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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88

     

     

     

    ***

     

     

     

    세린이 설명하는 내내 천류화는 귀를 기울였다.

     

    차분히 설명하는 세린의 음성에 비해, 유화가 직접 보게 된 진료 기록이란 건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스륵, 스르륵.

     

    그녀는 멍하니 스크롤을 내려가며 나타난 진료 기록을 눈에 담았다.

     

    현대 지식이 있기에 이해하기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가벼운 병력이 아니었다.

     

    “……린, 정말 괜찮은 거야?”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다시 묻게 됐다.

     

    제대로 된 일상을 살아가곤 있는 건지, 의아할 정도로 병력은 심각했다.

     

    “괜찮아. 이젠 모두 다 나은 병이지, 그리고 사실 누구에게도 밝힐 생각이 없었지만, 나도 다른 세 사람에게 널 받아들일 이유로 저 진료 기록 말곤 도저히 설득할 수가 없었어.”

     

    “정말…… 전에도 느낀 거지만, 넌 터무니없는 짓을 잘도 하는구나.”

     

    “네가 날 탓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해? 나는 이렇게라도 해서 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고 싶고, 너와의 관계도 인정받고 싶어서 그래. 따지고 보면 널 위해서 하는 행동이니까.”

     

    내 말에도 오히려 담담히 눈을 마주쳐오는데, 무심코 세린을 보며 다시금 느꼈다.

     

    ‘정말 깊은 인연을 맺었구나.’

     

    다른 세 여자와의 관계.

     

    처음 그 관계에 대해 들었을 땐 어떻게 하여 그 관계를 무로 되돌리고, 세린의 곁에 나만 남을 수 있을까 꽤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지난 며칠 세린의 태도를 보고 느꼈다.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내 입장은 이해했어. 네 말대로 이 진료 기록에 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

     

    “대체로 그것만 이해하면 돼. 세부적인 거야 차차 말을 맞춰나가면 될 거고, 다른 세 사람도 자세히 묻지 않을 거야. 뭘 어떻게 말하든…… 1년 전의 나는 굉장히 힘든 시기였으니까.”

     

    마치 남 일을 말하듯 태연히 말하는데, 그게 굉장히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게 정말 네가 겪은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그래서 다시 묻게 됐다.

     

    이 수많은 진료 기록, 그리고 수많은 약처방은 내가 보기엔 이미 평범을 아득히 넘어선 상태인데 아무렇지 않냐고.

     

    “나지만, 내가 아니지. 너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내가 그래. 이 세상에서의 나는 과거가 존재하지만, 그 과거를 나는 기억하지 못하거든.”

     

    “……굉장히 비틀린 삶이구나.”

     

    “비틀렸지만, 내가 바로 잡은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천연덕스레 내 말을 정정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되찾았다고 말하는데, 그 모습에 난 순수하게 감탄이 새어 나왔다.

     

    ‘영향이 없지 않았을 텐데.’

     

    몸에 새겨진 건, 어찌 됐든 남기 마련이다.

     

    육체와 마음이 별개일 수 없듯이,

    육체에 새겨진 흔적은 반드시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세린은 지금 내게 말하는 거였다.

     

    그걸, 자긴 모두 이겨냈다고.

     

    ……태연스러운 저 모습과 달리, 아마 꽤 고된 시간을 보냈을 게 분명했다.

     

    “과거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 네가 곤란해지지 않게 나도 최대한 협조할 테니까.”

     

    “다행이야.”

     

    “다행이고 뭐고…… 내가 어떻게 협조를 안 하겠어.”

     

    픽 웃음을 흘려 가면서도 내 말투는 어느덧 현대의 말투로 돌아왔다.

     

    스륵.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세린의 손을 맞잡았다.

     

    “정말 고생했어.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

     

    “너한테 모두 떠넘기고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내가 다른 세 여자를 인정하듯이, 우선 네 마음부터 사로잡고 차차 다른 세 여자에게도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고 했으니까.”

     

    가장 중요한 건 세린이었고, 나머지는 내게 모두 뒷순위였기에 그랬을 뿐.

     

    나와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책임을 모두 세린에게 전가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나도 네가 이렇게 순순히 순응해준 것만으로 더 바라진 않아. 그리고 네가 다른 세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단 차라리 난 이게 낫다고 생각해.”

     

    뭔가 체념한 듯 말하자, 나는 픽 웃음이 났다.

     

    “날 못 믿는 거야? 나는 꽤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하는데.”

     

    “널 믿고 말고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야. 세 사람에게 내 마음으로 부딪혀가야 세 사람이 상처를 덜 받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세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툭 말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내 여자가, 다른 여인을 계속해서 입에 담는 걸 보는 기분이란.

     

    “그럼, 지금은 내가 너보다 세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데?”

     

    가늘게 눈을 좁히며 말하자, 그만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

     

    가소로웠다.

    꽤 오만하게 들렸다.

     

    감히 나를 가지겠다고 역으로 내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래, 그렇겠지. 그만큼 나도 더 노력해야겠지, 그리고 이번 건에 한해서는 널 몰아붙이진 않을게, 네가 많이 힘들었을 테니…….”

     

    그런데도 오늘만큼은, 질투나 다른 감정을 비치고 싶지 않았다.

     

    상황을 홀로 정리하고, 날 찾아와 결과를 말한다.

    지난 며칠 가량 세린은 내 생각 이상의 고충을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걸 모두 홀로 이겨내고, 나와의 관계마저 다른 여자에게 받아들이게 했다.

     

    “…….”

     

    지금 날 바라보는 세린의 눈엔 결의가 보였다.

