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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4

    ***

    ㅡ은하 씨의 오피스텔에 모이기로 한 이유.

    그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는 사적인 공간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쩌면 자의식과잉처럼 내가 유난을 떠는 걸지도 모르겠지.’

    그런데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철컥.

    은하 씨의 오피스텔로 들어서자마자 이내 두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서 와요. 두 분.”

    “늦잠꾸러기 왔네요.”

    날 반겨주는 은하와 장난스러운 유정 씨를 보며, 반가움과 함께 그만 어색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정말 미안해요. 저도 정말 정신이 없었나 봐요. 앞으론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거예요. 많이 기다렸어요?”

    “괜찮아요. 세린 씨.”

    “자자, 현관에 있지 말고, 우선 안으로 들어와요.”

    살며시 날 이끄는 유정 씨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하면 얼마 만일까.’

    이렇게 넷이서 모이는 게.

    그리 생각하면서도 두 사람이 내 실수를 가볍게 넘어가 주는 느낌이라, 마음이 더 편해졌다.

    그렇게 거실에 들어서자 이미 모든 준비는 거의 다 끝나 있었다. 중앙 테이블에 꽤 고급스러워 케이크와 음료가 각 자리에 세팅되어 있었다.

    “벌써 다 준비해놓으신 거예요?”

    “준비라고 할 것도 딱히 없는걸요.”

    “은하 씨 말대로예요, 어차피 간단히 세팅만 해놓은 거니까요.”

    두 사람의 태연한 답 사이로, 내 마음은 다시금 일렁였다.

    꿀꺽.

    괜스레 침을 삼켜가면서도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두근거렸다.

    ‘제대로 말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그녀들에게 유화에 관한 진실을 밝히며 합리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나조차, 뚜렷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제대로 말해야만 했다.

    …….

    늦잠을 잤다는 큰 실수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나를 좋게 대해주었다.

    다들 오랜만에 만난 만큼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는 것만으로 시간은 훌쩍 흘렀고,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여러 대화가 오갔다.

    “…저, 그래서 세린 씨. 캠 공개하신 후에 부담이나 그런 건 없으신 거죠?”

    그러다 유정 씨가 조심스레 내 캠방에 관해 묻자, 은하 씨와 수아가 다시금 내게 주목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정말 태연하게 답할 수 있었다.

    “네 괜찮아요. 오히려 지금은 속이 좀 후련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저 진짜 방송 보면서 여러모로 놀랐거든요. 그리고 오죽하면 저희 엔터 내에서 세린 씨 관련해서 엄청 화제인 거 알아요? MCN 내에서 화제가 된 게 아니라, 저의 SJ 엔터까지도 전염되듯 세린 씨에 관한 말이 돌더라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오히려 내가 더 의아할 정도였다.

    나는 그래봤자 스트리머인데, 여러 유명 연예인과 아이돌이 속해 있는 SJ 엔터테인먼트에 나와 관한 말이 돌 정도인가 싶었으니까.

    “그럼요. 다들 세린 씨에 대해 놀라워한다니까요. 특히 레드폭스 아이들의 놀라움도 커요. 전에도 유아는 세린 씨에 대해 관심을 표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인터넷 방송 문화에 관해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세린 씨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으니까요.”

    설명하며 들떠 보이는 유정 씨의 모습에도, 나는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조금 부끄럽네요.”

    “아, 그건 저희 숙소도 비슷해요.”

    그러다 은하 씨마저 뭔가 말할 게 있다는 듯 눈을 빛내는데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TSJ 숙소에서요?”

    “예. 세린 씨에 대해 다들 정말 궁금해하기도 하고, 얼굴 공개 이후 다른 프로팀들 내에서도 세린 씨 관련해서 여러 말이 도는 걸로 알거든요. 특히 G1 측에서 난리가 났던 걸로 기억해요.”

    “G1이면 이해는 되네요.”

    나름대로 연이 있는 팀이니까. 내 실물이 공개되고 크게 놀랐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건 아니었다.

    다만 나는 이렇게 여러 방면에서 나로 인해 말이 돈다는 게 사뭇 믿기지 않았다.

    ‘그 정도인가?’

    내가?

