. 하긴 언니가 평소 태연한 척해도 그 마음이 힘든 건 모르는 거니까요.”

    바로 수긍하는 서윤이를 보며, 오히려 아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치, 마음이 힘들 수도 있으니까.”

    그게 비록 전혀 다른 의미로 힘들다고 해도, 아마 맥락 자체는 같다고 볼 수 있었다.

    스륵.

    그렇게 아리는 살며시 세린의 방문을 바라봤다.

    ‘그래도 세린이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이 이상의 조언이나 세린에게 간섭하는 건 나로서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건, 오로지 세린이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천류화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조언했던 거니까, 이젠 잘 해결할 거라 생각했다.

    세린이를 믿으니까.

    충분히 잘 해낼 거라고.

    @#$%!

    그러다 갑자기 벨이 울리자, 나는 조금 놀랐다.

    “어라 누구지.”

    “……그러게, 혹시 세린이 약속 있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요. 언니가 약속 있는데 설마 지금까지 자는 거겠어요? 제가 나가볼게요.”

    “어, 그래.”

    그렇게 서윤이가 현관으로 향하자, 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란스러움에 자연스레 몸을 일으키며 현관을 바라보자, 멈칫했다.

    “……진짜 세린 언니 아직도 자고 있어요?”

    “어. 지금 바로 깨울 게 수아야.”

    서윤이가 다급히 세린이의 방으로 향했고, 나는 멈칫하며 수아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아리 언니.”

    “어, 으응. 오늘 약속 있었구나?”

    “네, 10시에 언니 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언니가 두 사람에게도 말을 안 했나 봐요.”

    “그렇지, 우리가 일찍 알았으면 세린이 어떻게든 깨웠을 거니까.”

    “진짜 세린 언니도 참…… 가끔 보면 대책 없다니까요.”

    뭔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수아를 보며, 나도 굉장히 마음이 묘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철컥!

    “아, 진짜 미안. 미안해. 수아야!”

    “……와, 세린 언니 진짜 지금까지 자고 있던 거예요?”

    “최대한 빨리 씻고 준비하도록 할게.”

    곧바로 방에서 빠져나온 세린이 산발이 된 머리칼을 흩날리며 세면실로 향하는데, 그걸 그저 바라보던 나는 침을 삼켰다.

    ‘세린이가 잘…… 하겠지?’

    분명 나는 세린이를 믿지만, 지금 그 믿음에 자그마한 불안이 생겼다.

    아무래도 천류화 관련해서 만큼은 정말 당황스러워 한다는 게 나도 알게 모르게 느껴졌다.

    최근엔 거의 하지 않는 실수를 세린이가 하는 게 대놓고 보이니까.

    ***

    바톡!

    수아 씨.

    [세린 언니, 지금 일어났어요. 제가 언니 데리고 최대한 빠르게 가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언니들은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때아닌 수아의 톡에 거의 도착한 은하는 눈을 깜박거렸다.

    “세린 씨가 늦잠을?”

    뭔가 굉장히 새삼스러웠다.

    최근 들어 세린 씨는 철두철미하다고 할까, 약속 관련해서 철저하게 지켜주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으니까.

    바톡!

    유정 씨.

    [난 괜찮아. 최대한 빠르게 오려 하지도 말고, 그냥 세린 씨 데리고 안전 운전해서 조심해서 오도록 해, 수아야.]

    차분한 유정 씨의 톡에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나.

    [저도 괜찮으니까, 세린 씨 천천히 준비해서 함께 오세요.]

    어차피 만남 약속이라 해봐야 밖에서 보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저번 주에 들렀던 오피스텔에 오늘 다 같이 모이기로 했으니까.

    바톡!

    수아 씨.

    [고마워요 언니들. 그럼 그렇게 할게요. 먼저 가 있으셔도 될 것 같아요. 저도 바로 은하 언니 오피스텔로 가도록 할게요.]

    그렇게 수아 씨의 답을 확인하고선 서서히 차에서 내렸다.

    “…하긴 세린 씨, 이번 주 많이 힘든 일정이었으니까.”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번 주는 우리 중 그 누구도 세린 씨와 데이트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보고 싶기도 하지만, 세린 씨의 사정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이제 세린 씨, 완전 슈퍼스타니까.”

    정말 이번 주 사이로 세린 씨 인기가 얼마나 크게 올랐는지, 나조차 확 체감될 정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연 이 관계의 끝은…!
    다음화 보기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