     

    대체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면 지금처럼 변한 모습을 보이나 싶을 정도로 진지한 모습이니까.

     

    “유화, 너도 정말 변했구나.”

     

    “그럼 변해야 하지 않겠어? 네가 이렇게 변했는데 내가 그대로일 순 없잖아.”

     

    “그것도 그런가, 나쁘진 않네. 이렇게 변한 너도…….”

     

    스륵.

     

    살며시 제 손을 맞잡아오자, 뭔가 마음이 편안했다.

     

    내 곁에 세린이 있고, 날 받아들이기로 세린은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그건 내가 더 강압적으로 행동하거나 날 비추지 않아도 세린이 날 강하게 의식했다는 소리였다.

     

    세린도 내게 아무 마음이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고…….

     

    “그래서 유화야, 언제로 할래?”

     

    “……언제라니?”

     

    “다른 세 사람과 같이 만날 날. 최대한 빨리 정해서 나는 널 정식으로 소개해주고 싶은데.”

     

    “굳이 그들과의 만남을 피하진 않겠지만, 굳이 만남을 서둘러야 할 이유라도 있어? 진료 기록으로 나와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했다면, 세 사람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나는 그들과의 만남을 피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현실을 보고 있었다.

    세린의 말은 세 사람에게 꽤 충격일 것이다. 그럼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는데…….

     

    “아니, 나는 좀 달라.”

     

    “바로 만나야겠다는 거네.”

     

    “응. 난 하루라도 빨리 널 세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그리고 널 인정받고 싶어.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네 말대로 분명 충격 받았겠지만 차라리 너를 빨리 소개해주고 진료 기록에 대해 해명하고 싶거든.”

     

    “해명은 이미 다 한 거 아니었어?”

     

    “다 말은 했지만, 세 사람은 분명 날 걱정할 게 분명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네가 종지부를 찍어줬으면 해.”

     

    말함에 막힘이 없다.

    마치 이미 다 생각하고 날 만나러 온 것처럼, 세린은 강경하게 의견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해는 갔다.

     

    “좋아, 나야 언제든 괜찮아. 어차피 최근 따로 시간을 보내진 않으니까.”

     

    “그럼 내가 세 사람이랑 일정 조율해서 다시 한번 자리를 만들게, 그때 잘 대해줘야 해?”

     

    “걱정하지 마.”

     

    웃으면서도 다시금 기분이 묘했다.

     

    세린이 지금 얼마나 세 여자를 신경 쓰는지 다 보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걸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하고 돌아갈게.”

     

    “벌써 돌아가려고?”

     

    “……나 진짜 쉬고 싶어서 그래, 지금 너랑 있는 게 부담된다기보단 이렇게 큰마음의 짐을 겨우 덜어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나도 진짜 지쳤거든.”

     

    조금 애원하듯 말하는 세린을 보며, 나는 찰나 갈등했다.

     

    언제 또 이렇게 세린과 둘이서 시간을 보낼까.

     

    그런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해.”

     

    “고마워, 유화야.”

     

    쪽.

     

    잡고 있던 손에 살며시 세린이 입을 맞추는데, 난 눈을 깜박거렸다.

     

    “……키스만 제대로 하고 돌아가.”

     

    아예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저런 미련을 주면 나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럼 네가 나한테 와서 해.”

     

    툭.

     

    내 손을 내려놓고 세린이 지친 표정으로 장난스레 웃는데, 나는 자연스레 몸을 일으켰다.

     

    달랐다.

    확실히 며칠 전과 오늘 세린의 모습은 달랐다.

     

    날 더 편하게 받아들이고, 나와 있음에도 긴장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다.

     

    스륵.

     

    살며시 세린의 곁에 몸을 앉히며, 이젠 자연스레 고개를 기울여갔다.

     

    쪼옥…… 츄릅…….

     

    다시금 세린의 입술을 탐해가면서도, 가늘게 감긴 그녀의 눈이 보였다.

     

    야했다.

    그리고 무방비했다.

     

    ‘마음 같아선…….’

     

    이 키스를 끝내고서도 세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세린이 날 완전히 받아들인 지금, 나는 내 마음만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졌다.

     

    무언가…… 이상하리만큼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 멋대로 행동하기엔 세린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져서 그럴 수 없을 만큼.

     

    “하아…….”

     

    그렇게 잠시간 키스를 이어가다 고갤 떼어내자, 세린이 달뜬 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약한데.”

     

    그러다 날 도발하는 모습에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약하다고?”

     

    자기가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건드리지 말라고 말해놓고선 정작 하는 행동은 계속해서 날 유혹하는 것 같았다.

     

    “응, 그러니까, 이젠 내가 할래.”

     

    살며시 제 목에 팔을 두른 세린을 보면서도, 순간 멈칫했다.

     

    쪽!

     

    저돌적으로 입을 맞춰온 순간, 그대로 격류에 휩쓸리듯 나는 전혀 다른 키스를 경험하게 됐다.

     

    연신 서로의 혀가 엉키며, 그 사이로 생각지도 못한 야릇한 소리가 끝없이 울린다.

     

    “하웁…… 우음…….”

     

    그리고 일부러 소리를 내는 걸까, 서로의 입술이 마찰하며, 혀가 섞이는 것으로 들린 소리만 해도 야릇하기 그지없는데 도중에 울린 간드러진 소리가 계속해서 내 마음을 강하게 자극했다.

     

    스륵!

     

    그래서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세린의 몸을 강하게 안아가면서…… 멍하니 세린이 내게 한 강렬한 키스를 그대로 돌려주듯 정신을 집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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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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