    물론 시청자 수가 100만 명을 넘기기도 하고, 그 외에도 파급력이 적지 않은 건 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쉬는 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나와 관해 말이 돈다는 건 좀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은하 씨야 어나더 월드 프로 관련이니까 나와 관해 소문이 도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연예계에 속해 있는 유정 씨가 나와 관한 소문이 돈다고 말을 하는 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짜 세린 언니 가끔 보면 되게 순수하다고 할지, 두 언니가 보기에도 조금 묘하지 않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수아야.”

    “지금 세린 언니가 그야말로 모든 화제의 중심에 있잖아요. 그런데 본인만 그 화제성과 유명세를 모르는 것처럼 반응하니까, 그게 어떻게 묘하지 않겠어요.”

    “수아 말대로예요. 진짜 세린 씨 관련해서 하나같이 더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데, 세린 씨만 태연하신 거 아니에요?”

    유정 씨가 수아의 말을 거들자, 나는 떨떠름했다.

    나도 충분히 화제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세린 씨는 알게 모르게 이런 데서 둔한 분이시니까요.”

    은하 씨마저 작게 웃으며 말하자, 나는 정말 나와 관한 현실에서 좀 동떨어져 있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저도 인지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더 넓은 데서 저에 관한 말이 도니까, 좀 놀랐어요.”

    “아무튼, 세린 언니. 제가 보기엔 지금보다 훨씬 더 화제가 될 거예요. 그로 인해 더 많은 관심과 유입이 생길 거니까, 언니도 변하면 안 돼요? 막 나중에 저 모른척한다거나.”

    “내가 뭘 그래, 그런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수아의 장난에 답하면서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내가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고, 잘 된다고 해도 나는 이 인연이 무척 소중했다.

    ‘애초에…….’

    나는 이미 스트리머로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큰 성공을 이뤘다.

    여기서 더 유명해지는 게 곤란하다고 느껴질 만큼.

    뜻밖의 성공이었다.

    이후 방송에 관한 얘기를 조금 더 이어가던 차, 나는 자연스레 긴장이 풀린 걸 느꼈다.

    세 사람과 만나고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정을 되찾는 거였다.

    그리고 슬슬.

    때를 노리게 됐다.

    ‘오늘…….’

    아니, 지금이 적기였다.

    바로 유화에 관한 말을 해야 할 시기.

    “여러분. 저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요.”

    그리고 난 마음을 먹자마자, 그대로 입에 담았다.

    그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마치 합을 맞춘 것처럼 내게 쏠렸다.

    “네, 편히 말씀하세요.”

    은하 씨의 차분한 말을 끝으로 유정 씨와 수아도 내게 귀를 기울이는데, 나는 심장이 돌연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걸 깨달았다.

    지난 유화와의 만남.

    거기서 나는 휩쓸리듯 제대로 말하지 못했지만 하나만큼은 타협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유화가 날가지고 싶어 하고, 나를 원한다고 해도.

    내가 오직 유화만의 여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

    적어도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유화에게도 알렸다. 그리고 유화도 그것에 대해서만큼 내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다 해야 해.’

    더 굳게 마음먹으며 운을 뗐다.

    “……저 진지하게 고백할 게 있어요. 아마 말이 좀 길어질 거예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시는 거예요?”

    수아가 멍하니 묻는 걸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조금 충격적인 말이 될 거거든. 그래서 나도 이렇게 조심스러운가 봐.”

    “무슨 말이든 저흰 다 세린 씨말에 귀를 기울일 거예요. 그러니, 차분히 말해주세요.”

    은하 씨의 말에 나는 용기 내 말을 꺼냈다.

    “다름 아니라 아마 여러분께서 생소한 한 여자에 대해 말이 될 거예요.”

    흠칫.

    그 순간 수아가 눈에 띄게 멈칫했지만, 나는 이미 뒤가 없었다.

    이미 돌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그 돌을 회수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

    다르다.

    세린 씨의 분위기가 이전과도 전혀 다르다.

    은하는 무심코 진지하게 입을 연 세린을 보며 느꼈다.

    “대체 누굴 말씀하려고 하시기에 이렇게 말씀하는 거예요?”

    유정 씨의 말에 나는 별개로 짐작 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과거 청담 플리아나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마주쳤던 신비로운 분위기의 한 여성.

    정말 짧은 마주침이었지만. 비단결 같은 흑발 사이로 도도한 눈매가 무척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여러 연예인을 보고, 세린 씨와 사귄 내 눈으로 보더라도 무척 미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마 세린 씨와 아는 사이였겠지.’

    그때 직감적으로 느꼈다.

    세린 씨와 반드시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고.

    “아마 수아를 제외한 두 분께선 다 모르실 거예요. 생소하기도 하고, 제가 따로 소개해드리지도 않았으니까요.”

    “그 말은 그 여성분에 대해 수아 씨는 안다는 건가요?”

    내가 무심코 묻자, 세린 씨는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수아 씨에게 시선을 두자, 굉장히 복잡한 표정이 보였다.

    “네, 저는 전에 실제로 만났거든요. 세린 언니 절친이시라고…… 분명 그렇게 들었었는데.”

    “그랬지. 그리고 저는 이미 유화에겐 세 사람과의 제 관계에 대해 밝혔어요. 그만큼 제겐 특별한 인연을 맺은 친구였거든요.”

    “자, 잠깐만요. 세린 씨, 저희와의 관계를 밝혔다고요?”

    “그건 그 정도로 세린 씨께서 유화 씨라는 분을 신뢰하신다는 거군요.”

    “네, 맞아요. 유정 씨와 은하 씨가 이렇게 놀라시는 것도 이해해요. 그런데 전 제 목숨을 구해줬다고 느낄 만큼 유화에게 수없는 도움을 받았어요.”

    직후 이어진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건, 유정 씨나 수아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들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세린 씨를 바라본다.

    ‘목숨을 구해줬다니…….’

    어떻게 그런 인연이 있을 수 있을까.

    “과장이나 과언이 아니라, 유화는 제게 있어 그만큼 특별한 사람이거든요. 저도 유화의 일이라면 제 모든 걸 뒷전으로 하고 도와주고 싶을 만큼 말이에요.”

    “……그렇게 특별한 친구분이 있으셨을 줄이야.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유정 씨의 말에 나도 소리 없이 공감했다.

    세린 씨에게 그만한 은인이라면 사실상 내게도 은인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란 거니까.

    “사실 지난 제 방송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천류화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어요.”

    “”아.””

    순간 나와 유정 씨가 동시에 놀랐다.

    며칠 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다. 때아닌 절친이라며 세린 씨의 방송에 나왔던 미녀.

    그리고 그 사람은 내가 청담 플리아나에서 마주쳤던 사람과 완전히 같았다.

    “방송을 보셨으면 말이 더 쉽겠네요.”

    “네. 저는 봤어요.”

    “저도…… 합방을 봤으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전 세 사람에게 조금도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러다 세린 씨가 더욱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자, 나는 불현듯 불안감이 들었다.

    ‘뭔가…….’

    별로 좋지 않은 말.

    아니,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세린 씨가 하실 것만 같았으니까.

    “유화가 절 사랑하고 있어요.”

    툭.

    이어진 말에 나는 그만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 우리를 찬찬히 바라보는 세린 씨의 두 눈에서 별안간 느껴졌다.

    그걸 세린 씨 입으로 말할 정도라면…….

    “세린 씨,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린 언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유정 씨와 수아 씨가 곧바로 크게 묻는 모습에도,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이미 답이 보인 기분이었다.

    세린 씨가 왜 우리에게 저 말을 하는 걸까.

    그리고 왜 저렇게까지 긴장하고,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말하는 걸까.

    내가 생각하기엔 그건 단 하나였다.

    세린 씨의 마음이 정해졌기에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유화에게 고백받은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어제 유화를 다시 만나서 마음을 다시 확인했어요.”

    “그래서요? 세린 언니,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요?”

    완전히 날이 선 수아 씨의 물음에 나도 하염없이 시선을 주게 됐다.

    “…….”

    단호한 표정 속 굉장히 오묘한 심란해 보이는 세린 씨의 두 눈을…….

    “유화에 대해 저는 고민하고 있어요. 아니, 사실…… 마음을 굳혔죠. 제가 어떻게 할지.”

    “세린 씨, 설마…… 아닌 거죠? 제가 생각하는 그게 아닌 거죠?”

    유정 씨도 불안감을 느낀 듯 다시 묻지만.

    세린 씨는 미미하게 눈을 흐렸다.

    “아뇨. 저는…… 유화에 대해 세 분을 설득하고자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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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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